성실하고 정직한 성도는 소와 같은 충성의 생활
성실하고 정직한 성도는
소와 같은 충성의 생활
잠언 11:3, 14:4
황해도의 제 고향에서 해방 후 160명의 동창이 월남했습니다. 그중 제주도에 사는 한 동창이 10년 전 “우리는 이 땅에 왔다 가는 나그네다. 100년을 산다 해도 하나님의 영원한 생명과 비교하면 눈 깜박하는 순간이다. 아무리 이 땅에 가진 것이 많다고 해봐야 다 물거품에 지나지 않으니 하나님 영접하라”는 제 얘기가 가슴에 박혀, 부인부터 시작해 함께 교회에 다니기 시작했다고 합니다. 두 달 전 전화가 왔습니다.
“내가 죽으면 천국에 가겠지?” 묻습니다. “너 예수님 믿지 않느냐?”고 했더니 “예수님 잘 믿으려고 하는데 몸이 고장났다”고 합니다. “그 예수님이 너의 절대 구세주다. 너 때문에 오신 분이다. 알고 모르고 지은 죄 진심으로 뜨겁게 회개하라. 그리고 예수께서 그 보배로운 피로서 네 죄를 사하시고 주신 것이 성경이니, 뜻을 알고 모르고 간에 매일 읽어라.”라고 말해줬습니다. 그리고 오늘 그 친구 부인이 전화를 걸어와 남편이 세상을 떠났다는 소식을 전했습니다. 저와 통화한 뒤 성경에서 떠나지 않았고, 아들딸 통해 교회에 헌금을 드렸다고 합니다. 3년 전부터는 “분명히 지옥과 천국이 있는데 내가 젊고 혈기왕성할 때는 오만 짓을 다 하고, 이제 늘그막에 구원받겠다고 하나님 찾는 것이 양심에 걸린다.”라고 하더랍니다. 60여 년 전 제 책상 바로 앞자리에 앉았던 그의 모습이 눈에 선합니다. 잠언 27장 1절에 “너는 내일 일을 자랑하지 말라, 하루 동안에 무슨 일이 날지 알 수 없음이라” 하셨습니다. 야고보는 “들어라, 너희 중에 말하기를 오늘이나 내일이나 우리가 아무 도시에 가서 거기서 일 년을 유(留)하며 장사하여 이(利)를 보리라 하는 자들아. 내일 일을 너희가 알지 못하는도다. 너희 생명이 무엇이뇨. 너희는 잠간 보이다가 없어지는 안개니라.”(약 4:13-14) 했습니다. 여러분이 오늘 교회에 나오신 것이 하나님 앞에 참으로 감사하고, 행복하다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아프면 교회 못 나옵니다. 인간의 생각으로는 내 마음대로 내 시간에 교회 나온 것 같지만, 그 배후에는 하나님이 은혜로 역사하셔서 나온 것을 알고, 감사하는 모두가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신구약에는 성실, 정직그 이상도 이하도 없습니다.
올해 우리 총회 산하 각 교회의 표어가 ‘성실하고 정직한 그리스도인이 되자’입니다. 신구약 성경에 그 이상도, 이하도 없습니다. 성실하고 정직한 성도는 소걸음의 생활입니다. 한문으로 우보천리(牛步千里), ‘소걸음으로 천 리를 간다’라고 합니다. 오늘 본문인 잠언 11:3에 “정직한 자의 성실은 자기를 인도하거니와 사특한 자의 패역은 자기를 망케 하느니라”고 하셨습니다. 사특한 자는 히브리 원어상 ‘사기꾼’으로, 공동번역 성경은 “정직한 사람은 바르게 살아 앞길이 열리지만 사기꾼은 속임수를 쓰다가 제 꾀에 넘어진다”고 번역했습니다. 또 다른 본문인 잠언 14:4에는 “소가 없으면 구유는 깨끗하려니와 소의 힘으로 얻는 것이 많으니라” 했습니다. 소의 노력을 강조하는 말씀입니다. 소는 충성, 근면, 노력을 상징합니다. 사람이 게으르면 마음이 부패해 죄악이 발생합니다. 마음이 썩어 악취가 난다는 것입니다. 사람은 절대 게으르면 안 됩니다. 하나님은 일하지 않고 남의 것을 뜯어먹는 불한당 같은 짓을 절대 용서하지 않으십니다. 사람은 성실하고 정직하게 일하게 돼 있는 것입니다. 전도서 5:12에는 “노동자는 먹는 것이 많든지 적든지 잠을 달게 자거니와 부자는 배부름으로 자지 못하느니라” 했습니다. 일하지 않으면 소화가 안 된다는 것입니다. 젊을 때는 모르지만 30, 40, 50세가 되면 몸에 질병이 내려앉기 시작합니다.
