점점 더 흉용할 때
점점 더 흉용할 때
요나 1:11-16
요나가 다시스로 가기 위해 배를 탔는데 갑자기 큰 폭풍이 일어났습니다. 요나는 이런 일을 알지도 못하고 배 밑창에서 깊이 잠들었습니다. 선원들이 폭풍의 원인이 누구인지 제비를 뽑자 하였고, 요나가 뽑혔습니다. 당시의 상황을 성경은 ‘흉용(洶湧)’이라는 단어로 표현하고 있습니다(욘 1:11, 13). 바다의 물결이 점점 더 거세지고 집채만 한 파도가 덮쳐 배가 깨질 정도라는 것입니다. 코로나19 바이러스가 점점 거세지는 오늘날의 우리 상황을 표현하고 있는 것만 같습니다. 이러한 때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할까요? 요나와 선원들은 어떻게 대처했을까요?
바다가 점점 흉용해지는 원인이 무엇입니까?
‘흉용’은 히브리어 ‘사아르’로 ‘폭풍이 치다’, ‘몹시 화가 나다’라는 뜻입니다. 폭풍의 이면에 하나님께서 진노하고 계심을 알 수 있습니다. 왜 하나님께서 화가 나셨습니까?
요나가 하나님의 낯을 피하였기 때문입니다.
요나가 하나님의 낯을 피하였다고 두 번이나 말씀하고 있습니다(욘 1:3,10). 인간은 범죄 한 후 하나님의 낯을 떠났습니다. 에덴동산에서 하나님의 명령을 어기고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실과를 따먹은 아담은 하나님의 낯을 피해 동산 나무 사이에 숨었습니다(창 3:8). 코로나 사태 속에 점점 예배드리기를 싫어하고 이제는 온라인 예배드리는 것도 귀찮아 아예 하나님 앞에 나오지 않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낯을 피하여 도망가는 것입니다. 예배는 하나님의 얼굴을 뵙는 시간입니다. 예배 자리에서 떠나는 것은 하나님의 얼굴을 피하는 것입니다.
요나가 자기 생각을 고집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니느웨로 가서 하나님 말씀을 전하라 명령하셨습니다(욘 1:2). 그러나 요나는 니느웨의 반대편인 다시스로 도망가기 위하여 배를 탔던 것입니다. 니느웨는 요나의 조국인 이스라엘의 원수 앗수르의 수도였습니다. 니느웨가 멸망당하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한 요나는 가서 회개의 말씀을 전하여 살리라고 하시니 갈 수 없었던 것입니다. 그는 선민의식으로 가득 차 ‘유대인만의 하나님’이라 생각했습니다. 사람의 생각은 우리를 멸망으로 이끌어 갑니다. “역사를 볼 때 인류는 인간의 생각 때문에 망한다”고 하신 휘선 박윤식 목사님의 말씀이 생각납니다. 육신의 생각은 사망이요, 하나님과 원수입니다. 육신에 있는 자들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못 합니다(롬 8:6-8). 그러나 에녹은 하나님과 300년 동안 동행하면서 하나님을 기쁘시게 했습니다(히 11:5). 세계 최강대국이라는 미국이 코로나19 앞에 속수무책인 것이 인류의 현실입니다. 오늘 저와 여러분도 세상의 거센 파도 앞에 속수무책으로 살아가고 있지는 않습니까? 하나님의 낯을 피하고, 인간의 생각을 붙잡고 있기 때문입니다. 낯을 하나님을 향하여 돌이키고, 인간의 생각을 다 포기하고 버리시기 바랍니다. 그럴 때 파도가 순식간에 잠잠해지듯 인생의 고난의 파도가 잠잠해질 것입니다.
바다가 ‘점점 더’ 흉용해지는 원인이 무엇입니까?
요나 1:13 하반절에는 ‘더 흉용하므로’라고 말씀하십니다. ‘더’라는 강조적인 의미가 들어있습니다. 배가 완전히 침몰하기 직전에 왔다는 것입니다. 현대인의 성경에서는 ‘점점 더 사나운 파도가 밀어 닥쳤다’고 번역하고 있습니다.
인간의 힘으로 해결하려 할 때 바다는 더 흉용해집니다.
