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의 성산에 거할 자의 자격
주의 성산에 거할 자의
자 격
시 15:1-5
주의 성산(聖山)에 거할 자의 자격은 하나님과 교제할 수 있는 자의 자격입니다. 교제를 나누려면 피차 상대방을 알아야 합니다. 그리고 친밀감이 있어야 합니다. 사도 요한은 하나님과 사귐이 있어야 예수 그리스도의 거룩한 보혈로 죄를 사해 준다고 했습니다(요일 1:7-8). 그렇다면 주의 성산에 거할 자는 누구입니까? 자신을 바르게 하는 자, 바로잡는 자입니다. 우리는 진정으로 하나님을 경외하는 믿음을 소유하고 있습니까? 내 몸과 같이 교회를 사랑하고 충성을 다하고 있습니까? 성도 여러분, 자기에 대해서 바르지 못하면 하나님과 교제할 수 없습니다. 오늘 본문은 하나님의 택한 거룩한 성도가 하나님 앞에서 어떻게 살 것인가를 가르치고 있습니다. 어떻게 하는 것이 하나님 앞에서 자기를 바로 하는 것입니까?
정직하게 행하는 것입니다
모든 삶의 분야에서 정직하게 믿고 행하고 있습니까? 세상 삶은 차치하고 신앙 분야에서만 생각해 봅시다. 주일을 거룩하게 지켰습니까? 하나님께서 “주일은 너희 날이 아니라, 내 날이다 거룩히 지키라. 주일에 복 주시겠다”고 하셨습니다. 주일을 지키지 못한 자에게 축복이 가겠습니까? 그러니 무슨 성산에 거합니까? 감사나 십일조 생활, 교회 모든 맡은 직분에 충성을 다했습니까?
정직은 히브리어 ‘타밈’으로 ‘순수하다, 성실하다, 완전하다’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순수하게 하나님 말씀을 믿으며, 성실하며, 하나님 말씀 믿는데 의심이 없이 완전히 믿는 믿음이 정직입니다. 그런 사람이 양심에 가책을 받지 않고 매사에 양심을 따라 행할 수 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범사에 내가 양심을 따라서 행했다”고 자신만만하게 말했습니다(행 23:1).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양심을 따라서 행하려면 모든 면에 항상 양심의 잣대를 놓고 보아야 합니다(고후 1:12, 딤후 1:3, 행 24:16, 욥 27:5-6, 고전 4:4, 고후 4:2, 5:11, 히 13:18). 양심에 가책을 받으면 ‘이것이 하나님의 뜻이 아니구나, 내가 순수하지 못했구나, 내가 성실을 상실했구나, 내가 말씀 믿는 데 완전하지 못했구나’하고 그 길을 포기하는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신앙생활에 양심을 버린 자는 바다에서 배가 깨진 것과 같은 것입니다(딤전 1:19). 성도는 언제나 신앙생활에 양심을 바르게 해야 합니다. 양심의 옷을 입어야 합니다. 그래야 하나님께서 ‘너는 내 아들이다, 딸이다’ 하시며 당신의 자녀로 인정하십니다. 내 속에 그리스도가 계신가 스스로 확인하고 확증해야 합니다(고후 13:5). 그리스도가 안 계시면 버리운 자입니다.
공의를 일삼으며 그 마음에 진실을 말하는 것입니다
공의는 ‘옳은 것’을 말합니다. 그러므로 ‘공의를 일삼는다’라는 말은 하나님에 대해서는 맺은 언약의 말씀을 충실히 이행하고, 사람에 대하여는 도덕규범과 약속한 바를 신실하게 지키는 것을 의미합니다. 성도는 마음에도 진실하고, 말에도 진실하고, 행실에도 진실해야 합니다. 거짓은 마귀에게 속한 것입니다. 거짓은 자기 자신을 죽이고 듣는 자도 멸망하게 합니다. 인류의 시조인 아담, 하와가 마귀의 거짓에 속아 선악과를 따 먹는 바람에 사망이 왔습니다(롬 5:12). 진실한 사람은 말씀을 거짓 없이 믿는 사람입니다. 그러한 사람은 하나님의 말씀만을 인도자로 삼고, 하나님 말씀만을 피난처로 삼으며, 하나님 말씀으로 깨끗해지며, 하나님 말씀만이 자신의 삶의 시작과 진행과 결말임을 믿고 그대로 행하는 사람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정직하게, 성실하게, 순수하게, 완벽하게 하나님 말씀을 믿지 못하는 이것이 문제입니다. 마음이 진실하지 못하면 천국 가지 못합니다.
언행이 일치해야 합니다
오늘 본문인 시편 15편은 언행일치(言行一致)를 말씀하고 있습니다. 말과 행동이 하나가 되어야 합니다. 아모스 선지자는 부패한 시대상을 바라보면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오직 공법(公法)을 물 같이, 정의를 하수(河水)같이 흘릴지로다”(암 5:24)라고 백성들을 책망했습니다. 예레미야 선지자도 정의도 없고 공의도 없는 이스라엘을 향하여 눈물 흘리면서 “너희는 예루살렘 거리로 빨리 왕래하며 그 넓은 거리에서 찾아보고 알라. 너희가 만일 공의를 행하며 진리를 구하는 자를 한 사람 이라도 찾으면 내가 이 성을 사하리라”(렘 5:1)라고 외쳤습니다. 한마디로 언행일치, 즉 믿음의 길을 따라야 된다는 것을 강조하는 말씀입니다. 믿음으로 자신을 이기고, 세상을 이기고, 죄악을 이기고, 믿음으로 진행하고, 믿음으로 마치는 그것이 언행일치입니다. 언행이 일치하며 믿음의 길을 따라가는 자, 그들은 주의 성산에 거할 수 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언행일치를 이루어야 합니다. 서원한 것이 있으면 해로울지라도 갚아야 합니다(시 15:4, 신 23:21). 야곱은 하나님 앞에 서원한 대로 틀림없이 행했습니다. 그 결과 하나님은 야곱의 하나님이 되어 주셨습니다(창 28:20-22). 성도 여러분,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것입니다(약 2:17, 26). 그런 믿음은 죽은 믿음입니다. 하나님은 산 자의 하나님입니다. 그러므로 언행이 일치되는 않는 사람은 주의 성산에 거할 수 없습니다.
장막은 성전을 가리키는 것으로서 천국의 그림자입니다
누가 천국에 있습니까? 정직한 사람입니다. 정직과 공의와 성실 세 가지 가운데 하나만 빠져도 안 됩니다. 거룩은 이 세 가지를 모두 포함합니다. 거룩이 없으면 아무도 주님을 볼 수 없습니다(히 12:14). 말씀을 믿어야 합니다. 성실하고 순수하고 완전하게 믿어야 합니다. 우리 믿음에는 틈이 없어야 합니다(엡 4:27). 하나님의 말씀에 대해서 순수하고 성실하고 완전하게 100% 믿음으로 영접해서 믿음의 사람이 되시길 주의 이름으로 축원하겠습니다.
2005년 4월 27일 수요예배 설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