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말 성도에게 주시는 여호와 삼마; 여호와께서 거기 계시다
종말 성도에게 주시는 여호와 삼마
여호와께서 거기 계시다
겔 40:1-4, 43:10-11, 48:35
에스겔 성전은 이 땅에 지어진 적이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에스겔 선지자에게 “장차 될 일을 보여 주겠다”고 하시며 엄청난 성전의 환상을 보여 주신 것입니다. 그 크기가 월드컵 경기장의 10배입니다. 첨단 과학문명을 자랑하는 오늘날, 최강대국인 미국에도 월드컵 경기장 10배 크기가 되는 집이 있습니까. 그러니 사람들이 믿으려 하지 않았습니다. 저도 설교 시작한지 47년 만에 처음으로 에스겔 성전을 설교하는 것입니다. 제가 목회 초기 지리산에서 3년 6개월 7일 동안 산상기도를 드릴 때 성령의 조명을 통해 마지막에 깨달은 말씀이 바로 이 말씀입니다. 에스겔 이후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신학자들이 이 땅에 왔다 갔지만 이 말씀을 해명하지 못했습니다. 에스겔 성전의 계시가 기록된 에스겔서 40-48장을 보면 머리가 복잡해집니다.
하나님은 종말 성도에게 여호와 삼마의 축복을 주십니다. 종말 성도는 끝까지 견디는 자입니다. “때가 언제 이릅니까?” 라고 제자들이 묻자 예수님은 “끝까지 견디는 자가 구원을 얻는다”고 하셨습니다. 여러분이 계신 곳에는 곧하나님이 계십니다. 집에 있든지, 등산 갔든지, 강가에 나갔든지 여하튼 여러분 계신 곳에는 ‘여호와 삼마’, 하나님이 거기 계시다는 것을 꼭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성경은 하나님이 인간을 창조하시고 그 인간을 영원한 천국에 인도하기 위해서 하나님이 행하신 일을 역사적으로 기록해 놓으신 책입니다.
곧 성경은 인류를 구원하기 위한 구속사 (救贖史)입니다.
타락한 인간을 원상복귀 시키시기 위한 것입니다. 더 이상의 말이 필요 없습니다. 인간은 죄 때문에 하나님의 형상을 잊어버렸습니다. 다시 하나님 형상을 찾는 구속사를 쓴 것이 성경입니다. 세계사는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주전(主前)과 주후(主後)로 나뉘어졌습니다. 예수님은 세계사의 분기점이고, 동시에 구속사의 분수령입니다. 그러므로 성경은 구속사적 관점이 아니고서는 절대 풀리지 않습니다. 에스겔 성전도 구속사적 관점에서 봐야 풀어집니다. 인간의 역사로 보면 맞지도 않습니다. 세계 각국에 월드컵 경기장 10배 되는 집이 어디 있습니까. 그래서 에스겔 40-48장은 요한계시록 5장 말씀처럼 ‘감춰놓은 말씀’입니다. 인봉(印封), 즉 보물을 넣고 잠근 뒤에 누가 건드릴까 봐 또 도장을 찍습니다. 그렇게 인봉한 책입니다.
신구약 성경을 깨닫는 지혜는 첫째, 정직한 마음입니다. 세상 공부를 한 것이 없고, 학교를 졸업하지 않았어도 하나님이 붙잡아 주셔서 기도하게 하십니다. 또 회개시킵니다. 하나님의 영이 역사하는 것입니다. 정직한 영을 받으면 세상에서 바보 취급 받을지 몰라도, 성경은 미련한 자를 택하사 지혜 있는 자들을 부끄럽게 하신다고 하셨습니다(고전 1:27). 마른 막대기만도 못한 것도 하나님이 들어서 쓰시면 마른 막대기가 살아납니다. 아론의 싹난 지팡이를 보십시오. 지혜는 다른 것이 아닙니다. 죄 짓지 않는 것이 지혜입니다. 죄를 지으면 은총, 지혜, 명철, 총명, 건강까지 모두 잃어버리게 됩니다 (렘 23:18, 시 107:43, 호 14:9).
