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강제일교회  ›  평강미디어  ›  평강라이프  ›  참평안
참평안

평안인터뷰 : “말씀은 전진합니다 반드시 약속대로 이루어집니다” – 최영훈 목사

2020.11.26 16:51

평안인터뷰

“말씀은 전진합니다.
반드시 약속대로 이루어집니다”


‘은퇴 후 개척’ 최영훈 목사

최영훈 대구산성교회 담임목사가 지난 10월 둘째 주 공식 은퇴 예배를 드렸다. 1989년 부임이래 32년간 시무했던 곳을 떠나 최 목사는 경북 안동(安東)에서 「시온산성교회」를 새로이 개척하고, 10월 셋째 주 바로 첫 주일예배를 드렸다. ‘은퇴 후 개척’의 첫 사례였다. 대구산성교회는 구속사 세미나를 성공적으로, 가장 자주 개최해온 것으로 유명하다. 최영훈 목사는 1982년 임직 받은 평강제일교회 1세대에 속하는 목회자로, 교회의 ‘산 역사’의 증인 가운데 하나이다. 안동 시온산성교회에서 만나 그의 역사와 교회의 역사로 얘기를 나눴다.

목사님의 신앙생활의 시작부터 시작해보면 어떨까요?

원래는 불신자였어요. 누나와 매형 손에 이끌려 원로목사님(휘선 박윤식 목사)을 처음 뵙기는 1975년 일석교회 때였어요. 정식으로 다닌 건 노량진 대성교회에서 교육관을 지을 무렵이었죠. 1978년 등록했습니다. 그 해에 장안산 1차 기도회가 열려 전 성도들이 산에 올랐는데 청년들이 산 길을 열기도 하고 낙오자를 부축하는 역할을 했었죠. 그때 은혜가 와서 처음으로 ‘믿어야지’ 하는 마음이 확정이 되었어요. 전도사님들이 말씀을 이해하려면 성경을 읽어야 한다고 해서 기를 쓰고 성경도 읽기 시작했죠. 족보 부분들은 빼놓고, 일주일 만에 1독을 했는데 정말 말씀이 들리기 시작하더군요.(웃음)

1979년에 청년회장을 맡게 되었어요. 막 원지동 수양관을 매입한 뒤라 청년들이 봉사를 참 많이 다녔어요. 청년회라는 이름은 있었지만 유명무실했어요. 전체적으로 20대 초반들이었고, 성가대나 다른 기관 활동을 병행하느라 독자적인 모임도 변변히 갖기 어려웠죠. 모이면, 저 포함 3명이었어요.(웃음) 그래도 ‘교회 내 전도’를 열심히 했어요. 한 번은 한 청년을 붙잡고 청년회로 모이자고 했더니, 다른 교회 목사라 하더라고요.(웃음) 80년도부터는 청년 1,2,3부로 나뉘었어요. 150여 명 가량 되었을 거예요. 그때는 청년들 모이면 봉사 아니면 성경공부를 했어요. 노량진 성전 지하방에 청년회실을 만들어 시간 나면 성경공부를 했지요. 당시 청년회 멤버들 거의 다 교역자가 됐어요. (쟁쟁한 이름들이 나열됐다).

청년회 부흥의 시작이었군요. 교회의 폭발적 성장도 그 즈음 아니었나요?

그랬지요. 성장의 핵심은 성경공부였습니다. 그때는 성도들이 직접 성경을 가르치고 다녔습니다. 교역자도 충분치 않았고요. 목사, 전도사에게 배운 것을 대학 스프링 노트에 잘 적어놓고는 누가 얘기하지 않아도 각자 가정에서, 구역에서, 또 공부를 원하는 교회 밖 사람들에게 가르쳤어요. 얼마 안 돼 성도들이 엄청나게 몰려들면서 질서를 수립할 필요가 생겼습니다. 일단 교회 소속이 되면 직분자들이 맡아서 체계적으로 교육을 담당하는 시스템도 그 즈음 마련됐습니다. 부흥은 열성적인 성경공부 가운데 이뤄진 것입니다. 교회 부흥의 비결은 성경공부이고, 성경을 공부해야 교회가 부흥한다는 것을 그때 모두가 분명히 보고 체험했지요.

