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갈릴리는 영화롭다
나의 갈릴리는 영화롭다
이사야 9:1-7
서울 노량진 대성교회 시절 본당 모습
본문 1절을 볼 때 “전에 고통하던 자에게는 흑암이 없으리로다 옛적에는 여호와께서 스불론 땅과 납달리 땅으로 멸시를 당케 하셨더니 후에는 해변 길과 요단 저편 이방의 갈릴리를 영화롭게 하셨느니라”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분명히 하나님의 절대적인 예언의 말씀입니다. 결론적으로 말씀드리자면 바로 여러분 자신이 영적인 면에서 갈릴리가 돼야 예수님께서 찾아오실 줄 믿습니다. 각자가 신령한 갈릴리가 된 입장에서 ‘나의 갈릴리는 영화롭다’라는 제목으로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우리가 인생을 살아갈 때 기쁜 일과 슬픈 일, 반가운 일과 반갑지 않은 일, 수월한 일과 힘겨운 일, 혹은 즐거운 일과 고된 일이 첩첩이 섞여 있다는 사실은 누구한테 설명할 필요도, 들을 필요도 없습니다. 연세가 많고 적고 간에 이 땅에 태어나서 이 시간까지 살아오는 어간(於間)에 다 피부로 느낄 정도로 체험했을 것입니다. 누구나 행복하게, 기쁘고 즐겁게, 보람 있게 생활을 하고 싶지만 마음대로 되지 않는 것이 하나님의 말씀을 거역한 아담의 후예인 우리의 인생이 아닌가 합니다.
이 땅 위에 사는 인간 중에 누가 슬픔을 사모하겠습니까? 누가 고된 일을 갈망하겠습니까? 고해(苦海) 바다 들이치는 험난한 세상에서, 기쁜 일보다 슬픈 일이 더 많고, 즐거운 생활보다 힘겨운 생활이 더 많다는 것은 여러분이 더 잘 아실 것입니다. 기분이 명랑할 때보다 언짢을 때가 더 많고, 일이 잘될 때보다 꼬일 때가 더 많으며, 웃을 때보다 우울해지고 울 수밖에 없는 때가 더 많습니다. 신앙생활하면서도 ‘할렐루야’ 찬송할 때보다 땅이 꺼져라 탄식을 할 때가 많습니다.
그러나 오늘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랑해 주시는 가운데 이사야 9:1-7로 초대해 주셔서, 지금 그 말씀 앞에 서게 됐습니다. 이 말씀을 자세히 상고해 보면 놀라운 찬송과 위대한 축복의 약속이 그 속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전에 고통하던 자에게는 흑암이 없으리로다
본문 1절을 볼 때 “전에 고통하던 자에게는 흑암이 없으리로다”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 말씀의 전과 후 사이에는 크나큰 차이가 있음을 알 수가 있습니다. ‘옛날’과 ‘오늘날’ 사이에 놀라운 변화가 발생된 것을 발견하게 되는 것입니다.
야곱의 열두 아들 가운데 스불론과 납달리가 있었죠(창 30:7-8, 19-20). 여호수아 19장을 볼 때, 이 스불론과 납달리 지파가 제일 동떨어진 북방의 갈릴리 지방을 기업으로 분배받은 사실이 정확히 기록되어 있습니다(수 19:10-16, 32-39, 21:32, 34-35).
그런데 스불론 땅과 납달리 땅은 지중해 연안에 있는 베니게(페니키아) 지방의 두로와 시돈에 가까이 있었기 때문에, 이스라엘 사람들이 그 지역의 이방 사람들과 정을 통하면서 하나님이 원치 않는 교제와 결혼을 함으로, 점점 하나님을 떠나고 하나님을 노엽게 하는 죄를 범한 사실을 성경을 통해 찾아볼 수가 있습니다(참고-창 49:13, 왕상 11:33).
