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년의 성취자로 오신 예수 그리스도
희년의 성취자로 오신 예수 그리스도
레 25:8-22, 사 61:1-2, 눅 4:16-21
안식일은 7일마다, 안식년은 7년마다 돌아오는 절기입니다. 안식년이 7번 지나면 희년(禧年)입니다. 7은 ‘성부, 성자, 성령’을 뜻하는 하나님의 3수와, 동서남북, 즉 땅의 편만(遍滿:두루 가득 참)을 뜻하는 4수가 합쳐진 수입니다. 우주 만물을 창조하실 때 성부 하나님과 성자 예수님, 성령 하나님께서 함께 지으셨습니다. 그리고 인간들에게는 4수를 주셨습니다. 그러므로 7수는 하늘과 땅을 합한 거룩한 수입니다. 또한 완전수, 충만한 수, 그리고 하나님이 일하실 수 있는 복된 수입니다. 하나님이 역사하시고, 하나님이 일하시는 판도가 됩니다. 집을 지으려면 터전이 있어야 하듯, 하나님의 터전이 되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430년간 애굽에 거주 하면서 민족의 역사와 절기를 잊어버렸습니다. 하나님은 천지창조 때부터 7일을 한 주로 삼으셨지만, 애굽의 달력은 10일이 한 주였습니다. 주일을 통한 하나님의 뜻을 알지 못하도록 사탄이 혼합해 놓은 결과입니다. 그러나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의 절기를 잊고 있을 때도 하나님은 7일의 주기를 한 번도 잊지 않고 세고 계셨습니다. 그래서 놀랍게도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 종살이에서 해방돼 나오던 BC 1446년은 아담 창조 (편집자 주: BC 4114년. 구속사 시리즈 제1권 ‘창세기의 족보’ (박윤식 저, 도서출판 휘선) 참조)부터 계산하면 희년에 해당됩니다. 신학자들에게 얘기하면 다들 놀라고, 노트에 적고, 계산을 해 봅니다. 저는 목회 초기 지리산에서 3년 6개월 7일 동안 기도할 때 이 말씀을 깨닫기까지 많이 울었고, 무릎을 치고 땅을 치며 많이 울었습니다. 피곤해서 혓바닥이 갈라지면 진달래 같은 꽃을 끓여서 소금과 같이 먹었습니다. 눈만 뜨면 절벽이고 산입니다. 1년에 8, 9개월은 안개와 구름으로 먼 산봉우리 몇 개 빼고는 아무 것도 보이지 않습니다. 2014년 1월 15일 오늘, 세기가 진동할 정도로 귀중한 이 말씀을 여러분이 처음으로 듣는 것이 얼마나 큰 복인지 깨달으시기 바랍니다.
▶ 하나님은 출애굽해서 나오던 BC 1446년 1월을 첫 해, 첫 달로 새롭게 제정하셨습니다. 바로 그해부터 예수님이 공생애를 시작하실 때까지 안식년이 210번, 희년이 30번 지나갔습니다. 예수님이 공생애를 시작하신 AD 26년은 놀랍게도 희년입니다.
▶ 인류의 시조 아담부터 출애굽(BC 1446)까지 희년이 55회, 안식년이 382회 지나갔습니다.
▶ 희년 절기가 선포된 BC 1446년부터 올해(AD 2014년)까지 안식년이 494회, 희년은 70회 지나갔습니다. 우리 평강교회가 2014년, 지금 안식년을 맞이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평강 성도들에게 천천만만의 복을 세세무궁토록 주시기 위해 이 말씀을 하시는데 등한히 여겨서야 되겠습니까. 아버님이 중병을 앓다 죽을 때 마지막으로 유언을 합니다. 그런데 그 유언을 귀담아듣지 않는 자식이 어디 있습니까. 저에게 이 말씀은 무척 아끼는 말씀입니다. 환난과 핍박과 오해 속에서 지켜온 말씀입니다.
