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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슨 힘에 이끌려 또 한 해를 살아갈 것인가

2020.01.21 11:41

무슨 힘에 이끌려
또 한 해를 살아갈 것인가

로마서 8:28-39

희망찬 새해를 맞이했습니다. 영광의 꿈을 안고 하나님 앞에 나온 성도 여러분들의 머리 위에 주의 은혜가 충만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지난 한 해도 거친 세파에 수고를 많이 하셨습니다. 그러나 ‘송구영신’(送舊迎新) 했다고 해서 무엇이 달라지는 것은 아닙니다. 아침에 맞는 햇살은 오늘도 여전합니다. 삶에 지친 얼굴에는 주름살이 늘어갈 뿐입니다. 중요한 것은, 부단히 흘러가는 세월이라 할지라도 불변의 진리가 있다는 사실, 즉 살아 계신 하나님이 우리의 아버지가 된다는 사실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 영원한 진리의 말씀을 발견하고 소유하여 복음을 위해 헌신하는 삶이 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오늘까지 수많은 사람들이 세상을 살다 갔습니다. 오늘도 살고 있습니다. 앞으로도 살아갈 것입니다. 또한 빛을 찾아 빛을 남기고 간 분들도 많이 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영원히 지지 않는 의의 태양, 참빛 되시는 예수님을 바라보면서(눅 1:78, 요 1:9) 빛을 지향하고 살면서, 빛의 업적, 거룩한 믿음의 발자취를 남기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하는 것입니다.

