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상 인터뷰] 횃불언약의 열쇠를 쥔 키맨(keyman) 요셉을 만나다
횃불언약의 열쇠를 쥔 키맨(keyman)
요셉을 만나다
*이 글은 성경을 토대로 한 가상 인터뷰입니다.
하나님이 BC 2082년 아브라함과 맺으신 ‘횃불언약’은 성경 전체를 관통하는 핵심 언약이다. 구속사(救贖史)의 시작부터 마침까지가 이 언약 안에 들어 있다. 그 횃불언약의 열쇠를 쥐고 있는 사람! 그가 바로 요셉이다. 세계사에서는 전설적 통치자였고, 구속사에서는 가장 신비로운 인물, 이번 가상 인터뷰의 주인공은 요셉이다. 첫 질문은 공세적으로!
만나고 싶었습니다. 당신이 야곱의 특별한 아들로 태어난 건 모르는 사람이 없지요. 그렇다면 조금 더 겸손하고 부드럽게 자세를 더 낮출 순 없었나요? 형들한테 해서 미움을 산 그 꿈 얘기 말입니다.
하하. 글쎄 말입니다. 그런데 좀 이해하셔야 할 게 있습니다. 제가 아버지 야곱을 따라 헤브론에서 할아버지 이삭을 처음 만난 게 16세 때였어요. 이삭 할아버지와 1년간 지내며 참으로 많은 걸 배웠죠. 제일 중요한 건 역시 ‘횃불언약’입니다. 하나님이 저의 증조할아버지 아브라함과 맺으신 그 언약 말입니다. 단지 아브라함 개인에게 복 주시려는 게 아니라, 아담 이후 타락한 우리 모두를 구원하시려는 구속사의 중심언약임을 이삭 할아버지는 내게 가르쳐 줬어요. 그 뒤로는 제 삶에 일어나는 일들, 그리고 꿈으로 보여주시는 것이 단지 개인사(個人事)가 아니라 구속사적 의미가 있다는 걸 느꼈어요. 17세에 꾼 그 꿈도 마찬가지입니다. 17세라는 나이도, 꿈의 내용도 하나님이 계획하신 뜻이 있다고 생각했죠. 미움 받더라도 부모님과 형들에게 얘기할 필요가 있다고 판단했어요.
그렇지만 대가가 참으로 컸죠. 17세 어린 나이에 종으로 팔려 이국땅에서 살아가게 된 것, 보통 사람으로서는 감내하기 힘든 일이었을 텐데요.
지나고 나니 모든 것이 감사이고 축복이지요. 그러나 당시엔 견디기 힘들었습니다. 하루하루 어떻게 버텼는지 몰라요. 배신감, 미움, 공포, 절망이 밤낮으로 엄습해 왔습니다. 하나님의 언약이 나에게 머물러 있다고 생각했는데 왜 이런 일이 생겼는지 이해하기 어려웠습니다. 시간이 지나면서 이런 생각이 조금씩 들더군요. 아브라함 증조부께서 갈대아 우르와 하란, 두 번이나 삶의 본거지를 버리고 떠날 때 얼마나 막막했을까. 아버지 야곱이 정든 고향의 모든 걸 버리고 아는 사람 하나 없는 밧단 아람으로 갈 때 얼마나 괴로왔을까. 그로부터 13년의 세월은 고난의 시간이었지만 특별한 섭리의 시간이기도 했어요. 보디발의 종이 돼서도, 감옥에 갇혀서도 하나님이 특별히 돌봐 주신다는 것을 느끼니 버틸 수 있었지요. 꿈을 해몽해 준 술 맡은 관원장이 나를 잊었을 때는 다시 낙망했지만, 그때마다 하나님이 도와주시고 힘을 주셨습니다.
마침내 30세에 당시 세계 최강대국인 애굽의 총리가 되셨지요. 인생 대역전입니다.
그때 바로 왕께서 내 이름을 애굽 식으로 ‘사브낫바네아’라고 지어줬지요. ‘세상의 구원자’, ‘생명의 땅의 통치자’라는 뜻입니다. 애굽 사람들은 그 이름을 보고 바로 왕이 나를 얼마나 절대 신뢰하는지 눈치챘어요. 그러나 저는 단지 그런 의미를 넘어, 그 이름에 횃불언약의 성취자의 뜻이 담겨 있음을 느꼈지요. 굶주린 애굽 백성을 구원하는 정도가 아니라, 타락한 인류 모두를 구원하시는 ‘메시야’의 예표(豫表)로 내가 살아가고 있는 게 아닌가…내 인생은 구속사(救贖史)의 축도(縮圖)일 수 있겠다고 생각했어요. 그 후 찾아온 7년의 풍년, 그리고 7년의 흉년 모두 단지 우리 시대의 일로만 느껴지지 않았습니다.
그로부터 10년 뒤 마침내 형들을 만나고, 동생 베냐민을 만나셨을 때는 어떤 심정이었습니까.
(3,896년 전의 일인데도 그는 깊은 감회에 젖었다. 한참 지나 그가 입을 열었다)
7년의 풍년이 지나고, 7년 흉년 중 2년이 지난, 내 나이 40세 때에요. 나를 몰라보는 형들이 내 앞에서 절할 때 17세에 꾼 그 꿈이 대번에 생각났습니다. 단지 통쾌하다, 괘씸하다, 눈물난다, 그런 인간적 감정들에 앞서 ‘하나님의 구속사는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이뤄져가는구나’ 하는 깨달음에 몸을 떨었어요. 내가 팔려간 것도, 애굽에서 13년간 고난의 세월을 보낸 것도 하나님의 계획 속에 있다는 걸 깨달으니 형들에 대한 미움, 배신감, 그 깊은 트라우마를 떨쳐버릴 수 있었어요. 물론 쉬운 일은 아니었습니다. 팔려가던 날의 그 악몽 같은 기억을 얼마나 잊고 싶었으면 맏아들 이름을 ‘잊어버린다’는 뜻의 ‘므낫세’로 지었겠습니까. 형들의 과오를 잊어 주자, 잊어 주자 다짐하고 기도하며 살았지요.
