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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평안

기고 “내가 겪은 제주 4·3사건” – 강애숙 권사

2021.06.30 16:28

저는 1932년생, 올해 90세입니다. 1948년 제주 4·3 사건이 일어날 당시 16세였죠. 서귀포시에 살았어요. 계엄령이 내려진 7, 8년 동안 남로당 빨치산들이 산에서 내려와서 동네에 불을 지르고 다녔어요. 새벽에 사방으로 총소리가 나고 우리 집에도 불을 질렀죠. 정신없는 와중에 남동생은 재산 목록 1호인 미싱 하나 들고나와 옆집에 맡겼는데, 그 집에도 불을 질렀으니 소용없었어요. 내 집 네 집 할 것 없이 불길이 치솟으니 피신할 곳을 찾았는데 밭에 가보니 마을 사람들이 삼삼오오 모여 앉아 있더라고요. 이불이고 뭐고 아무것도 안 갖고 나왔는데, 제주도 바람이 얼마나 세요. 새벽이슬 맞으니 추워서 다들 웅크리며 떨고 앉아 있었죠. 날이 밝아 불에 탄 우리 집을 가보니 어머니가 저 시집갈 때 주려고 놔둔 고리짝 하나 건지고, 그 외에는 쓸 만한 물건이 하나도 없더라고요. 이삼일 그렇게 지내다가 친척집을 전전했죠.

그렇게 마을에 불을 지르면서 ‘당신네도 다 살고 싶으면 산으로 올라오라’ 해서 할 수 없이 많은 사람이 산으로 올라가 ‘산 사람’(남로당 빨치산)이 된 거예요. 공산당이 뭔지 민주주의가 뭔지도 모르는 사람들이 그들의 위협 때문에 올라간 거죠. 그렇게 올라가면 어쩔 수 없이 그 사람들이 시키는 대로 같이 다니면서 불 지르고 오라면 불 지르고 다니고 그랬던 거지요.
밤에는 이 집 저 집이 불에 타고, 낮에 학교에 가면 공산당원들과 서로 죽일 정도로 패싸움을 했어요. 4·3사건 나기 전부터도 전조 현상이랄까, 학생들끼리 맨날 싸웠어요. 지켜보는 우리들이 뭘 알겠어요. 책을 읽어 봤나, 강연을 들어 봤나. 왜 저렇게들 싸울까 하는 생각만 하고 있었죠. 우파는 약하고 좌파는 세력이 세다는 것만 감지하고 있었죠.

어느 날은 친구의 사촌오빠가 저한테 금시계를 사다 주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남로당 주모자였더라고요. 집이 소실되고 이모네 집에 기거하고 있었을 때인데 그 오빠가 오더니 ‘내 얼굴 보는 것도 오늘이 마지막’이라고 하더라고요. 나중에 들어보니 월북해서 북한으로 갔대요. 그때는 월북한 사람이 많았어요. 제 동창 중에도 많았거든요. ‘대한민국 근현대사 시리즈’에도 나오는 남로당원 문상길 중위의 약혼녀 고양숙이라는 여자도 잘 알았어요. 제 2년 선배예요. 아버지는 이발소를 운영했죠. 정말 착하고 순수한 사람들인 줄 알았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가족 전체가 남로당원들이었어요. 어떻게 그렇게 착한 사람들한테도 사상 주입을 했는지….

정말 사람 많이 죽었어요. 하여튼 남로당이 양민들을 엄청나게 산으로 끌고 올라갔으니까요. 산에 가서 죽고, 마을에서도 죽고 말 그대로 피바다였어요. 내가 알던 사람들이 트럭을 타고 서귀포로 오는 길에 폭도들한테 당해서 떼죽음을 하기도 했어요. 다 알던 사람들이니 생생히 기억하죠.
일본에서 숙박업을 크게 하다 온 사람이 있었는데 그 사람들은 사상이고 뭐고 아무것도 모르는데 명단에 있었나 봐요. ‘빨갱이’로 적발되면 아내는 물론 아이들까지 다 죽였어요. 학교 옆에 큰 바위와 낭떠러지가 있었는데 이래 죽나 저래 죽나 마찬가지니 차라리 떨어져서 죽자고 죽은 사람도 많았으니까요. 억울하게 죽은 사람들이 많아요. 수십 년이 지났는데 지금도 재판 중이잖아요.

어느 권사님의 아들은 물레방앗간을 했는데 물 흘러가는 길옆으로 땅굴을 파고 들어가 10년을 숨어 살았대요. 식구가 야밤에 쥐도 새도 모르게 밥을 날라줘서 살았다고 하더라고요. 10년 가까이 인기척 없는 새벽에만 잠깐 나와서 스트레칭하고 들어가 종일 좁은 공간에서 사니까 나와서는 하체를 못 썼대요.

당시 일본 와세다대학을 나온 남로당 핵심에 속하는 여자가 저희 엄마를 데려가려고 공을 들였는데 끝까지 안 가셨어요. 어머니는 현명하셨어요. 저희 아버지가 사회주의 사상이 좀 있었는데 해방되기 2년 전에 돌아가신 것이 감사하다고 어머니는 입버릇처럼 말씀하셨어요. 살아계셨다면 남로당에 빠질 것이 불 보듯 했다고요. 그랬다면 우리 가족들도 다 몰살당했을 거예요. 어머니 입장에서는 젊은 남편이 먼저 가시고 혼자 아이들 키우기가 얼마나 힘드셨을 텐데 ‘그저 일찍 데려가신 것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그러셨죠. 어린 저희 3남매는 이해를 못 했었는데, 이제 돌아보니 하나님 아버지의 은혜더라고요.

당시 계엄령을 내리지 않았다면 제주도는 물론이고 나라가 공산화됐을 것이라고만 말씀드리고 싶어요. 얼마나 잔인무도한 폭도들이었는지 지금 생각해도 치가 떨려요. 제주 4·3사건을 직접 몸으로 겪었던 사람으로서 왜곡된 역사관을 바로잡는 데 조금이나마 일조를 했으면 하는 바람뿐입니다.

강애숙 권사는 제주도 출생으로 서귀포에서 초등학교 교사로 재직했다. 2011년 ‘대한민국 근현대사 시리즈’가 집필을 돕기 위해 당시, 4·3사건을 직접 겪은 증인 10여 명을 제주도 현지에서 인터뷰하기도 했다. 자신이 체험한 역사를 후세에 알리고 싶다며 이 글을 ‘참평안’에 보내왔다.

 

  • 21년 6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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