인간 행복의 근원은 무엇인가

러시아의 인도주의자 톨스토이(Lev Nikolayevich Tolstoy, 1828-1910)는 ‘인간이 행복하게 살아갈 수 있는 힘의 근원이 도대체 무엇인가’ 하는 것을 깊이 생각해 보았다고 합니다. 그의 소설을 읽어 보면 알지만, 그의 글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부자, 귀족, 학자, 미인, 영웅, 예술가, 군인, 사제와 주교 등 각양 각색 인물들이 다 포함되어 있습니다. 세상의 유명한 인물들을 총동원했지만 ‘인간의 행복을 사람들 가운데서 하나도 발견하지 못했다’ 하는 것이 결론입니다. 돈과 권력과 명예가 인간의 힘의 근원이 되지 못하는 것을 깨달았다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톨스토이는 그의 소유의 전부를 가난하고 불쌍한 자들에게 다 나눠 주었다고 합니다. 그렇게 했는데도 불구하고 마음에 참평안이 오지 않았다고 했습니다. 톨스토이는 잠 못 이루는 밤을 견디지 못해 자살을 기도했지만 역시 실패하고 말았다고 합니다.
그는 산과 들을 헤매다가 어느 날 농장에서 묵묵히 농사를 짓고 있는 농부를 만나게 됐습니다. 비지땀을 흘려 가면서 일하는 농부, 소작(小作)을 하고 있는 가난한 농부였던 것입니다. 그 농부는 이마에서부터 온몸이 땀으로 젖어 있었는데, 그 흐르는 땀방울 속에서 톨스토이는 지금까지 그렇게 간절히 찾던 마음의 평화와 행복을 드디어 발견하게 되었다고 하면서 너무 기뻐서 마음에 춤을 추었다고 합니다. ‘나는 오늘날 내가 그토록 애쓰며 찾고 있던 마음의 평화와 행복을 발견했다. 하나님과 마음이 하나로 연결되어 있는 그 농부의 얼굴에서 평화와 행복을 발견할 수가 있었다’고 고백을 하였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톨스토이는 사랑과 평화와 행복의 뿌리를 오직 인간과 물질에만 두고 있는 마음의 우상에 대하여 큰 실망을 느꼈던 것이었습니다.
지난번 교회에 노인들을 한 번 초청한 적이 있었습니다. 그들의 모습을 한참 지켜보았습니다. 80세가 넘은 노인을 포함하여 약 40명이 모였습니다. ‘이들이 지금까지 한 세상을 살아오는 동안 그들의 삶을 이끌어 온 힘의 근원이 도대체 무엇인가’ 깊이 생각해 보았습니다. 어떤 80세의 할머니는 흘러간 옛 노래를 그야말로 수준급으로 멋지게 불러서 박수갈채를 받았습니다. 어떤 할아버지는 유행가의 기나긴 가사를 한 마디도 틀리지 않고 능수능란하게 잘 부르기도 했습니다.
어떤 노인은 매우 세련된 재치와 미소로 대중 앞에서 특기를 자랑하는데, 깜짝 놀랐습니다. 이 노인은 재치와 재간으로 세상을 살아온 것을 짐작할 수가 있었습니다. 재치 있는 사람은 사회에서 계급이 올라가고, 위치가 튼튼해지며, 돈도 잘 벌고, 인기도 좋고, 출세와 성공도 쉽게 할 수가 있습니다. 나도 좋게 하고 남도 좋게 하면서, 세상을 관리해 가면서, 즉 편리하게 살아갈 수가 있는 사람들입니다. 그 재치가 좋지 않게 쓰일 때가 있습니다. 이광수, 이완용, 이용구, 송병준 같은 사람들 보세요. 일본 정부에 협력하면서 한편으로는 한국의 유익을 위해서 일한다고 정당화하며 애국심을 주장하기까지 했습니다. 독재자에게 축복을 기원하는 목사들은 아주 재치 있는 사람들입니다. 순수한 복음을 말하면서 십자가를 교묘하게 피하는 교회의 지도자들, 재치로 예수를 믿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반공(反共)을 열심히 부르짖었던 인사들이 앞을 다투어 북한을 찬양하는 경우를 많이 보게 됩니다. 시대가 바뀔 때마다 기회를 잘 포착해서 남보다 앞서가며 눈치 있게 행동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독재자가 건재하면 독재를 지지하고, 독재자가 약해지면 정의와 진리를 외치는 것은 눈치 빠른 사람들이 취하는 처세술 아니겠습니까? 그런 재치는 인생을 근시안적으로만 보는 저열한 처세술입니다.
또 아주 팔자가 좋아 보이는 사람들을 만나게 됩니다. 팔자가 좋다고 은근히 과시하고 동네마다 친구들마다 자랑하고 다닙니다. 많은 사람들이 팔자타령으로 인생을 살아갑니다. 한국 사람들은 오랫동안 정의와 윤리에 근거한 역사관이 아니라 팔자(八字)에 근거한 역사관을 가지고 살아왔습니다. 사회적 정의와 나라의 유익보다는 개인적 가문의 번영을 더 중시합니다. 자기 가문이 빛나고 가정이 번영해야만 팔자가 좋은 것이라고 판단했기 때문입니다. 자손들에게 재산을 물려주는 것은 자손의 팔자를 좋게 만들어 주기 위함이 아니겠습니까? 많은 사람들이 팔자를 고치기 위한 수단으로 유교와 불교를 믿는다고 생각합니다. 선하게 살아가는 것보다 개인의 팔자를 더 중히 여기는 가운데, 한국 백성은 고조선 2천 2백 년, 고구려 백제 7백 년, 신라 1천 년, 고려 5백 년, 조선 5백 년, 일제 치하에 36년, 조국 분단 50여 년의 기나긴 역사를 통하여 동족상잔의 피비린내 나는 비극적 역사를 이어 오고 있습니다.
만일 기독교가 소위 팔자 좋은 것을 하나님의 축복으로 보고 고난과 고통을 멀리한다면 기복(祈福) 종교로 전락하고 말 것입니다. 신앙의 참뜻은 팔자 좋은 데 있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뜻을 이 땅에 실현하는 데 있는 것입니다. 요한복음 4:34, 5:30-32, 6:38, 8:29, 17장 전체, 히브리서 10:7, 요한일서 3:22 잊지 마세요. 요한복음 12:50을 읽어 보시기 바랍니다. 성도 여러분! 팔자가 좋아지기 위해서 교회 다니는 교인들이 있다면 교회의 사명과 교회의 미래를 위해서 매우 염려스러운 일입니다. 십자가로 인하여 생명과 재산을 모두 희생한 순교자의 고난 속에서, 기독교는 세상을 향해 구원과 승리를 선포할 수가 있습니다.

