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상 인터뷰] 아브라함과 예수 그리스도를 잇는 언약의 통로, 다윗 왕을 만나다
아브라함과 예수 그리스도를 잇는 언약의 통로
다윗 왕을 만나다
*이 글은 성경을 토대로 한 가상 인터뷰입니다.
그림 _ 박희영
구속사 시리즈 제3권 「영원히 꺼지지 않는 언약의 등불」에서 많은 독자들은 ‘족보 대수(代數)에서 빠진 인물’과 ‘사사 시대’ 노래를 떠올린다. 그러나 실상 이 책의 명실상부한 주인공은 다윗이다. 그의 이름은 예수님의 족보에 무려 다섯 번이나 나온다(마 1:1, 6, 17). 이 족보에서 ‘왕’이라는 호칭이 붙은 사람도 오직 다윗 뿐이다.
그러나 그는 같은 족보에서 한번은 ‘다윗 왕’, 한번은 ‘다윗’으로 불린다(마 1:6). 최고의 영광과 최고의 나약함이 ‘다윗’이라는 한 인간 안에 들어있다. 그래서 그를 만나는 인터뷰 분위기는 마냥 화기애애할 수만은 없었다.
만나 뵈어 영광입니다. 15세 소년 다윗에게 사무엘 선지자가 찾아와 기름을 부은 그날, 당신의 기억에는 어떻게 남아 있습니까. 참으로 드라마틱한 순간인데요.
그렇지요. 제 아버지 이새는 작은 마을 베들레헴에 살던 이름 없는 목자에 불과했죠. 저는 그중에서도 큰 기대를 받지 못하던 막내아들 목동이었어요. 구속사(救贖史)에는 시간이 한참 지나서야 하나님의 오묘한 섭리를 깨닫게 되는 일이 많지요. 그날이 “홀이 유다를 떠나지 않는다”는 말씀이 성취되고, “실로가 오시기까지”1) 라는 메시아의 길을 여는 날일 줄은 생각도 못 했지요. 얼떨결에 맞은 그 순간이 10년간의 고통스러운 환난, 그리고 수많은 영욕의 나날의 시작일 줄도 몰랐어요.
우리 인생이란 게 그런 것 같습니다. 하나님의 큰 그림은 미처 보지 못한 채로 얼떨결에 그분의 뜻 안에 들어가게 되고, 그렇지만 하나님의 강권적인 도우심으로 결국은 조금이나마 구속사에 기여하게 되는 것 말입니다.
그 ‘10년의 도피 생활’은 얼마나 힘든 날들이었나요?
제가 오죽하면 “내 하나님이여, 내 하나님이여, 어찌 나를 버리셨나이까”2) 했겠습니까.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한 시간이라는 사명감은 있었지만, 언제 끝날지, 정말 끝나기는 하는 건지, 앞이 보이지 않는 나날이었죠. 은혜를 베풀었던 동족들에게 배신당했을 때는 말할 수 없이 허망하고 섭섭했고, 두 번이나 저의 은신처를 밀고한 십 사람들에게는 분노와 배신감을 느꼈어요. 사람들의 비난, 협박, 음모에 시달려 기력이 약해지고 뼈가 녹을 정도였다가, 어느 순간에는 아예 잊히고 버려진 존재라는 절망감에 시달리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지나고 나서 돌이켜 보니 제가 하나님께 묻지 않고 움직일 때마다 큰 어려움을 당했더군요. 10년의 도피 생활은 전체적으로는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기간이었지만, 자세히 뜯어보면 그 기간에도 하나님께 구하고 그 길로만 갔으면 많은 고난을 피할 수 있었을 거예요.
그렇게 절망적이고 괴로울 때 어떻게 이겨내셨습니까. 말세를 살아가는 후배 성도들이 모두 궁금해합니다.