그때부터 아버지 야곱과 17년간 애굽에서 같이 사셨죠?
그렇습니다. 아버지와 가족들을 고센에 살게 한 것은 단지 그곳이 기름진 땅이어서가 아니에요. 횃불언약에 따라 4대(代) 만에 다시 언약의 땅 가나안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걸 나는 알고 있었습니다. 언젠가 가나안으로 돌아가기에 지정학적으로 최적의 땅, 그리고 애굽의 문화,종교와 섞이지 않고 신앙의 순수성을 지킬 수 있는 곳이 고센이었죠. 130년 험한 세월을 사셨던 아버지 야곱은 거기서 17년간 평안한 세월을 누리셨어요. 17년이라는 기간, 하나님 품에 안기신 147세의 나이, 그리고 고센에 들어간 우리 가족들의 숫자 70, 모두가 우연이 아닙니다. 횃불언약을 이뤄가시는 하나님이 하나하나 섭리하신 것이죠.
아버님 야곱이 임종 전 당신의 두 아들 에브라임과 므낫세를 축복하실 때의 모습은 참으로 신비스러운 장면입니다.
하하. 맞아요. 그 당시 저는 사실 ‘멘붕’이었죠. 둘째 에브라임에게 장자의 축복을 해주셨으니까요. 게다가 제 두 아들을 야곱 당신의 아들이라고 선언하시고, 그 후에 제가 낳을 아들이 제 후손이 될 거라고 하셨어요. 대체 이게 무슨 소리인가 했죠. 그 뒤 저는 아들을 낳지 못했어요. 제 아들들이 제 아버지의 아들들이 됐으니 저는 아비도 없고, 족보도 없는 신비로운 대제사장 멜기세덱처럼 된 거예요. 그 뜻을 나중에야 깨달았습니다.
당신이 세상을 떠나면서 “내 해골을 애굽에서 메어다가 가나안에 묻어달라”고 후손들에게 맹세시키는 장면은 참으로 감동입니다.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네 후손이 4대(代) 만에 돌아온다’고 약속하셨으니, 4대째인 저는 제 생전에 가나안에 돌아가나 보다 생각했어요. 하나님의 말씀은 땅에 떨어지는 법 없이 다 성취됐으니까요. 그러나 세월이 흐를수록 하나님의 생각은 인간의 생각과 다르고, 우리의 논리와 예상을 뛰어넘는다는 걸 비로소 깨달았지요. 이미 죽은 아브라함, 이삭, 야곱을 ‘산 자’라고 불러 주신 하나님께는 삶과 죽음이 아무런 장애물도, 경계(境界)도 아닌 것이죠. 나는 죽지만 여전히 산 자일 것이고, 내 해골이 가나안에 돌아가 묻히면 횃불언약이 성취된다는 걸 깨달은 겁니다.
횃불언약의 열쇠를 쥔 주인공으로서, 마지막 때 성도들에게 딱 한 가지만 당부하실 수 있다면 어떤 말씀을 하시겠습니까?
(한동안 생각에 빠진 뒤) 제가 형들이 가나안으로 돌아갈 때 부탁했던 그 말, “당신들은 노중(路中)에서 다투지 말라”(창 45:24)입니다. 아버지 야곱이 돌아가셨을 때, 우리 열두 형제는 요즘 도량형으로 1톤이 넘는 관을 메고 세겜까지 692km를 걸어갔지요. 네 명의 모친에게서 나온 우리들, 성격도 성장 배경도 제각각이고, 서로 복잡한 과거사의 기억들로 얽혀 있었습니다. 화해하고 협력하지 않으면 도저히 걸을 수 없는 길이었어요. 한 달 넘는 긴 여정에 갈등과 오해와 다툼은 왜 없었겠습니까. 그러나 아버지의 관이 아닷 타작마당에 도착했을 때, 우리는 한마음이 돼서 회개하며 통곡했습니다. 아버지가 살아 계실 때 환도뼈가 위골 된 극한의 고통 속에서도 자식들을 살리려고 에서 삼촌에게 7번 절하는 모습을 봤던 바로 그 장소거든요. 아닷은 ‘가시나무’란 뜻이지요. 아버지가 살아 계실 땐 그 심정을 모르고 아버지의 가시가 되기만 했던 우리들이지만, 아버지의 장사를 통해서 비로소 마음과 뜻이 하나로 뭉친 겁니다. 우리를 참아 주시고, 기다려 주신 하나님의 사랑을 생각한다면 여러분도 왜 협력하고, 이해하고, 사랑하고, 용서하지 못하겠습니까. 저 역시 열한 번째 아들이지만 장자라는 마음으로 죽을힘을 다해 형들을 눈물로 용서하고 품은 것입니다. 마음을 넓히십시오. 양보하십시오. 사랑하십시오. 그래야만 여러분이 횃불언약 성취의 주인공이 됩니다.
*이 글은 구속사 시리즈 제2권 <하나님의 구속사적 경륜 속에서 본 횃불언약과 그 성취 – 잊어버렸던 만남>(도서출판 휘선, 박윤식 저) 중 요셉에 대한 내용 일부를 극화(劇化)한 것입니다. 이 글에 나오는 연대와 나이 계산의 근거도 모두 이 책에 수록돼 있습니다. 전체 내용을 아시려면 책을 꼭 읽으실 것을 추천합니다.
그림_박희영
- 2021년 2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