 

언제 목회자가 되기로 결심하셨나요?

부끄럽지만 전 결심을 한 적은 없어요. 청년회 활동 열심히 하고 있는데 1979년 어느 날 원로목사님이 신학교를 가라고 하셨어요. 전 공대(한양대 공대) 출신이에요. 특히나 말주변이 없어서 가장 할 수 없다고 생각한 직업이 교사와 목사였어요. 그래서 손으로 하는 공대에 간 겁니다. 졸업 후 직장 생활을 좀 하다가 기계공장을 차려 사업을 했는데 동업하던 친구와 갈등을 겪고 있을 때 교회로 불러주신 것이죠.

처음에 은혜받으면서 확실했던 것은, 원로목사님은 기도하시는 분이고, 하나님의 사람이라고 분명하게 느낀 것이었어요. 말씀의 위력은 알지 못했을 때지만 말씀이 대단히 성경적이고, 하나님 뜻대로 일하신다는 것에 의심이 생기지 않더라고요. 말씀이 들리기 시작하면서 말씀 한마디가 더욱 위력적으로 들리고 큰 무게감이 느껴지고 영적으로 들렸어요. 그랬으니 순종하게 된 거죠. 1981년 전도사 임명받고 2년가량 전도사 생활을 했어요. 1982년 12월 24일 목사 안수를 받았죠(김홍진, 안성억, 오용한, 송억영 목사 등과 함께 임직 받았다). 교회는 이미 이때부터 성전 이전을 준비하기 시작할 만큼 예배당이 꽉 찼습니다. 1982년 전도사 시절에는 성남의 지교회에 2년쯤 있었어요. 83년도 12월 말에 다시 서울로 복귀했죠. 이후 중등부, 유년부, 각 교구들을 담당했죠.

대구에는 어떻게 내려가게 되셨나요?

먼저 시무하시던 목사님이 계셨는데, 여러 일이 생기면서 제가 원로목사님의 명을 받고 내려왔습니다. 1989년도였어요. 당시 대구교회는 도로 옆 상가 건물 2층에 있었어요. 20평 남짓한 공간에 30명가량의 성도들이 계셨죠. 한겨울에도 상가 계단에서 곤로에 가스통 가져다가 밥해 먹고 그렇게 한참을 지냈어요. 조금씩 성장해서 90년대 초 교회를 새로 지으려 했는데 여러 일들이 생겼어요. 원로목사님이 교회 부지 살 돈도 보태주시고 해서 1995년 지금의 터에 성전을 지었습니다.

이후 큰 성장을 이루셨는데 어떤 일이 가장 기억에 남아있나요?

「구속사 세미나」지요. ‘기도로 가능했던 일’로 저뿐 아니라 모든 성도들이 분명히 느끼고 있습니다. 대구는 대단히 보수적인 지역으로, 우리 교회에 대한 오해도 가장 극심한 곳 중에 하나였습니다.

그런데 어떻게 그런 대대적인 행사를 치를 생각을 하셨나요?

구속사 세미나가 해외에서는 성공적이었지만, 지방에서는 줄곧 녹록지 않았습니다. 그러다 2013년 12월 17일 한기총(한국기독교총연합회)에서 우리 교회에 관한 시비가 해결되면서 마음 가운데 ‘이제 구속사 세미나를 할 때가 됐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어렵게 2014년 6월 1차 세미나를 마치고 원로목사님을 만나 뵈었어요. “다음에는 아주 크게 하라”고 하셔서 바로 11월을 목표로 열심히 준비했죠. 그런데 행사 며칠 전 ‘내부 행사로라면 강사를 보내지 않겠다’는 결정이 전해져왔어요. 외부 목회자를 대거 초청하는 일은, 그 짧은 시간에 도저히 가능하지 않은 일이었어요. 문제가 해결됐다 해도 인식까지 단번에 바뀌는 건 아니니까요.

어떻게 해결하셨나요?