▶ 아담부터 2014년 올해까지 희년이 125회, 안식년이 876회 지나갔습니다. 아담부터 예수님(AD 26)까지 희년이 85회, 안식년이 592회 지나갔습니다.
▶ 예수님 이후로 지금(2014년)까지는 희년을 40회, 안식년을 284회 맞이했습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출애굽한 BC 1446년에 안식년 절기를 공포하셨고, 그해 7월 1일(편집자 주: 이스라엘 농사력(農事曆)은 티쉬리월(7월)부터 한 해 시작)부터 첫 안식년이 시작됐습니다. 다음해인 BC 1445년 7월 10일부터 BC 1444년 7월 9일까지 첫 희년을 지켰습니다. 이 희년은 50년을 채운 뒤 맞은 희년이 아니기 때문에 희년의 횟수에는 포함되지 않습니다.
70이레
성경은 종말의 때를 ‘70이레’로 기록하고 있습니다(단 9:24-27). 70이레는 ①7이레 ②62이레 ③마지막 1이레의 세 부분으로 나뉩니다.
“그러므로 너는 깨달아 알지니라, 예루살렘을 중건하라는 영이 날 때부터 기름부음을 받은 자, 곧 왕이 일어나기까지 일곱 이레와 육십 이 이레가 지날 것이요. 그 때 곤란한 동안에 성이 중건되어 거리와 해자가 이룰 것이며”(단 9:25)
한 ‘이레’가 7일이므로 7이레는 49일, 62이레는 434일, 마지막 한 이레는 7일, 모두 합치면 490일입니다. 그런데 에스겔서 4장 6절 말씀대로 하루를 1년으로 계산하면 490년입니다. 70이레의 시작은 “예루살렘을 중건(重建)하라는 영(令)이 날 때”입니다. 이때는 바사 (페르시아) 왕 아닥사스다의 영으로 바벨론에서 2차 포로 귀환이 이뤄진 BC 458년입니다 (스 4:12-16, 9:9). “기름부음을 받은 자”는 그리스도입니다. 우리는 성경의 지명과 인명을 우습게 생각해선 안 됩니다. 왜 ‘그리스도’ 입니까. ‘하나님께서 기름 부으셨다’는 뜻입니다. 역대 선지자의 예언을 이룩해 인류에게 구속주(救贖主)가 되기 위해 오신 예수님께서 ‘기름부음’을 받은 때는 세례 요한에게 세례 받으신 때입니다. 이때가 공생애(共生涯) 첫 해입니다. 예수님 나이 30세이고, AD 26년입니다 (편집자 주: 예수 그리스도 탄생은 세계사적으로 BC 4년으로 공인돼 있음). 그러므로 예루살렘을 중건하라는 영이 날 때 (BC 458)부터 기름부음을 받은 자가 일어나기까지 (AD 26) ‘69이레’에 해당하는 483년이 정확히 경과한 것입니다. 한 치의 오차도 없습니다. 참으로 신기한 일입니다.
마지막 한 이레는 7년입니다.
“그가 장차 많은 사람으로 더불어 한 이레 동안의 언약을 굳게 정하겠고 그가 그 이레의 절반에 제사와 예물을 금지할 것이며, 또 잔포(殘暴)하여 미운 물건이 날개를 의지하여 설 것이며 또 이미 정한 종말까지 진노가 황폐케 하는 자에게 쏟아지리라 하였느니라” (단 9:27)
한 이레의 절반은 3년 반입니다. 그래서 ‘전(前) 3년 반’과 ‘후(後) 3년 반’으로 나뉩니다. 요한계시록 11, 12장에 기록된 ‘42달’, 즉 ‘3년 반’은 다니엘을 통해 주신 예언이 다시 연결되는 말씀입니다. 여기서 ‘전 3년 반’은 예수님께서 이 땅에서 가르치며 사역하신 기간 (AD 26-29)을 가리킵니다. 예수님이 사역을 마치고 죽으신 것도 누구 마음대로 된 것이 아닙니다. 누가 죽인다고 해서 죽으신 것도 아닙니다. 하나님이 예정하시고 작정하신 그 날짜에 된 것입니다. 일점일획도 어김이 없습니다.