성전 짓기를 간절히 원했던 다윗왕에게 하나님께서는 ‘너는 왕이지만 군인이야. 많은 사람을 죽인 피가 네 손에 가득해. 그러니 너는 성전 지을 수 있는 준비만 하라. 내가 네 아들을 통해서 짓도록 하겠다’고 하셨습니다(대상 28:2-6).
다윗왕은 레바논의 백향목을 많이 실어오기 위해서 두로 왕 히람과 교제하였고, 그의 아들 솔로몬도 아버지의 명을 받들어서 두로 왕 히람에게 ‘우리 하나님의 성전을 짓겠으니 좀 도와 달라’고 해서 레바논의 백향목이라든가 두로의 돌이라든가 많은 자재를 실어온 사실을 성경을 통해서 찾아볼 수가 있습니다(삼하 5:11, 왕상 9:11).
주전 8세기에 와서, 주전 732년에 앗수르 왕 디글랏 빌레셀이 이스라엘을 침범했습니다. 납달리, 스불론, 갈릴리 지방에 있는 많은 이스라엘 선민들을 얼마나 괴롭혔는지 열왕기하 15:29 말씀을 통해 알 수 있습니다.
열왕기하 15:29 “이스라엘 왕 베가 때에 앗수르 왕 디글랏 빌레셀이 와서 이욘과 아벨벳마아가와 야노아와 게데스와 하솔과 길르앗과 갈릴리와 납달리 온 땅을 취하고 그 백성을 사로잡아 앗수르로 옮겼더라”
그뿐만 아니라 그의 아들 살만에셀이라고 하는 자가 주전 724-722년에 대군을 앞세워서 갈릴리 지방을 점령한 이후(참고-왕하 17:3, 18:9), 자그마치 500-600년간 이방의 통치를 받았습니다.
생각해 보세요. 우리나라가 36년 동안 일제의 지배를 받으면서 모든 주권을 빼앗긴 것이 얼마나 악몽 같았습니까? 성과 이름을 빼앗고, 한글마저 말살하려고 갖은 흉계를 쓰는 일본 제국주의자들 밑에서 얼마나 신음했습니까? 36년 만 돼도 그런데 500-600년 가까이 스불론과 납달리, 즉 갈릴리 지방 사람들이 노예로 지내 왔으니, 한번 상상해 보시길 바랍니다. 그러다가 겨우 주전 2세기(주전 142년경)에 와서 그 땅이 회복된 것입니다. 유대 땅으로 편입이 됐죠. 얼마나 갈릴리가 서러운 땅, 슬픔과 고통의 땅인지 짐작할 것입니다. 이렇게 짓밟힘을 당해 왔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셨을 때, 갈릴리에서 주로 활동하시면서 제자들을 택하시고 말씀을 선포하셨습니다. 막달라 마리아도 갈릴리 사람 아닙니까? 그래서 이스라엘 백성이 예수님을 받아들일 수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가문으로 말하면 족보가 있고 뼈대 있는 훌륭한 집안, 학벌 좋고 부유한 집안에서 났다고 해야 백성이 믿을 텐데, 600년 가까이 이방의 말굽 아래서 신음하고 고통당하고 밤낮 종살이를 면치 못했던 갈릴리. 그래서 주님이 어디 출신이냐고 물을 때, 갈릴리라고 하니까 ‘웃기지 마라. 갈릴리에서 무슨 선한 사람이 나겠느냐?’ 했던 것입니다.
요한복음 1:46 “나다나엘이 가로되 나사렛에서 무슨 선한 것이 날 수 있느냐 빌립이 가로되 와 보라 하니라”
요한복음 7:41 “혹은 그리스도라 하며 어떤 이들은 그리스도가 어찌 갈릴리에서 나오겠느냐”
요한복음 7:52 “저희가 대답하여 가로되 너도 갈릴리에서 왔느냐 상고하여 보라 갈릴리에서는 선지자가 나지 못하느니라 하였더라”
더러운 동네, 몸 파는 여인들이 드글드글 끓는 동네에서 나라를 다스릴 통치자가 난다 할 때, 믿을 종자가 하나도 없는 것입니다.
