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믿는 복음은 오직 예수
내가 믿는 복음은 오직 예수
마가복음 1:14-15, 로마서 1:14-17
예수님 당시 로마 시민권을 가진 사람들은 십자가에 처형하지 않고, 로마인 아닌 이방인들만 십자가에 처형했습니다. 죄인은 30관(112.5kg) 넘는 십자가를 걸머지고 자기가 죽을 장소로 가서 양손과 양발에 우둘투둘한 거친 못이 박혀 죽었습니다.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께서 그렇게 십자가에 달리셨습니다. 로마 병사들이 짐승의 뼈나 쇠붙이가 붙은 채찍으로 예수님을 치면, 등에 고랑이 생겼습니다. 얼굴에 가래침을 뱉고, 수건을 씌워 권투선수처럼 때리면서 “네가 앞을 내다보는 선지자라며, 내가 너 때렸다, 내 이름이 뭐냐?” 하며 조롱합니다. 3년 묵은 가시로 만든 면류관을 씌울 때 가시가 해골까지 닿아 구부러지죠. 선혈이 낭자한 예수님의 팔을 밟아서 인정사정없이 양손에 못을 대고 망치를 내려칩니다. 죄를 알지도 못하시는 예수님께서 우리 때문에 억조창생 인간의 죄를 다 뒤집어쓰셨습니다(고후 5:21).
그런데 오늘날 예수를 몇십 년 믿으면서 십자가를 봐도 감동이 없습니다. 자식이 일류대학에 들어가거나, 100대 1의 경쟁률을 뚫고 취직하면 좋아서 날아갈 듯하지만, 십자가를 볼 때 그런 감격이 있습니까? 하나님께서 나 같은 죄인을 살리기 위해 둘도 없는 친아들 예수를 나무에 달아서 죽이셨습니다. 그 심정을 헤아려 봤습니까? 그래서 오늘 제목은 “내가 믿는 복음은 오직 예수”입니다. 이것이 신앙의 본질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보혈에 죄인들에 대한 용서가 깃들어 있습니다. 임시변통이 아니라 영원히 아픔과 죽음이 없는 생명, 예수님 그 자체가 복음입니다. 오늘 복음을 받은 여러분은 그 기쁜 소식을 전했습니까? 오늘 본문 로마서 1장 말씀을 볼 때, 누구든지 빚진 죄인이라고 했습니다. 우리 기독교는 빚진 종교입니다. 교회가 작으면 적게 빚을 갚아야 하겠지만, 큰 교회는 더더욱 많이 갚아야 합니다.
복음(gospel)은 좋은 소식입니다. 영어 God과 Spell의 합성어로 ‘좋은 소식, 좋은 이야기’라는 뜻입니다. 마치 애 못 낳는 집에 며느리가 아이를 낳아서 가문을 살렸을 때처럼 기쁜 소식입니다. 인간의 기쁜 소식은 잠깐이지만, 예수님은 언제나 희미해지지 않아 확실하고, 영원부터 영원까지 동일하여 변함이 없는 복음의 진리입니다(히13:8, 약 1:17, 갈 2:5). 진리이고 생명이며, 하나님 아버지 앞으로 가는 구원의 길입니다(요 14:6). 이것이 우리의 복음, 내 복음이 되어야 합니다(몬 1:13). 그러려면 신명기 6:5 말씀처럼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해 하나님을 사랑해야 합니다. 여자들이 남편이나 애인에게 편지를 받으면 읽으면서 웃는 것처럼, 진짜 신랑 되신 예수님을 사랑한다면 성경을 안 볼 수 없죠. 이 복음은 영원한 복음이기 때문에(계 14:6) 그 가치를 알 때 감격과 감사, 보람이 있습니다. 그래서 은혜의 복음입니다(행 20:24). 우리의 가정에 그런 은혜가 충만합니까? 가정마다 우리 식구를 복음의 식구라고 말할 수 있습니까? 딸은 딸대로, 아들은 아들대로, 남편은 남편대로 교회 안 나오고 혼자 기적적으로 교회에 나와서 인애하신 구세주 찾으면 뭐 하겠습니까? 가정은 작은 천국입니다. 마음 전체를 자기 식구에게 돌려보세요. 평안의 복음이 되어야 합니다.