성전과 희년
신기하게도 성경의 역대 성전 건축시기마다 희년이 정확하게 10회씩 반복되고 있습니다.
▶ 모세의 장막 성전이 완공된 BC 1445년부터 솔로몬 성전 (BC 966-959년 건축) 완공 직후인 BC 954년까지 희년을 10번 맞이했습니다. 희년을 10번 맞이하려면 490년 (70이레)이 지납니다. 열왕기상 6장 1절에는 솔로몬 왕이 성전 건축을 시작한 때가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 땅에서 나온지 480년’이라고 기록해 이를 뒷받침하고 있습니다.
▶ 솔로몬 성전 이후 스룹바벨 성전이 완공될 때까지 희년이 또다시 10번입니다 (BC 905-BC 464). 역시 490년 (70이레)이 지나간 것입니다.
▶ 스룹바벨 성전 이후 BC 415년부터 참 성전 되신 예수님의 공생애, AD 27년까지 희년이 또다시 10번입니다. 예수님께서는 공생애를 시작 하시면서 “이 성전을 헐라. 내가 3일 만에 다시 짓겠다” (요 2:19)고 하셨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몇십 년 지은 성전을 헐어? 그리고 3일 만에 다시 짓겠다고?’ 하며 예수님을 미친 사람 취급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내가 내 육체를 가리켜 말씀한다” 하셨습니다. 참 성전이신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박아도 3일 만에 부활하실 것을 말씀하신 것입니다.
에스겔 성전으로 건축된 희년
에스겔서 40-48장에 기록된 에스겔 성전의 측량 수치는 50의 배수(倍數)로 돼 있습니다. 50은 이스라엘의 희년, 즉 자유의 해를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어느 누구도 이 비밀을 아는 자가 없습니다. 앞으로 구속사 시리즈에 다 나올 것입니다.
구속사적으로 중요한 순간마다 펼쳐지는 희년과 안식년
아담은 BC 4114년에 창조받았습니다. 그 이후부터 구속사적으로 매우 중요한 순간마다 희년과 안식년이 펼쳐져 있습니다.
▶ 에녹의 아들 므두셀라 (아담의 8대손)가 출생한 해 (BC 3427)가 안식년입니다. 우리는 그저 남녀가 관계해 아이를 낳은 것으로 알지만, 성경을 볼 때 순수하게 하나님 뜻대로 사는 사람들이 하나님 뜻대로 아이를 낳은 것입니다.
▶ 아담의 6대손 야렛이 죽은 해 (BC 2692)가 안식년입니다 (창 5:16).
▶ 아담의 15대손 벨렉이 죽은 해 (BC 2118)도 안식년입니다 (창 11:16-19). 하나님과의 언약이 있는 아담의 후손들에게는 아들을 낳아도 안식년에 낳는 섭리가 임한 것입니다.
▶ 하나님이 아브라함과 구속사의 뼈대를 이루는 ‘횃불언약’을 맺으신 해가 희년입니다. 아브라함 84세인 BC 2082년입니다 (창 15:1-21).
▶ 요셉이 형들에게 미움 받아 17세에 애굽에 팔려 말도 못할 고생을 한 뒤 30세에 애굽의 국무총리가 된 해가 바로 희년 (BC 1886)입니다 (창 41:37-46:17). 이삭은 이 해에 180세를 향수하고 죽었습니다. 성경을 통해 이런 사실을 깨닫게 되면 깜짝깜짝 놀라고, 땅에 엎드려 입 맞추며 하나님께 감사하게 됩니다. 천하에 부러운 것이 없습니다. 우리 같은 죄인을 하나님이 구속하시기 위해서 이 땅에 보내실 때 아무 날짜에나 보내신 것이 아닙니다. 부모는 잊어버릴지언정 하나님은 잊지 않고, 안고, 끼고, 안내하신다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함께 하시고 동행하시고 늘 간섭하시는 것입니다.