그러나 성경 말씀 볼 때 분명히 갈릴리는 영화롭게 된다고 말씀하고 있지 않습니까?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렇게 어둠의 세력, 원수 마귀 때문에 갈릴리 지역에 살던 스불론과 납달리 지파 사람들이 600년 가까이 고생한 것과 마찬가지로, 아담의 후예인 우리가 아담이 죄지은 후로부터 이 시간까지 알게 모르게 어둠의 권세, 사단한테 농락을 당하고, 멸시 천대를 당하고 사람대접을 받지 못하게 마귀가 역사해 왔지만, 1985년 12월 25일 거룩한 성탄을 맞이해서 주님이 바로 여러분을 신령한 갈릴리로 삼아 가지고, 스불론과 납달리 땅에 찾아오신 줄로 믿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오늘 그 주님을 맞이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옛날 얘기 하는 게 아닙니다.
“전에 고통하던 자에게는 흑암이 없으리로다”. 이 말씀이 믿어지면 아멘 하시기 바랍니다. 여러분 개인과 자식과 남편, 모든 사업에 큰 빛으로 임하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좌정하실 때에, 분명히 모든 흑암의 권세, 어두움이 달아날 줄로 믿습니다. 나 같은 것을 영화로운 갈릴리로 삼아 주시겠다니 얼마나 좋습니까?
오늘 주시는 말씀을 통해서 여러분 개인과 가족과 모든 분야마다 큰 변화가 일어날 줄 믿습니다. 고통이 변하여 평화가 될 줄 믿습니다. 천대가 변하여 존귀가 될 줄 믿습니다. 멸시가 변하여 영광이 될 줄 믿습니다. 그 이유가 어디 있습니까? 예수님이 친히 큰 빛으로 오늘 저를 비롯한 여러분, 전 세계에 찾아오시기 때문에 반드시 성취가 될 줄로 믿습니다.
사망의 그늘진 땅에 거하던 자에게 빛이 비취도다
마태복음 4:12-17을 볼 때, 예수님께서 세례 요한이 잡힘을 들으시고 스불론, 납달리 지파가 살았던 갈릴리 지역으로 가신 이유는 이사야 선지자의 예언을 그대로 이루시기 위함이었습니다. 예수님의 제일성(第一聲)은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왔느니라”였습니다.
“예수께서 요한의 잡힘을 들으시고 갈릴리로 물러가셨다가 13 나사렛을 떠나 스불론과 납달리 지경 해변에 있는 가버나움에 가서 사시니 14 이는 선지자 이사야로 하신 말씀을 이루려 하심이라 일렀으되 15 스불론 땅과 납달리 땅과 요단강 저편 해변 길과 이방의 갈릴리여 16 흑암에 앉은 백성이 큰 빛을 보았고 사망의 땅과 그늘에 앉은 자들에게 빛이 비취었도다 하였느니라 17 이때부터 예수께서 비로소 전파하여 가라사대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왔느니라 하시더라”
이렇게 주께서 친히 우리 마음에 오셔서 지금도 우리를 권고하시고 사랑해 주시면서, 끝날에 남은 자가 되도록 영화로운 갈릴리로 만들어 주실 줄 믿습니다.