하나님은 우주 만물을 창조하신 뒤 사람에게 “만물을 다스리라, 주관하라, 땅에 충만하도록 번식하라”고 축복하셨습니다. 우리가 선한 일에 전심전력할 것을 명령하신 것입니다(엡 2:10. 딛 2:14). 예수님이 우리 죄를 위해 십자가에 달려 처참하게 돌아가신 것은 우리가 선한 일에 힘쓰는 하나님의 백성이 되기를 원하셨기 때문입니다. “무릇 네 손이 일을 당하는 대로 힘을 다하여 할지어다. 네가 장차 들어갈 음부에는 일도 없고 계획도 없고 지식도 없고 지혜도 없음이니라”(전 9:10)고 하셨습니다. 사람은 욕심부려봐야 죽은 뒤 검부러기 하나 못 가져갑니다. 저는 목회하면서 수백 명의 시신을 다뤄봤습니다. 사람은 죽으면 이 땅에 다시 오지 못합니다. 부모, 아내, 남편, 자식, 친구, 재산 모두 잊어버리고 맙니다. 그러나 믿는 성도에게는 현세만 있는 것이 아니라 내세가 분명히 있습니다. 영원한 세계입니다. 요한계시록 21장 말씀처럼 괴로움과 한숨과 눈물과 고통과 아픔과 죽음이 없습니다. 천사가 우리를 수종(隨從) 하는 시종들입니다.
예수님은 이 땅에 오셔서늘 부지런하셨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소처럼 충실히 일해야 합니다. 우리 인간을 세상에 하나님께서 보낸 목적이 무엇입니까? 일을 통해 선을 행하고,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것입니다(고전 10:31-33). 하나님을 중심에 두는 생활에는 게으름이 있으려야 있을 수 없습니다. 하나님 자신이 부지런하시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이 땅에 오셔서 늘 부지런하셨습니다. 사도 바울을 보십시오. 주님의 십자가 구속(救贖)의 복음을 전하면서도 생활을 위해 밤낮없이 일했습니다. 남에게 신세 지지 않으려고, 자신이 번 돈으로 셋방을 얻고, 전도한 사람들에게 밥을 해주면서 복음을 전했습니다(행 28:30-31). 가는 곳마다 오해와 환난, 핍박을 당했고 죽을 뻔하기까지 했지만, 하나님께 감사하고 기도하고 찬송하며 조금도 불평, 불만하지 않았고 잔꾀 부리지 않았습니다. 죽음 앞에서도 보람을 느꼈습니다. 왜 그랬습니까? ‘나 같은 죄인이 하나님을 주님으로 받들고, 주님의 영광스러운 일을 하는데 얼마나 보람 있습니까’라고 생각했던 것입니다. 그래서 복음 전하는 일에 헌신하면서도 부지런히 밤낮으로 일하고, 그것으로 동역자들을 도와줬습니다(행 20:34, 고전 4:12, 9:15, 고후 11:7, 12:13-19, 살전 2:9, 살후 3:8).
