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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척량했는가? – 불순종의 결과 자기 자식을 삶아먹는 반인륜적 참상

2020.02.18 11:39

왜 척량했는가?

불순종의 결과 자기 자식을 삶아먹는
반인륜적 참상

겔 43:10-12, 신 28:53-57

성도 여러분. 여러분이 싫든 좋든 에스겔 성전은 들어가야 합니다. 안 들어가면 멸망입니다. 오늘은 ‘에스겔 성전을 왜 척량(尺量)하는가’에 대해 증거하고자 합니다. “예수 믿고 천국 가면 되지, 도대체 머리가 복잡하게 왜 에스겔 성전을 척량하는가” 하는 분들에 대한 답변이 오늘 말씀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불순종의 결과로 자기 자식을 삶아먹는 참상에 직면했습니다. 여자가 자기 몸에서 낳아 안고 끼고 자던 아이를 삶아 먹었다는 것입니다. 차마 제정신으로 그런 짓을 할 수 있나 싶은 일이 일어난 것입니다. 아이를 삶은 뒤 남편이 더 먹을까봐 아내가 눈을 흘기고, 남에게 알리지 않고 가만히 먹었다고 성경은 기록하고 있습니다.

성경의 문자 속에 감추어진 하나님의 뜻을 찾기 위해서는 예수님을 먼저 알아야 합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비밀이기 때문입니다(골 2:2-3). 예수님을 알지 못하면 하나님의 비밀을 알 수 없습니다. 하나님은 아무나 그 비밀을 열지 못하도록 도장을 찍어 놓으셨고, 그걸 보고 우는 사도 요한에게 “유다 지파의 사자 예수님만이 그 비밀을 알 수 있다”고 말씀하셨습니다(계 5:1-5). 성경은 창세기 1장부터 요한계시록 22장까지 오직 예수 한 사람만 소개하고 있습니다(요 5:39, 눅 24:44-45). 예수님을 통하지 않고는 천국에 못 갑니다. 예수님이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라고 말씀하시지 않았습니까(요 5:39, 눅 24:44, 요 14:6, 요 10:7). 예수님은 천국의 문, 양의 문입니다. 속상하고 괴로워도, 기분이 좋든 나쁘든 예수님을 모셔야만 집안이 편안합니다.