금년이 이제 며칠 남지 않았습니다. ‘또 한 해가 지나가는구나. 그날이 그날이고 나은 것이 없구나. 왜 점점 암담하냐?’ 그러지 마시고, 오늘 주시는 말씀을 놓치지 말고 믿음으로 꽉 붙잡으시기 바랍니다. 반드시 1986년에는 어느 때보다도 더 나아질 줄 믿습니다. 큰 광명을 안고 살아갈 줄 믿습니다. 꼭 믿으시기를 바랍니다. 자비하신 하나님께서 12월 마지막에, 영원히 지지 않는 신령한 태양 되시는 예수님(말 4:2, 눅 1:78)께서 우리에게 활력소가 될 수 있도록 모든 권능과 능력과 힘을 부여해 주실 줄 믿습니다. 여러분을 붙잡아 주시고 어둠의 세력을 때려 부수는 말씀의 철장(鐵杖)을 오른 장중(掌中)에 쥐여 주실 줄 믿습니다(계 19:15). 낙심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주님이 이 땅에 오셔서 33년 생애 가운데 가장 오래 머물러 계셨던 곳은 스불론과 납달리, 다시 말하면 갈릴리 지방이었습니다. 갈릴리에서 제일 먼저 기도하시고, 갈릴리에서 제일 먼저 전도하시고, 갈릴리에서 제일 먼저 제자를 택하셨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갈릴리가 될 때 주님이 오셔서 권고하시고 우리 위해서 대신 기도해 주실 줄 믿습니다. 또 여러분이 전도 못 할 때 힘을 주시고 전도의 영을 불어넣어 주셔서, 말주변이 없더라도 여러분이 외칠 때에 상대방이 감화, 감동을 받아 가지고 주 앞에 다 돌아올 줄 믿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예수님이 갈릴리에서 제일 먼저 전도하시지 않았습니까? 제자들도 그곳 갈릴리 사람들을 택하신 것 아닙니까? 시몬, 안드레, 야고보, 요한, 빌립과 바돌로매, 그다음에 세리 마태, 의심 많았던 도마, 여덟 명을 전부 갈릴리에서 택하셨어요. 어느 면으로 보든지 갈릴리는 예수님으로부터 제일 빛을 많이 받은 곳입니다. 사랑을 많이 받은 곳입니다. 기사와 이적, 능력을 많이 베푸신 곳이 갈릴리가 아니겠습니까.
마태복음 4:18-23 “갈릴리 해변에 다니시다가 두 형제 곧 베드로라 하는 시몬과 그 형제 안드레가 바다에 그물 던지는 것을 보시니 저희는 어부라 19 말씀하시되 나를 따라 오너라 내가 너희로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게 하리라 하시니 20 저희가 곧 그물을 버려두고 예수를 좇으니라 21 거기서 더 가시다가 다른 두 형제 곧 세베대의 아들 야고보와 그 형제 요한이 그 부친 세베대와 한가지로 배에서 그물 깁는 것을 보시고 부르시니 22 저희가 곧 배와 부친을 버려두고 예수를 좇으니라 23 예수께서 온 갈릴리에 두루 다니사 저희 회당에서 가르치시며 천국 복음을 전파하시며 백성 중에 모든 병과 모든 약한 것을 고치시니”
마가복음 1:39 “이에 온 갈릴리에 다니시며 저희 여러 회당에서 전도하시고 또 귀신들을 내어 쫓으시더라”
그렇기 때문에 오늘 거룩한 성탄을 맞이하는 여러분, 큰 빛 되시는 아기 예수, 하나님의 둘도 없는 성자 예수님을 영접할 때에 반드시 갈릴리에서 행한 기사와 이적, 축복과 전도, 모든 것이 다 우리 마음속에서 이루어질 줄로 믿습니다. 그때는 육적이라면 오늘 영적으로 다시 여러분을 갈릴리 삼아 가지고, 마지막 때 여러분을 통해서 기적이 나타날 줄 믿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심령에 눌림을 당하고 뭔지 모르게 괴롭고 서글프고 답답하고 그러한 분 없습니까? 지금 신령한 갈릴리, 영화로운 갈릴리를 만들기 위해서 걸어오시는, 아기 예수로 오시는 그 주님을, 큰 빛을 보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주님께서 여러분의 눌림과 고통을 해결해 주시려고 방금 마음속에 도착하시는 중에 있다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또 여러분 가정에 번민이나 슬픔이 있습니까? 영광의 주님을 영접하시기 바랍니다. 주님께서 기쁨과 평화로 바꿔 주실 줄 믿습니다.