그 다음부터는 기적이었어요. 대구의 아주 유력한 목사님을 만나게 되었는데, 알고 보니 80년대에 노량진 대성교회와 인연이 깊은 분이었어요. 당시 대구 교계에서 서울에서 폭발적으로 성장하고 있는 유명한 10대(大) 교회들을 찾아 탐방했는데, 대성교회도 그 탐방지 가운데 하나였다고 해요. 이 목사님은 박윤식 원로목사님의 설교를 들은 뒤 직접 만나 뵙고는 아예 매주 목요일 봉고차를 타고 서울에 찾아오셨대요. ‘박윤식 목사님이 구속사 시리즈라는 책을 내셨고, 그 책으로 세미나를 한다’하니, “내가 도와주겠다”라며 적극적이셨어요. 그렇다고 해도 시간이 너무 촉박했죠. 아무튼 우여곡절 끝에 며칠 뒤 증경 총회장급을 비롯해 대구 일대 쟁쟁한 목사님들과 유력한 장로님들이 세미나장에 대거 모습을 드러내셨고 큰 화제가 되었습니다. 기도 없이는 이뤄질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온 성도들이 매달려 70일 전부터 릴레이 금식 기도를 했습니다. 청년을 포함, 성도의 3분의 2 이상이 3일을 금식했고 새벽기도, 저녁기도에 참석했습니다. 저도 생애에 가장 많은 기도를 한 것 같습니다. 원로목사님이 나중에 그러시더군요 “기도 때문에 성공했다”고요. 또한 분명하게 체험하게 된 것은 “명령하실 때에는 예비하신 게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믿고 나가면 성취되는 역사가 눈앞에 펼쳐집니다.

2014년 11월에 개최된 대구 산성교회 주최 제2회 구속사 세미나는 1박 2일 6회 강의에 연인원 5,000명 이상 참석하는 초대형 행사였다. 대구는 지금까지 매년 평균 2회 이상 19차례 세미나를 열었다. 한 해 5차례 했던 적도 있다. (2014년 12월호 참평안 참조)

 

 

이 대화가 오가는 즈음에 지리산에서의 기도 얘기가 튀어나왔는데, 최 목사는 자세히 말하려 하지 않았다. 뒤에 추가 전화 취재를 통해 ‘지리산 기도처에서의 1주일 금식 기도’ 스토리를 들을 수 있었다. 정리하면 이렇다.

1990년도에 전 성도가 지리산 천왕봉에 갔었어요. 79년도에 갔을 때는 기도처를 공개하지 않으셨는데, 이때는 그곳이 어디인지 알려주셨죠. 이후 개인적으로 한번 가야겠다고 생각했어요. 10월 말에 올라가서 11월 초에 내려왔어요. 1주일간 금식 기도를 했는데 딱히 응답은 없었어요(웃음). 하루는 굴 밖 따뜻한 곳에 나와 있다가 멀리 약초 캐는 사람들과 맞닥뜨렸어요. 그분들이 굳이 이쪽으로 와서는 굴 안에 있던 성경 구절, 사무엘상 12장 23절을 한참을 보고 가는 거예요. 제게도 새롭게 마음에 부딪히더군요. ‘아 내가 할 일은 기도 열심히 하고 말씀 잘 전하는 일이 전부인가 보다’ 하는 마음을 응답으로 알고 내려왔죠(웃음)

그곳을 한 번이라도 가봤다면 1박(泊) 조차 엄두를 내기 어렵다는 걸 알기에 더 파고든 질문이었다. 1주일 동안 물도 마시지 않고 기도했던 최 목사는 하산길 중간 쉼터에서 죽을 얻어먹고 하루를 머문 뒤 이튿날에야 하산할 수 있었다고 했다.

*사무엘상 12장 23절 “나는 너희를 위하여 기도하기를 쉬는 죄를 여호와 앞에 결단코 범치 아니하고 선하고 의로운 도로 너희를 가르칠 것인즉”

부흥에 관해 참 많은 경험을 하신 것 같습니다.