크게 보면 두 가지입니다. 첫째는 하나님이 나를 위해 ‘쌓아두신 은혜’가 있다는 걸 깨달았어요. 둘째는 ‘은밀한 곳에 나를 숨기시는 은혜’를 느꼈어요. 인간의 눈으로 보면 절체절명의 위기지만, 실은 하나님께서 그 어떤 순간에도 나를 안전한 피난처에 숨겨주셨어요. ‘생명싸개’3) 속에 넣어 지켜주신 거죠. 그런 은혜를 체험할 때마다 하나님께 감사의 찬송을 부르고, 더욱 하나님께 간구하게 됐습니다. 그러면서 동족들에 대한 분노와 배신감을 깨끗이 털어버릴 수 있었어요.
그 10년은 제가 정금 같은 신앙인격으로 단련되는 시간이었어요. 왕으로서 마땅히 갖춰야 할 신앙과 순종을 배웠고, 정치, 군사적 역량도 갖추게 됐습니다. 백성을 다스릴 지혜를 얻었고, 밑바닥 인생의 어려움을 체험하면서 백성들의 마음을 헤아릴 수 있게 됐어요. 구속사의 경륜을 이루는 사람으로 나를 만들어 가신 겁니다.
1) 창 49:10. 홀은 ‘왕권을 상징하는 지팡이’, 실로는 ‘안식을 주는 자’
2) 시 22:1. 헬라어로는 ‘엘 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
3) 삼상 25:29
10년간 당신을 죽이려고 추적한 사울은 당신에게 어떤 사람입니까?
저는 말할 수 없이 억울했습니다. 아무 이유 없이 그가 나의 대적이 되어 거짓과 궤사로 나를 해치려는 상황이었으니까요. 그렇지만 제 나름대로는 깨끗한 신앙 양심으로 사울 왕을 대하려고 무진 노력했습니다. 그를 죽여 복수할 기회가 두 번이나 있었지만, 끝까지 그를 왕으로 높이고 나 스스로는 ‘죽은 개나 벼룩’으로 낮췄어요. 그것이 나의 진심이었습니다. 제 마음이 지극히 겸손해졌을 때 사울의 강퍅하고 완악한 마음도 순식간에 누그러지는 모습을 목격했지요. 그것이 하나님의 구속사의 원리이고, 하나님의 방식이라고 생각해요. 모든 심판은 하나님께 맡기고 끝까지 선으로 악을 이기라는 것입니다.
다음 질문을 던지기 전 잠시 망설였다. 그에게 묻지 않을 수 없는 한 사람에 대한 질문이 그에게는 할 수만 있다면 피하고 싶은 얘기일 터였다. 그러나 기자에게는 때로 잔인해야 하는 순간이 온다. 더구나 하나님은 구속사에서 인간의 공(功)과 과(過)를 가감 없이 기록하시는 분 아닌가. 결국은 사랑으로 과를 덮고 공을 남기시는 분이지만. 직진한다.
밧세바에 대해서도 말씀해 주시죠.
(각오했던 듯 그가 잠시 뒤 입을 열었다) 만약 돌이킬 수만 있다면… 예수 그리스도의 족보에 내가 처음에는 ‘다윗 왕’으로 기록됐지만, 바로 다음 구절에는 “다윗은 우리야의 아내에게서 솔로몬을 낳고”로 적혀 있지요. 그 이유를 누구보다 제가 잘 알지 않겠습니까.
영적으로 나태해졌을 때 범죄의 씨앗이 침투했습니다. ‘보는 것’에서 시작된 안목의 정욕에 빠지고 나니 유혹을 이길 능력을 상실했어요. 마음이 미혹돼 버리자 올바른 판단력을 상실했고, 멈춰야 하는 순간에도 멈추지 못했습니다.
너무나 많은 것을 잃은 뒤에야 회개했습니다. 진심으로 회개했다는 말은 차마 내 입으로 못 하겠습니다. 그럴 면목도 없으니까요. 하나님은 그래도 나의 회개를 받아 주셔서, 언약을 끝까지 보전하시고, 대대로 저의 집에 등불이 꺼지지 않게 하셨습니다. 그 은혜가 너무나도 감사하고 죄송할 뿐입니다.