아무리 어려워도 지금부터 각자가 ‘나의 생활의 터전은 절대 실패가 없다’ 그렇게 믿으시기 바랍니다. ‘나를 신령한, 영화로운 갈릴리로 만들기 위해서 주님께서 친히 오셨기 때문에, 주와 동행하고 주와 같이 숨을 쉬면서 먹고 마시며 주의 지시대로 움직이는 내가 되기 때문에, 나는 실패가 없다’ 그렇게 믿으시고, 모든 것의 모든 것이 되셔서 여러분의 마음의 갈릴리를 향해서 찾아오시는 주님을 영접하는 이 시간이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재삼, 재사 부탁함을 드리는 것입니다.
주께서 이 나라를 창성케 하시며
본문 3절을 볼 때 “주께서 이 나라를 창성케 하시며 그 즐거움을 더하게 하셨으므로”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여러분, 하늘나라가 희미하던 것이 확실하게 될 줄 믿습니다. 가정도 나라입니다. 국가의 소(小)단위가 가정입니다. 가정이, 나라가 하는 일마다 점점 졸아들고 없어지는 게 아니라 창성, 번성하는 축복의 역사가 일어날 줄로 믿습니다. 이 놀라운 사실을 믿는 자는 영적으로, 다 같이 따라 하세요. ‘영화로운 갈릴리!’ 송씨, 유씨, 김씨 등 여러 성이 있지만 다 떼어 버리고 이젠 전체가 뭡니까? 각자 나는 ‘영화로운 갈릴리’입니다. 그러면 주님께서 오시겠어요, 안 오시겠어요? 오실 줄 믿습니다. 이것이 참성탄입니다.
세상 사람들 40-50대 보세요. 당나귀처럼 힘겹게 살아가면서 그저 ‘무엇을 먹느냐, 무엇을 입느냐’ 합니다. ‘어떡하면 잘살 수 있지?’ 하는 생각뿐입니다. 그러나 주님을 영접한 40-50대를 보세요. 운동장에서 경주자와 같이 힘차게 뛰고 있는 모습을 보시기를 바랍니다. 하늘땅 차이입니다. 집에서 TV나 보고 있으면 뭐하겠습니까? 흘러간 옛 노래나 들으면 뭐합니까? 그저 몇천 리, 몇만 리 밖에 떨어져 있는 이스라엘의 한 모퉁이, 조그마한 갈릴리 지역의 스불론과 납달리 땅, 그렇게만 알고 있으면 뭐하겠습니까? 생각해 보세요.
이제 60대 넘은 사람들 보세요. 죄송한 말씀이지만, 개처럼 헐떡거리죠. 며느리, 사위, 아들 눈치 보고 집 지키면서…. 소망이 있습니까? 용돈 주면 그게 다인 줄 압니다. 그렇게 사는 사람과, 주님을 영접하여 영화로운 갈릴리가 된 사람. 연세가 60, 70, 80 됐지만, 예수님이 갈릴리 삼아서 그 땅을 슬슬 밟고 지나다니시면서 소망 있는 위로의, 영생의 말씀을 주심으로 은혜 가운데 살아가는 그러한 분들 보세요. 독수리같이 훨훨 날아갑니다.
세상 사람들은 ‘너무 집이 추우니까 죽은 다음에 양지 바른 곳에 좀 묻어 달라’고 합니다. 믿는 사람이 그렇게 말하는 것 봤습니까? 죽은 송장이 양지(陽地)가 어디 있겠습니까. 영화로운 갈릴리가 양지죠. 영화로운 갈릴리가 못 된 마음밭은 다 음지(陰地)입니다. 그러나 영화로운 갈릴리가 된 성도의 마음은, 주와 같이 살기 때문에 잽싸게 독수리같이 날아갑니다. 70, 80세라도 젊었을 때 일 못 한 것 한탄하면서 교회 나와서 봉사하려고 하고 헌신하려고 애쓰는 그러한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우리 교회에 많이 있습니다.
