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만의 유익’ 대신 ‘많은 사람의 유익’을 구하고 싶습니다 – ‘미스터트롯’ 고재근의 신앙 여정
‘나만의 유익’ 대신
‘많은 사람의 유익’을
구하고 싶습니다
‘미스터트롯’ 고재근의 신앙 여정
대한민국 TV 프로그램의 새로운 역사를 써내려 간 프로가 있다. ‘국민 예능’이라 불리던 지상파 프로그램들도 아주 오래전 단 한 차례 넘었을 뿐이고, 종편 출범 후에는 다시는 없을 것으로 여겨졌던 ‘시청률 30%’를 단 11회 만에 35.7%라는 기적적 수치로 넘어선 프로그램, 바로 ‘미스터트롯’이다. 중장년층의 전유물로 여겨져 왔던 트로트라는 장르, 그리고 ‘평일, 늦은 밤, 비지상파’라는 핸디캡을 안고도 할머니부터 손자까지 TV 앞에 옹기종기 모여 지역과 세대를 아우른 국민 대통합을 이뤄냈다. 2020년초 코로나19 사태로 잔뜩 움츠린 국민들의 애환을 달래준 ‘진정한 국민 예능’의 현장에 평강제일교회 성도 고재근이 있었다. 1999년 록밴드 Y2K의 메인 보컬로 스타덤에 올랐던 그는 어느덧 22년 차 가수이자, 평강제일교회 미스바 성가대 대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미스터트롯’에 제8회까지 출연하며 최종 20인으로 선정된 그를 만났다.
요즘 많이 바쁘겠다. 대한민국에 트로트 열풍이 불고 있는데, 이렇게 잘 될 것을 예상했나?
프로그램이 잘 될 줄은 알았는데, 이 정도일 줄은 몰랐죠. 드라마가 아니고서야 시청률 35%는 있을 수 없는 일이라… 물론 전작인 ‘미스 트롯’의 후광이 있었기에 가능했겠지만요. 사실 처음 제의가 왔을 때는 거절을 했어요. 트로트는 한 번도 해본 적이 없는 분야에다, 토너먼트 경연 역시 처음이라서요. 더구나 저는 록음악을 했던 터라 트롯과는 창법이 전혀 달라 적응하기가 힘들었거든요. 그래서 다른 출연진에 비해 준비를 많이 못한 것도 사실이고요. 근데 팬들이 ‘뭐든 그냥 좀 해라’는 말에 용기를 얻고 도전하게 됐어요. 물론 노래가 하고 싶은 게 제일 컸고요. 요즘은 노래할 무대가 너무 없어서 이렇게라도 무대에 설 수 있는 게 감사하니까요. 근데 딱히 이슈가 없으면 출연을 할 수가 없는 상황이었는데 그냥 얼굴이라도 비추자고 나갔던 게 최종 20인까지 들게 된 거죠.
다른 방송을 할 때도 늘 기도를 하지만, 이번엔 진짜 기도를 많이 했어요. 미션이나 경연을 앞두고서 항상 ‘주님께서 예비하여 주신 미스터트롯, 잘하게 해달라’고요. 저는 정말 제가 할 수 있는 것보다 더 많이 올라갔어요. 저희 소속사 사장님도 독실한 크리스천인데, 저보고
‘감사하자! 여기까지 올라온 것만 해도 대단한 거야’라고 말씀하셨어요. 물론 저야 원래 감사뿐이었고요. 아마 그 이상 올라갔어도 더 보여 줄 게 없었을 거예요. 준결승(14인)까지 갔으면 교만해질 수도 있었을 텐데 전 이 정도도 정말 만족하고 감사해요.
처음으로 방송에서 눈물을 흘렸다고 들었다. 어떤 마음이었기에?
‘미스터 트롯’을 하면서 계속 묵상했던 성경 구절이 고린도전서 10장 33절 말씀이에요.