예수님이 하나님의 비밀이라는 것은 ‘말씀 자체’라는 뜻입니다(요 1:1). 그러므로 시작도, 창조도, 진행도, 결과도 말씀입니다. 우리는 시작부터 끝까지 예수를 마음에 모셔야만 에스겔 성전에 들어갈 자격을 얻습니다. 아담과 하와가 죄지은 뒤 죄인이 에덴동산에 들어가 생명나무 열매를 따먹고 영생할까 봐 그룹 천사에게 불칼을 주셔서 지키게 하셨습니다. 허가 없이 들어가면 목숨을 부지하지 못합니다. 그런데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그 제한이 폐지됐습니다. 예수님이 생명나무입니다. 예수님은 모든 것의 근본이고 원인입니다. 그분이 시작이고, 마치는 것도 그분이 하십니다(계 2:8). 그러므로 예수님을 모시는 가정은 복된 가정입니다. 집안에 10원 하나 없다 해도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만 모시고 있으면 그 집은 성령이 책임지고, 복을 받게 됩니다. 미국의 16대 대통령 아브라함 링컨은 가난한 집에서 태어났습니다. 초등학교 다닌 것이 학력의 전부입니다. 그러나 어머니를 통해 성경을 배워, 박사 학위 받은 사람보다 더 큰 지혜와 복을 받았습니다. 만물이 주로부터 나왔습니다(롬 11:36). 주로 말미암아 운행하고 주께로 돌아갑니다. 말씀 아니면 우주 만물 중 지음 받은 것이 없습니다(요 1:1-4). 하나님의 말씀이 있는 교회, 하나님의 영광이 머무르는 교회, 그 교회에 나오는 분들은 가정마다 하나님의 영광과 은혜가 머물러 있습니다. 복을 받게 됩니다. 믿으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의 도는 정직합니다. 그래서 의인, 지혜 있는 자, 단련받아 깨끗해진 자라야 이 도를 깨닫고 행합니다(호 14:9, 렘 9:11, 23:18, 시 107:43, 단 12:10). 공동번역에는 다니엘 12:10 말씀을 “그동안 많은 사람들이 단련을 받아 깨끗해져서 빛날 것이다. 악한 사람들은 끝내 눈이 열리지 않아 악한 짓을 계속하겠지만 슬기로운 지도자들은 눈이 열려 환하게 알 것이다”라고 기록했습니다. 요한복음 8:47에는 “하나님께 속한 자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나니 너희가 하나님께 속하지 아니하였음이로다” 하셨습니다. 하나님께 속해야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에스겔서 40-48장은 신, 구약의 총론이자 결론입니다. 에스겔 성전은 하나님의 백성에게 성령을 부어주심으로써 하나님의 아들, 딸 자격을 회복해 주시기 위한 것입니다. 오늘날까지 우리는 하나님 믿는다고 말만 했지, 진정으로 믿지는 못했습니다. 머리로만 믿고, 실생활과 행동에서는 하나님 없는 삶을 산 것입니다. 그것을 하나님께서 지적하시는 것입니다. 에스겔 43:10-12에 “성전이 지극히 거룩하다”고 했습니다. 에덴동산은 그룹 천사가 지켰지만 에스겔 성전은 천사가 아닌 담이 지킵니다. 사기꾼, 도둑놈, 건성으로 믿고 진심으로 믿지 않는 사람을 담이 다 내칩니다. 담이 속된 것과 거룩한 것을 갈라냅니다(겔 42, 43장). 그 담의 두께가 3미터가 넘습니다. 살아있는 담입니다. “담이 소리지른다”고 하박국 선지자도 말했고(합 2:11), “돌도 소리친다”고 예수님이 말씀하셨습니다(눅 19:40). 여러분이 산에 가서 나쁜 일을 하면 풀과 나무가 ‘어디 사는 누구누구가 몇 시 몇 분 몇 초에 여기서 어떤 짓을 했습니다’ 하고 하나님께 보고합니다. 예레미야 2장을 보십시오. 내가 거짓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좌우에 아무도 없는 줄 알고 죄를 짓지만 성경 말씀 볼 때 담 뿐 아니라 하늘과 땅이 다 지켜봅니다. 마지막에 에스겔 성전에 들어갈 사람은 활활 타며 빙빙 도는 불담, 불 성곽이 끝까지 정결하게 지켜준 뒤 ‘너는 에스겔 성전에 들어갈 자격이 있다’하고 들여보냅니다(슥 2:5). 이 말씀을 볼 때 두렵지 않습니까? 하나님은 24시간 졸지 않습니다. 천사도 잠자지 않습니다. 천국에는 밤이 없고 잠도 없습니다. 피곤함이 없습니다. 24시간 기운이 차고 넘칩니다. 어린 양이 영원한 빛이 되셔서 햇빛, 달빛, 별빛이 필요 없습니다.