때가 되면 하나님이 일으켜주십니다. 80년대 초 이름만 들어도 쟁쟁한 교회들의 부흥을 다른 모든 교회들이 연구하던 적이 있습니다. 어떤 교회는 주일학교, 중 고등부만 수만 명이 모인다는 소문도 있었지요. 저희들도 가서 연구했습니다. 결론은 ‘분업화’, ‘전문화’로 모아졌습니다. ‘청년에 특화된 목회자’, ‘어린이 주일학교에 전문화된 목사’ 등 단계와 분야마다 맞춤형 교역자를 길러내는 식이었습니다. 보고서를 원로목사님께 드렸더니 감감무소식이었어요. 한참 뒤에 저희들에게 “그렇게 하면 교역자들이 바보 된다”라고 하시더군요. 원로목사님은 당시 ‘십만 명의 리더’를 언급하셨어요. 그러시고는 당시 교계 ‘흐름’과는 정반대로 가셨어요. 교역자들이 맡은 기관, 교구를 주기적으로 계속 바꾸시는 거예요.

부흥의 문제는 섭리 가운데 있습니다. 지교회에서도 한참 유행했던 ‘무슨 훈련’ ‘무슨 모임’ 등 여러 모델들을 접목하려는 시도가 있었지만 잘되지 않았어요. 우선 우리가 부흥이라는 것의 영광을 이겨낼 힘이 있는가도 생각해볼 필요가 있습니다. 교회가 조금만 커지면 목회자도, 교회도 그 ‘영광’을 이겨내기가 쉽지 않습니다. 그렇게 되면 구속사의 거점들을 잃어버리는 결과로 이어지게 됩니다. 교회 설립 이래 많은 사람들이 오고 갔습니다. 다 남았다면 수십만 명 초대형교회가 되었겠지요. 그냥 성도를 늘리는 목회를 하셨다면 지금 보다 훨씬 양적 성장을 이뤘을 것입니다. 평강은 지도자를 세우는 교회이고, 구속사는 그런 말씀입니다.

반드시 약속대로 이뤄질 겁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받을 만한 때에 강권적인 폭발의 역사가 일어나리라고 믿습니다. 가만히 있어도 된다는 것은 아닙니다. 구속사의 말씀은 적극적이고, 공격적인 것입니다. ‘돌격 앞으로!’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의 역사는 반드시 전진하기 때문에 발을 맞춰 나가야 해요. 말씀의 제단 앞에서는 적극적인 신앙을 가져야 합니다. 아담에게 하신 “다스리고 지키라”는 명령은 적극적인 신앙행위를 요구하신 것입니다. 적극적으로 나가면 반드시 채워주십니다. 아브라함이 성장하며 전진할 때 아들을 얻었지요? 나가야만 새로운 환경이 보이고, 새로운 역사를 접하게 됩니다. 지금 성도가 4명뿐이지만, 걱정하지 않아요.(웃음)

은퇴 얘기를 좀 해주세요

우리는 그동안은 은퇴가 없었잖아요. 원로목사님이 떠나시는 때까지 일을 하셨으니, 저희들은 엄두도 내지 못했지요. 말씀을 전하는 사명에 중단이란 있을 수 없습니다. 교회 제도 안에 ‘정년’이라는 것이 있으니 은퇴한 것이지만, 사명은 계속 이어가는 것이지요. 받은 은혜는 반드시 전해야 합니다. 기도로 준비하면서 자연스럽게 지교회가 없는 곳을 찾게 되었어요. 대구 산성교회로 멀리서 오는 분들 가운데 안동 분도 있었어요. 안동(安東)은 대구에서 100㎞, 충주에서 100㎞, 강원도에서도 그렇고. 지교회가 없으면서 지교회로부터의 거리가 일정한 곳이더라고요. 대구 성도님들이 십시일반 뜻을 모았습니다. 교회 차원의 지원이 아닌 성도들의 교회 개척 의지로 이 안동 시온산성교회가 세워졌습니다. 

고향이 전라도인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경상도에서 사는 기간이 훨씬 많게 되었군요.

원로목사님이 “하나님 나라에 지방이 어딨냐”고 하셨지요. 전라도 이리(현 익산) 출신이지만 대구 와서도 당당하게 출신을 밝혔습니다.

개척 자체가 여러 면에서 모험인 것은 분명하지 않습니까.