“나와 같이 모든 일에 모든 사람을 기쁘게 하여 자신의 유익을 구하지 아니하고 많은 사람의 유익을 구하여 그들로 구원을 받게 하라”
아무래도 팀을 꾸려서 미션을 해야 하고, 경연 특성상 거기서 또 알게 모르게 서로 경쟁을 해야만 살아남는 구조였지만, 제 마음속에는 ‘나의 유익이 아닌 모든 사람의 유익을 위해’라는 말씀이 계속 생각이 나면서 ‘욕심 부리지 말자’는 마음이 컸어요. 저도 욕심도 있고, 승부욕도 있는 사람이지만 팀 미션이라는 것이 욕심을 내는 순간 깨지기 쉽거든요. 원래 후렴구를 제가 부르기로 했었는데, 중간에 파트가 갑자기 바뀌게 되는 상황에서도 그냥 마음을 내려놓고, 하자는 대로 했어요. 근데 돌아보니 욕심 안 부리고 했던 게 맞았던 것 같아요. 나서지 않고 뒤에서 받쳐줬던 것이 팀에도 도움이 되었고, 결과적으로 좋은 조화를 보여드렸죠. 근데 이건 저뿐만 아니라 저희 팀 사람들도 마찬가지였어요. 다들 한 번씩은 성공을 맛보고서 이 오디션 프로에 나온 친구들이기에 자기가 잘 할 수 있는 거만 보여 주면 되지 욕심을 낸다고 잘 되는 게 아니라는 걸 그 친구들도 다 알거든요. 경험을 해봤으니까. 그래서 서로 양보하면서 하다 보니 오히려 그 부분이 보시는 분들에게 더 좋았던 것 같아요.
평강제일교회는 언제부터 나왔나
어머니 뱃속에 있을 때부터니까 모태신앙이죠. 대성교회 시절부터 유년부, 소년부를 거쳐 중등부 에벤에셀 때 평강제일교회로 명칭이 바뀌면서 집도 오류동으로 이사를 왔어요. 중등부 김경수 선생님께 기타를 배우면서 교회 밴드 활동을 시작했고, 고등부 한소리 때는 중창단장도 맡았어요. 그때 처음으로 성악가분들에게 노래도 배웠었죠. 그러다 버거웠는지 어쨌는지 시험에 들어서 고3 중간부터 교회 활동을 잘 안했어요. 그러다 대학 진로를 성악으로 하려 했는데 어머니의 반대로 재수해서 서울예술대학교 연극과에 들어갔고, 누가 노래해 보지 않겠냐는 말에 자연스럽게 가수를 준비했던 것 같아요. 그러다 보니 교회에도 많이 소홀해지고, 주일예배는 참석했지만 대학부 활동도 거의 못 했죠. 그래도 교회를 통해 음악을 처음 접하고, 노래로 진로를 정하기까지는 어릴 때부터 했던 성가대와 밴드 활동이 많은 밑거름이 되었죠.
박윤식 목사님께서 “연예인들은 인기를 얻기까지 많은 고생을 했기 때문에 허례허식이 벗겨져 성경을 깊이 알지 못해도 대화가 된다”고 하신 적이 있다. 연예인으로 20년 넘게 활동하며 많은 어려움이 있었을텐데?
1999년도에 Y2K라는 록밴드로 데뷔해서 2002년까지 4년 정도 활동을 했었는데, 데뷔하자마자 큰 인기를 얻다 보니 ‘과정’이 없었던 것 같아요. 너무 쉽게 올라간 거죠. 지금이야 받은 달란트로 하나님께 영광 돌리려고 하지만 당시에는 인기에 취해서 모리아 성전에서 딱 한 번 노래 부른 것 말고는 연예인 활동을 하면서 하나님을 위해 애썼던 시간이 많이 없었던 것 같아요. 그러다가 짧은 기간 활동 이후 공백기가 꽤 길었죠. 그때 많이 힘들었어요. 그러면서 ‘아, 내가 교만했구나’를 깨달았죠. 만약에 내가 어릴 때부터 들었던 말씀과 신앙이 없었더라면 요즘 어린 친구들처럼 나쁜 선택을 할 수도 있었을 텐데, 신앙과 가족이 저를 많이 붙잡아준 것 같아요. 그러다가 2014년도인가 고난주간이었는데, 그때 제가 하루도 안 빠지고 고난주간 집회에 참석했어요. 고난주간 집회에 참석하지 않았던 것은 아니지만 하루도 안 빠지고 다 참석했던 건 그때가 처음이었던 거예요. 첫째 날, 둘째 날, 셋째 날 쭉 이어지는 말씀을 들으면서 처음으로 저에게 와 닿았어요. 예수님의 고난이. 그 전에는 그냥 듣는 이야기였는데, 제 상황이 상황이다 보니 오버랩돼서 그분의 고난이 더 이해가 돼서 눈물도 많이 흘렸고요. 그때 은혜를 많이 받았죠. 그래서 뭐라도 해야겠다는 생각에 들어간 게 미스바 성가대였어요. 그때는 연예 활동도 하지 않을 때였으니까, 제 달란트를 주님께 찬양과 영광을 돌리는 데 써야겠다고 결심하고서 찾아가서 오디션도 보고 했죠. 그게 벌써 7년째네요.
