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앙이 주는 종말적 교훈
재앙이 주는 종말적 교훈
데살로니가전서 5:1-6
지금 우리가 사는 지구는 많은 재앙이 일어나는 어려운 세상이 됐습니다. 코로나19로 미국에서만 감염자 600만 명, 사망자 18만 명이 넘었습니다. 지난 여름 우리나라에는 54일간 기록적인 비가 쏟아져 수많은 이재민들이 어려움을 당하고 있습니다. 성경에 나오는 재앙이라는 단어는 히브리어 ‘네가’로 아브라함 시대에 등장합니다(창 12:17). 하나님께서 바로와 그 집에 내리신 ‘네가’는 ‘전염병, 물리적인 타격, 여러 종류의 재난’을 가리키는 단어입니다. 지금 우리는 유례없는 다양한 재앙 속에서 살고 있습니다. 또 성경은 세상 마지막 때에 종말적 재앙이 닥쳐온다고 분명히 말씀하고 있습니다.
종말적 재앙의 범위는 전 세계입니다
지금 이 땅에서 일어나는 재앙들은 ‘부분적’ 재앙이지만 성경에 기록된 종말적 재앙은 ‘전 세계적’ 재앙입니다.
1) 노아의 홍수는 전 지구에 임했습니다
노아 홍수 때 “천하에 높은 산이 다 덮였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창 7:19). ‘천하에’는 히브리어로 ‘타아르 콜 하 샤마임’으로 ‘모든 하늘들 아래’라는 뜻이고, ‘높은 산’은 히브리어로
‘콜 헤하림 하 게보힘’으로 ‘모든 높은 산들’이라는 뜻입니다. 모든 하늘들 아래 모든 높은 산들이 다 물에 덮였다는 것입니다. 창세기 7:20-23을 보면 ‘모든’이라는 뜻인 히브리어 ‘콜’이 5번이나 나옵니다. 노아의 홍수는 전 지구적이었고, 노아의 가족 8명을 제외하고 모든 숨 쉬는 사람은 다 죽었습니다. 예수님은 “인자의 임함은 노아 때와 같다”고 말씀하십니다(마 24:37). 마지막 종말적 심판의 재앙도 전 세계적이라는 말씀입니다.
2) 마지막 불 심판도 전 세계에 임할 것입니다
물 심판이 전 세계적이라면 불 심판도 전 세계적입니다. 지구상에 사는 모든 사람에게 임한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눅 21:35). 어느 땅, 어느 나라로 피하면 된다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소용없는 일입니다. 마지막 재앙은 불 심판으로 하늘과 땅 전체가 심판의 대상입니다(벧후 3:7). 하늘과 이 땅의 모든 것을 심판하신다고 말씀하십니다(벧후 3:10).
3) 어떻게 불 심판을 이길 수 있습니까?
다니엘의 세 친구는 느부갓네살 왕의 금신상에 절하지 않아 평상시보다 7배 뜨거운 풀무불 가운데 던져졌습니다. 이들을 집어넣은 두 사람이 타서 죽을 정도로 뜨거운 불이었습니다. 그러나 이들은 불 속에서도 머리털 하나 그슬리지 않고 불에 탄 냄새조차 없었습니다(단 3:27). 다니엘의 세친구와 함께한 하나님이 우리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이 세상에 불 심판이 쏟아져도 그 불이 성도들의 몸을 능히 해하지 못할 줄 믿습니다. 예수님의 십자가 피의 말씀을 믿는다면 이 말씀도 믿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불 속에 세 사람이 던져졌지만 자세히 보니 한 사람이 더 있었습니다(단 3:25). 이사야 43:2도 “물 가운데 지날 때 함께하시고 불 가운데 행할 때 타지 않는다”고 약속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함께 하셨기 때문입니다. 오늘날도 코로나19가 창궐하고 수많은 재앙이 우리 가운데 엄습합니다. 앞으로 불 심판이라는 거대한 재앙이 분명히 다가옵니다. 그러나 믿는 성도들은 끝까지 하나님께서 함께 하여주심으로 어떠한 재앙 가운데서도 승리하는 놀라운 역사가 있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예수님은 아버지가 기뻐하시는 일을 행함으로 혼자 두지 아니하셨습니다(요 8:29). 아버지 기뻐하시는 일을 하면 늘 아버지께서 함께 하십니다.
종말적 재앙은 ‘갑자기’ 찾아옵니다
아무리 과학이 발달하고 기상예측 기술이 발전했어도 인류는 이상기후에 속수무책으로 당하고 있습니다. 종말적 재앙은 누구도 막을 수 없습니다.
