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식일을 기억하고 거룩하게 지키라
안식일을 기억하고
거룩하게 지키라
창세기 2:1-3, 출애굽기 20:8-11
하나님이 일곱째 날을 복 주사 거룩하게 하셨으니
이는 하나님이 그 창조하시며 만드시던 모든 일을 마치시고 이날에 안식하셨음이더라 (창세기 2:3)
이는 엿새 동안에 나 여호와가 하늘과 땅과 바다와
그 가운데 모든 것을 만들고 제 칠일에 쉬었음이라.
그러므로 나 여호와가 안식일을 복되게 하여
그날을 거룩하게 하였느니라 (출애굽기 20:11)
우리가 신앙생활 수십 년 하면서 “안식일을 기억하라”는 말씀을 들어왔지만 1년 내내 그 말씀을 기억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다 잊어버리죠. 그러나 하나님은 분명히 말씀하시고, “기억하라”고 하셨습니다.
사람들은 주일을 우습게 알고, ‘노는 날’, ‘공휴일’, ‘자기 날’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그렇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주일은 ‘내 날’이라 하셨습니다. 피조물은 그날 하나님이 지정하신 교회에 나와서 십자가 성호(聖號)를 찬송하고, 구속(救贖)의 은총에 감사해야 합니다. “우주 만물을 섭리하시는 하나님께서 말씀의 권세와 능력으로 모든 것을 붙잡지 않으시면 우리가 살 수 없습니다.” 하며 감사해야 합니다. 하나님이 당신의 아들을 죽이기까지 해가면서 우리를 이처럼 사랑하시는 것을 늘 감사하는 마음으로 교회에 나와야 할 텐데, “교회 나오세요” 하면 “이미 귀 아프게 들었습니다” 하며 기분 나빠하고, 심지어는 욕으로 여깁니다(렘 6:10).
출애굽 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만나가 내렸습니다. 제6일에는 이틀 치 양식을 주시고 대신 제7일에는 거두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평시에 욕심부려서 많이 거둔 것은 썩어 냄새가 나고 구더기가 생겼지만, 제6일에 이틀 치 거둔 것은 썩지 않았습니다. 안식일 지키는 가정은 자손만대에 마음과 생활이 썩지 않습니다. 부모는 자식의 생일을 기억하고, 자식은 부모의 생신에 효도하지 않습니까. 연대가 다함이 없는 하나님께는 생일은 없지만 다만 안식일이 있습니다. 전 성도가 하나님을 기억하고, 창조하신 것을 감사하면서 주일을 지켜야 하나님이 우리를 낳아주신 보람을 느끼시는 것입니다.
안식일은 ‘날마다 하나님을 가까이 하라, 친근히 하라’는 명령입니다
수 22:5, 23:8, 신 11:22
직장 나가도, 가정에서 쉴 때도, 가족들과 함께할 때도 하나님과 친근하게 하는 생활을 하라고 명령하십니다. ‘하나님께 가면 또 무슨 명령을 내리시면 어떡하나?’ 하고 두려워하고 싫어해서는 안 됩니다. ‘친근(親近)’, 사이가 아주 가깝고 딱 붙어있는 것, 그런 생활을 우리가 안식일에 해 왔습니까. ‘너희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고 그 모든 도를 행하여 그에게 부종하라’
(신 11:22) 하셨습니다. 부종(附從)은 바싹 달라붙어 따르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도(道), 즉 말씀에 굳게 결합하라는 것입니다. 마음과 성품을 다하여 하나님과 연합된 생활입니다(대하 34:31, 왕하 23:3). 예수님 안에 뿌리가 박히고, 주 안에서 뿌리 내려야 합니다(골 2:19). 그래야 주일을 지킬 수 있습니다. 주일을 지키고 망한 사람은 하나도 없습니다. 천만인이 죽어도, 주일을 지키는 개인과 가정과 나라는 삽니다.
하나님은 일곱째 날에 복을 주고, 거룩하게 하셨습니다. 그날에 안식하셨습니다. 그날 성별된 생활을 하는 것은 성도의 필수적인 신앙 행위요 의무입니다.