우리는 모두 죄가 많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을 믿으면 예수님이 그 죄를 책임지고 가져가시고 예수님의 의를 주시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오신 목적을 모르는 사람들은 “저 사람이 오만 나쁜 짓 한 것을 우리가 다 아는데, 하나님이 왜 죄를 사해 주시나?”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누구든 예수님을 믿으면 그 죄를 기억도 하지 않으시겠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말씀을 깨닫게 해 주시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속한 자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다고 했습니다(요 8:47). 여러분이 분명히 하나님께 속한 자라면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깨닫는 복이 있다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구속 (救贖) 진리입니다.
하나님의 구속 진리는 성전의 식양(式樣), 즉 설계도와 성전의 역사(歷史)를 통해서 풍성하게 나타나고 있습니다.
최초의 성전은 에덴동산입니다. 아담이 죄짓기 전 하나님 앞에 예배드리고 감사하고 찬양했던 그곳이 바로 교회입니다(창 2:8). 그 후 노아가 지은 방주(창 6:14-16), 모세 때 지은 성막(聖幕)(출 25-31:11), 솔로몬 성전(왕상 6-7:51), 스룹바벨 성전(스 6:13)이 모두 하나님의 계시에 의해 지어진 성전입니다. 인간이 고안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이렇게 이렇게 지으라, 높이와 너비와 길이는 얼마로 하라고 지시하신 것입니다. 그곳에서 예배가 계속됐습니다.
성전의 이상을 보여 주신 궁극적인 목적은 무엇입니까
하나님은 에스겔 선지자에게 거룩한 성전의 제도와 설계도, 출입하는 방법, 성전에서 이뤄질 규례와 법도를 알려 주셨습니다. 그러면서 “에스겔아, 이스라엘 백성이 나를 믿지도 않고 완고하다. 내가 마지막에 이뤄질 일들을 네게 보여줄 테니 너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회개시켜라. 백성들이 이것을 보고 과거에 알게 모르게 죄지은 것을 회개만 하면 된다. 그러면 너에게 보여줄 이상적인 성전이 반드시 이뤄진다. 이스라엘 백성이 복을 누린다. 그래서 최종적으로 ‘여호와 삼마’, 즉 어디에 있든지 하나님이 거기 계신다는 복을 받아 소원대로 이뤄지게 된다.”고 가르쳐 주신 것입니다 (겔 43:10-11).
에스겔 43:10-11 “인자야 너는 이 전을 이스라엘 족속에게 보여서 그들로 자기의 죄악을 부끄러워하고 그 형상을 측량하게 하라. 만일 그들이 자기의 행한 모든 일을 부끄러워하거든 너는 이 전의 제도와 식양과 그 출입하는 곳과 그 모든 형상을 보이며 또 그 모든 규례와 그 모든 법도와 그 모든 율례를 알게 하고그 목전에 그것을 써서 그들로 그 모든 법도와 그 모든 규례를 지켜 행하게 하라”
성전의 이상을 보여준 때는 언제입니까
이스라엘 백성들이 바벨론 포로 생활을 시작(BC 605)한 지 33년째인 BC 573년입니다. 하나님의 법도를 지키지 않고 그 말씀을 지키지 않다가 바벨론 느부갓네살 왕에게 잡혀온지 33년이 흘렀습니다. 소망이 없습니다. 밤낮 매를 맞고 끼니도 제대로 먹지 못합니다. 부부 지간에도 옆에 앉아 마음 놓고 얘기하지 못하고, 아이를 낳으면 발길로 차이는 폭정에 시달리고 있었습니다. 그 상황을 한번 생각해 보십시오. 성경에 진 자는 이긴 자의 종이라고 하셨습니다(벧후 2:19). 그런 상황에 있던 에스겔 선지자에게 민족 부활의 소망을 계시로 보여주신 것입니다. 너희들이 고토(故土)로 돌아갈 날이 있다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얼마나 좋습니까. 수십만 명이 포로 생활 중에 이 희소식이 들릴 때 밥 안 먹어도 배가 부르고 춤을 출 정도 였습니다. 에스겔 40-48장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에스겔이 성전을 계시받은 때는 BC 573년 정월 10일입니다. 에스겔이 포로로 잡혀온 지는 25년, 예루살렘 성이 완전히 함락된 지는 14년 된 때입니다. 에스겔 선지자는 제2차 포로(BC 597) 때 잡혀 왔습니다(왕하 24:10-17, 겔 1:1-2). 이에 앞서 제1차 포로(BC 605)로 잡혀 왔던 사람들 처지에서는 33년째 포로 생활 중일 때입니다(왕하 24:1, 대하 36:6, 단 1:3). 고향으로 돌아갈 소망의 등불이 꺼지고 돌아갈 생각조차 하지 않을 때입니다.