▶ 야곱이 출생할 때 (BC 2006)가 안식년입니다. 하나님이 인정하시는 안식년에 태어난 것입니다. 그리고 147세를 산 뒤 죽은 해 (BC 1859)가 또 안식년입니다. 안식년에 나서 안식년에 갔으니 신비한 일체 아닙니까. 깨달아야 합니다.
안식년과 희년의 규례
레위기 25장에 안식년과 희년의 규례가 나옵니다. 전반부인 1-22절은 안식년과 희년의 규정으로, 안식년 소개 (1-7절), 희년의 정확한 계산법과 그날의 기본정리 (8-12절), 희년을 지킴으로써 얻는 유익 (13-22절)을 기록하셨습니다. 후반부인 23-55절은 희년 제도의 내용으로 토지 문제 (23-28절), 주택 문제 (29-34절), 이자 문제 (35-38절), 노예 해방 문제 (39-55절)가 나와 있습니다.
희년은 ‘기쁘고 복된 해’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수백만 명 있다 해도 한 사람도 손해를 보지 않습니다. 병든 자가 하나도 없습니다. 앓다가도 희년을 맞이하면 다 삽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그래서 희년을 기다리는 것입니다. 희년은 50년마다 한 번씩 지키기 때문에 일생에 한 번 맞거나, 한 번도 맞이하지 못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특별한 은총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나안 땅에 들어간 뒤, 가진 자는 점점 많아지고, 없는 자는 점점 더 가난해졌습니다. 균형이 맞지 않았습니다. 돈 있는 사람은 흥청망청 쓰는데, 없는 사람은 입에 풀칠하기도 바쁜 삶을 살다가 병들면 밭과 집까지 팔아야 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50년마다 바로잡으신 것입니다. 누가 돈을 꿨어도 희년이 되면 탕감됩니다. 가난해서 팔았던 땅도 희년이 되면 돌려받습니다. 약아빠진 인간들은 희년이 다가오면 돈을 숨깁니다. 그런 집에는 멸망과 저주가 임합니다. 감춰둔 돈들이 소리지릅니다. 눈이 멀고, 팔이 굽고, 걷지 못하게 됩니다. 그러나 규례를 지키면 다 편안합니다. 더 잘 됩니다. 욕심이 잉태한즉 죄를 낳는 것입니다.
땅은 분배하신 하나님의 것이기 때문에 영원히 판매가 금지됐습니다. 그래서 50년마다 본래 하나님께 분배받은 대로 돌아갑니다(레 25:23). 오랫동안의 거짓과 속임수를 청산하고, 사람을 창조하신 본래 목적대로 살게 하기 위한 것입니다. 가난한 자, 갇혀 있는 자에게 희년의 말씀이 임하면 완전히 해방됩니다. 신체의 자유, 마음의 자유, 가난에서 벗어나는 자유가 임합니다. 오늘 우리들도 알게 모르게 지은 죄가 얼마나 많습니까. 보이는 세계에서, 보이지 않는 세상에서 부채가 좀 많습니까. 남에게 신세진 것이 좀 많습니까. 그러나 주 앞에 다 내놓고 회개하고, 안식년과 희년을 맞이하면 다 탕감받는다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러므로 예수 앞에 오지 않으려 해도 안 올 수가 없습니다. 천상천하에 예수님만이 그런 권세와 능력이 있기 때문입니다. 예수를 빼놓은 희년, 안식년은 없습니다. 예수를 중심으로 안식년, 희년이 있다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근심하고, 울고, 빚 때문에 도망다니는 것을 원치 않으십니다. 잘 살기를 원하십니다(애 3:33).