이사야 58:13-14 만일 안식일에 네 발을 금하여 내 성일에 오락을 행치 아니하고 안식일을 일컬어 즐거운 날이라, 여호와의 성일을 존귀한 날이라 하여 이를 존귀히 여기고 네 길로 행치 아니하며 네 오락을 구치 아니하며 사사로운 말을 하지 아니하면 네가 여호와의 안에서 즐거움을 얻을 것이라, 내가 너를 땅의 높은 곳에 올리고 네 조상 야곱의 업으로 기르리라. 여호와의 입의 말이니라
‘주일이야? 귀찮네’ ‘또 교회 가야 해?’ 하면 안 됩니다. 세상의 어떤 날보다도 안식일이 ‘즐거운 날’입니다. 여호와의 ‘성일(聖日)’, 즉 거룩한 날, 존귀한 날입니다. 졸다가도, 세상에 미쳤다가도 주일이라면 벌떡 일어나서 정신 차리고 교회에 나와야지요.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주일은 하나님의 생일이나 마찬가지인데, 하나님이 창조하신 만물 중에도 영장이라는 사람이 그날을 기억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런 사람은 ‘야곱의 업(業)’으로 기르신다는 것입니다. 야곱의 기업이 얼마나 큽니까. 천천만만의 복입니다.
오늘 예배 때도 우리가 찬송가 57장을 불렀습니다. 1862년에 크리스토퍼 워즈워스가 작사했습니다.
“즐겁게 안식할 날, 반갑고 좋은 날. 내 맘을 편케 하니 즐겁고 기쁜 날. 이날에 천하 만민 다 보좌 앞에서 참되신 삼위일체 거룩타 부르네.
이날에 하늘로서 새 양식 내리네. 성회로 모이라고 종소리 울리네. 복음의 밝은 빛은 온 세상 비치며 또 영생 물이 흘러 시원케 하시네.
이 안식 지킴으로 새 은혜 입어서 영원히 쉬는 곳에 다 올라갑시다. 성부께 찬미하고 성자와 또 성령, 참되신 삼위일체 찬송할지어다”
이 찬송에는 위대한 주일 신앙이 깔려 있습니다. 안식일은 구속사 운동 중에 하나님께서 애굽 땅에서 종 됐던 이스라엘을 구원하신 일을 기억하는 의미입니다(신 5:12). 우리도 예수님 믿기 전에는 종의 삶을 살았습니다. 사신(邪神) 우상을 섬기고, 우주 만물을 창조하신 하나님은 도외시했습니다. “내가 벌었다, 내가 못 먹고 못 자고 모은 돈이다”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로 살아온 것입니다. 그래서 주일은 선민(選民)에게 주시는 언약의 위대한 표징입니다(겔 20:12, 출 31:13). ‘너희가 안식일을 지키면 정결케 하고, 종이 아닌 하나님의 사람으로 만들어 영원한 안식에 들어가게 하겠다’는 것입니다.