에스겔에게 계시로 보여주신 성전이 세워질 장소는 어디입니까?
첫째, 그곳은 지극히 높은 산입니다. 하나님께서 에스겔 선지자의 영을 이스라엘의 가장 높은 산으로 데려가셨습니다. 가장 높은 산, 히브리어로 ‘하르 가보아흐 메오트’로 ‘지극히 높은 곳’입니다(시 48:2, 사 33:5, 렘 31:12, 마 5:35, 시 91:1,9, 107:11). 가장 높으신, 즉 지존(至尊)하신 하나님께서 거기 거하시므로(시 83:18, 삼상 15:29, 시 7:7, 사 57:15) 그곳이 가장 높은 산입니다. 그곳에 하나님이 계실 성전을 지어달라고 하신 것입니다. 이 성전은 믿음 으로 짓는 것입니다. 돌과 나무조각이 아니라 믿음으로 짓는 것입니다. 성경은 이곳을 ‘큰 임금의 성’, 또 예루살렘 이라 말씀하고 있습니다. 가장 높은 산은 예수님이 임재하실 때 세워질 새 예루살렘을 가리키는 것입니다. 말일에 하나님이 임재하시는새 성전이 세상에서 가장 높은 곳이라고 이사야 선지자가 700년 전에 예언했습니다.
이사야 2:2 “말일에 여호와의 전의 산이 모든산 꼭대기에 굳게 설 것이요”
이 말씀이 이뤄지는 것입니다. 전 세계 만방이 그리로 모여듭니다. 안 모이면 죽습니다. 새 성전이 세워질 시온은 모든 땅 중에 가장 아름다운 땅입니다(겔 20:6). 빛을 발하는 곳입 니다(시 80:1, 94:1, 신 33:2). 근심 걱정이 없습니다. 이 성전에 들어갈 자격자는 날마다 하나님의 나라를 바라보는 자입니다. 살아 계시는 하나님이 계신 위를 쳐다보라고 했습니다(골 3:1, 히 12장). 새 성전에 들어갈 자격자는 땅의 지체가 아닌 하나님의 세계를 바라보고 사모하는 자입니다. 하나님께 찬양하고 기도하고, 세상 어디에 가든지 마음 속에는 하나님의 뜻을 위해 사는 자입니다.
성전에 올라가려면 가장 높은 산 꼭대기로 간 뒤 또다시 성전 바깥 문의 7계단을 올라가야 합니다(겔 40:22-26). 그리고 안뜰 문의 8계단을 올라갑니다(겔 40:31, 34, 37). 깊은 뜻이 있습니다. 여하튼 올라가야 합니다. 그런 뒤 또 성전으로 올라가려면 10계단을 올라갑니다 (겔 40:49). 그래서 성전에 도착하기까지는 총 25개의 계단을 오릅니다. 굉장합니다.