에스겔 성전은 분명히 있습니다. 죄악으로 가득 찬 인간의 눈에는 보이지 않습니다. 그러나 성전을 측량(測量)한 것을 보십시오. 가짜가 아닙니다. 몇 미터로 지어라, 두께를 얼마로 해라, 북쪽으로, 남쪽으로, 서쪽으로 이렇게 하라며 방향까지 다 알려주시고, 1층, 2층, 3층이 있다는 것까지 알려 주신 것 아닙니까. 사도 바울도 하늘나라 1, 2, 3층까지 다녀오지 않았습니까. 땅에서는 몇백 년, 몇천 년 걸리는 일이 하나님 안에서는 순간에 이뤄집니다. 하나님은 연대도, 날짜도 없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언제나 여전합니다. 세상에는 아침과 낮과 저녁이 있지만 그 세계에는 쉬는 법이 없습니다. 태양빛은 사람을 상하게 하고, 더워서 썩고 냄새나게 하지만 천국의 ‘의의 태양’ 되시는 빛은 지금 태양빛의 30배인데도, 우리를 상하게 하지 않습니다. 아침, 점심, 저녁이 없습니다(계 7). 우리는 그곳에 들어가야 합니다. 간절히 사모하고, 말씀을 아는 사람이 들어가지, 말씀을 자신과 무관하게 여기는 사람은 못 들어갑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에게는 하나님의 영광이 머물러 있는 성전이 큰 자랑거리였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머리로만 하나님을 믿었지, 생활에는 하나님이 없었습니다(겔 8:6, 10:18-19, 11:22-23). 말씀 따로, 나 따로였습니다. 하나님이 그들을 ‘패역한 백성’이라 하셨습니다. 성전에 있던 하나님의 영광이 ‘내가 왜 거기 머무르겠느냐’ 하며 떠나셨습니다. 그리고 이스라엘 백성들이 패역을 회개하고 부끄러워할 때 비로소 다시 돌아오는 장면이 에스겔서에 기록돼 있습니다(겔 40-43:1-5). 새로운 성전에서 하나님과의 관계를 회복하는 새로운 예배의 역사가 다시 시작됩니다. 저는 에스겔 44, 46, 47, 48장 말씀을 볼 때 가슴이 벅찹니다. 책상에 앉아서 눈물을 흘리고, 자신도 모르게 흥에 겹습니다. 에스겔 성전에서 생수가 흘러나와서 강을 이룹니다. 가는 곳마다 죽은 것이 다 팔딱팔딱 살아납니다. 성전에서 나온 물로 나무들이 1년에 몇 번이 아니라 정월부터 12월까지 달마다 다 다른 과실을 맺습니다. 그 생수를 마시면 늙지 않습니다.

요한계시록 21:15-17을 보면 새 예루살렘 성을 금 갈대로 척량합니다. 금은 사시사철 똑같습니다. 천사의 측량과 사람의 측량이 같다고 하셨습니다. 그곳에서는 하나님의 생각과 마음이 천사나 사람이나 똑같습니다. 변함이 없는 것입니다. 에스겔 성전 척량은 곳곳마다 치수가 정확합니다. ‘척량’은 이전의 성막과 성전 역사에서는 들어보지 못한 독특한 단어입니다. 하나님은 이 한마디를 통해 에스겔 성전이 얼마나 단호한지 알려주십니다. “인자여, 너는 이 전(殿)을 이스라엘 족속에게 보여서 그들로 자기의 죄악을 부끄러워하고 그 형상을 측량하게 하라” 죄를 부끄러워하고 회개하는 사람에게는 말씀을 가르쳐 주라는 것입니다. 머리로만 하나님을 알고 생활에는 없는 사람에게는 알려주지 말라는 것입니다(겔 43:11-12). 공동번역에는 “너는 이스라엘 족속에게 성전을 설명해 주어라. 이스라엘이 제 스스로 얼마나 부끄러운 죄를 지었는지 알게 되거든 성전의 모양을 도면에 그려 설명해 주어라” 라고 돼 있습니다.

반면, 죄를 회개하지 않고 말씀을 믿지 않으면 아들딸 잡아먹는 죄가 이스라엘 민족에게 임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무섭습니다. 우리 생각에 어떻게 자기가 낳아, 안아서 젖을 먹이고 팔에 누이고 무릎에 앉히며 애지중지 기른 자식을 삶아 먹습니까. 그런데 모세가 예언한 지(신 28:53-57, 레 26:28-29) 800년 만에 그 일이 현실이 됐습니다(왕하 6:28-29, 애 4:10). 무섭습니다.

“또 가로되 무슨 일이냐. 여인이 대답하되 이 여인이 내게 이르기를 네 아들을 내라, 우리가 오늘날 먹고 내일은 내 아들을 먹자 하매 우리가 드디어 내 아들을 삶아 먹었더니 이튿날에 내가 이르되 네 아들을 내라, 우리가 먹으리라 하나 저가 그 아들을 숨겼나이다.”(왕하 6:28-29).