에스겔 20:12 또 나는 그들을 거룩하게 하는 여호와인줄 알게 하려 하여 내가 내 안식일을 주어 그들과 나 사이에 표징을 삼았었노라
주일은 하나님의 날입니다
아버님 생신이 되면 동서남북 몇백 리, 몇천 리에 떨어져 있던 자식들이 다 돌아와 축하하고 감사하듯, 우리도 그래야 합니다. 안식일을 기억하여 거룩히 지키라 하셨습니다(출 20:8). ‘기억하다’는 히브리어 ‘자카르’로 ‘송곳 같은 것으로 뚫다’ ‘깊이 감동하다, 마음 깊은 곳에 새기다’는 뜻입니다. 잃어버릴까 봐 마음에 구멍을 뚫어서 그 말씀을 가져다 매어놓는 것입니다. 주일 성수(聖守)가 우리 마음을 완전히 관통해야 합니다. 겉으로 슬쩍, 미역 감듯 지나가면 안 됩니다. 오늘 말씀으로 하나님이 우리를 부르실 때까지 주일을 지키고 기억하면 자손만대에 축복이 머물러 있다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안식일은 편안할 안(安), 쉴 식(息)입니다. 아무 일도 하지 말라 하셨습니다. 주일을 범하는 자는 죽이라고 하셨습니다(출 31:14-15). 그토록 사랑과 자비와 긍휼이 한없는 하나님이 이 정도 말씀하실 때는 깊은 뜻이 있을 것 아닙니까. 안식일에 일하는 자는 그 백성 중에서 생명이 끊어진다고 하셨습니다. 만유(萬有)보다 크신 하나님이 직접 쉬신 날이므로 그날은 ‘큰 안식일’입니다. 크신 하나님의 날입니다. 그런데 그날을 거지발싸개같이 여기고 자기 일에 몰두해서야 되겠습니까. ‘교회야 다음에 나오면 되지’ 하며 돈 벌러 나간다면 참으로 어리석습니다. 안식일에는 나무하러 가도, 집에 불을 피워서도 안 된다고 하셨습니다. 그러다가 다 죽은 것 아닙니까(출 35:3, 민 15:31-37). 안식일에 짐을 지고 예루살렘 문으로 들어오면 하나님이 성문에 불을 놓아 예루살렘 궁전을 삼키게 한다고 하셨습니다(렘 17:27). 얼마나 무섭습니까.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실 때 엿새 동안 매일 ‘저녁이 되며 아침이 되니’라고 하셨는데(창 1:5), 일곱째 날만은 ‘저녁이 되며 아침이 되니’ 라는 말씀이 없습니다. 하나님의 아들딸이라면 왜 그럴까 궁금해하며 이유를 알려 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안식일은 천지 창조 중 단지 ‘하루’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영원히 계속되는 날입니다. 일곱째 날 이후로는 영원히 계속되는 안식일이라는 것입니다. 성도는 늘 주일이라고 생각하며 살아야 합니다. 엿새 동안은 세상 사람처럼 살고, 일곱째 날만 지켜서는 안 됩니다. 예수님이 재림하셔서 우리가 천국에 갈 때 ‘월화수목금토’가 있습니까? 아닙니다. 모두 안식일, 즉 천국 세계입니다. 안식은 하나님의 창조 역사 이후 활동을 정단하시거나, 피곤하여 주무시거나, 자의식 또는 무활동 상태에 들어가셨다는 뜻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피곤하지도, 졸지도, 주무시지도 않는 분입니다(사 40:28, 시 121:4). 하나님의 안식은 자신의 창조 사역의 결과를 보고 만족하며 기뻐하여 즐거워하시는 것입니다. 부모가 자식을 보며 기뻐하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시 103:5, 출 19:4). 그러므로 우리가 주일에 교회에 나와야 ‘너 아들딸아 잘 왔다! 내가 좋구나(창 1:31). 내가 우주 만물을 창조하고 오늘 기쁜 날, 좋은 날, 쉬는 날이다’ 하시지 않겠습니까. 그리고 우리도 하나님과 함께 즐거워해야 합니다. 영원히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시 118:24 이 날은 여호와의 정하신 것이라, 이 날에 우리가 즐거워하고 기뻐하리로다