둘째, 그곳은 아주 거룩한 곳입니다. 먼지와 때가 없고 냄새가 나지 않고 죄가 침범하지 못하는 곳입니다(겔 43:12). ‘산꼭대기 지점의 주위는 지극히 거룩하다’고 하셨습니다.
세 번째, 그곳은 세상의 중앙, 중심입니다. 로마 시대에는 세계 중심이 로마이듯, 에스겔이 본 새 성전이 세상의 중앙이라는 것입니다(겔 37:26, 45:3, 48:8, 48:21)
에스겔 성전은 사방이 각각 500척, 즉 266m 입니다. 월드컵 경기장의 10배 크기입니다. 이런 에스겔 성전을 이해하는 데 가장 근본적 원리를 살펴보려고 합니다.
에스겔 성전을 쉽게 이해하는 방법이 있다면 담, 벽, 문, 방을 잘 구분하는 것입니다.
에스겔 성전 전체는 담과 문과 방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담과벽은 10개씩입니다. 문은 바깥뜰에 3개, 안뜰에 3개가 있습니다. 방은 7종류가 있습니다. 문은 하나님의 성전에 출입하는 일을 철저히 통제합니다. 방은 맡은 바 사명 완수를 위한 거룩한 장소입니다.
담은 거룩한 것과 속된 것을 완전히 구분합 니다(겔 42:20). 내가 죄를 지으면 담이 벌써 알고 못 들어가게 합니다. 몇 년 몇 월 며칠에 죄지었는지 다 보여 줍니다. 아무 소리 못하고 나와야 합니다. 모세와 아모스 선지자가 ‘담이 말한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예수님이 고난주간 첫째날 예루살렘 성에 입성할 때 “호산나” 외치는 아이들의 입을 막으라고 종교 지도자들이 요구하자 예수님께서 “아이들이 소리치지 않으면 길바닥의 돌들이 소리지를 것이다” (눅 19:40) 하시지 않았습니까. 담과 문과 방은 성전의 핵입니다. 담과 문과 방의 모든 사역은 성소와 지성소에 집중되고 있습니다. 이 성전은 일곱 태풍이 온다 해도 무너지지 않고, 대포나 미사일, 원자탄을 쏘더라도 무너지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하신 일이기 때문입니다.
‘사비브 사비브’
히브리어 ‘사비브’는 둘러싸다, 에워싸다, 주변을 빙빙 돌다, 사방에 둘려 있다. ‘포위하다, 감싸 주다’라는 뜻입니다. 하나 님을 믿는 성도는 천사가 ‘사비브 사비브’로 에워싸고 지켜 주십니다. 그러므로 걱정할 필요 없습니다. 믿기만 하면 됩니다. 믿지 못하니까 문제일 뿐입니다.
1) 에덴동산의 사비브
성경에서 이 단어가 처음 쓰인 곳은 하나님 께서 직접 창설하신 에덴동산입니다(창 2:8). 동산 전체를 윤택하게 적신 강에서 두 번 쓰입니다. 동산에서 발원한 네 강이 있는데 네강이 에덴에서부터 갈라져 나와서 네 근원이 되었습니다.