북(北)이스라엘의 최후 모습을 기록한 장면입니다. 부부가 의논해서 아이를 삶아 먹다가 남편이 많이 먹으니까 부인이 눈으로 쏘아봅니다. 남편이 놀라서 먹던 것을 내려놓자 부인이 빼앗아 먹습니다. 친구의 머리를 쳐서 죽이고, 친구의 고기를 먹었습니다. 하나님 말씀은 일점일획도 어김이 없습니다. 예레미야 선지자의 예언도 그대로 이뤄졌습니다.

“그들이 그 대적과 그들의 생명을 찾는 자에게 둘러싸여 곤핍을 당할 때에 내가 그들로 그 아들의 고기, 딸의 고기를 먹게 하고 또 각기 친구의 고기를 먹게 하리라 하셨다 하고”(렘 19:9)

“처녀 내 백성의 멸망할 때에 자비한 부녀가 손으로 자기 자녀를 삶아 식물을 삼았도다”(애 4:10)

이사야 선지자의 예언도 보십시오. 머리로만 하나님 믿고 생활에 하나님이 없으면 이렇게 된다고 했습니다.

“우편으로 움킬지라도 주리고 좌편으로 먹을지라도 배부르지 못하여 각각 자기 팔의 고기를 먹을 것이며”(사 9:20)

에스겔 선지자는 아비가 아들을 잡아먹고, 다른 아들들이 그 아비를 쳐 죽인 뒤 그 고기를 먹는다고 예언했습니다. 그 비참한 사실이 다 현실이 됐습니다.

“그리한즉 너의 중에서 아비가 아들을 먹고 아들이 그 아비를 먹으리라. 내가 벌을 네게 내리고 너의 중에 남은 자를 다 사방에 흩으리라”(겔 5:10)

1. 북이스라엘 제9대 왕 여호람 때 예언이 이뤄졌습니다.
아합의 아들인 여호람 왕 재위 때인 BC 851-840년 10년 동안 아람 왕 벤하닷의 군대가 쳐들어와 사마리아 성을 포위했습니다. 굶주림을 견디다 못해 백성들이 아들딸을 삶아먹었습니다(왕하 6:24-29). 친구들이 어디 가면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알아보니 잡혀먹은 것입니다. 북한에도 지금 기근의 참상이 벌어지고 있지 않습니까.

2. 남(南)유다가 바벨론 침략을 받았을 때 예언이 이뤄졌습니다.
예루살렘 성이 BC 588.10.10-586.4.9까지 느부갓네살 왕의 군대에 30개월 포위돼 식량이 바닥나자 백성들이 아들딸을 잡아먹었습니다. 에스겔이 예언한 지 5년여 만에 일어난 일입니다(겔 1:1-2, 렘 19:9, 애 2:20, 4:10, 겔 5:10).

3. 주후 70년 로마의 디도 장군이 예루살렘을 1년 넘게 포위했을 때 예언이 이뤄졌습니다.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아, 예루살렘아, 암탉이 날개 아래 새끼를 모으듯이 내가 너희를 몇 번 안았느냐” 하시며 통곡하셨습니다. 이 참상을 미리 보셨기 때문에 땅을 치며 우신 것입니다. 예레미야 19:9이 거짓말이 아닙니다. 유대의 대역사가 요세푸스가 기록한 ‘유대전쟁사’ 제6장에 이 참혹한 역사가 기록돼 있습니다. 무려 110만 명이 죽었습니다.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박을 때 유대 종교 지도자들이 빌라도에게 “걱정 마시오. 예수 피를 흘린 죄를 우리와 우리 자손에게 돌리시오”(마 27:25) 한 그 말대로 이뤄진 것입니다. 참으로 무서운 일입니다.