여러분이 몰라서 그렇지, 오늘 나오기만 하면 영의 세계에서 하나님이 여러분 마음에 원하는 대로 다 주신다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오늘은 복 주신 날, 복된 날입니다(창 2:3, 출 20:11). 하나님은 우주 만물을 축복하시고, 우주 만물이 인간에게 무릎 꿇게 하셨습니다. 우리는 주일에 교회에 나와 하나님께 무릎 꿇고 기도하고 찬송하고 예배해야 합니다. 주 앞에 항복하고 절하고 엎드리고 섬기는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 겸손해지는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가 달라고 하지 않아도 쓸 것을 다 아시고 몽땅 다 주십니다. 주일은 제일가는 날, 으뜸 되는 날입니다. 아주 귀중한 날입니다. 영광의 영, 즉 하나님의 영이 내 머리 위에 머무르시는 날입니다(벧전 4:14). 영광의 영이 머무를 때 모든 생활에 짜증도 어두움도 없습니다. 믿는 대로, 내가 손으로 하는 대로 복을 받습니다. 길을 갈 때 발에 복을 받습니다. 그러니 늙지도 않습니다. 얼마나 좋습니까. 거룩한 안식일이니 우리도 몸을 구별하여 거룩하게 하라고 하셨습니다(레 11:44). 참으로 놀라운 말씀입니다. 주일은 내 날이 아닌 하나님의 날이니(출 31:13), 누가 “아들딸, 손주, 사위, 며느리 다 데리고 어디 가서 밥 먹자”고 해도 “그러면 안 돼요. 하나님의 날입니다” 해야 합니다. ‘큰 안식일’이므로 이날 교회에 나오면 모든 문이 커집니다. 작은 사람이 큰 사람이 됩니다. 아버지 되신 하나님이 쉬신 ‘큰 안식일’인데, 아버지만 크시고 자식은 거지처럼 작게 놓아두시겠습니까. 자식이 여유 있게, 근심 걱정 없이 잘 사는 것이 아버지 어머니의 염원입니다. 크고 광대하신 하나님이심을 믿으시기 바랍니다(시 95:3, 딛 2:13, 요 10:29). 좋으니 싫으니 해도, 대통령이 청와대로 초청해 같이 식사하자고 하면 마다할 사람이 있겠습니까. 그런데 우주 만물을 창조하시고 만 인간의 생사화복을 주장하시고 역사의 주가 되시는 그분이 우리를 불러 대화하고 축복 주신다면 안 받을 사람이 누가 있겠습니까(시 96:4, 시 135:3).
제7일은 ‘특별한 안식일’입니다
출 35:2
이날은 믿지 못하는 자와 믿는 자가 갈라지는 날입니다. 잘 익은 사과와 찌꺼기 사과를 상인이 가르듯 이날은 축복받은 사람과 받지 못하는 사람이 구별되는 날입니다. 선민의 표는 구약 시대에는 할례, 유월절, 안식일이고, 신약 시대에는 십자가, 즉 세례와 성찬입니다. 이날은 또 창조주와 피조물이 구별되는 날입니다. 우리는 아무리 잘 믿어도 창조주가 될 수는 없습니다. 피조물인 우리는, 창조해 주신 하나님의 말씀을 믿고 순종할 때, 하나님과 영원히 살 게 돼 있습니다. 말씀을 거역하면 마귀, 사탄입니다. 하나님이 천지창조를 완성하고 안식하신 날을 기억하는 것은 창조주와 피조물이 서로를 새롭게 인식하는 것입니다. 주일은 하나님의 창조와 그 신기함, 하나님의 진선미를 기억하며, 지금도 천지 만물을 보전, 통치하시고(시 103:19, 시 145:13), 그 능력의 말씀으로 만물을 붙드시는(히 1:3) 은혜를 감사, 찬양, 경배하는 날입니다. 우리 인간은 늘 하나님을 그리워하고, 사모하고, 붙잡고 살아야 합니다. 어린아이가 아버지와 어머니 손목을 붙잡고 가는 것처럼 말입니다.