첫째 비손강, 뜻은 창일하다, 풍부하다(창 2:11)
창세기 2:11 “첫째의 이름은 비손이라 금이 있는 하윌라 온 땅에 둘렸으며(사비브)”
둘째 기혼강, 넘쳐서 터치고 나온다. (창 2:13)
창세기 2:13 “둘째 강의 이름은 기혼이라 구스온 땅에 둘렸고(사비브)”
2) 광야 생활의 사비브
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들을 황무지 같은 광야에서 보호하시기 위해서 하나님께서 그들을 빈틈없이 에워싸셨습니다.마치 대통령을 지키듯이 사방을 호위하셨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그것을 몰랐습니다. 여러분도 “나 같은게 뭐…” 하지 마십시오. 하나님의 말씀을 받고 신앙고백 했으면 하나님의 아들입니다. 아무리 초라한 집이고, 먹지 못하고, 정말 어렵게 살더라도 이 뜻을 알 때 하나님이 기뻐하십니다. 그때부터 여러분에게 하나님께서 재물을 얻는 축복을 주신다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오늘 교회에서 예배드리는 것도 하나님의 사비브입니다. 버스를 탔든, 뭘 탔든 하나님이 지켜 주셔서 여기까지 온 것입니다. 운전할 때도 “하나님, 사비브의 축복을 주신 것 감사합니다.” 하고 기도하십시오. 이렇게 믿고 사는 사람과 그렇지 못한 사람은 얼마나 큰 차이가 나겠습니까. 이런 은혜를 모르고 살면 늘 짜증이 납니다. ‘돈이 있어야 될텐데’, ‘뭘 해야 될텐데’ 하며 밤낮 근심, 걱정입니다. 이스라엘이 광야 40년 생활하는 동안 법궤가 앞서 가시면서 그들이 진칠 곳, 잠잘 곳을 모두 정해 주셨습니다. 광야에서 42번 진을 쳤는데 그들에게 자리를 정하라고 했으면 밤낮 싸웠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지파마다 일일이 장막 칠 곳을 정해 주시니 싸움했다는 얘기가 없습니다. 만족했습니다. 좋았기 때문입니다.
푹 자고 일어나면 아침에 만나를 거두러 나가기만 하면 됐습니다. 만나는 종합영양제입니다. 만나면 먹어도 자녀를 낳는데 부족한 것이 없었습니다. 이런 복을 주셨는데 이스라엘 백성들은 그 은혜를 몰랐습니다. 낮에는 구름기둥, 밤에는 불기둥으로 빈틈없이 에워싸셨습니다. 자욱한 안개로 광야를 걸을 때 덥고 갈증나지 않게 해주셨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물을 떠서 먹는 것만 알았지 눈에 보이지 않게 물을 마시고 있다는 사실을 몰랐습니다. 밤에는 광야가 무척 춥습니다. 하나님이 큰 불기둥으로 사방 백리 진친 곳을 빙빙 돌면서 훈훈하게 난방을 해주셨습니다. 낮에 구름 덮개가 이스라엘 백성들을 따라 다니니 그렇게 걸어도 땀이 나지 않았습니다. 그러니 빨래할 필요도 없었습니다. 발바닥에 물집이 생기지 않았습니다. 40년 동안 입은 옷과 신발이 해어지지 않고 구멍도 나지 않았습니다. 약도 필요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이 병에 걸리지 않도록 보호하셨기 때문입니다. 부모의 마음은 이미 자식에게 재산을 언제 얼마를 줘야겠다는 생각을 품고 있습니다. 그러나 자식들은 그걸 보지 못하기 때문에 아직 못 받았다고, 왜 돈을 안 주느냐고 아우성치는 것입니다. 부모의 마음을 어느 자식들이 알겠습니까. 모릅니다. 하도 속을 썩이니까 부모가 “저도 시집, 장가 가서 아이를 낳아봐야 그때 아비, 어미의 마음을 알 거다”라고 하지 않습니까.
신명기 32:10 “여호와께서 그를 황무지에서, 짐승의 부르짖는 광야에서 만나시고 호위하 시며(사비브) 보호하시며 자기 눈동자 같이 지키셨도다”
신명기 1:31-32 “광야에서도 너희가 당하였거니와 사람이 자기 아들을 안음 같이 너희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희의 행로 중에 너희를 안으사 이곳까지 이르게 하셨느니라 하나 이 일에 너희가 너희 하나님 여호와를 믿지 아니하 였도다”
하나님이 안아서 왔는데, 믿지 못하는 사람들은 “내 발로 왔지, 언제 하나님이 우리를 안아줬어?” 했다는 것입니다.
