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스크
마스크
전 국민이 마스크 속에 살아간다. 마스크로 표정도 가리고, 혼잣말도 가린다. 무슨 생각을 하는지, 어떤 마음인지 좀처럼 알아챌 수가 없다. 이러다 어느날 마스크를 벗게 되면 그때는 표정을 어떻게 숨기고 사나 싶다.
사실 우리는 전부터 마스크를 쓰고 살았다. ‘얼굴’이라는 마스크다. 마음속 수많은 생각과 감정을 얼굴 뒤에 숨겼다. 속으로 욕하면서 겉으로는 웃고, 속으로 좋으면서 겉으론 인상을 쓰기도 했다. 얼굴이라는 마스크가 없이 속마음이 그대로 드러난다면 우리는 어떻게 될까. 공교롭게도 마스크(mask)란 단어는 얼굴, 가면이란 뜻으로 쓰이기도 한다.
박윤식 목사님은 ‘세 얼굴을 가진 사람’이라는 설교 (2009. 2. 8)에서 우리의 겉 얼굴과 마음의 얼굴, 후면의 생활이 모두 같아져야 한다고 말씀하셨다. 그렇지 못한 사람은 ‘구제 불능’이라 하셨다. 우리 힘으로는 못하지만 하나님이 해 주신다고 하셨다. “말씀을 듣고 기도하면 내면, 표면, 후면이 똑같아집니다. 하나님의 말씀과 기도로 거룩해진다고 디모데전서 4:5에 말씀하시지 않았습니까? 기도하면 하나님이 가까이 오십니다. 말씀의 권능으로 우리 마음을 새롭게 창조해 주십니다.”
사실 ‘얼굴 관리’도 쉽지는 않다. 감정을 얼굴에 드러내지 않는 건 상당한 인격의 경지다. 그러나 우리는 지금 에스겔 성전을 향해 가는 시대에 살고 있다. 하나님은 말세 성도에게 ‘얼굴 관리’ 정도가 아닌 ‘마음 관리’를 요구하신다. 형제한테 노하기만 해도 살인죄고, 음욕을 품고 여자를 보기만 해도 간음죄라는 예수님의 말씀(마 5장)은 이제 이상적 가이드라인이 아닌 현실의 목표다.
에스겔 성전, 즉 성산(聖山)에 거할 자의 자격은 ‘언행일치’ (시 15:1-5)다. “믿음으로 자신을 이기고, 세상을 이기고, 죄악을 이기고, 믿음으로 진행하고 믿음으로 마치는 그것이 언행일치입니다.” (2005. 4. 27 설교 ‘주의 성산에 거할 자의 자격’ 중) 내 생각과 얼굴과 말과 행동(후면의 생활)이 일치해야 에스겔 성전에 들어간다. 지금의 나를 보면 영 틀린 것 같지만 “할 수 있다” 하셨으니 해보는 수밖에 없다. 그 기회로 올해도 회개와 갱신의 사순절을 허락하셨다.
모세는 하나님을 만나 대화한 뒤 마음속까지 밝고 맑아졌던 것 같다. 얼굴에 얼마나 광채가 났던지 눈이 부셔 쳐다보지도 못하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위해 수건을 써야 했다. 그리고 하나님을 만날 때는 다시 수건을 벗었다(출 34:35). 우리도 마지막 날에는 수건을 벗은 얼굴로 주의 영광을 봐야 한다(고후 3:18). 마스크를 벗고도 부끄러움이 없도록, 우리의 세 얼굴이 모두 같아지도록.
글_호준석 장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