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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속사 시리즈 제1권 ‘창세기의 족보’ 서평 (민경배 연세대 명예교수)

2021.01.26 19:29

이 책을 들고 처음부터 읽어 나가면서 느끼는 것은, 기도와 눈물과 감사, 그리고 성서에 대한 깊은 연구로, 주야(晝夜)로 생각하고 명상하며, 그 진리와 사랑에 경이(驚異)로 감격하여 터지는, 그런 데서 글이 달구어지지 아니하고서는 이런 유(類)의 글이 나올 수 없다는, 그런 확신입니다. 박 목사님은 이 책을 쓰시기 위하여서 무릎 꿇고 기도하면서, 성서를 수백 번 읽고, 히브리 원어를 연구하고, 성령의 조명을 받되, 고금(古今)의 신학 서적들을 광범위하게 섭렵(涉獵)하는 데 수년을 보냈습니다. 하지만 그는 성서만 의지하고 이 글 전체를 써 나갔습니다. 학설의 인용이나 예화가 전혀 없습니다. 우리가 성서 말고 다른 것을 가지고 복음과 구원을 설명할 수 없다는, 그런 경건이 여기 빛나고 있습니다. 글을 쓸 때 그 글자 하나하나가 진실과 순결의 도량(度量)을 가지고 문체로 뜬다는 것은 절대 흔한 일이 아닙니다. 그런 의미에서 이 글은 그런 순수성과 진실 그리고 그 진리 때문에 근래(近來) 보기 드문 명저(名著)로, 우리 교회와 대학의 서가(書架)에서 열독(閱讀)되어야 할 자산(資産)으로 길이 남을 것이라 확신합니다. 

그의 방대한 성서 지식과 그 이해의 깊이는 이를 비견하기가 힘들 정도로 심원합니다. 저자의 머리에는 성서 전체의 방대한 글들이 다 색인화(索引化)되어 있습니다. 무진장한 성서의 금광들, 그 광맥의 지도(地圖)가 선명하게 그려져 있습니다. 그래서 언제나 연결시킬 고리들의 적절한 대상을 골라서 합성하는, 대단한 구상력(具象力)을 가지고 계십니다.

또 한 가지 눈에 띄는 것은, 이 글이 1968년부터 연구하기 시작하여 1983년에 이르러 여러 차례의 국내외 사경회에서 말씀하시고, 2005년에 그 대지를 완성하여 체계화하신 것인데, 그렇다면 50년의 목회와 40여 년에 걸친 기도와 사색을 통해 나타난 소산(所産)으로, 그렇게 하고서라야 이런 글이 나왔다면, 이것은 또 다른 의미에서 우리 학계에 숙연한 경고가 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이 저서의 핵심적 가치는 이제부터입니다. 저는 이 책이 성서신학(聖書神學), 특히 창세기, 곧 구약성서에 관한 것이라, 역사신학자(歷史神學者)로서는 어떤 형태로든지 평(評)한다는 것이 주제넘는 일이라 사료되어서, 전에 결례(缺禮)를 하면서까지 평하기를 고사(固辭)한 일이 있습니다. 그러나 정말 놀란 것은, 이 저서가 실제로는 역사신학의 대헌장(大憲章)이라는 사실입니다. 여기 성서 주석의 묘미와 통찰의 깊이는 그것이 실상은 역사적 해석의 손길 때문에 의연(毅然)히 빛을 내고 있습니다. 제가 역사학자라고 해서 그런 것이 아니라, 실제 역사와 역사학(歷史學)에 대한 연구의 전제와 그 방법론 그리고 역사 서술(敍述)에 대한 예리한 판별력과 그 틀(구도-構圖)이 여기 남모르게 명시되어 있는 것입니다. 

이것은 역사 연구의 새 계시입니다. 향후 역사 연구의 새 지표입니다. 그것이 1-40페이지에 이르러 명쾌하게 다듬어지고 있습니다.