당신에게 반란을 일으키고 당신을 죽을 지경까지 이르게 했던 아들 압살롬에게는 왜 그리 관대하셨습니까?
맏형 암논을 쳐 죽이고, 아비의 왕위를 빼앗고, 아비의 후궁들을 백주에 겁탈한 자식, 게다가 아비를 죽이려고 군대를 동원해 공격한 천하의 불효자. 세상 사람 어느 누가 이런 인간을 용서할 수 있겠어요?
그런데 말입니다, 기자 양반, 당신도 아들딸이 있지요? 자기 목숨을 주고라도 자식의 생명을 살리길 원하는 것이 아버지의 마음입니다. 아무리 죄 많고 무정한 자식이라도 끝까지 사랑하면서, 끝없이 용서해 주려고 하는 모습, 그것이 아버지 아닌가요. 저는 이미 그런 사랑을 하나님 아버지에게 받았습니다. 정욕 때문에 충신을 죽인 살인죄까지 저지른 게 나라는 인간 아닙니까. 그래도 하나님은 저를 용서해 주시고 사랑하셨습니다. 아버지의 그 사랑을 받은 나도 아버지의 사랑을 베풀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압살롬이 죽은 뒤 “내 아들 압살롬아, 내 아들아, 내 아들아” 하고 통곡했던 그때 내 음성은 실상은 하나님 아버지께서 나에게, 그리고 우리 모두에게 들려주신 음성이었습니다.
한동안 서로 말이 이어지지 않았다. 마지막 질문을 던졌다.
파란만장한 인생을 다 겪은 뒤 당신의 최대 관심사는 성전 건축이었던 것 같습니다.
그래요. 심히 많이 준비하고, 힘을 다하여 예비했습니다. 그때 비축한 건축 자재가 지금 돈으로 환산하면 750조 원 상당이에요. 전장에서 생사를 넘나들며 얻은 값진 전리품, 내 사유 재산들까지 진심으로 기쁘고 즐겁게 드렸지요. 비록 하나님은 저에게 성전 건축을 허락하시지는 않았지만, 저와 다윗 언약을 맺어 주시고, 제 아들을 통해 성전을 건축하시겠다고 약속해 주셨습니다. “네 몸에서 날 자식이 내 이름을 위하여 집을 건축할 것이요. 나는 그 나라 위(位)를 영원히 견고케 하리라”는 그 약속이 일차적으로는 솔로몬을 말씀하시는 것이지만, 궁극적으로는 메시아를 뜻하는 것이라고 나는 직감했어요. 다윗 언약의 성취자로 메시아가 오신다니, 피조물로서 그보다 더한 영광과 감격이 어디 있겠습니까. 제 이름의 뜻대로 저는 정말 하나님께 ‘사랑받은 사람’입니다.
많은 허물과 과오가 있었지만, 하나님은 그의 인생을 ‘정직한 사람’,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자’라고 최종 평가해 주셨다. 말세를 살면서도 다윗과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많이 실패하고 타락하는 우리에게 크나큰 위안이고 감사이다. 하나님의 그 크신 열심과 무던한 인내에 힘입어 언약의 등불은 꺼지지 않았고, 하나님 나라가 완전히 이뤄질 때까지 영원토록 타오를 것이다. 누구보다 다윗 왕이 그것을 잘 알고 있을 것이다.
*이 글은 구속사 시리즈 제3권 <하나님의 구속사적 경륜으로 본 예수 그리스도의 족보-영원히 꺼지지 않는 언약의 등불>(도서출판 휘선, 박윤식 저)의 내용을 극화(劇化)한 것입니다. 전체 내용을 아시려면 책을 꼭 읽으실 것을 추천합니다.
- 21년 4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