소의 성실과 정직을 배우십시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성실한 걸음으로 가야 합니다. 누가 소 같은 녀석이라고 비웃어도 좋습니다. 소는 걸음이 늦습니다. 그러나 우보천리! 소 같은 걸음으로 천 리를 가는 것입니다. 소는 첫째, 순박함이 있습니다. 두 번째, 근면함이 있습니다. 세 번째, 성실함이 있고 네 번째, 정직함이 있습니다. 은근과 끈기가 있습니다. 은근하게 감싸줌, 은근한 말씨, 은근하고 감미로운 선율! 한복도 은근한 멋을 풍기죠. 그런 은근함을 소에게 배워야 합니다. 얍삽하고 잔꾀 부리고 거짓말하는 사기꾼들은 당장 뭐라도 될 것처럼 말합니다. 그러나 소는 수걱수걱 일하면서 자기 몫을 다합니다. 주인을 만족시키고 기쁘게 해줍니다. 주인의 재산을 늘려주는 것이 소입니다. 비록 느리고 우직하지만, 끈기가 있습니다. 옛 어른들은 “소같이 정직하라”고 자손들을 가르쳤습니다. “정직해야 오래 산다”고 훈계했습니다. 사람이 오래 사는 섭리를 말씀하는 것입니다. 철학자 니체도 소에게 배울 점이 많다고 했습니다. 성실(誠實)은 정성 ‘성’, 열매 ‘실’입니다. 정성스럽고 참되어 거짓이 없는 것이 성실입니다. 정직(正直)은 바를 ‘정’, 곧을 ‘직’입니다. 마음이 바르고 곧은 것입니다. 우둘투둘 한 것, 비뚤어진 것이 없습니다.
성도는 소처럼 온순하고 온화한 덕성을 가지고 살아야 합니다.
온순은 성질이나 말씨가 온화하고 양순한 것입니다. 반말 찍찍하면 안 되는 것입니다. 온화는 조용하고 부드러운 것입니다. 사람 대할 때 이악스럽고, 면도칼처럼, 짐승 잡는 칼처럼 날카로우면 안 됩니다. 예수님을 보십시오. 털을 깎는 목자 앞에 양이 아무 소리도 안 냈다고 하지 않았습니까(사 53:7). 그리스도인은 온화해야 합니다. 소처럼 어질고 너그러운 덕성이 있어야 합니다. 춘원 이광수는 우덕송(牛德頌), 즉 ‘소의 덕을 기리는 노래’라는 글에서 소를 인도주의자로 표현했습니다. 소에게는 사자의 교만함, 호랑이의 엉큼함, 코끼리의 능글능글함, 기린의 바람기, 여우의 간교함이 없다는 것입니다. 간에 붙었다 쓸개에 붙었다 하고, 자기에게 이익이 돌아올 것 같으면 한쪽에 붙었다가, 아무것도 없다 싶으면 싹 돌아서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형상을 입은 사람이 왜 그렇게 삽니까. 몇 해나 살겠다고 그렇게 살아서야 하겠습니까. 사람은 살아도 곱게 살고, 죽어도 곱게 살다 죽어야 합니다. 옛 성인들은 칼을 팔아 소를 산다고 했고, 동양의 신선도(神仙圖)에는 한가로이 풀을 뜯어 먹는 소가 자주 등장합니다.
성경에 대표적으로 온순하고 온화한 덕성을 가진 사람은 모세입니다(민 12:3). 메시아 예수님의 성품도 온유함입니다(마 11:29). 성령의 열매(갈 5:23)도, 사랑의 속성(고전 13:4)도 모두 온유함입니다. 하나님 나라에 갈 성도는 온유한 사람입니다(마 5:5). 우리 모두 소처럼 온순 합시다. 온화한 덕성으로 이웃들에게 사랑을 베풀고, 빛과 소금의 역할을 해야 합니다. ‘네가 나와 무슨 상관있어? 피가 섞여 있냐? 같은 고향도 아니고 동창도 아닌데 내가 왜 너 때문에 희생해?’ 성도는 이렇게 해서는 안 됩니다. 예수님은 우리가 세상의 빛과 소금이라고 하셨습니다. 소금은 자신이 녹아야 됩니다. 자신이 희생해야 부패가 방지됩니다. 빛도 마찬가지입니다. 방안에 빛을 비추려면 심지가 타야 하고, 기름이 없어져야 합니다. 소는 불평 없이 주인의 말에 순종합니다. 정직합니다. 성실합니다. 끈기가 있습니다. 불평 없이 주인의 말에 순종합니다. 느린 것 같지만, 주인이 끌고 가는 대로 따라옵니다. 여우처럼 잔꾀 부리고 토끼처럼 조급한 자는 스스로 판 웅덩이에 빠지기 쉽다고 잠언에 기록돼 있습니다.
소처럼 불평 없이직분에 충성하고 있습니까.