요나는 바다의 흉용해짐이 자기 때문이라고 선원들에게 고백하고 자신을 물에 던지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선원들은 인간적인 방법을 찾았습니다. 힘써 노를 저어 배를 육지로 돌려보려 했습니다. 하나님 대신 인간적 방법만 찾는다면 모든 노력이 허사일 것입니다. 코로나19 백신 개발에 혼신의 힘을 기울이되, 먼저 하나님 앞에 회개하고 하나님께 돌아가야 하나님의 방법으로 백신도 개발될 것입니다. 벌써 6배나 강한 변종이 생겨났고, 백신을 개발해도 또 다른 변종이 나올 수 있다고 하지 않습니까. 스가랴 4:6에 사람의 힘으로 안되고 능력으로도 되지 않지만 오직 하나님의 성령으로만 된다고 말씀하십니다. 최근 ‘포괄적 차별 금지 법안’이 이슈가 되고 있습니다. ‘차별 금지’라는 말을 내세워 동성애를 조장한다면 하나님의 말씀에 정면으로 도전하는 것입니다. 동성애를 법적으로 보호해 조장하면 건전한 가정이 다 파괴됩니다. 나라의 도덕이 혼란해지고 망하게 됩니다. 로마서 1:26-27에 하나님께서는 남자와 여자가 결혼하여 살도록 순리를 정해 두셨습니다. 이에 반하는 동성애는 하나님 앞에 엄청난 범죄이기 때문에 반드시 심판하신다고 말씀하십니다. 우리는 동성애자들을 회개시키고 복음을 전할 사명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을 교회가 받아들이고 나라가 받아들여서는 안 됩니다. 우리는 인간적인 방법을 버리고 하나님 방법을 따라가야 합니다. 그것이 인류가 사는 길이요, 대한민국이 사는 길입니다.
하나님께 부르짖는 기도만이 바다를 잠잠케 하는 비결입니다.
인간적 노력이 아무 소용이 없음을 깨달은 선원들이 하나님을 찾기 시작했습니다(욘 1:14). 블레셋 군대가 쳐들어 왔을 때 사무엘 선지자가 하나님께 부르짖고 기도하니 하나님께서 큰 우레를 발하사 블레셋 군대를 물리치셨습니다(삼상 7:9). 곤고한 자가 부르짖으매 여호와께서 들으시고 환난에서 구원하십니다(시 34:6, 55:16). 우리 삶이 점점 더 흉용해지고 있다면 하나님 앞에 엎드려 부르짖고 기도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들으시고 우리 가정을 살리고 인류를 살려주실 줄 믿습니다.
모든 문제를 해결하는 길은 요나를 던지는 것입니다.
결국 배에 있던 사람들이 하나님께 기도한 뒤 요나를 바다에 던지자마자 바다가 잠잠해졌습니다(욘 1:15). 요나를 던짐은 무슨 뜻입니까?
인간의 뜻을 포기하고 하나님의 뜻을 붙잡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명령하신 정반대 편으로 도망가려 했던 요나가 결국 바다에 던져졌습니다. 아무리 인간이 하나님의 뜻을 가로막고 자기가 옳다고 생각하는 대로 하려 해도 결국은 하나님의 뜻대로 이뤄집니다. 예수님께서는 겟세마네 동산에서 기도하실 때 아버지 뜻을 붙잡고 기도하셨습니다(눅 22:42).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도 지금까지 내 생각, 내 뜻, 내 고집으로 가득 찼다면 그러한 요나를 던짐으로 말미암아 우리의 인생 가운데 하나님의 뜻이 성취되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모든 것을 하나님께 맡기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요나가 바다에 던져지자마자 ‘이미’ 큰 물고기를 예비하셔서 요나를 삼키게 하시고, 다시 육지에 토하게 하셨습니다(욘 1:17, 2:10). 요나가 니느웨에 가서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하니 놀라운 일이 일어났습니다. 하나님의 원수였던 니느웨 사람들이 금식하며 굵은 베옷을 입고 왕까지도 하나님 앞에 회개했습니다. 하나님이 그 모습을 보고 마음을 돌이키셨습니다(욘 3:10). 니느웨 백성들도 회개할 때 하나님께서 용서해 주셨는데 하나님의 백성인 우리가 회개하면 용서 안 해주시겠습니까? 사도행전 3:19에 ‘회개하면 유쾌케 되는 날이 주 앞으로부터 이른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더 흉용해지는 이때에 살아 남을 수 있는 길은 인간의 생각으로 가득차있는 요나, 자꾸만 하나님으로부터 멀어지려고 하는 요나를 다 던지는 것입니다. 이제는 다 하나님께서 주장해 달라고 요청해야 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점점 더 흉용해지는 이 때에 인간의 생각으로 가득 찬 요나를 하나님 앞에 던지고 내 모든 인생을 살아 계신 하나님 아버지께 맡김으로 아버지께서 도와 주셔서 우리 가정, 대한민국, 전 인류의 모든 문제가 완전히 해결되는 놀라운 역사가 일어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2020.7.12. 주일 1,2부 통합 예배 이승현 담임목사 설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