또 과부, 홀아비들 보세요. 너무나 고독하게 살아가는 분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러나 위대한 신앙가 모세는 80세에 하나님께로부터 부름받아(출 7:7) 40년 동안 쓰임받았습니다. 120세까지 하나님께서 붙잡고 쓰실 때에, 모세는 눈도 흐리지 않았고 허리도 꼬부라지지 않았고 기운이 떨어지지 않았다고 성경에 기록되어 있습니다(신 34:7).
여호수아를 보세요. 위대한 갈렙을 보시기 바랍니다. 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 603,550명 가운데 603,548명은 광야에서 다 죽고 오직 여호수아, 갈렙 두 사람만이 살아서 가나안 땅에 들어갔다면(민 14:38, 26:65), 여러분, 예수를 믿으면서 몇 번 시험 들고 몇 번 떨어졌습니까? 마땅히 광야에서 죽을 수밖에 없죠.
그러나 이 거룩한 밤, 고요한 밤, 참 좋은 날, 참 즐거운 날, 참 기쁜 날, 하나님이 사람이 되어, 말씀이 육신 되어(요 1:14) 하늘 영광 보좌를 버리고 오셔서, 납달리와 스불론같이 외적과 이방 나라에 밤낮 짓밟힘을 당하던 땅을 영화로운 갈릴리로 만들어 주시기 위해서 찾아오시는 주 앞에 감사할 때, 못 믿을 게 어디 있으며 주의 뜻을 위해 못 할 것이 어디 있겠습니까? 낙심하지 말고 용기백배의 신앙을 가지고 승리하는 여러분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고통받고 천대받은 갈릴리여! ‘주님이 찾아오셔서 영화롭게 해 주심을 감사합니다. 나 같은 건 천 번 만 번 죽어도 갈릴리 못 될 줄 알았지만, 오늘 주시는 말씀을 통해서 신령한 갈릴리가 될 줄로 믿습니다.’ 그렇게 고백하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사람이 하나도 없는데 문자적으로 갈릴리 땅을 영화롭게 하신다는 말씀입니까? 사람을 두고 말씀하셨겠죠. 대한민국이 아무리 살기 좋다고 하지만, 사람 하나도 없어 보세요. 무인도와 같죠. 사람이 없는데 나라가 될 수 있습니까? 마찬가지로 ‘갈릴리를 영화롭게 하겠다’는 말씀은 바로 사람을 두고 하신 말씀입니다. 오늘도 갈릴리 같은 심령 속에 주님을 영접하여 사는 그 인생에게, 주께서 하늘의 다함이 없는 기쁨과 평화로운 축복을 주실 줄 믿습니다. 또 하늘의 기쁨을 유지하기 위해서 이 땅의 기름진 것으로 가득가득 채워서 안겨 주실 줄 믿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누가복음 2:13-14 말씀을 볼 때 허다한 천군이, 수천만 천사가 하늘에 나타나서 “지극히 높은 곳에서는 하나님께 영광이요 땅에서는 기뻐하심을 입은 사람들 중에 평화로다”라고 찬송한 것처럼, 바로 주님이 이 시간에 여러분을 갈릴리로 삼아 가지고 찾아오셔서 ‘기뻐하심을 입은 사람들 중에 평화’라고 하신 대로 이루어질 줄로 믿습니다.
결론
우리가 흑암 속에서 압제와 멸시와 천대, 핍박을 받고 사단한테 속아 왔으나, 1985년 12월 25일 하나님이 사람이 되어 즉, 말씀이 육신 되어 은혜와 진리로 이 땅에 아기 예수로 오실 뿐만 아니라 스불론, 납달리같이 사람대접을 받지 못한 우리에게 친히 찾아오셔서 ‘안심하라. 걱정하지 말라.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너를 영화로운 갈릴리로 삼겠다’ 하셨으니 얼마나 감사합니까? 마치 고삐에 매여 있던 송아지가 외양간에서 나와 뛰는 것과 마찬가지로 이리 뛰고 저리 뛰면서 기뻐하게 되었습니다.