사도 바울은 데살로니가 교인들에게 “일하기 싫거든 먹지도 말라”(살후 3:10下)고 했습니다. 먹지 않으면 죽습니다. 일하기 싫으면 존재가치가 없다는 것입니다. 우리 성도들은 소처럼 불평 없이 맡은바 직분에 다 헌신하고 있습니까? 목사면 목사, 장로면 장로, 권사면 권사로서의 직무를 충실히 수행하고 있습니까? 권사는 교회를 돌보는 어머니입니다. 장로님들은 평신도보다 몇 배 희생해야 합니다. 장로 직분을 가지고 그 나라 가면 그 기준으로 심판받습니다. 행한 대로 보응 받습니다. 바른말 할 때 싫어하지 말고 정신 차리세요. 이 땅에 몇 해나 살겠습니까. 70살이 못 돼서 가는 사람도 있고, 80살이 못 돼서 가는 사람도 있습니다. 하나님의 일을 하다 가야죠. 장로라면 교회에 본을 보여야죠. 우리 목사, 전도사, 직원들이 교회의 모든 궂은일을 맡아 하는 것을 보십시오. 장로들은 평신도보다 3배, 4배 일해야 합니다. 소처럼 불평 없이 끈기 있게 신앙생활하고, 교회 잘 받들고, 가정생활과 직장생활을 해야 합니다. 직분 받은 분들은 하나님을 말씀인 성경을 공부하는 것도 배(倍) 이상 해야 합니다.
“게으른 자는 그 손을 그릇에 넣고도 입으로 올리기를 괴로워하느니라”(잠 19:24) 하셨습니다. “게으른 자는 가을에 밭 갈지 아니하나니 그러므로 거둘 때에는 구걸할지라도 얻지 못하리라”(잠 20:4) 하셨습니다. 목사님, 전도사님들, 잘하세요. 도둑이 돼서는 안 됩니다. 목사가 교인들을 위해서 기도했습니까? 뜨겁게 사랑했습니까? 자기 가족들만 돌보지는 않았습니까? 장로들은 모든 성도보다 몇 배 더 기도해야 하고, 교인들의 영혼을 돌보는 오빠 입장, 형님의 입장이 되어야 합니다.
소처럼 제 몸을 바치는 희생이 있어야 합니다.
모두가 제 것 챙기기에 급급한 이 세대에 소처럼 남을 위해 제 몸을 바치는 겸손한 희생정신이 있어야 합니다. 소는 사람들에게 노동력과 고기와 우유와 버터와 기름과 가죽을 제공합니다. ‘밤 까먹은 자리는 있어도 소 잡아먹은 자리는 없다’는 속담이 있습니다. 생전에 노동으로 봉사하고 죽어서는 내장과 뼈와 가죽까지 다 주고 가기 때문입니다. 우리 조상들은 소를 생구
(生口)라고 했죠. 함께 밥 먹는 ‘식구’(食口) 는 아니지만, ‘생구’라고 부른 것은 소를 사람처럼 소중하게 여겼다는 뜻입니다. 제가 어릴 때만 해도 동네에서 ‘황소 한 마리 주고 튼튼한 머슴 하나 사 왔다’고 말하는 걸 들었습니다. 사람의 값을 소로 계산한 것입니다. 하나님 앞과 사람 앞에서 소처럼 성실하고 희생적으로 살다 보면 그만큼 값의 대우를 받게 됩니다. 얄팍한 수단 쓰지 마십시오. 교회 오면 일거리를 찾으십시오. 붕어처럼 미끼만 따먹고 도망가는 교인이 돼서는 안 됩니다.
성실하고 정직한 노력, 희생적인 노력은 당장은 손해 보는 것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우보천리! 느릿느릿하지만 그것이 쌓이고 쌓이면 하나님이 하늘 창고를 열고 모든 보화를 아끼지 않으십니다(시 84:11). 부자 되는 방법이 여기 있지 않습니까? 다른 방법이 있다고 거짓말하지 마십시오. 이제부터는 우리 주인 되시는 하나님 앞에 열심히 해 보십시오. 부모도 참으로 효성을 다하고 일 잘하는 자식을 아낌없이 사랑하지 않습니까. 사람이 그렇다면 하나님은 얼마나 아낌없이 사랑하시겠습니까. 보이는 세계, 보이지 않는 세계에서 모두 축복해 주시는 것입니다.