교회 나가서 성경 공부해 깨달은 것을 기록한 노트를 들고 집에 들어갈 때, 복음의 진리가 집에 들어가는 것입니다. 그 집은 모든 아픔, 병, 가난이 달아나고 은혜의 축복이 임합니다. 은행에 천만 원 예금하는 것보다 확실한 축복이죠. 이것은 미신이 아니라 말씀대로 믿는 것입니다. 느부갓네살 왕이 느지막이 일어나 성곽 위에 올라 바벨론을 보면서 “이 큰 바벨론은 내가 능력과 권세로 건설하여 나의 도성을 삼고 이것으로 내 위엄의 영광을 나타낸 것이 아니냐”라고 말했습니다. 그 말이 끝나기도 전에 하나님께서 그에게서 왕위가 떠나게 하시고, 7년 동안 짐승처럼 지내는 저주를 내리시고 “지극히 높으신 자가 인간 나라를 다스리시며 자기의 뜻대로 그것을 누구에게든지 주시는 줄을 알기까지 이르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단 4:29-32). 일류 대학을 나왔다고, 총리, 장관 아니라 대통령을 지냈다고 구원받습니까? 예수 믿지 않으면 구원받지 못합니다. 그러니 아들딸이 교회 다녀왔다고 할 때, 공부 안 한다고 걱정할 필요 없습니다. 오히려 성경 공부하고 왔을 때, “야, 이제부터 우리 집안이 환하다!” 말하면 그대로 이루어질 줄 믿으시기 바랍니다. 복음은 미래에 대한 약속이고, 힘입니다. 복음을 먹고 믿으면 다이너마이트 터지는 것보다 더 큰 능력이 생깁니다. 어떤 죄인의 죄악도 다 폭발시킵니다. 원죄, 유전죄, 자범죄가 단번에 다 씻어지고 하나님의 아들딸로 복귀할 줄 믿으시기 바랍니다(롬 3:24). 하나님의 손에 있는 능력과 권세, 높게 사는 것과 낮게 하는 것, 그 놀라운 하나님의 은혜를 흔들림 없이 믿어야 합니다(대상 29:11-12).
하나님께서는 아담의 7대손 에녹에게 두 가지를 심판하실 것을 말씀해 주셨습니다. 첫 번째, 하나님의 일에 대해서 아낌없이 헌신했는가입니다. 두 번째, 말에 대해 심판하십니다. 생명을 사랑하고 좋은 날 보기 원하는 사람은 혀를 금하라고 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출애굽 시켜주신 하나님을 의심하고 원망했죠(신 1:27). 진리는 언제나 선하고 바르기 때문에 누가 뭐라 해도 복음을 믿는 사람은 원망하거나 의심하지 않습니다. 공의의 하나님께서 성령으로 감동, 감화하셔서 당신의 종들에게 직접 계시하시고 기록한 말씀이니, 믿을 만합니다. 하나님께는 모든 권세와 능력이 있지만 거짓말만은 못하십니다(히 6:18). 그래서 그분의 말씀은 절대 불변하고 영원하며 과거와 현재, 미래까지 흔들리지 않는 소망입니다(골 1:23). 복음은 썩지도, 쇠하지도 않고, 망하거나 없어지지 않는 우리를 위한 천국의 기업입니다(벧전 1:3-4). 따라서 진정 복음을 믿는 사람은 요지부동하고 늘 감사, 늘 감격하며, 사는 가치를 느낍니다.
또한 복음은 분별의 좋은 소식입니다.
“이제는 우리 구주 그리스도 예수의 나타나심으로 말미암아 나타났으니 저는 사망을 폐하시고 복음으로써 생명과 썩지 아니할 것을 드러내신지라”(딤후 1:10) 하셨습니다. 복음은 썩어가는 세상에서 생명과 썩지 않는 것을 분별합니다. 그래서 복음에는 죽음과 이별이 없고, 언제나 끝이 아니라 새로운 시작입니다. 그러니 죽을까 봐 걱정하지 마세요. 예수님의 복음을 믿으면 죽자마자 천국이고, 믿지 않는 사람은 생명책에 이름이 없기 때문에 당장 유황불에 들어갑니다(계 20:15, 22:15).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날마다 새로운 피조물(고후 5:17)이므로 예수 믿는 사람은 숨을 거두면 죽은 것이 아니라 잠자는 것입니다(살전 4:13). 종말이 아니라 천국에 입성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 평강 성도들은 울지 않습니다. 평강제일교회 원로목사가 부탁드립니다. 기독교는 무덤이 없는 종교입니다. 육신의 장막 집이 무너지면 하나님께서 지으신 집에서 재림할 때까지 잠자고 있는 것이니(고후 5:1) 비석에 무덤 ‘묘’자 쓰지 마시고, 요한복음 11:25-26과 요한계시록 22:20을 적고 ‘누구누구의 집’이라고 쓰기를 부탁드립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인간과 단 한 가지 변치 못할 약속을 하시지 않았습니까. 그것은 영원한 생명입니다(요일 2:25). 따라서 성도는 발걸음이 군인처럼 씩씩해야 합니다. 참 은혜가 되면 손뼉을 치고, 엉덩이가 들썩거리죠. 그렇게 믿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사망을 멸하시고(사 25:8), 예수는 죽은 자 가운데 부활한 첫 열매가 되었습니다. 그것이 나의 복음이 됩니다(딤후 2:8). 주님의 부활이 내 부활이고, 주님의 생명이 내 생명이 되니 얼마나 좋습니까. 그 복음을 믿는 사람을 누가 가져 갈까 봐 약속의 성령으로 인(印)을 치셨습니다(엡 1:13).
