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리아의 한 산’이 여호와이레가 되기까지
‘모리아의 한 산’이
여호와이레가 되기까지
모리아의 한 산의 역사
① 멜기세덱이 왕으로 통치했던 살렘이다(창 14:18, 히 7:1).
② 아브라함이 이삭을 번제로 바쳤던 ‘여호와이레’이다(창 22:2, 14).
③ 사사(士師) 시대에는 ‘밟힌 곳, 타작마당’이란 뜻의 ‘여부스 땅’(삿 19:10)으로 유다 지파가 한때 정복하여 베냐민 지파에게 주었으나 베냐민 자손은 여부스 사람을 쫓아내지 못하였다(수 18:28, 삿 1:8, 21).
④ 다윗이 통일왕국의 왕이 되어 여부스 땅을 정복하고 다윗 성으로 개명하였다(삼하 5:6-10).
⑤ 다윗에게 하나님의 사자가 나타나 회개하고 번제를 드린 후 염병이 그친 곳의 여부스 사람 오르난(아라우나)의 타작마당이다(삼하 24:16, 대상 21:15).
⑥ 솔로몬이 다윗이 정한 곳에 성전을 건축한 후 ‘시온’(요새, 성채, 안전한 곳)으로 불렀다
(대하 3:1, 5:2, 왕상 8:1).
⑦ 언약궤를 성전으로 옮긴 후 예루살렘으로 그 의미가 확장되어 불리게 되었다. ‘예루’는 ‘여호와이레’, ‘살렘’은 ‘평강’을 뜻하므로 ‘여호와께서 준비하신 평강의 성읍’이며, ‘우리 마음 가운데 말씀이 준비되었느냐’는 의미로 해석할 수 있다
⑧ 예루살렘은 종말적으로 새 하늘과 새 땅에서 이루어지는 ‘새 예루살렘’을 가리킨다(히 12:22).
평강의 왕 멜기세덱을 만난 아브라함(창 14:18-20, 히 7:1-3)
① 아브라함은 평강의 왕 멜기세덱을 만나 십일조를 드렸다(창 14:20). 아브라함 84세인 주전 2082년, 아브라함이 318명을 데리고 싯딤 전투에서 이기고 돌아올 때 멜기세덱을 만났다. 그는 살렘 왕, 평강의 왕이요,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의 제사장이다(히 7:1-3). 멜기세덱은 메시아의 삼중직(三重職) 가운데 ‘제사장’과 ‘왕’의 사역을 보여준다(히 5:6, 6:20, 사 9:6).
② 멜기세덱은 떡과 포도주를 가지고 아브라함을 축복하였다. 이는 예수님이 아브라함의 후손으로 오실 것을 예표(豫表) 하는 사건으로, 떡과 포도주는 예수님이 인류를 위하여 희생 제물로 드리신 예수님의 살과 피를 암시하였다(요 6:48-58).
③ ‘산 자’인 멜기세덱이 ‘죽은 자’인 아브라함을 떡과 포도주로 축복한 이유는 무엇인가? 산 자인 멜기세덱의 축복을 받음으로써 아브라함은 산 자의 조상, 믿음의 조상이 된 것이다(히 7:8, 마 22:31-32, 눅 20:37-38). 산 자의 맥이 아브라함으로부터 시작되는 원인이, 산 자의 멜기세덱이 축복한 데 있다. 멜기세덱의 축복은 예수님의 피와 살(포도주와 떡)에 의한 부활과 생령의 축복이다.
④ 여기 ‘샤웨 골짜기’는 ‘왕곡(王谷)’, 곧 모세 당시에는 ‘왕의 골짜기’로 불렸는데 살렘 왕 멜기세덱의 왕궁이 있었던 부근으로 멜기세덱과 아브라함이 만났던 장소로 추측해 볼 수 있다.
아브라함에게 지시하신 모리아 땅의 한 산(창 22:2)
① ‘모리아’는 ‘선택, 작정’이란 뜻의 히브리어 ‘모리에’와 여호와의 축약형인 ‘야’가 합성되어 ‘여호와께서 친히 선별해 주셨다’, 또는 ‘여호와께서 보이심, 계시’라는 의미로 해석하기도 한다.