소처럼 반추하는 신중함이 있어야 합니다.
소처럼 새김질을 잘 배워 만사를 차분히 반추하는 여유와 신중함을 키워야 합니다. 조선 선조 시대의 선비 정탁이 젊은 시절 관직에 부임하려고 스승 조식을 찾아가 하직 인사를 했습니다. 조식이 정탁에게 “자네 갈 때 내 집에 있는 소 한 마리 끌고 가게나.” 했습니다. 청렴결백한 스승의 집에 소는커녕 소 그림자도 없는 걸 뻔히 아는 정탁은 어리둥절했습니다. 그러자 스승이 말했습니다. “자네의 언어와 의지가 너무 민첩하고 날카로워 날쌘 말과 같이 달리기를 잘하네. 말은 넘어지기 쉬운 동물이라 더디고 착실한 것을 참작해야 비로소 멀리 갈 수 있지 않겠나? 그래서 소를 끌고 가라고 한 것일세.” 조식이 내준 소는 마음의 소였던 것입니다. 정탁이 스승의 말을 듣고 나라 안팎의 일을 얼마나 착실하게 했던지 백성들이 다 알 정도가 됐고, 재상까지 올라갔습니다. 그는 마음의 소를 항상 끌고 다녔고, 자녀들에게도 마음의 소를 대대로 물려주도록 유언했다고 합니다. 성도 여러분, 여유와 신중함으로 가족, 친구는 물론 교회와 국가, 민족에 보탬 되는 사람이 돼야 합니다. 반추(反芻)는 소의 새김질입니다. 우리는 주신 말씀을 새김질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공부하고, 잊어버리지 말고, 기도하고, 주의 은혜 가운데 되새김질해서 마음에서 영원히 떠나지 않도록 해야 합니다. 그런 은혜가 있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언덕배기를 오르는 소처럼 정열적이고 끈기 있는 힘으로 힘차게 나아가야 합니다.
소는 무거운 달구지에 짐을 싣고 올라갈 때 끈기 있게 나아갑니다. 눈을 부릅뜨고 씩씩거리면서 앞발과 뒷발에 온 힘을 기울입니다. 달구지가 다시 내려갈까 봐 전력을 다해 언덕배기를 오르는 그 끈기 있는 소를 보십시오. 우리도 신앙생활을 그렇게 해야 합니다. 한번 결심했으면 실천해야죠. 교회 나오겠다고 하다가 ‘에고, 눈이 오네, 춥겠다’, ‘비가 오네, 우산이 없지?’ 하면서 마음으로만 ‘교회 가야 할 텐데, 오늘 무슨 말씀 하시려나?’ 하다가 결국 시간이 늦어서 못 갑니다. 그러다 나중에 친구에게 전화해 ‘오늘 설교한 녹음테이프 하나 가지고 와’ 합니다. 짐을 지고 가지 않겠다는 것입니다. 남의 신세 지겠다는 것입니다. 신앙생활에서 한번 품은 포부와 꿈을 당차게 밀고 나가야 합니다. 누구 말 듣고 혹하고 그래서야 되겠습니까. 좌우로 치우치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강철왕 카네기를 보십시오. 가난한 집에서 자라 우편배달부로 일할 때 집마다 주소 문패를 다 외웠습니다. 그런 모습을 지켜본 사람들이 그를 인정하고 발탁해서 마침내 세계적인 강철왕이 된 것입니다. 우연히 되는 것이 아닙니다. 무거운 짐을 끌고 당차게 올라간 것입니다. 우리 신앙인들이 그렇게 돼야 합니다. 예수님 믿는 일에도, 세상에서 주시는 일에도 누구보다도 뒤처지지 않고 앞장서겠다는 다짐! 일인자가 돼야겠다는 결심이 있어야 합니다.