희년의 개요
희년은 영어로 ‘Jubillee’입니다. 히브리어 ‘요벨’을 음역한 것입니다. 히브리어 ‘쉐난 하요벨’은 수양의 뿔입니다. 희년에는 수양의 뿔로 만든 양각(羊角)나팔을 불었기 때문에 이런 이름을 주셨습니다(레 25:9, 27:18, 27:23-24). 희년이라는 용어가 기록된 곳은 레위기 25장 11, 12, 13, 15, 33, 50, 52, 54절입니다. 희년은 안식년이 7번 지나고 49년째 7월 10일 속죄일에 나팔이 크게 울려퍼지며 시작됩니다 (레 25:8-9). 가나안에 들어간 정착한 후 하나님께 기업(基業)을 받은 그 시간을 기점으로 해서 안식년을 7번 맞은 후 시작한 것입니다. 49년째는 안식년, 50년째는 희년으로 2년 연거푸 쉽니다. 하나님께서 48년째 되는 해에는 3년 동안 먹을 것을 주셔서 남에게 꿀 필요 없게 하셨습니다. 무조건 씨만 뿌리면 3년 먹을 양식을 주시는 것입니다. 만나를 보십시오. 안식일을 앞두고는 두 배 거두게 하셨습니다. 그러나 보통 날에 욕심을 부려서 많이 거둔 사람들은 하룻밤 사이에 구더기가 나서 썩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만 따라 살면 되는 것입니다. 희년은 되돌리는 해입니다. 빚지고 종이 됐던 것(겔 46:17, 느 5:1-5)에서 다시 돌아오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천국에 사는 법을 이 땅에서부터 가르치신 것입니다.
희년은 가납(嘉納)의 해입니다. ‘가납’은 물건을 바치는 것을 고맙게 생각하고 기꺼이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희년은 은혜의 해, 신원(伸冤)의 날입니다 (사 61:2). 신원은 억울하게 뒤집어쓴 죄를 씻어주고, 가슴에 맺힌 원한을 풀어주며, 차별받았던 것을 회복해 주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신원의 날은 구속(救贖)입니다. 안식년과 희년을 통해 완전히 구속 속에 들어가 있으면 때있는 자가 목욕탕에서 깨끗이 때를 밀고 개운하고 시원해진 것과 같습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동족들끼리 이자 취하는 것을 금지하셨습니다 (레 25:30-38, 신 23:19-20). 주의 장막에 유할 자는 변리로 대금(貸金)치 않는 자라고 하셨습니다(시 15:5). 하나님은 가난한 자를 불쌍히 여겨 돕는 사람은 그 재산을 저축하는 것과 같다고 하셨습니다 (잠 28:8,출 22:25,레 25:35-37, 신 23:19-20, 느 5:7, 시 15:5, 겔 18:8,13,17, 22:12).
희년은 안식년과 깊은 관계가 있습니다. 안식년 법을 보완하고 확대, 강화한 것이 희년입니다. 안식년을 지난 후에도 인간의 힘으로 해결하지 못한 여러 문제, 과거의 모든 죄악과 습성을 완전히 청산하는 것입니다. 안식년은 면제년입니다 (신 15:1-9, 31:10). 부채를 면제해준 해입니다. 땅의 안식년입니다 (레 25:4-5). 하나님은 제7년째에 씨를 뿌리지 말고 땅을 쉬게 하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 백성들은 “그러면 뭘 먹고 삽니까”라며 말을 듣지 않았습니다. 하나님께서 직접 음성으로 “6년째에는 3년 먹을 것을 풍성하게 주겠다. 그런 뒤 안식년을 지켜라” 하셨지만 인간은 욕심 때문에 지키지 않았습니다. 결국 바벨론이 쳐들어와서 나라와 가정을 완전히 파괴시켰습니다. 70년간의 포로 기간 동안 이스라엘에는 농사지을 사람이 없으니 땅이 저절로 쉬게 됐습니다. 6년 동안 종으로 부린 사람을 7년째는 자유케 해야 하는데 이스라엘 백성들은 지키지 않았습니다. 지금도 사람 부려먹고 제대로 대접하지 않고 쫓아내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살인, 강도보다 더 나쁜 일입니다. 성경대로 살아야 하는 성도가 어떻게 그럴 수 있습니까. 저는 교회에 분뇨 푸러 오시는 분들과 함께 식사합니다. 얼마나 감사한 분들입니까. 정성껏 대접하고, 저도 함께 식사합니다. 다른 사람을 무시해서는 안 됩니다. 인도네시아 지교회의 성도들에게도 집안일 도와주는 사람들 차별하지 말고, 같은 식탁에서 식사하라고 가르칩니다.