이미 얼굴이 알려진 가수가 성가대로서 활동한다는 것도 쉬운 결정은 아니었을 것 같다. 그럼에도 매주 빠지지 않고 성가대에 서는 동력이 무엇인가?
첫 번째는 주일 성수가 목적이고, 두 번째는 그때의 교만함을 덜어내고자 함입니다. 지금이야 힘들었던 시간들이 다 단련의 시간이었다고 생각하고, 할 수 있는 데까지는 해보자는 마음가짐이지만, 힘들 때는 진짜 아무것도 하기 싫었거든요. 우울증까지는 아니었지만 무기력증에 사람도 만나기 싫고, 잠도 안 오고 그랬어요. 그때로 돌아가고 싶지 않아서 어떻게든 밝고 활력 있게 살려고 하는데, 그러려면 어떤 패턴이 있어야 해요. 근데 저는 직장인이 아니다보니 그런 패턴이 없거든요. 그래서 주일이라도 규칙적으로 지켜야겠다 생각했죠. 한 주의 시작인 주일을 성가대부터 예배까지 쭉 드리면 마음가짐이 달라지니까. 또 어머니가 그걸 좋아하시고요. 저는 성가를 부르는 것만으로도 행복해요. 할 줄 아는 것도, 제일 자신 있는 것도 찬양이니까. 받은 달란트를 돌려드릴 기회가 있어서 감사해요.
근데 저는 정말 아무것도 아니고 10년, 20년, 30년 성가대 봉사하시는 분들이 정말 대단하다고 생각해요. 매주 한 주도 안 빠지고 새벽부터 준비해서 오시잖아요. 저희 조장님은 천안에서 부터 오시는 거 같던데… 저도 고등부 중창단장 할 때는 새벽같이 일어나서 나왔었는데, 그게 되게 즐거웠거든요. 책임감이기도 하고. 그분들도 마찬가지겠지만 나이가 먹을수록 체력이 안 되잖아요. 그래도 4부까지 다 드리시는데. 저는 2부 때도 졸지만(웃음) 졸더라도 일단 가자! 한 게 벌써 이렇게 됐어요.
마지막으로, 앞으로 크리스천 가수로서의 비전이 있다면?
비전은 항상 있었는데 제 비전대로 세상이 돌아가지 않는다는 것을 누차 깨달아왔어요. 그래서 큰 비전이라기보다는, 세상에서는 노래를 오래 하는 사람으로 남고 싶고, 신앙적으로는 교회 어르신들이 연로하신 가운데서도 미스바 성가대를 서시는데, 저도 목소리가 살아있는 한 꾸준히 성가대를 하면서 주님이 주신 달란트를 주님을 위해 쓰고 싶어요.
그리고 나서 제가 인지도가 생긴다면 그걸 통해서 구속사의 조그마한 밀알이라도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 있어요. 사실은 예전부터 이런 마음은 늘 있었지만 제가 무명인데, 아무것도 아닌데, 나선다고 해서 도움이 되는 건 아니라고 생각해서 늘 소극적이었어요. 저를 찾아주시는 분들이나 지금처럼 손 붙잡아주시는 분들도 없었고. 물론 이것도 잠깐인 걸 알아요. 인기는 연기 같다는 걸 이미 겪어서 아니까 그것에 연연하지는 않지만 하고 싶은 것을 해 나가려면 인기를 유지해야만 하는 것도 운명이니까요. 그래서 가능하다면 선한 영향력을 잘 키워서 복음 전파 사역에 쓰임 받고 싶다는 비전이 있어요. 제가 무슨 일을 하든지 다 구원받기 위해, 하나님께 영광 돌리기 위해 하는 일들이니까, 그 믿음을 우선으로 해서 제가 할 수 있는 선에서 최대한 할 수 있는 것들을 해야겠죠. 음악의 힘은 전달하는 힘이 크니까요.
글_이보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