오늘 본문인 “정직한 사람은 바르게 살아 앞길이 열리지만, 사기꾼은 속임수를 쓰다가 제 꾀에 넘어진다.”(잠언 11:3, 공동번역)는 말씀처럼, 안일한 생각, 안일한 생활을 하지 마십시오. 일해서 밥을 먹어야 합니다. 남의 심부름을 해서라도 자기 힘으로 밥을 먹어야 합니다. 남이 불쌍히 여겨 도와주지 않을까? 도움을 받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하지 마십시오. 일시적으로는 일하지 않고 말만 해서 성공할 수 있겠죠. 그러나 거북이가 토끼를 이기듯, 황소 같은 성실함이 쥐 같은 교활함을 이기게 돼 있습니다. 성실이 교활을, 정직이 부패를 이긴다는 것을 기억하십시오. 그리스도인들은 성실하고 정직해야 합니다.
“소가 없으면 구유는 깨끗하려니와 소의 힘으로 얻는 것이 많으니라” (잠 14:4)
소가 없으면 구유는 깨끗합니다. 천한 것, 지저분한 것을 하지 않으면 깨끗합니다. 그러나 절대 부유해질 수 없습니다. 천한 직업, 천한 일이라며 안 하려고 합니다. ‘내가 어느 대학 나왔는데, 아무려면 나보다 공부도 못한 그 사람 밑에 가서 일하겠어?’ 합니다. 그러는 가운데 아내와 자녀들은 먹지 못해 점점 야위어갑니다. 살던 집을 빼서 변두리로 이사 갑니다. 모든 생활에 안전이 없이 공포와 불안 속에 살아갑니다. 성경 말씀을 볼 때 사람들이 천한 일이나 천한 직업이라고 하는 것도 하나님이 주신 천직
(天職)입니다. 일하기 싫은 사람들은 ‘소가 없어서 깨끗한 구유’입니다. 그러나 구유가 지저분하고, 소똥의 악취가 날지언정 소로 말미암아 얻는 이득이 얼마나 많습니까? 부요(富饒)의 복을 받습니다. 얄팍한 수단과 방법 쓰면서 쉽게 부자 되려고 하지 맙시다. 돈도 한 푼 두 푼 벌어서 늘려야 합니다. 한 달에 10만 원씩 저금하면 1년이면 120만 원, 10년이면 1,200만 원, 이자가 붙으면 1,400만 원입니다. 그렇게 해야 합니다. 소처럼 충성하고 소처럼 순종하고 근면한 생활을 할 때 하나님께 영광이 되고, 자신의 신앙이 두터워지고, 생활에 여유가 생기고, 만족과 기쁨과 감사가 넘치게 됩니다.
바울은 빌립보 교인들에게 “무슨 일이든지 부끄럽지 아니하고 살든지 죽든지 그리스도가 존귀히 되기를 원한다”(빌 1:20) 했습니다. 오직 예수님만이 존귀하게 되시도록 천한 일이건 좋은 일이건 가리지 않고 일한다는 것입니다. 그는 육신적으로 보면 왕족인 베냐민 지파 출신에 오늘로 말하면 서울대 격인 다소대를 나오고 가말리엘 문하에서 교육받은 바리새인 중의 바리새인으로 평생 높은 상좌(上座)에서 살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을 믿어 천대, 멸시받고, 돌에 맞고, 매 맞고, 춥고, 헐벗고, 굶고, 배고프고, 도망 다니기 바빴습니다. 그런데도 “내가 이제 너희를 위하여 받는 괴로움을 기뻐하고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을 그의 몸 된 교회를 위하여 내 육체에 채우노라”(골 1:24)고 말했습니다. 이런 목사, 이런 장로, 이런 권사, 이런 집사가 되셔야 합니다. 교회에 어려운 일만 생기면 ‘조심하자’고 하며 자기 몸만 돌봐서는 안 됩니다.
로마서 14:7-8 “우리 중에 누구든지 자기를 위하여 사는 자가 없고 자기를 위하여 죽는 자도 없도다. 우리가 살아도 주를 위하여 살고 죽어도 주를 위하여 죽나니 그러므로 사나 죽으나 우리가 주의 것이로라”
이 말씀을 믿고 근면, 헌신, 봉사, 충성하면서 하나님께 영광이 되고, 주님의 몸 된 교회가 세계만방에 말씀으로 빛나는 산 역사를 이루는 역군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하겠습니다. 우리 모두 늦지만, 소걸음으로 천 리를 갑시다.
2004년 8월 1일 주일 2부 예배 휘선(暉宣) 박윤식 목사 설교
- 21년 7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