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분 맡은 자의 사명
직분 맡은 자의 사명
고린도전서 4:1-2
사람의 좁은 생각으로 보기에 교회의 직분은 사람이 임명하는 것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성경을 볼 때, 하나님께서 그 일꾼들을 직접 지명해서 세우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직분 받은 자는 일생에 다시 없을 만큼 넘치는 기쁨과 즐거움, 감사와 찬송이 가득합니다. 육신의 모든 것을 동원하여 하나님 앞에 감사하는 직분자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교회의 직분은 하나님께서 그 행위를 기억하시는 자리이며, 반드시 상급이 있습니다. “그가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 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할지니라”(히 11:6)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동료도 가족도 인정하지 않아도 하나님께서 알아주시는 자리가 ‘직분’입니다.
하나님은 사랑과 은사로 각 사람에게 직분을 주셨습니다. 이 직분은 하나님께서 직접 각 사람을 세우신 것이요(고전 12:28), 그리스도의 분량대로 적합한 자리에 세우신 것입니다(엡 4:7-11). 또한 하나님께서 자기 피로 사신 교회를 맡기시기 위해 부르신 것입니다(행 20:28). 따라서 직분을 받은 자는 하나님의 교회를 맡은 사명을 감당해야 합니다. 사무엘 선지자가 “나는 너희를 위하여 기도하기를 쉬는 죄를 여호와 앞에 결단코 범치 아니하고 선하고 의로운 도로 너희를 가르칠 것인즉”(삼상 12:23)이라고 고백하고 있는 것처럼 사명을 감당하는 길은 기도밖에 없습니다. 직분자는 깨어 기도해야 하는 것입니다(눅 21:36). 감사로 기도해야 합니다(골 4:2).
오늘 본문은 맡은 자에게 요구하는 것이 충성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충성하면 자신이 재가 되고 가루가 됩니다. 예수 믿는 자는 자신을 십자가에 못박아 죽인 자들입니다(갈 2:20). 그러니 자기 옛 생각이 없고 오직 예수 안에서 예수 믿는 믿음으로 살아갑니다. 이것이 충성의 모습입니다. ‘충성 충’(忠) 자는 ‘가운데 중’(中) 에 ‘마음 심’(心) 자를 씁니다. 신앙의 중심이 있어야 합니다. 아니면 아니다, 옳으면 옳다 하며, 오직 예수 믿는 믿음에 중심을 내리고 사는 것입니다.
직분자는 하나님의 비밀을 맡은 자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에덴동산을 창설하신 후, 아담과 여자를 동산에 두셨습니다. 동산 안의 각종 나무는 마음대로 따먹어도 되지만, 동산 중앙의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 실과를 먹는 날에는 정녕, 틀림없이 죽는다고 하셨습니다. 그런데 뱀이 와서 간교히 여자에게 ‘진짜 하나님께서 동산 모든 나무 실과를 먹지 말라고 하시더냐?’라고 묻습니다. 군인의 기본자세가 차렷 아닙니까. 만약 여자가 하나님의 말씀 앞에 차렷, 집중하고 있었다면 그 질문에 넘어가겠습니까? 뱀에게 비밀을 다 대주고, 뱀의 꼬드김에 넘어가고 말았습니다. 죄짓기 전에는 영광의 옷을 입고 있어서 부끄러움이 없었지만, 죄로 인해 수치와 부끄러움의 존재가 되고 말았습니다.
교회는 말이 있으면 망합니다. 직분자는 성도를 감쌀 줄 알아야 합니다. 직분자가 성도를 심방한 뒷말이나 퍼뜨리면 자손만대 망하는 일입니다. 성도의 이야기를 들으면 자신을 종착역이라고 생각해야 합니다. 다시 입 밖에 내면 안 됩니다. 이것이 교회를 돌보는 직분자의 자세입니다. 이런 직분자가 믿음으로 살아 있을 때 교회가 부흥됩니다. 성경에 입 놀리는 자 치고 잘 되는 법이 없습니다. 하만이 모르드개를 죽이기 위해 입을 놀리며 온갖 궤계를 꾸몄지만, 도리어 열 자식까지 자기와 함께 죽임당하지 않았습니까.