3) 성막의 사비브
성막에서는 ‘사비브 사비브’가 한 번도 쓰이지 않았고, ‘사비브’만 여러 번 쓰였습니다.
· 법궤 주위에 금테를 둘렀을 때(출 25:11)
· 떡상 주위에 금테를 둘렀을 때(출 25:24, 37:11-12)
· 분향단 주위에 금테를 둘렀을 때(출 30:3)
· 뜰 ‘사면’(四面)의 기둥(출 27:17)
· 뜰 ‘사면’(四面)의 기둥받침과 모든 말뚝(출 38:31)
· 기둥 사이를 둘러가며 세마포 포장을 칠 때 (출 38:16, 20, 40:8, 33)
· 대제사장의 에봇 받침에 머리가 들어가는 구멍 ‘주위’(출 28:32, 39:23)
· 대제사장의 에봇 받침(겉옷) 가장자리에 ‘돌 아가며’ 석류와 금방울을 간격하여 달았을 때(출 28:33, 39:25)
· 제물의 피를 사면에 뿌릴 때(출 29:16, 20)
4) 에스겔 성전의 사비브 사비브
‘사비브’가 반복된 ‘사비브 사비브’는 ‘둘러싸고 둘러싸여’ 완전하고 강력하게 둘러싸신 절대 보호를 강조한 표현입니다. ‘사비브 사비브’ 는 유독 에스겔 성전에 집중적으로 기록돼 있습니다. 총 25번 언급됐습니다. 숫자 25가 에스겔 성전에서 가장 많이 나타나는 수인 것과 신비한 일치입니다. 겔 42:15, 20, 45:2, 5, 6, 40:5, 14, 16(두번), 17, 25, 29, 30, 33, 36, 43, 41:5, 6, 7, 8, 10, 11, 12, 16, 17, 19, 42:15, 20, 43:12, 46:23. 이렇게 모두 25번 기록됐습니 다. 세계 최초로 말씀하는 것입니다. 특히 성전과 가장 가까운 골방(겔 41:5,10), 바깥뜰 문간 세 개, 안뜰 문간 세 개, 그리고 문간 안에 6개씩 있는 문지기방과 현관의 사방에도 벽과 창이 사방으로 둘러 있습니다.
에스겔 41:5 “전(殿)의 벽을 척량하니 두께가 육 척이며, 전 삼면에(사비브 사비브) 골방이 있는데 광이 각기 사 척이며”
에스겔 41:10 “전 골방 삼면에(사비브 사비브) 광이 이십 척 되는 뜰이 둘려 있으며”
그러므로 성전 안은 아무나 함부로 들어올 수가 없습니다.
에스겔 40:16 “문지기 방에는 각각 닫힌 창이 있고”
문안 좌우편(사비브 사비브)에 있는 벽 사이에도 창이 있고, 그 현관도 그러하고, 그 창은 안 좌우편(사비브 사비브)으로 벌여 있으며, 각 문 벽 위에는 종려나무를 새겼다고 했습니다. 문지기방에는 문이 없고, 대신 가로막힌 ‘퇴’가 있습니다. 여러분은 웃고 있지만, ‘퇴’가 무엇인지 어떻게 알겠습니까. 사전에도 기록돼 있지 않습니다. 많이 울고, 3일 동안기도 하는 가운데 성령의 조명으로 깨닫게 된 것입니다.
에스겔 40:12 “방 앞에 퇴가 있는데 이편 퇴도일 척이요 저편 퇴도 일 척이며 그 방은 이편도 육 척이요 저편도 육 척이며”
문지기방의 퇴는 일척, 즉 53.2cm이고, 방의 한 편 크기가 육 척, 즉 3.192m입니다. ‘쉬 운성경’은 “각 방 앞에는 높이가 50cm 되는 담이 있었고, 각 방의 길이와 너비는 모두 3m였 다.”고 번역했습니다. 각 문간은 출구 쪽을 제외한 나머지 삼면에 벽과 창문이 둘러있습니다(사비브 사비브). (겔 40:25, 29, 33, 36). 또 에스겔 성전에는 60척 높이의 문기둥이 있습니다. 이 기둥들이 문의 사면을 둘러싸고 있습니다(사비브 사비브).
