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이 왜 화를 냈을까?
예수님이 왜 화를 냈을까?
마태복음 12:9-14, 마가복음 3:1-6
우리가 사는 이 시대는 화가 차 있는 시대입니다. 사람들의 마음속에 화가 짓누르듯 누적되면 정신 질환은 물론 신체 질환의 직접적 원인이 되고, 무서운 병을 유발하기 때문에 심리학자들은 ‘화를 저축하는 것은 자살 행위’라고 말합니다. 또한 화가 마음속에 가득하면 균형 잃은 성격이 조성되고, 청소년들에게는 파괴적인 행동을 낳게 할 뿐 아니라, 가정을 균열시키고, 뭐든지 반대하게 합니다. 결국 총과 칼이 없어도 말로 사람을 죽입니다.
1. 화의 속성
한자로 ‘화(火)’는 ‘불’, ‘급함’의 듯입니다. 급한 성미, 타오르는 불길, 치솟는 화의 뜻을 모두 내포하고 있습니다. 우리 조상들은 예부터 누적된 화에서 기인한 모든 병을 통칭해 ‘화병(火病)’이라고 했습니다. 세계적인 정신의학자 메닝거(Karl Augustus Menninger)는 속으로 눌려 있는 화가 발산되지 못하고 쌓이면 신체 질환으로 나타나기 때문에 화는 즉시 풀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영어로 성미 혹은 울화통을 뜻하는 temper(템퍼)는 라틴어에서 유래됐는데, 그 뜻은 ‘자[尺]’라는 뜻입니다. 성미야말로 인격을 잴 수 있는 자[尺]가 된다고 생각하여 유래된 말입니다. 유대인들은 기업에서 사람을 채용할 때, 그 사람의 됨됨이를 보기 위해서 가장 먼저 “화를 얼마큼 잘 내는가, 화를 잘 조절하느냐?”를 알아본다고 합니다.
또한 과학적으로 ‘화(火)’를 ‘스팀(steam)’과 같다고 생각하는 학자들이 많습니다. 스팀은 요란한 소리를 낼 수도 있고, 모든 기계, 기차를 움직이는 동력도 될 수가 있기 때문입니다. 만일 화를 꼭 필요하고 건설적인 가치로 쓰이게 하려면, 스팀과 같이 잘 조절해야 합니다.
운동선수는 적절하게 화가 났을 때 그 화를 동력으로 삼아 자기의 실력을 최고로 발휘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화를 빼버리면 뼈를 빼버린 것과 같이 맥없이 주저앉는 무골(無骨) 인간이 됩니다. 성경에서 ‘화를 내지 않는다’를 원어로 해석해 보면, ‘의욕이 없다’라는 뜻입니다. 이겨도 좋고, 져도 좋고, 선도 좋고, 악도 좋다 하면서 생활이 주저앉아 버리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화를 잘 조절하여 생활의 동력으로 사용해야 합니다.
2. 화를 조절하는 사람
하나님을 사랑하고 성경을 사랑하고 나라와 민족, 가정을 사랑하는 사람이라면 조절된 화를 내야 합니다. 이것이 바로 “용기”입니다. 갈라디아서 5:22-23을 볼 때, “오직 성령의 열매는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 참음과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 온유와 절제니 이같은 것을 금지할 법이 없느니라” 고 말씀하는데, 여기서 성령의 마지막 열매인 ‘절제’가 화를 조절하는 핵심입니다. 절제되지 못한 화는 성난 황소와 같이 무섭습니다. 황소가 화나면 이리 뛰고 저리 뛰면서 주인까지 들이받고, 결국에는 자기 성깔을 이기지 못하고 아무 데나 머리를 박아서 뿔이 부러지고 그대로 주저앉습니다. 황소의 화는 잠깐이지만 사람의 화는 하나님의 은혜가 아니면 절제할 수 없습니다.
창세기 34장을 볼 때, 디나가 히위 족속 하몰의 아들 세겜에게 강간을 당하게 되는데, 세겜은 디나를 사랑하게 되어 야곱에게 디나를 아내로 달라고 요청합니다. 이를 들은 야곱의 아들들이 복수하기 위해서 하몰과 세겜에게 이스라엘 여인과 결혼하려면 세겜 족속의 모든 남자가 하나님의 언약 백성의 징표인 할례를 받아야 한다고 거짓말을 했습니다. 하몰과 세겜은 그들의 족속의 모든 남자를 설득하여 할례를 받게 하였습니다. 할례를 받고 3일째 되던 날, 할례를 받은 부위가 아파서 걷지도 못하게 되자 시므온과 레위는 모든 세겜 족속을 기습하여 세겜 족속의 모든 남자를 죽였습니다. 그러나 신성한 할례 의식을 살인의 도구로 사용한 두 아들은 아버지 야곱에게 저주를 받고 말았습니다. 개인의 화가 세겜 족속들을 다 죽이는 결과 가져온 것입니다. 반면 다윗이 사울을 피해 도피 생활을 할 때, 사울 왕을 죽일 기회가 두 번 있었지만 하나님의 은혜로 화를 조절하여 하나님께서 기름 부으신 왕을 죽이는 실수를 범하지 않았습니다.