도저히 상상도 할 수 없던 이 모든 끔찍한 일이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을 믿지 못한 불순종의 결과로 일어난 것입니다. 어떻게 아이를 삶아 먹겠습니까. 머리에만 하나님이 있고, 생활에는 하나님이 없는 삶의 결과인 것입니다. 모세는 앞으로 이뤄질 일을 환히 바라보고 예수님이 오실 것과, 이런 참혹한 일을 일어날 것을 예언했지만 이스라엘 백성들은 믿지 못했습니다(레 26:28-29, 신 18:15, 28:57-58).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의 중 내 형제 중에서 나와 같은 선지자 하나를 너를 위하여 일으키시리니 너희는 그를 들으지니라”(신 18:15)

“그 다리 사이에서 나온 태와 자기의 낳은 어린 자식을 가만히 먹으리니”(신 28:57)

“너희가 아들의 고기를 먹을 것이요 딸의 고기를 먹을 것이며”(레 26:29)

신명기 28:57의 ‘가만히’는 히브리어로 ‘비밀리에, 은밀하게’ 라는 뜻입니다. 누가 와서 뺏어 먹을까봐 비밀리에 먹었다는 것입니다. 그 정도로 배가 고팠던 것입니다. 자기 손에 기른 아이, 자기 열매를 먹었으니 얼마나 무섭습니까.

“여호와여 감찰하소서. 뉘게 이같이 행하셨는지요. 여인들이 어찌 자기 열매 곧 손에 받든 아이를 먹으오며 제사장들과 선지자들이 어찌 주의 성소에서 살육을 당하오리이까”(애 2:20)

부모의 깊은 애정과 희생이 담겨 있던 아이가 나중에는 자식이 아니라 식량으로 보이는 것입니다. 인정머리조차 없어집니다.
오로지 배고픔을 채우기 위해 살인, 강도보다 더한 무자비한 만행을 나라 전체가 저지르는 비극이 일어난 것입니다. 이스라엘은 여호와의 은혜의 말씀을 먹지 않았습니다. 성경을 원수처럼 여겨 읽지도 않습니다. 말씀을 먹지 않았습니다. 그 결과 아들딸의 고기를 먹은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 대신 우상과 탐욕, 음란과 정욕이 가득했습니다. 전부 마음이 악했습니다. 의롭지 못했습니다. 그들의 공허함과 굶주림은 오직 하나님의 은혜로만 채울 수 있는데, 육신으로 채우려고 남녀 막론하고 음란죄를 지었습니다.

“너희 중에 유순하고 연약한 남자라도 그 형제와 그 품의 아내와 그 남은 자녀를 질시하며”(신 28:54)

“또 너희 중에 유순하고 연약하여 그 발바닥으로 땅을 밟아보지도 아니하던 자라도 그 품의 남편과 그 자녀를 질시하여”(신 28:56)

질시(嫉視), 미워할 질(嫉), 볼 시(視)입니다. 흘기고 미워하는 것입니다. 믿고 안 믿고 간에 이런 일이 있다는 것을 성경은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런 환난이 끝난 다음에야 에스겔 성전이 열립니다. 마태복음 24장이나 마가복음 13장, 누가복음 17장과 21장, 네 군데에 똑같은 내용이 기록돼 있습니다. 주의 성소 안에서 하나님께 정성을 다해 제사를 드려야 할 텐데 그냥 겉치레로만 드렸습니다. 성소 안에서 미워했습니다. 미움은 살인죄입니다(요일 3:15). 하나님의 성전에서 최고의 영적 권한을 가졌던 무리들이 범죄했습니다. 성도 여러분, 공의와 평강과 기쁨이 가득했던 교회와 신앙 공동체가 사신(邪神) 우상(偶像)을 섬기고, 머리로만 하나님을 알고, 마음 뜨겁게 하나님의 말씀을 감사하지 않고, 말씀대로 살지 않는 것은 큰 죄악입니다. 성경이 철천지 원수나 됩니까. 하루에 왜 성경을 한 번도 보지 않습니까. 어디 가더라도 작은 성경 한 권은 가져가야 합니다. 차에서든 어디에서든 성경을 보면 말씀이 나를 지켜줍니다. 누가 여러분을 죽이려 하고, 나쁜 일을 하려고 해도 말씀을 읽으면 하나님께서 ‘네가 나를 사랑했지? 알았다. 나도 너를 지켜주겠다’ 하시며 말씀으로 지켜 주시는 것입니다. 그런 삶을 사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하겠습니다.