1) 재앙은 ‘홀연히’ 임합니다
‘홀연히’는 히브리어로 ‘피트옴’으로 ‘갑자기, 불시에’ 라는 뜻입니다. 성경은 재앙이 홀연히 임한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욥 9:23, 전 9:12). 그 근본을 알지 못하고 홀연히 임한 파멸을 피하지 못한다고 하십니다(사 47:11). 다 당할 수밖에 없습니다.
2) 주님도 ‘홀연히’ 다시 오십니다
‘홀연히’ 임한다는 것은 밤에 도적같이 임함을 의미합니다(살전 5:2, 벧후 3:10). 그러나 영적으로 낮에 살아가는 성도들에게는 주님이 도적같이 오시지 않습니다(살전 5:4, 6). 예수님은 세상의 빛이시므로 예수님을 따르는 자들은 생명의 빛을 얻어 밤에 살지 않기 때문입니다(요 8:12). ‘홀연히’ 임함은 해산의 고통이 오는 것과 같습니다(살전 5:3). 여자가 아이를 낳는 것을 피할 수 없듯 우리도 주님이 다시 오심을 피할 수 없습니다. 우리는 낮의 아들이 되어 주님의 재림을 반갑게 맞이해야 합니다. 또 ‘홀연히’ 임한다는 것은 덫과 같이 오시는 것입니다(눅 21:34). 짐승들은 덫이 놓인 줄 모르고 지나가다 죽음을 맞이합니다.
3)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
인자 앞에 설 수 있도록 항상 깨어있어야 합니다(눅 21:36). 만사에 항상 내 앞에 인자가 서 계신다는 믿음으로 살아야 합니다. 그것이 기도하는 삶, 깨어있는 삶입니다. 주님 앞에 서 있다면 나쁜 짓, 나쁜 마음, 못된 일을 할 수 없습니다. 요셉은 하나님 앞에 서는 삶을 통해 보디발의 아내의 유혹을 이겨냈습니다(창 39:9). 다가올 종말을 두려워할 것이 아니라, 매일 인자 앞에 깨어있는 삶을 살지 못할까 두려워해야 합니다. 그렇게 살면 모든 환란을 통과할 수 있습니다.
결론. 재앙을 이기는 비결은 예수님처럼 사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재앙을 당하지 않으십니다. 우리도 예수님께 붙어서 예수님처럼 살면 능히 재앙을 피할 수 있습니다. 깨어있으라는 말씀은 예수님이 십자가 달리시기 3일 전에 선포하신 말씀입니다. 이 말씀을 하신 뒤 예수님은 낮에는 성전에서 가르치시고 밤에는 감람원이라는 산에서 쉬셨습니다(눅 21:37). 이 말씀은 인자 앞에 서는 삶이 어떤 것인지, 깨어있는 삶이 어떤 것인지를 알려주십니다.
1) 인자 앞에 서는 삶은 말씀과 함께 하는 삶입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에 죽으시는 그 순간까지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치셨습니다. 성도들은 말씀을 듣기 위하여 이른 아침에 성전에 나왔습니다. 항상 하나님 말씀을 듣는 삶이 종말을 바라보는 성도의 삶입니다. 말씀을 들으면 믿음이 향상됩니다(롬 10:17). 믿음 없이는 결코 재앙을 통과할 수 없습니다. 항상 하나님의 말씀과 교회가 먼저인 삶을 살아야 합니다.
2) 인자 앞에 서는 삶은 쉬지 않고 기도하는 삶입니다
예수님은 산에 가서 쉬셨다고 기록돼 있습니다(눅 21:37). 그런데 ‘쉬시니’는 히브리어로
‘아울리조마이’로 ‘밤을 새다’는 뜻입니다. 예수님은 십자가 죽음을 앞두고 밤새 기도하셨던 것입니다. 이것이 깨어있는 삶입니다. 누가복음 21:36 말씀을 예수님은 실천하신 것입니다. 골로새서 4:2에도 기도에 항상 힘쓰고 기도에 감사함으로 항상 깨어있으라고 명령하십니다.
우리가 매일 거르지 않고 밥을 먹듯, 말씀과 기도를 걸러서는 안됩니다. 말씀과 기도에서 떠나지 않았다고 자부할 수 있으면 종말이 두렵지 않습니다. 지금까지 나를 이끌어 주신 하나님 아버지께서 천국 가는 그날까지 반드시 나를 이끌어 주십니다. 이것이 변함없는 하나님의 견인, 즉 이끌어 주시는 은혜입니다. 코로나19 사태 속에서도 더더욱 말씀과 기도로 하나님 아버지와 가까이 함으로 마지막 심판에서도 보호해주시는 놀라운 역사가 일어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2020년 8월 30일 주일2부예배 이승현 담임목사 설교
*2020년 11웛