더욱 놀라운 것은, 제가 역사 연구를 하면서 언제나 전제로 삼는 전거(典據)가 묘하게도 신명기(申命記) 32장 7-8절인데, 이 저서의 표지 전면에 바로 그 구절이 대서 특필되고 있습니다. 

“옛날을 기억하라. 역대의 연대를 생각하라, 네 아비에게 물으라…”

이렇게 진행되는 것인데, 우리 박 목사님은 그 구절을 가지고 이 저서의 이정표로 삼고 있습니다. 대전제로 삼고 있습니다. 저는 전에 박 목사님의 글을 읽은 일이 없습니다. 박 목사님도 제 글을 읽은 일이 없으실 것입니다. 만일 읽으셨더라도 그 어느 구석에 박혀 있는지도 모르는 그런 부분을 찾으셨으리라고는 보기 힘듭니다. 그런데 그 구절이 박 목사님의 이 연구의 대들보가 되어 있는 것입니다. 제가 이를 보고 깜짝 놀라 경탄의 심정으로 이 책을 정독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를 여러분께서는 이제 아실 것입니다. 저에게 서평을 부탁하지 아니하였더라면 대단히 섭섭할 뻔하였습니다. 그뿐만 아니라, 이런 일을 말해 줄 사람의 중요한 말을 여러분도 듣지 못할 뻔하였습니다. 

이 저서는 저자의 의도가 반드시 그렇지 아니할는지는 모르지만, 현대 역사 연구의 참신한 교과서적(敎科書的)인 지침이요, 그 방법론의 투명한 체계입니다. 역사 정신의 기독교적 조형(造形)입니다.

그 저서의 타이틀이 이렇습니다. 「창세기의 족보」! 저자는 창세기가 성서 전체의 서론(緖論)일 뿐만 아니라, 인류와 세계 구속사(救贖史)의 청사진이라 단언합니다. 곧 성서의 축쇄판(縮刷版)이라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마이크로(Micro) 성서입니다. 우리 몸의 어떤 부분에서 미소한 양의 살이나 뼈를 떼어 그 줄기세포를 배양하면 우리 몸 전체가 된다는 현대 생물학의 원리는 바로 성서적이라 할 것입니다. 창세기만 깊이 잘 읽어도 성서 전체의 구속사의 비밀이 알려진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본 서의 제목은 「창세기의 족보에서 본 하나님의 구속사적 경륜」이라 해도 좋을, 창세기를 넘어가는, 구속사의 감격을 논리화한 책입니다.

그는 “신앙은 과거에서 나온다”고 말합니다. 옛날은 구속사의 전 과정이요, 하나님의 사랑과 그 눈물의 역사라는 것입니다. 이것은 성서의 진수를 꿰뚫는 명언(銘言)입니다. 사실 

“성서는 역사서다”라는 정의는 신앙과 역사의 관계를 그 핵심으로 보는 기독교의 진수입니다. 그런데 역사의 상대성(相對性)과 그 지상성(地上性) 때문에 다들 거기까지 생각을 못했거나 아니면 꺼려하는 대목입니다. 대개 경건주의 신학의 오류가 혹시 있다면, 그것은 “구원이 세계와의 격리(隔離)나 그 소원(疏遠)에서 온다”는 주장입니다. 그러나 구원과 섭리는 이 하루하루의 역사 안에서 이루어지고 성취되고 있다는 것이 여기 분명하게 밝혀지고, 당당하게 천명되고 있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신앙을 그저 종교적인 차원에만 머물러 있게 하지 아니하고, 역사적 삶으로 생태화(生態化)시키고 보편화시키고 있는 것입니다. 이것은 이광수(李光洙)가 1917년에 그렇게 안타깝게 한국 교회에 대고 실현해 주기를 바라던 오랜 역사적 숙원(宿願)을 확인한 셈이고 또 실현한 것으로, 높이 평가될 만한 공적입니다.

