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왜 수數에 집중하는가 (참평안 40주년, 300호 기념 칼럼)
우리는 왜
수數에 집중하는가
모든 것이 불확실한 코로나 시대에 ‘수학 열풍’이 분다고 합니다. 수학 관련 대중 서적이 쏟아지고, 수학 웹툰과 수학 모임도 인기라고 합니다. ‘수포자(수학 포기자)들이 마지막으로 선택하는 책’으로 불리는 <수학의 쓸모>는 베스트셀러가 됐습니다. 불확실성의 시대에 ‘정답을 찾는 학문’이라는 점이 매력이라는 것입니다.
저도 학창 시절 수포자였습니다. 수학을 왜 배우는지 알 수가 없었습니다. 그런데 대학 입시 후 영영 이별일 줄 알았던 ‘수(數)’가 2007년 구속사 시리즈 출간 후 인생에 쏟아져 들어오기 시작했습니다. 처음엔 대략 이해만 하면 되려니 했는데, 아니었습니다. 족보, 연대, 대수(代數), 반열, 규격, 치수까지… 구속사는 수의 연속이었습니다. 절정은 구속사 11권上입니다. 에스겔 성전의 원리를 구성하는 7, 8, 10, 17, 25, 42, 50 등의 숫자를 이해하지 못하면 하나님의 구속(救贖) 섭리를 깨닫지 못한다는 것을 인정할 수밖에 없습니다. 지난 50여 년의 내 인생은 하나님이 계획하신 숫자들로 점철돼 있다는 것도 비로소 깨닫게 됐습니다.
플라톤은 “수학은 세계를 이해하고, 기록하는 최적의 언어”라고 했습니다. 현실 세계의 불완전한 사고로는 우주 만물의 절대적 진리인 ‘이데아’를 도저히 이해할 수 없지만, 정밀하고 오차가 없는 수학적 법칙을 통해서는 도달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절대적 진리’가 존재하고, ‘완전무결한 수학적 법칙’을 통해 그 진리에 도달할 수 있다는 플라톤 철학은 이후 서양 철학의 기본 토대가 됐습니다. 휘선 박윤식 목사님은 “성경의 숫자는 우연히 된 것이 아니다. 다 뜻이 있고, 기록된 그대로 하나하나 다 이루어진다.”(2003.11.12. 설교) 라고 하셨습니다.
‘참평안’ 창간 40주년입니다. 40은 천국을 상징하는 가나안에 들어가기 위해 성도가 걷는 광야 노정의 햇수입니다. 300은 에녹이 므두셀라를 낳고 변화의 반열에 들기까지 하나님과 동행한 기간입니다. 죄악의 세력을 상징하는 미디안의 대군을 격파한 기드온 신앙 용사의 수도 300입니다. 광야 같은 이 땅에서 40년간 구속사를 기록해 온 300권의 참평안이 저마다 기드온의 용사들처럼 크게 소리치고 있다고(삿 7:20) 믿습니다. 40과 300을 곱하면 12,000이더군요. 구속사 완성을 상징하는 ‘새 예루살렘 성’의 길이와 너비와 높이가 12,000스다디온이기도 합니다(계 21:16). 새 예루살렘 성과 에스겔 성전에 입성해 그리운 얼굴들 모두 만나 참평안을 누릴 그날까지 모두 강건하시고 승리하십시오.
호준석 참평안 편집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