안식년에 혜택 받은 대상은 일곱 부류로 나눌 수 있습니다.
1)땅 2)남종 3)여종 4)품꾼 5)객(客)들 6) 육축과 땅에 있는 것 7)들짐승입니다.
안식년과 희년은 사람을 괴롭힌 고통이 아니라 천국의 그림자입니다. 천국에 가면 빚도 고통도 걱정도 근심도 없습니다. 하나님의 생수와 만나로 늘 만족합니다. 여러분이 하늘나라 들어가는 연습을 하는데, 안식년과 희년을 철두철미하게 끝날까지 지키며 하나님께 감사하고 영광 돌리시기 바랍니다. 귀찮게 생각해서는 안 됩니다. 우리의 가난을 다 내쫓고 우리를 부자 만들어 주는 것이 안식년과 희년이라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예수님은 희년의 성취자
예수님은 안식일의 주인이고, 안식년의 주인이고, 희년의 주인입니다. 하나님은 천지창조 넷째 날에 해와 달과 별을 만드셨습니다 (창 1:14-19). 이때부터 연한(年限)과 사시(四時)가 비로소 시작돼 우주에 나이가 들기 시작했습니다. 나이가 오십 넘은 사람은 지구가 오십 바퀴 이상 돌았다는 얘기입니다. 하나님께는 연대(年代)가 없습니다 (히 1:12, 시 145:13, 히 13:8). 그런데 하나님도 이 지구에 일단 오시게 되면 날짜가 있습니다. 예수님이 공생애 출발할 때 30세였습니다. 시간과 공간의 제한을 받아 나이가 드셨던 것입니다. 그러나 마지막 때에는 날짜가 상관 없습니다. 예수님이 여러분과 같이 하시고, 동행하시면 바로 그것이 안식년이고 희년입니다. 그 나라는 날짜가 없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을 만나면 언제나 안식일, 안식년, 희년인 것입니다. 예수님은 “인자가 안식일의 주인”이라 하셨습니다 (마 12:8). 안식일이 사람을 위해서 있는 것이고, 사람이 안식일을 위해 있는 것이 아니라는 말씀입니다. 성도 여러분, 오늘 주신 말씀을 깨달으시기 바랍니다. 희년은 날짜 계산이 아닙니다. 예수님이 희년입니다. 오늘 본문 말씀처럼 “오늘 이 말씀이 너희 귀에 임했다” 하시는 때가 바로 안식년이고 희년입니다.
2014.1.15. 수요예배, 1.22 수요예배 휘선 박윤식 목사 설교
※ 본 설교에서 사용된 주전 연대는 해당 본문에 따라 니산 기준 방식, 티쉬리 기준 방식으로 표기하거나, 태양력으로 환산 했으며, 목회적 관점에서 성도들이 이해하기 쉽도록 표기하였습니다. 또한 각 인물들의 태어난 달에 따라 약간의 오차는 불가피합니다. 자세한 해석과 명확한 내용은 향후 발간될 구속사 시리즈 제12권을 통해서 공개될 예정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