본문 말씀을 볼 때, 직분자가 맡은 비밀은 예수 그리스도입니다(골 2:2). 예수는 곧 복음입니다. 오늘 본문을 공동번역 성경에서는 “여러분은 우리를 그리스도의 일꾼으로 여기며 하나님의 심오한 진리를 맡은 관리인으로 생각해야 합니다. 관리인에게 무엇보다 요구되는 것은 주인에 대한 충성입니다.”라고 번역하였습니다. 장로가 교회의 아버지라면, 권사는 교회의 어머니입니다. 그러니 장로와 권사 모두 최대의 영광스러운 직분입니다.
그런데 헬라어 성경을 보면 직분자를 ‘머슴’에 해당하는 단어로 부릅니다. 본문 고린도전서 4:1의 ‘일군’은 헬라어 ‘휘페레테스’(ὑπηρέτης)인데, 배 밑에서 노를 젓는 노예를 가리키는 단어입니다. 노예는 이름도 없습니다. ‘야 임마!’ 하면 그게 이름입니다. 10만 원에 팔아버리면 그 값이 곧 노예의 인격이자 가치입니다. 노예는 가진 것이 없기에 주인이 마음대로 합니다. 직분자가 바로 ‘휘페레테스’, 즉 일군입니다. 목사, 장로, 집사, 권사가 모두 가장 천하고 더러운 일까지 하면서 남을 섬길 수 있어야 합니다. 그래야만 하나님께서 보시고 “네가 밑바닥까지 내려가도 감사하는구나” 하시고 높여 주십니다. 지극히 작은 일에 충성된 자가 큰 것에 충성할 수 있는 것입니다(눅 16:10).
집에 재산이 아무리 많아도 일군이 없으면 소용이 없습니다. 그러나 재산은 좀 모자라도 일군이 넉넉하면 화목합니다. 일군이 많다는 것은 교회에 덕망 있는 분이 많다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공생애를 시작하시며 일군을 부르셨습니다. 갈릴리 바닷가에서 그물을 깁는 베드로와 야고보 형제를 부르시자 즉시 일어나 예수를 따랐습니다(마 4:18-22, 막 1:19-20). 세관에서 돈 맡은 마태를 부르실 때도 그렇습니다(마 9:9, 막 2:14). 제자 중 하나가 ‘아버지가 죽었으니 장례를 치르고 가겠다’고 핑계를 댔습니다. 그때 예수님께서는 ‘죽은 사람은 죽은 사람끼리 장사하게 두고 너는 살았으니 나를 좇아라!’, 그래서 ‘곧’ 즉시 따라오는 것을 보십시오(마 8:21-22, 눅 9:57-62).
예수님께서는 일하시면서, 눈을 들어 밭을 보니 곡식이 하얗게 익어 추수할 것이 많은데 일군이 적다고 하시며, 하나님께 일군을 보내어 달라고 기도하라 하십니다(마 9:37-38, 눅 10:2, 요 9:35). 임직받는 직분자 여러분, 하나님께서 급하셔서 미말에 직분자로 부르셨다는 사실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몇 달 앞두고 ‘내 살과 내 피를 먹지 않으면 나와 상관없다’ 하시자, 많은 사람이 ‘우리가 식인종이요? 무슨 말인지 이해하기가 어렵구먼!’ 하면서 다 떠나고 말았습니다. 70문도까지 다 떠나버리고, 열두 제자만 남았습니다. 예수님 마음이 얼마나 아프십니까. 이때 성질 급한 베드로가 ‘주여 영생의 말씀이 계시매 우리가 누구에게 가겠습니까?’ 대답했습니다(요 6:68). 실의에 빠지셨던 예수님의 마음에 순간 큰 위로를 받았습니다. 이에 예수님께서 열두 제자를 보시는데, 가룟 유다가 보입니다. 그래서 ‘내가 너희 열둘을 택하지 않았느냐? 그러나 한 사람은 마귀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요 6:70-71). 가룟 유다는 이미 직분을 맡은 동안에도 자기 이익을 챙기며 헌금을 슬슬 뒷구멍으로 빼가는 자였습니다. 요한복음 12:6에서는 명확하게 “저는 도적이라 돈궤를 맡고 거기 넣는 것을 훔쳐 감이러라”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사도들은 구제와 헌금 등의 사역을 맡기기 위해 직분자를 세웠습니다(행 6:1-6). 직분자는 교회 재정에 대해 왈가왈부하는 것이 아니라, 아껴 쓸 줄 알아야 합니다. 헌금에 앞장서고, 성도의 기본자세로 십일조에 모범을 보이며 생활의 열매가 있어야만 합니다.