말라기 4:2 “내 이름을 경외하는 너희에게는 의로운 해가 떠올라서 치료하는 광선을 발하리니 너희가 나가서 외양간에서 나온 송아지같이 뛰리라”
이 시간부터 자식, 남편, 아내, 사업의 어려운 문제, 신앙의 어려운 문제를 전부 해결받는 기적의 영화로운 갈릴리가 되시기 바랍니다. 이 말씀 받아 가지고 돌아가는 가정마다 복에 복을 더해 주실 뿐만 아니라 누리는 축복도 아울러 허락해 주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갈릴리 지역에 사람이 하나도 없으면, 예수님이 눈에 보이는 황무한 땅을 영화롭게 하신다고 했겠습니까? 바로 그 지역에 사는 사람들을 가리켜서 말씀했다면, 오늘 여러분에게도 주님이 찾아오셔서 신령한 갈릴리, 영화로운 갈릴리가 된다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이방의 우상을 사고 또 우상을 만들기도 하고, 멸시 천대받고, 먹지 못하고 입지 못하고 밤낮 압제자의 막대기와 채찍에 휘둘리던 자들에게 주님이 찾아오셔서 ‘걱정하지 마라. 두려워하지 마라’ 하시고 영화로운 갈릴리로 만들어 주십니다. 생각해 보세요. 대통령이 순회할 때 기념수를 심든가 하게 되면 사람들 반응이 대단합니다. 대통령이 다녀간 곳이라고 말이죠. 그러면 하나님께서 친히 여러분 마음에 찾아오셔서 갈릴리로 인정해 주시고 그러한 칭호를 주셨는데, 이것이 큰 날, 즐거운 날, 좋은 날, 기쁜 날이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
그러니까 오늘 다 잊어버려도 ‘나는 영화로운 갈릴리가 돼서 간다’ 하는 것을 잊지 마세요. 주님이 거기서 떠나지 않고 기도하시고, 복음을 선포하시고, 회개의 축복도 주시고, 또 제자로 삼아 주시고, 부활하셔서 어디서 먼저 보이셨습니까? 갈릴리죠. 찬송가 84장 한번 부릅시다.
갈릴리에서 풍랑이 일어났을 때, 주님이 말씀 한마디로 잔잔하게 하시자 제자들이 깜짝 놀라 ‘이가 누구기에 말씀 한마디에 바람과 바다가 잠잠히 순종하는고’ 했습니다.
마가복음 4:35-41 “그날 저물 때에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우리가 저편으로 건너가자 하시니 36 저희가 무리를 떠나 예수를 배에 계신 그대로 모시고 가매 다른 배들도 함께하더니 37 큰 광풍이 일어나며 물결이 부딪혀 배에 들어와 배에 가득하게 되었더라 38 예수께서는 고물에서 베개를 베시고 주무시더니 제자들이 깨우며 가로되 선생님이여 우리의 죽게 된 것을 돌아보지 아니하시나이까 하니 39 예수께서 깨어 바람을 꾸짖으시며 바다더러 이르시되 잠잠하라 고요하라 하시니 바람이 그치고 아주 잔잔하여지더라 40 이에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어찌하여 이렇게 무서워하느냐 너희가 어찌 믿음이 없느냐 하시니 41 저희가 심히 두려워하여 서로 말하되 저가 뉘기에 바람과 바다라도 순종하는고 하였더라”
오늘 거룩한 성탄에 주님이 오셔서 이렇게 노도(怒濤)같이 일어나는, 흑암과 멸시의 땅 갈릴리 같은 세상 바다를 말씀 한마디로 평정(平靜)하게 하시고, 영화로운 갈릴리로 만들어 주시는 축복의 역사가 있을 줄 믿습니다.
1985년 12월 25일 수요예배 휘선(暉宣) 박윤식 목사 설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