더욱더 기쁜 것은 오늘 본문 로마서 1:16 말씀처럼 복음에는 구원의 능력이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을 모든 질병과 위험에서 해방시키시며(마 8:28, 막 9:22), 말씀 받기 위해 몰려든 이스라엘 백성들의 굶주림을 자비와 긍휼과 사랑의 눈으로 보시고 보리 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로 2만 명을 먹이셨습니다. 또한, 유대인들보다 경건한 사람이었던 이달리야대의 백부장 고넬료가 베드로가 전하는 말씀을 사모하는 마음으로 듣는 순간, 하나님이 너무 기뻐하시면서 성령을 내려 주셨습니다(행 10:44). 이렇게 복음의 대상은 바로 ‘믿는 자’입니다. 예수의 이름을 믿는 자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습니다(요 1:12-13).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들을 미리 정하신 자라고 하시고, 그들을 부르시고, 의롭다고 하셨으며, 영화롭게 하셨습니다
(롬 8:30). 그래서 영생을 주기로 작정하신 자들은 이것을 다 믿게 됩니다(행 13:48).
신구약 성경은 모두 예수님을 증거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선민 유대 땅에 왔을 때, 백성들이 알아보지 못하고 욕하고 때리고 십자가에 못 박았습니다. 모세가 증거하는 대상은 예수 그리스도인데 이스라엘 백성들은 모세를 아버지, 선지자로 믿는다면서 그가 증거하는 대상은 믿지 못했습니다(요 5:45-47). 하늘의 일을 말해도 믿지 못한 것입니다(요 3:12). 예수님이 짐승보다 못한 대접을 받으시면서 매일 이 거리 저 거리 헤매며 가난한 자를 고쳐주고 말씀을 가르쳐줘도 믿지 못합니다. 십자가에서 양손 양발에 피가 빠져 온몸이 쑤셔도 예수님께서는 ‘아버지 저들이 하는 짓을 몰라서 그러니 용서해달라’고 끝까지 사랑했습니다. 바로 우리의 죄 때문에 거룩한 성체에서 보배로운 피 한 방울 남기지 않고 다 쏟았습니다. 그것이 우리에게 복음이 아니면 무엇이겠습니까? 사람은 한 번 났다가 한 번 죽고, 그 후에는 심판이 있습니다(히 9:27). 진실하게 거짓 없이 예수님을 나의 생명의 구주, 영원한 만왕의 왕으로 모시면서 살 때 대통령의 집에서 사는 것보다 더 낫다는 것을 믿으시길 바랍니다.
주변 친구들 다 먹고 놀 때 이 고열 속에 말씀 받는 우리가 무슨 수지타산이 맞습니까? 그러나 이방 사람 부러워할 것 없습니다. 돈이 있어 봐야 허랑방탕하게 씁니다. 우리는 범사에 감사해야 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유월절, 맥추절, 장막절을 지켰습니다. 한 번 지키려고 열흘 걸려 예루살렘으로 가서 일주일 동안 지키고, 또 돌아오는 데 열흘 걸립니다. 또 월삭, 나팔절, 안식일을 지키다 보면 예배드리다가 시간 다 갑니다. 우리는 1년에 한 번 대성회 와야 3박 4일뿐입니다. 연단이고 훈련입니다. 도망가지 말고 끝까지 말씀받고, 전무후무한 이곳에 와서 말씀 받음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은혜를 충만히 받으시길 바랍니다. 불평하지 마시고 예수의 심정을 헤아리는 가운데 믿고 복음을 가지고 집에 갈 때, 우리 집에서 광명이 비치고 우리 영혼은 부요하게 살이 찔 줄로 믿으시기 바랍니다.
2005년 8월 3일(수) 하계대성회 셋째 날 특별집회
휘선 박윤식 목사 설교
- 21년 7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