하나님의 아들이 영광의 보좌를 버리시고 이 땅에 오셨지만, 천대받으셨습니다. 개는 주인이 개집이라도 지어 주는데, 예수님께서는 머리 둘 곳이 없었습니다(마 8:20). 죄 없으신 예수님께서 온갖 수모를 겪으시고 십자가에 처참히 돌아가심으로써 죄인인 우리를 구원해 주셨습니다(롬 5:8, 고후 5:21). 그리고 예수님께서 피로 사신 것이 교회입니다. 육신의 눈으로 보기엔 나무와 벽돌이지만, 뜻으로 볼 때 예수의 몸입니다. 교회는 하나님을 만나는 장소 아닙니까(출 25:22). 교회의 머리는 예수요, 우리는 그 지체입니다. 그리고 우리를 교회의 직분자로 세우셔서 교회를 지키도록 세우셨습니다. 직분자는 기도하며 은혜와 사명으로 자기 자리를 지켜야 합니다. 안나 선지자를 보십시오. 직분에 충성하며 교회를 지키다가 결국 메시아를 보고야 말지 않았습니까(눅 2:36-38). 직분자 여러분도 성전에서 기도하다가, 죽지 않고 살아서 변화해 생명나무 과실을 먹고 영생하는 축복된 역사가 있기를 축원합니다. 손에 쟁기를 잡은 자는 뒤를 돌아보는 것이 아니라, 밭을 갈아 뒤집고 새 씨앗을 전해야 합니다(눅 9:62).
결론 맺겠습니다. 직분자가 죽을 때 남이 삽니다. 직분자로서 하나님 앞에 뜻대로 살기를 원한다고 서원하지 않았습니까? 서원은 자신에게 해로워도 반드시 지켜야 합니다(시 15:4). 하나님 앞에 자신을 드리기로 서원하신 직분자 여러분, 반드시 그 서원대로 실행하는 믿음을 가지시기 바랍니다. 나무를 심을 때, 땅을 살피고 잘 파서 돌을 제거하고 고운 흙을 옮기고 물을 주듯, 교회도 그렇습니다. 교회를 잘 살피고 깨끗이 하며 성도를 심어야 합니다. 교만한 직분자 때문에 새신자가 시험 드는 것을 마귀 사단이 얼마나 기뻐합니까? 그러나 자신을 만물의 찌꺼기처럼 내버리고 낮아져서 충성해보십시오. “내 눈이 이 땅의 충성된 자를 살펴 나와 함께 거하게 하리니 완전한 길에 행하는 자가 나를 수종하리로다”(시 101:6) 하셨습니다. 교회에 충성하고 매사에 정직하고 성실하며 진실한 사람들은 자손만대에 예수의 이름으로 그 집에 축복이 떠나지 않음을 믿으시기 바랍니다(잠 25:13, 시 84:11).