개인의 사사로운 화는 남을 파산시키지만, 하나님의 은혜로 조절된 올바른 화는 집단으로 점화되어 큰 운동을 일으킵니다. ‘백의의 천사’ 나이팅게일(Florence Nightingale)은 사실 자상한 간호사의 이미지와는 거리가 멀었습니다. 오히려 성미가 급하고 고집이 센 여자였습니다. 누군가 환자를 잘못 간호할 때는 병원이 다 떨 정도로 화를 내었습니다. 그녀의 올바른 화는 크림 전쟁(1853~1856) 당시, 환자의 사망률을 42%에서 2%로 낮추었습니다.
미국의 언론인 윌리엄 개리슨 (William L. Garrison)이 “노예의 슬픈 얼굴은 하나님의 얼굴을 그늘지게 한다”고 외치며 화를 폭발시킨 것은 미국 노예해방운동의 계기가 되었습니다. 미국의 16대 대통령 링컨은 어느 날 한 흑인 여자가 남편과 어린아이로부터 떼어져 팔려 가면서 울부짖는 소리를 듣고 피가 나도록 자기의 손가락을 깨물며 “이건 잘못되었다!”하고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시장 한복판에서 화를 터뜨렸습니다. 링컨의 올바른 화는 노예 해방이라는 위대한 열매를 맺게 하였습니다. 이러한 역사는 1919년 3월 1일, 대한민국에서도 일어났습니다. 일본제국의 무단통치(武斷統治)에 대한 저항과 독립을 외쳤던 3·1운동은 한민족 최대 규모의 비폭력 시민운동이었습니다. 이야말로 나라 사랑에 동기를 두고, 정의와 자유를 구현하려는 시민이 폭발시킨 민족적 화였습니다. 이렇게 영웅이나 위인은 화를 안 내는 사람이 아니라 화를 잘 조절한 용기 있는 사람들입니다.
3. 예수님의 화와 사랑
성경은 육의 생각이 아닌, 영의 생각으로 화를 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하나님의 뜻이 방해받을 때 과감하게 하나님의 뜻을 위해서 화를 내셨습니다. 예수님께서 회당에서 손이 마른 자를 보시고 바리새인들과 헤롯 당원들에게 “불쌍한 자 병 고치고 생명 살리는 것이 좋은 일이냐, 아니냐”고 물으셨습니다. 그들은 예수님께서 안식일의 규례를 어기고 손 마른 자를 고치실 것을 미리 알고 그것을 빌미로 예수님을 죽이려고 계획 중이었습니다. 예수님은 그들의 완악함을 보시고 노하셨다고 마가복음 3:5에 기록되어있습니다. 사무엘 선지자는 완악하고 완고한 것은 사신(邪神) 우상(偶像)에게 절하는 죄와 같다고 했습니다(삼상 15:23).
그렇다면 예수님께서 화를 내신 것이 죄입니까? 예수님께서 노를 격발하신 것은 하나님의 백성들이 사신 우상에게 절하는 모습을 영적으로 다 때려 부수는 사건이었습니다. 이는 사랑과 율법의 충돌이었습니다. 우리가 정의에 입각해서, 참뜻을 위해서, 예수님을 비난하는 자들을 향해서 내는 화는 죄가 아닙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에 동기를 두고 공의의 목적을 둔 화를 낼 수 있는 사람이 바로 진정한 그리스도인들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내가 안식일에 병 고치다가 맞아 죽어도 천하보다 귀한 한 생명을 살리겠다’는 마음으로 손 마른 자를 치유하신 것입니다. 이것은 한 생명을 사랑하는 정의의 자유, 신념의 폭발입니다. 오늘날도 예수님께서 그 사랑으로 여러분 개인과 가정에 다 관심 있다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예수님의 화의 동기는 사랑입니다. 화의 과정은 신념의 행동입니다. 화의 대상은 악의에 찬 세력입니다. 화의 결과는 구원입니다. 예수님은 우리 인류를 사랑하셨기에 욕을 뒤집어쓰고 오해를 받아 가면서도 끝까지 참고, 화를 잘 조절하셨습니다. 예수님이 그 사랑으로 마침내 오른손이 마른 자를 고쳐 주신 것과 같이, 우리도 나보다 남을 더 사랑하고, 남의 가정을 더 사랑하고, 나의 교회보다 남의 교회를 위해 기도해 주고, 나라와 민족을 더 사랑하신 예수님의 정의의 화가 우리 마음속에 불타올라야 하겠습니다.
2006년 3월 5일 주일 2부예배 휘선 박윤식 목사 설교
- 21년 2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