에스겔 40:14 “그가 또 현관을 척량하니 광이 이십 척이요, 현관 사면에(사비브 사비브) 뜰이 있으며”
여기서 ‘현관’으로 번역한 것은 한글 개역성 경의 엉뚱한 오역(誤譯)입니다. 히브리 원어에는 분명히 ‘기둥’입니다. 그러니 아무리 찾아도 뜻을 알 수 있겠습니까. 제가 열흘 동안 말도 못할 정도로 고민했습니다. 도대체 말이 되지 않습니다. 성경의 원전(原典)인 히브리어로는 현관이 아니라 기둥인데 ‘현관’이라고 너무나 동떨어진 번역을 했으니 뜻이 통하겠습니까. 여러분이 집을 지었는데 현관이 어디냐고 묻는데 기둥을 가리키면 누가 믿겠습니까. 지금까지 어느 신학자도 규명하지 못한 것을 말씀드리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에서 20년간 공부한 강신택 박사가 히브리 원전을 번역한 구약성경에는 이 부분이 정확하게 기록돼 있습니다.
“그리고 그는 문기둥들을 (그렇게) 했었다. 그것들(문기둥들)은 60규빗이었다. 곧 문의 사면을 둘러싼 뜰의 문기둥까지 60규빗이었다.”
개역성경의 ‘20척’도 잘못된 번역입니다. 히브리 원어를 보면 ‘60척’입니다. 기둥 높이가 60척, 즉 32m이니 엄청난 것입니다. 성전에 32m 높이의 기둥이 있는 곳이 어디 있습니까. 보통 건물 5층이 넘는 높이입니다. 이상(理想)의 세계입니다. 에스겔 선지자가 하늘만큼 높은 그 기둥을 보고 깜짝 놀란 것입니다.
오늘은 여기까지 말씀드리겠습니다. 세 번, 네 번 들어야 귀에 들어올 것입니다. 성전 안에는 방이 1,2,3층에 총 90개였습니다. 왜 90개를 만드셨을까, 그 이유가 있습니다. 완전히 깨달을 때까지 배우는 입장에서 적어두시기 바랍니다. 우리가 에스겔 성전에 대한 말씀을 깨달아야 높은 산, 즉 성전에 올라갈 수 있습니다. 육신이 아닌 영으로 가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저희들에게 명철과 지혜와 총명과 성령의 권능을 주셔서 깨닫는 축복이 있을 줄믿습니다. 어디 가든지 ‘여호와 삼마’, 하나님이 거기 계시다는 복을 받으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2013년 1월 23일 수요예배 휘선(暉宣) 박윤식 목사 설교
휘선 박윤식 목사는 목회 초기 지리산에서 3년 6개월 7일 동안 낮에는 성경을 읽고, 밤에는 기도하면서 성령의 조명을 통해 깨달은 내용을 구속사 시리즈로 출간했다. 지난해 12월 17일 구속사 시리즈 제11권上 ‘여호와 삼마 에스겔 성전’으로 출간된 에스겔 성전에 대한 내용은 그 기간 중 마지막으로 깨달은 말씀이며 “저로서는 가장 귀한 말씀”이라고 박 목사는 회고했다. 이 책의 서평을 쓴 주재용 박사(전 한신대 총장)는 “박윤식 목사는 에스겔 예언자와 일체가 되어 비역사적 환상을 구속경륜으로 역사화했다. ‘유구한 역사 속에 세계 최초로 에스겔 성전의 이상을 성경적으로 체계화, 정리했다’는 말은 과장이 아니다. 이 책을 통해 에스겔 예언에 대하여 새로운 눈을 뜨게 됐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