② 지시하는 ‘한 산’은 원어에는 정관사 ‘하’가 붙어 직역하면 “그 산들 가운데 하나(또는 첫째)의 산”이란 뜻이 된다. 그러나 이후 본문에서 아브라함에게 어떤 방법으로 하나님이 지시하셨는지 나타나지 않는다. 만일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의 제사장으로 알려진 멜기세덱과의 만남을 연관 지어 생각해 본다면 ‘샤웨 골짜기 곧 왕곡’에서 올라가면 모리아 땅이고 거기 첫째 산봉우리로 본다면 현존하는 예루살렘의 성전산(聖殿山)이 된다. 그렇다면 그곳은 아브라함과 멜기세덱의 만남에서 비롯된 장소요, 이미 아브라함이 알고 있는 장소였을지 모른다. 생령인 아담(창 2:7)이 타락하여 죽은 자가 되었으나, 다시 20대(代) 만에 아브라함이 멜기세덱을 만남으로 산 자의 축복을 받은 것이다(창 22:2, 14).
③ 아브라함은 멜기세덱의 신앙(떡과 포도주, 곧 말씀)을 전수받은 것이다(창 14:19,22). 기도는 신앙고백을 의미하는 것으로 기도의 일치는 신앙의 일치이다. ‘천지의 주재(主宰)시요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이라고 아브라함이 고백한 것은 멜기세덱이 제사장으로서 섬기는 그 하나님을 섬긴다는 자기 신앙고백이다. 예수님께서 멜기세덱의 반차(班次)를 좇아오신 흔적을 ‘천지의 주재이신 아버지’라는 표현에서도 찾을 수 있다(마 11:25).
④ 이후에 하나님께서는 횃불 언약을 아브라함과 맺으셨다.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부른 호칭을 통해, 그의 신앙이 점점 성장해 갔음을 알 수 있다.
가. 처음 메소포타미아에서 아브라함에게 나타나신 영광의 하나님(행 7:2)
나. 말씀(언약) 하시는 하나님(창 12:1-4, 13:15-18)
다.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창 14:18)
라. 천지의 주재시요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창 14:19, 22)
마. 방패와 상급이 되시는 하나님(창 15:1)
바. 전능의 하나님(창 17:1)
사. 심판과 긍휼의 하나님(창 18:23)
아. 영생하시는 하나님(창 21:33)
⑤ 영생하시는 하나님을 깨달았을 때, 비로소 믿음의 시험이 온다. 복은 어떻게 믿고 어떻게 순종하는지 시험하신 후 주시는 것이다(창 22:1, 신 8:2, 대하 32:31, 눅 2:35). 오직 하나님의 말씀대로 순종하는 것이 시험을 통과하는 지름길이다. 영생하시는 하나님이 언약의 후사로 주신 독자 이삭을 번제로 드려도 다시 살리실 영생을 주시는 하나님이라는 사실을 믿고 바친 것이다(히 11:19).
⑥ 이때 아브라함과 이삭의 신앙도 하나가 되었다. 함께 산에서 내려온 아브라함은 브엘세바로 돌아왔고(창 22:19), 이삭은 브엘 라헤로이로 가서 머물렀다(창 24:62). 곧 아브라함의 신앙이 순간적으로 이삭에게 전수되어 산 자의 하나님을 만났고, 이때부터 이삭은 아버지 아브라함을 남방 부족들로부터 지키는 첨병이 되었다. ⑦ 아브라함의 믿음과 이삭의 순종, 다윗의 회개와 솔로몬의 순종이 터가 되어 약 1,000년(주전 2082년 – 959년 = 1123년) 만에 솔로몬 성전이 세워진 모리아의 한 산, 여호와이레는 산 자의 하나님을 만나는 신앙 전수의 산실이다.
⑧ 따라서 ‘모리아의 한 산’은 ‘여호와이레’가 되어 다윗의 ‘오르난(아라우나)의 타작마당’으로 이어지고 ‘시온성’, ‘예루살렘’이 되었다.
아브라함이 산 자로서 언약의 최종 확증을 받은 여호와이레(창 22:1-18)
① 이때는 아브라함이 125-136세 사이, 이삭은 25-36세이며, 횃불 언약 41-52년째로 아브라함이 이삭을 바친 사건은 이삭의 나이 37세 이전에 이루어진 것이다. 그것은 창세기 22장 사건 후, 23:1에서 사라가 127세를 향수(享壽) 하고 죽었는데, 이때 이삭의 나이가 37세였기 때문이다.