직분자에게는 원망이 없어야 합니다. 가데스바네아에서 열두 지파를 뽑고 두령을 뽑아 정탐꾼으로 40일간 가나안 땅에 정탐 보냈습니다. 이들은 각 지파를 대표하는 직분자들입니다. 두 사람이 포도송이 하나를 메고 와서 ‘정말 말씀하신 대로 젖과 꿀이 흐르는 땅입니다’ 보고했습니다. 여기까진 좋은데, ‘가나안 땅엔 거인들이 있어 우린 키가 메뚜기 같습니다, 우린 쳐들어가면 다 죽습니다’라고 열두 사람 중 열 사람이 이야기합니다(민 13:25-33). 그 말을 듣고 밤새도록 백성들이 통곡하고 원망하지 않았습니까(민 14:1). 심지어 모세와 여호수아, 갈렙을 죽이고 장관을 세워서 다시 애굽으로 돌아가자고 외칩니다(민 14:2-4). 하나님의 언약 백성 이스라엘을 하나님을 원망하는 백성이 되게 선동한 열 명의 정탐꾼은 하나님의 원수가 된 것입니다. 그래서 그날에 하나님께서 죽이셨습니다(민 14:36-38). 열 정탐꾼의 악한 말로 인해 1차 군대 계수 받았던 603,550명, 여자와 아이를 포함하면 200만 명 넘는 백성들에게 의심이 들어갔습니다. 여호수아, 갈렙만 하나님을 믿었습니다. 심지어 그들의 부모조차 장막 속 이불 속에서 ‘여보 모세 믿어져? 이게 뭐 하는 짓인지 몰라’, ‘진짜 하나님 말씀 받은 거 맞을까?’, ‘맨날 만나만 먹으니까 질리지 않아?’ 천막 안에 있는데 누가 볼까 하는 마음으로 입방아를 찧어댑니다(신 1:27). 40년 동안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을 보시면 속앓이가 가득합니다. 천막 안에서 원망으로 쑥덕거리고 모이면 교회의 짐이 됩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 이삭, 야곱에게 맹세하셨기에 참으시지만, 그 모습이 실로 근심거리입니다. 결국 하나님께서 ‘내가 들은 대로 심판하겠다’ 하시며 40일 정탐한 것을 하루에 1년으로 치셔서 40년 동안 광야를 방황하게 하셨지 않습니까(민 14:26-35). 그리고 1차 군대 계수 받은 인원 중에 603,548명이 다 죽음을 맞이하지 않았습니까. 여호수아, 갈렙의 아버지, 어머니까지도 다 죽은 것입니다.
왜 죽었습니까? “저희 중에 어떤 이들이 원망하다가 멸망시키는 자에게 멸망하였나니 너희는 저희와 같이 원망하지 말라 11 저희에게 당한 이런 일이 거울이 되고 또한 말세를 만난 우리의 경계로 기록하였느니라 12 그런즉 선 줄로 생각하는 자는 넘어질까 조심하라”(고전 10:10-12) 하셨습니다. 우리는 열 정탐꾼과 1차 군대 계수 받은 자들의 죽음을 통해 경계를 받아야 합니다. 그러니 임직받은 직분자 여러분, 교회와 가정에 근심거리가 되지 않고 믿음의 본이 되시기 바랍니다. 잠언 25:13 말씀처럼 더운 날의 얼음 냉수같이 충성된 자가 되시기 바랍니다. 성경을 보는 직분자가 되시기 바랍니다. 요한복음 15:7을 볼 때, 먼저 하나님의 말씀이 속에 거하면, 구하는 것마다 응답해 주신다고 하셨습니다. 할 일 많은 땅 위에 주의 복음을 전하기 위해, 교회의 부흥을 위해, 귀하고 아름다운 직분자를 세우셨습니다. 원망과 거짓, 악한 말 없이 오직 하나님의 말씀 충만, 기도 충만, 은혜 충만함으로 교회를 부흥시키는 직분자가 되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2008년 10월 15일 휘선 박윤식 목사
미국 워싱턴 믿음제일교회 수요예배 설교
- 21년 6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