그런 역사적 구원과 속죄의 대본(臺本)을 박 목사님은 족장들의 족보(族譜)에서 찾아낸 것입니다. 하루하루 살아가기를 수백 년 하는, 그 기간 마디마디 전역(全域)에서 구속의 경륜(經綸) 실현의 실체를 볼 수 있다는 것입니다. 

더구나 흥미로운 것은, 족장들의 이름을 그 원어(原語)에서 해석하는데, 그것이 정확하게, 그리고 전부, 그 당시의 역사적 문맥(文脈)과 어쩌면 그렇게 직결되는지 그 관계를 밝히는 그 묘미는 실로 압권(壓卷)으로, 이는 새로운 역사 아날로지(Analogy) 방법의 적용이어서, 경우마다 무릎을 치지 않을 수 없게 만듭니다. 

이런 구도 설정은 그들 족장 이야기가 그들만의 이야기로 끝나지 않고 우리들의 역사도 우리 시대에 그렇게 연결된다는, 그런 원형으로 보게 하고 있는 것입니다. 성서와 우리들과의 현실적 접근을 이 이상 더 생생하게 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성서를 나의 이야기로 만든 것이 이 저서 공적(功績)의 절정(絶頂)입니다.

이렇게 해서 여러 족장들의 생을 다 연결하여, 거기서 구속사의 신비를 풀어 나갑니다. 그것은 구원이 세상에서의 돌변과 단절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는 결론에 이르게 합니다. 이런 역사 해석은 구원의 성취가 점진적(漸進的)이며, 따라서 격변과 변혁으로 되는 것이 아니라는 발전사관을, 성서의 역사관으로 확인한 것입니다. 

이런 점진성을 그는 에스겔이 그발강 가에서 본 계시, 곧 성전에서 스며나오는 물방울들이 냇물이 되고, 강(江)을 이루고, 대하(大河)를 이루어, 마침내 바다를 소성시키는, 그 긴 여정(旅程)의 계시에서 판독(判讀)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약간은 무서운 말세론적 심판보다는 오히려 우리 주님의 영광스러운 재림으로 역사의 완성을 종말로 보는, 은혜와 축복의 종말을 갈망과 감격으로 찬송하며 기다리게 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확실히 기독교를 감사와 환호 그리고 밝은 희망의 종교로 확인하는 복음입니다. 이 지상의 역사가 바로 하나님의 역사라는 생명과 축복의 완곡(婉曲)한 표현입니다. 

저자는 실로 경건한 신앙과 신학으로 구속사와 세속-세계사를 일치시키는 대업을 수행하였습니다. 이것은 초기 어거스틴의 구속사-세계사의 2분법을 극복하는 것으로서, 기독교를 세계와 격리시키는, 소분파적(小分派的) 신비주의적(神秘主義的) 은둔(隱遁)을 경계하는, 전통신학의 금자탑인 것입니다. 그런데 그것이 창세기 연구에서 추리되었다 함이 놀라운 것입니다. 역사가 한 직선으로 진행하다가 종말에 이르러 주님의 재림으로 그 완성을 본다면, 그것이 바로 현대 역사신학의 주류를 이루는 성례신학(聖禮神學-Sacrament)과 성육신신학(成肉身神學)의 개괄적 체계가 되는 것인데, 그것이 이 저서에서 정확하게, 기독교 신앙의 초석으로, 박 목사님의 호(號)처럼 휘선(暉宣), 곧 밝혀지고 선양되고 있는 것입니다. 이런 신학은 한국 교회가 하루 속히 보완하고 갖추어야 할 필수적인 중추적 신학입니다.

이 저서는 우리들에게 성서의 신묘(神妙)한 깊이에 이르게 하는 가이드로서의 역할을 다한 것 말고도, 기독교의 신학적 성서적 대계를 역사적 계보 연구에서 성취한 공적으로, 더욱 한국 교회사에서 주목을 받아 마땅한 귀중한 업적으로 남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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