평강교회 성도들이 주일을 지키지 않고, 가족이 오만 죄를 짓는 것을 볼 때 예레미야처럼 참으로 답답하고 마음에 불이 붙습니다(렘 20:9). 120문도가 모여 간절히 기도하다가 성령이 바람같이 임해 교회가 탄생(행 2:1-4)한 날이 주일입니다. 안식일을 기억하지 않고 지키지 않으면 바벨론 포로 때와 같이 다 잡혀갑니다. 여러분의 가족이 적군의 포로가 돼 비참한 꼴을 당하는 모습을 생각해 보십시오. 진 자는 이긴 자의 종입니다(렘 6:10-12). ‘아내가 타인 소유로 이전되고’ ‘먹을 것이 없어 아들딸을 잡아먹는’ 참상이 예언됐습니다(렘 6:12, 대하 36:14-15). 그리고 그 예언이 다 현실이 됐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하나님이 명령하신 안식년, 희년, 주일을 지키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수많은 선지자를 부지런히 보내셔서 회개를 촉구하셨지만, 비웃고 멸시하고 욕했습니다(렘 35:15-16). 하나님이 결국 이스라엘 백성들이 지키지 않은 안식년 70번을 바벨론 포로 기간 70년으로 갚으셨습니다. 6년간은 농사하고, 종에게도 일을 시키지만, 7년째에는 본 집에 돌려보내고 땅도 쉬게 하라고 하셨는데 지키지 않았던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주일을 내 날로 여겨서는 안 됩니다
우리는 적신(赤身), 즉 벌거숭이로 왔으니 적신으로 돌아갑니다. 정함 없는 재물에 욕심부리지 마십시오(딤전 6:7, 17). 이 땅에 몇 년이나 살겠습니까. 아무리 잘 먹어야 몇 끼나 먹겠습니까. 아무리 돈 많이 벌어도 다 쓸 수나 있습니까. 일용할 양식에 감사하고, 하나님께 찬양하고, 뜻을 깨닫고, 기도로 영광 돌려 보십시오. 그 나라 가서 가장 좋은 자리를 차지합니다. 여러분이 1년 내내 주일을 지켜도 52주에 불과합니다. 이것도 도둑질해서야 되겠습니까. 날[日]도둑입니다. 오죽하면 하나님이 안식일의 수효를 채우라고 하셨겠습니까(레 23:15).
구약의 ‘안식일’이 신약의 ‘주일’로 바뀐 것은 주께서 주일에 사망의 권세를 깨뜨리고 부활하셨기 때문입니다(마 28, 막 16, 요 20). 안식일은 ‘삶을 얻는’ 율례입니다(겔 20:12-13). 그 율례를 준행하면 누구든 복되게 삽니다. 주일은 믿지 않는 자와 믿는 자 사이의 표적이니(겔 20:12) 낚시, 등산, 골프 하러 가고, 친구 만나러 가서는 안 됩니다. 교회에 와서 예배를 드려야 합니다. 그것이 사람이 사람 된 제1의 본분입니다(전 12:13). 주일을 가까이할수록 몸이 건강하고, 보람을 느끼고, 집안이 잘됩니다. 주일을 기억해 성별된 생활을 하면 하나님이 제일 기뻐하십니다. 서로 돌아봐야 합니다. “여보, 내일 주일이야”, “구역 식구 여러분, 내일 주일입니다” 하며 사랑과 선행을 격려하며 모여야 합니다. 모이기를 피하는 어떤 사람들의 습관처럼 하지 말라고 눈물겹게 권면하십니다(히 10:25).
평강교회는 살아있는 교회입니다. 깨어 있는 교회입니다. 구속사 말씀이 충만한 교회입니다. 마지막에 승리하는 교회가 될 줄로 믿습니다. 평강교회는 주일이 있는 교회입니다. 세상과 주일을 타협하지 않습니다. 주일을 잊어버리고, 도둑맞는 교회가 많습니다. 목사가 당구, 골프, 테니스에 미치면 주일을 빼앗긴 교회가 됩니다. 목사는 늘 기도해야 합니다. 우리는 “주일은 바쁘니 일단 볼일 보고 와서 내일 교회 가서 기도할게” 해서는 안 됩니다. 잃어버렸던 영혼을 찾아서 주일에 교회로 모시고 와서 회개 시켜 보십시오. 큰 축복이 있을 줄로 믿습니다(출 20:6).
주일을 기억해서 많은 가족이 빠짐없이 주의 몸 된 교회에 나와 하나님의 생명 양식, 영생의 생수를 마시고, 마음이 기쁘고 즐겁고 흐뭇해져 그 나라 갈 때까지 모든 생활에 이김의 역사만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주일은 하나님께서 우리와 영원한 언약을 맺으신 날, 영원한 표징입니다. 온전히 주일을 성수함으로써 여러분의 이름이 생명책이 기록돼 영원한 안식에 다 입성하는 평강교회 전 성도가 된다는 것을 믿고 감사하시기 바랍니다. ‘이제는 정말 내가 교회에 나와서 주일을 지켜야겠다’고 하나님 앞에 결심하고 서원하는 역사가 있기를 주의 이름으로 부탁드립니다.
2014년 2월 2일 주일 2부 예배 휘선 박윤식 목사 설교
- 21년 5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