구약 역사를 보면, 유다 왕국 20명의 임금들 중에서 가장 행복하고 축복 받고 형통한 삶을 산 임금은 히스기야왕입니다(왕하 18:5-8). 그는 유다 왕으로서 큰 업적을 쌓는 데 성공했습니다. 그러나 이사야 38:1 말씀을 볼 때 이사야 선지자는 왕에게 사형 선고를 내리는 말씀을 전했습니다. 왕으로서의 성공과는 아무 상관없이 죄로 인한 죽음의 형벌이 발등에 떨어지게 된 것을 선고했습니다. 죽음 앞에 성공이 아무 소용이 없는 것이지요. 성공보다 더 귀하고 급한 것은 ‘회개’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다윗왕도 왕으로서 성공했으나 하나님은 그에게 성전을 건축할 자격을 주시지 않았습니다(대상 22:7-8). 인간적 성공이 하나님의 마음을 움직이지 못합니다. 히스기야왕이 회개하고 눈물을 흘리는 것을 보고 이사야는 히스기야왕에게 15년 동안 더 살 수 있는 은혜의 축복된 말씀을 전해 주었습니다(사 38:2-5).

성도 여러분! 하나님은 인간의 성공보다 인간의 회개하는 눈물을 더 귀하게 여기십니다. 성공만 하면 죽어도 한이 없다고 생각하지만, 막상 성공했을 때 인간의 마음속에 숨어 드는 허무와 고독은 성공보다 더 큰 문제가 되는 것을 깨달아야만 되겠습니다. 성공이 인생의 짐을 덜어 주는 것은 절대 아닙니다. 성공으로 인해서 더 무거운 짐을 지게 되는 것을 주변에서 많이 찾아보게 됩니다. 하나님 앞에 기도하면서 성공보다는 ‘선’과 ‘진리’와 ‘사랑’을 추구해야만 되겠습니다.

무슨 힘에 이끌려 살아갈 것인가

우리는 지난 한 해를 하나님의 은혜 가운데서 기적적으로 살아왔습니다. ‘도대체 무슨 힘으로 이 세상을 살아가야 할 것인가?’ 또 ‘무엇을 추구하면서 새해를 시작해야 하겠는가?’ 한번 깊이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재치로 살아가려고 합니까? 팔자타령하면서 살아가려고 마음먹고 있습니까? 그렇다면 성공을 추구하면서 열심히 살아야 되겠지요. 오늘 본문 로마서 8:28-39 말씀을 통하여 사도 바울이 진정으로 인생을 행복하게 살아가는 기본적인 자세를 말해 주고 있는데, 믿음으로 경청하시기 바랍니다. 기도하는 마음으로, 겸손한 마음으로 오늘 주시는 말씀을 받으세요.

하나님이 나를 위하신다는 믿음의 힘

로마서 8:31 “그런즉 이 일에 대하여 우리가 무슨 말 하리요 만일 하나님이 우리를 위하시면 누가 우리를 대적하리요”

금년 한 해 “하나님이 우리를 위하시면” 이 말씀을 잊지 마세요. 사도 바울의 근본적 관심은 재치나 팔자나 어떤 성공이 아니라 ‘하나님이 나를 위하시는 것’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나를 위하신다고 하는 신념이 확고히 서 있으면 모든 인생 문제는 저절로 해결된다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여러분이 하나님을 위하든지 혹은 하나님이 여러분을 위하든지 하나님과 여러분 사이에 유대가 강해지기만 하면 인생은 행복을 소유하게 된다는 것을 사도 바울은 확신하는 가운데 오늘날 저희들에게 선포하고 있지 않습니까?