② 번제에 쓸 나무를 지고 모리아산으로 올라가 제물이 되기까지 순종한 이삭은 예수님이 십자가를 걸머지고 골고다 언덕에서 온 인류의 제물, 대속물(代贖物)로 순종하실 예표이다.
③ ‘여호와이레’라는 고백은 독자 이삭을 모리아의 한 산에서 드림으로 아브라함이 언약을 확증 받은 사건을 의미한다. 독생자이신 예수님을 십자가에 달리게 하심으로 죄인을 향한 하나님의 사랑을 확증하심과 같이 아브라함의 하나님을 향한 사랑이 확증된 것이다(롬 5:8).
④ 하나님을 지극히 사랑한 아브라함의 믿음의 의가 하나님께로 인정받고(창 22:12) 큰 복의 축복을 주셨다. 여호와이레의 축복은 큰 복의 축복이다(창 22:17-18).
⑤ 하나님 아버지의 마음을 품은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벗, 친구가 되었다(대하 20:7, 사 41:8, 약 2:23).
⑥ 아브라함 믿음의 시작과 끝은 멜기세덱의 반차(대제사장, 평강의 왕, 사 9:6, 히 7:1-3)를 좇아 이루어진다. 아담의 자손 가운데 아브라함을 믿음의 조상으로 세우신 하나님의 구속(救贖) 경륜은 종말에 나사로를 품에 안은 아브라함으로 끝이 난다. 아브라함의 믿음 위에 예수님께서 오셨던 것처럼, 세상 끝날 재림의 역사도 아브라함의 믿음의 결과요, 열매로 끝이 난다. 결국 아브라함과 똑같은 믿음은 곧 하나님 아버지의 형상이요 회복과 구원의 모습이다(갈 3:9). 아브라함 신앙의 푯대는 바로 멜기세덱이었던 것이다(1982.11.9. 휘선 박윤식 목사 설교 중에서).
여호와이레의 종말적 구속 경륜
종말 구원의 두 가지 길, 부활과 변화의 축복은 멜기세덱의 반차를 좇아 아브라함의 믿음으로 시작되었고 끝이 난다. 이 모든 것이 하나님이 준비해 주시는 여호와이레의 큰 복이며 불가항력적인 은혜이다(벧전 1:13). 하나님을 경외함으로 큰 믿음, 큰 순종, 큰 기쁨으로 늘 겸손히 변화 영생, 구원의 역사를 사모하며 오늘에 이루어가야 할 신앙이다.
미가 6:8 사람아 주께서 선한 것이 무엇임을 네게 보이셨나니 여호와께서 네게 구하시는 것이 오직 공의를 행하며 인자를 사랑하며 겸손히 네 하나님과 함께 행하는 것이 아니냐
요한복음 8:29 나를 보내신 이가 나와 함께 하시도다. 내가 항상 그의 기뻐하시는 일을 행하므로 나를 혼자 두지 아니하셨느니라
베드로전서 1:17 외모로 보시지 않고 각 사람의 행위대로 판단하시는 자를 너희가 아버지라 부른즉 너희의 나그네로 있을 때를 두려움으로 지내라
“준비하라는 말은 물론 양식, 교통비, 옷, 신발 등도 준비해야 되겠지만 ‘영적으로 나를 맞이할 때를 너희들이 준비해야 되겠다’라는 뜻입니다. 그래서 ‘주님의 재림은 신부의 때더라’하셨습니다. 신랑은 장가가려고 하는데 신부가 꾀죄죄하고 머리도 자르지 않고 옷도 빨아 입지 않았으면 결혼식을 할 수 있겠습니까? 성도들이 때를 아는 지혜가 있어야 합니다. 우리가 신부로 준비돼야 신랑이 오실 줄로 믿습니다. 신앙생활도 옛날 방식대로는 안됩니다. 때를 알고 준비하여야 되기 때문이죠. 이제는 어느 때보다 깨어 있을 때입니다. 신앙에 완전 무장을 갖추어야 할 때인 것을 믿고 ① 은혜 충만 ② 말씀 충만 ③ 성령 충만 ④ 준비 충만 ⑤ 지혜 충만이 이 시간 강하게 임하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마귀 사단의 역사가 강한 때인고로 ‘준비하라’고 하셨던 것입니다(눅 22:31). (1985. 8. 7. “때를 아는 지혜” 말씀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