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이 알고싶다
예수님께서 데가볼리의 거라사(마태복음에서는 ‘가다라’로 표기)에서 귀신 들린 자를 만나셨습니다. 데가볼리는 헬라어 ‘데카 폴리스’로 ‘10개의 도시’라는 뜻입니다. 이 지역은 갈릴리 남단에 로마가 세운 10개의 식민지로 이방인들이 사는 지역이었습니다. 그리고 데가볼리의 열 도시 중 하나가 거라사입니다.
귀신 들린 자는 오랫동안 무덤 사이에 거하면서 자신을 괴롭히며 사슬에 묶여 살고 있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이 사람을 만나자, 그 안의 귀신은 예수님이 어떤 분이신지 알아보고 벌벌 떨었습니다. 예수님께서 귀신의 이름을 물으시자 귀신은 ‘군대’라고 대답합니다. 이 ‘군대’라는 단어는 6,000명으로 구성된 로마 군단 한 개를 가리키는 표현입니다. 6,000의 귀신이 한 사람에게 들러붙어 그를 괴롭히고 있던 것이었습니다. 군대 귀신은 예수님께 무저갱이 아니라 돼지 떼에 들어가게 해달라고 간청합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는 그 귀신의 청을 허락하셨습니다.
1) 군대 귀신은 구속사의 전진을 저해하기 위해서 돼지 떼에 들어갔습니다.
군대 귀신은 자기 죄를 뉘우치며 호수에 뛰어든 것이 아니라, 거라사인들의 마음을 홀리기 위해 돼지 떼를 홀렸습니다. 비록 군대와 같이 많다고 해도 귀신은 예수님의 명령 한 마디에 즉각 쫓겨납니다. 그러나 자신을 불쌍한 척 속여 돼지 떼에 들어가기를 성공하자, 거라사 지역에 예수님의 말씀이 전달될 수 없도록 군대 귀신은 즉시 돼지 떼를 낭떠러지로 몰아 호수로 뛰어들어 몰살시켰습니다. 그리고 그 모습을 본 사람들은 초자연적인 역사에 두려움에 빠져 예수님을 그 지역에서 떠나 달라고 간구하였습니다. 인간 이성으로는 이해될 수 없는 일이요, 돼지 떼는 거라사인의 소중한 재산이었기 때문입니다. 결국 막역한 두려움과 경제적인 손실에 마음이 완악해져 메시아를 내쫓고 만 것입니다.
2) 예수님께서는 귀신 들린 자 한 사람을 더욱 사랑하셨습니다.
그렇다면 예수님이 귀신에게 속으신 것입니까? 아닙니다. 예수님은 군대 귀신의 속에 꿈틀대고 있는 완악한 생각을 이미 아셨습니다. 그리고 돼지 떼가 몰살당하면 거라사 사람들이 두려움에 빠져 예수님의 복음 전파 계획에 막대한 지장이 있을 것도 아셨습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예수님은 이 귀신 들린 한 사람을 사랑하셨습니다. 예수님께는 거라사인의 재산이나 두려움, 심지어 복음 전파 계획의 실행보다 더욱 한 사람을 사랑하셨습니다. 사단의 방해와 거짓말을 아시면서도 기꺼이 허락하심으로써, 귀신 들린 한 사람에게 자유를 주시고 그를 회복시키고자 하신 것입니다. 실로 구스와 스바 왕국 전체보다 한 사람을 사랑하시는 뜨거운 아가페 사랑입니다(사 43:3).
3) 구속사의 전진에는 조금의 손해도 없었습니다.
예수님께서 거라사를 떠나기 위해 배에 오르실 때, 귀신 들렸다가 해방된 자가 찾아왔습니다. 그는 예수님을 좇겠다고 말했지만, 예수님께서는 그 대신 집으로 돌아가 성내에 이 일을 전파하라고 명령하셨습니다. 마가복음 5:20을 볼 때, “그가 가서 예수께서 자기에게 어떻게 큰일 행하신 것을 데가볼리에 전파하니 모든 사람이 기이히 여기더라”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자기 집이 있는 거라사뿐 아니라, 데가볼리 전역을 다니며 예수님께서 자신을 깨끗이 낫게 하셨다 외친 것입니다.
인간적인 생각에는 한 사람을 구하다가 거라사 지역을 잃은 것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이 이야기의 결말은 예수님께서 구원하신 한 사람을 통해 거라사 성뿐 아니라 데가볼리 전 지역에 복음이 퍼져 나가게 되었습니다.
우리의 하나님은 천하보다 한 사람의 구원을 바라시는 사랑의 아버지시요, 그 한 사람을 통해 하나님의 구속 경륜을 성취하시는 승리의 아버지십니다.
글_정디모데 전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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