교회로나 개인적으로나 부족한 것들은 다 채워졌고, 지금까지 마음에 부족함을 느끼지 않고 살았어요. 아예 없으니까 뭔가 가질 생각조차 하지 않아서 그런 건지, 마음이 편했어요. 은혜가 붙들어 주니까 마음에 짜증이 안 났던 것 같아요. 교회 운영도 원로목사님의 방식을 그대로 적용했어요. 예산 편성 같은 것도 없었지만 한 번도 빚이 없었어요. 주시는 대로 쓰고 급한 일 생기면 헌금을 모았어요. 원로목사님 안 계신 상황에서 여러 사람이 지혜를 모아야 하다 보니 교회 내 법과 규정이 많아지는 것은 피하기 어려운 일이긴 하지만, 은혜로 하지 않고 법(法), 즉 의문(儀文)으로만 하면 폐단이 나오기 쉽습니다. 언젠가 “영이 타락해서 생각이 나오고, 생각이 타락해서 말이 나오고, 말이 타락해서 글이 나온다”고 말씀하신 게 기억이 나요.
하나님 약속이 있으니, 바꿔집니다. 이 모든 것이 과정입니다. 반드시 약속대로 이루어집니다.

글_안동=이지운 기자

*2020년 11월호

원문 보기 ›

댓글 0
사진 및 파일 첨부

여기에 파일을 끌어 놓거나 왼쪽의 버튼을 클릭하세요.

파일 용량 제한 : 0MB (허용 확장자 : *.*)

0개 첨부 됨 ( / )
글쓰기
번호 제목 작성일
2970 영적인 지도자의 규칙 – 고린도전서 4:1-2, 로마서 15:1-2 2026.09.22
2969 ‘은혜 언약의 표징, 내가 너희 중에 거하여 너희 하나님이 되리라’ – 2026 여주 목회자 구속사 대성회 2026.09.22
2968 “한 사람 뒤에 백 명, 천 명, 한 나라가 서 있어요” 다시 펼친 영어책, 열방을 맞이하는 인사가 되다 2026.09.22
2967 ‘이 연합, 얼마나 아름다운가!’ – 2대 교구 남녀선교회 연합 구갓탤 뒷얘기 2026.09.22
2966 “40년의 은혜, 새로운 도약” 40년의 역사와 다음 세대를 향한 새로운 출발 2026.09.22
2965 기쁜 마음으로 잔치를 합시다 – 요한복음 4:24-36 2026.09.22
2964 영적인 지도자의 규칙 – 고린도전서 4:1-2, 로마서 15:1-2 2026.09.22
2963 ‘은혜 언약의 표징, 내가 너희 중에 거하여 너희 하나님이 되리라’ – 2026 여주 목회자 구속사 대성회 2026.09.22
2962 “한 사람 뒤에 백 명, 천 명, 한 나라가 서 있어요” 다시 펼친 영어책, 열방을 맞이하는 인사가 되다 2026.09.22
2961 ‘이 연합, 얼마나 아름다운가!’ – 2대 교구 남녀선교회 연합 구갓탤 뒷얘기 2026.09.22
2960 “40년의 은혜, 새로운 도약” 40년의 역사와 다음 세대를 향한 새로운 출발 2026.09.22
2959 기쁜 마음으로 잔치를 합시다 – 요한복음 4:24-36 2026.09.22
2958 마라에 서 있는 사람에게, 엘림은 보이지 않는다. 이집트 구속사 세미나 참관기(1) 2026.09.22
2957 누구라도 쉬기 원하는 시간, 고된 봉사를 자원한 평강의 어른들 남선교회 ‘오직봉사팀’ 토요 봉사 체험기 2026.09.22
2956 추석에 관한 잔소리, 금(金)소리 2026.09.22
2955 The Rules for Spiritual Leaders – 1 Corinthians 4:1-2; Romans 15:1-2 2026.09.22
2954 Foreword 2026.09.22
2953 참된 광복 ‘나’로부터의 개혁이 있어야 2026.09.01
2952 ‘열방을 향하여 구속 경륜의 깃발을 높이 들고, 의와 영광의 빛을 발하자’ 2026 하계 대성회 2026.09.01
2951 성막 화첩의 인기에 힘입어 번역 출간된「신묘한 영광의 비밀, 성막과 언약궤」 구속사 시리즈 제9권 영문판·일어판 출판 감사예배 2026.09.01
1 2 3 4 5 6 7 8 9 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