“그리한즉 너의 중에서 아비가 아들을 먹고 아들이 그 아비를 먹으리라. 내가 벌을 네게 내리고, 너의 중에 남은 자를 다 사방에 흩으리라”(겔 5:10)

여기서 ‘아비’와 ‘아들’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아보트’와 ‘바님’은 모두 복수형입니다. 이렇게 참혹하고 참담하고 처참한 일이 예루살렘에서 무성하게 자행됐다는 것입니다. ‘먹다’는 히브리어 ‘아칼’입니다. 잔인하고 흉포한 대적이 상대방을 날카롭고 무섭게 보는 것입니다. 시 27:2,합 3:14에서 사용된 단어입니다.

“나의 대적, 나의 원수된 행악자가 내 살을 먹으려고(아칼) 내게로 왔다가 실족하여 넘어졌도다”(시 27:2)

“그들이 회리바람처럼 이르러 나를 흩으려 하며 가만히 가난한 자 삼키기를(아칼) 즐거워하나 오직 주께서 그들의 전사의 머리를 그들의 창으로 찌르셨나이다”(합 3:14)

성도 여러분. 우리 평강교회는 끝까지 말씀을 사랑하고 말씀대로 살 때 하나님의 영광의 영이 여러분들 알게 모르게 집에 있으나 여행 가나 직장에 있으나 머리 위에 머물러 있습니다(벧전 4:14). 불 성곽으로 지켜주십니다(슥 2:5). 하나님을 의지하고 하나님 편에 있는 사람들은 끝까지 담같이 둘러 지켜주십니다. 성경에 기록된 히브리 원어로 ‘사비브 사비브’, 두르고 둘러서 지켜주시는 것입니다(시 125:2). 인생은 단 한 번 삽니다. 왔다가 가면 끝입니다. 이 땅에 만년 살면 뭐합니까. 눈 한 번 깜박하는 순간에 불과합니다. 자녀에게 많은 재산 못 물려주고, 공부 제대로 못 시키고, 좋은 차 못 사줬다고 해도, 세계에 부럽지 않은 말씀을 물려주고, 말씀을 믿게 하면 세계에서 제일 좋은 것을 주는 것입니다. 저는 구역마다 주일예배, 수요예배, 목요예배, 구역예배 잘 나오는지 체크하라고 합니다. 잘 안 나오는 분들 명단을 받아서 하루에 두 번씩 잠자지 않고 열 명씩 이름을 부르며 손들고 기도합니다. 가정마다 말씀의 권세와 능력으로 악한 마귀가 틈타지 못하도록 성령의 불담으로 강하게 지켜달라고 기도합니다. 반드시 기도대로 이뤄질 줄로 믿습니다. 나는 나쁜 짓하는 교인들 나쁜 짓 못하도록 힘이 빠지게 해달라고 기도하는 사람입니다. 사정이 어렵더라도 말씀으로 삶을 채우고, 말씀으로 삶을 도배하면 복을 받습니다. 목사님, 전도사님들은 반드시 교구마다 구역마다 예배에 제대로 나오는지 점검하고 안 나오는 분들 위해 기도해야 합니다. 저는 기도 쉬는 죄를 범하지 않습니다. 여러분, 부모로서 친자식 위해 기도했습니까. 어떻게 하나님 믿는 사람이 자식을 위해서 기도하지 않습니까.
하나님은 에스겔 선지자에게, 말로는 하나님을 믿는다면서 생활에는 하나님이 없는 죄를 지적하고, 그것을 부끄러워하는 사람들에게 말씀을 가르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여러분 모두 하나님 중심, 말씀 중심으로 살아 오직 하나님의 비밀과 영광이 되시고, 시작과 진행과 끝이 되시는 알파와 오메가 되시는 예수님을 마음속에 모시고 그 나라까지 입성하는 성도가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하겠습니다.

2013년 2월 24일 주일2부예배
휘선(暉宣) 박윤식 목사 설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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