스티븐 포스터(Stephen Collins Foster, 1826-1864)는 ‘오 수잔나(Oh! Susanna)’, ‘올드 블랙 조(Old Black Joe)’, ‘켄터키 옛집(My Old Kentucky Home)’ 등의 유명한 노래를 작곡한 음악가입니다. 그는 1864년 뉴욕 맨해튼의 빈민가를 전전하다 38세의 젊은 나이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그의 총재산이 얼마였는지 아십니까? 죽은 다음 주머니를 뒤져 보니 38센트가 나왔습니다. 38센트! 그것만 소유하고 있을 뿐이었습니다. 그가 죽은 후 유명 일간지들에 ‘그의 멜로디는 풍부했지만 말씀은 없었다’라는 기사가 났습니다. 감정은 풍부했지만 신앙심은 전혀 없었다고 평했던 것입니다.
지식은 풍부하지만 철학이 없는 것이 문제입니다. 돈은 풍부하지만 자비가 없는 것이 문제입니다. 선한 마음이 없습니다. 사랑을 부르짖지만 윤리가 없는 것이 문제입니다. 자녀는 훌륭하지만 부모의 마음은 고독으로 가득한 것이 현대인들의 큰 문제가 아니겠습니까? 왜 그런가 하면 사도 바울의 말대로 하나님이 함께하시지 않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위하지 않으면 만사가 다 허사로 허물어지고 맙니다. 그러나 성도 여러분, 기뻐하세요. ‘하나님이 우리를 위하시면’, 이 말씀 놓치지 마세요.

나를 정죄하지 않으시는 하나님의 용서하시는 은혜의 힘

로마서 8:34 “누가 정죄하리요 죽으실 뿐 아니라 다시 살아나신 이는 그리스도 예수시니 그는 하나님 우편에 계신 자요 우리를 위하여 간구하시는 자시니라”

사도 바울은 인생의 가장 큰 위로와 기쁨의 근원이 “정죄 당하지 않는 것, 용서받은 데 있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용서받지 못한 인간은 불쌍한 존재입니다. 부모가 자식을 용서하고 아내와 남편이 서로 용서하는 가정 속에 인생의 최대 행복이 있는 것입니다. 이웃 간에 용서가 없는 사회 속에서 불안이 안정감을 파괴하고 맙니다. 우리 교회 당회장 이하 전체 교역자들, 직원들, 장로님들, 권사, 집사, 각 기관장들, 기관, 피차에 용서하세요.
오늘날의 모든 어지러운 증상들은 근원적으로 말하자면 하나님의 용서를 받지 못하는 데서부터 기인된 불안 의식임을 성경은 분명히 말씀해 주고 있습니다. 오늘날 우리나라의 전직 대통령들을 보세요. 그 일가(一家)가 당하는 비극, 국민들로부터 용서를 받지 못하고 있는 데 원인이 있지 않습니까? 그러나 더 큰 문제는 하나님의 용서를 받을 만한 믿음이 없는 데 있습니다. 강원도 백담사에 가서 백일기도 아니라 천 번 기도 드리면 뭐합니까? 하나님 앞에 진정으로 용서받을 만한 회개가 없이는 어떤 종교적 행사도 용서를 보장해 주지 못합니다. 정죄함이 없이 죽으시고 다시 사신 예수 그리스도에게 돌아와서 회개하고 용서받는 그러한 대통령들이 되어야죠. 그때에 국민들은 마음으로 용서할 수가 있게 될 것입니다.
지난해에 용서받지 못한 무거운 삶의 짐을 그대로 짊어지고 새해를 살아갈 수가 없습니다. 용서를 받으려면 먼저 용서할 수 있는 믿음을 가져야 됩니다. 그러니까 큰 문제는, 용서받지 못하는 이유가 용서하지 못하는 데 있다는 것입니다. 생명이 살아가는 모든 은혜는 하늘로부터, 즉 하나님께로부터 거저 받은 은혜입니다. 우리가 거저 줄 수 있는 것은 오직 용서하는 주의 뜨거운 사랑밖에 없습니다. 주님의 마음밖에 없습니다. 하나님은 물질과 말보다 용서하는 뜨거운 마음을 더 원하십니다. 거저 받았으니 거저 줘야 됩니다.
오늘 말씀을 듣는 여러분들! 마음이 편치 못한, 좋지 못한 사람 있다면 용서하세요. 누가복음 23:34을 볼 때 예수님은 자신을 때리고 찌르고 가래침 뱉고 발길질하고 채찍질한, 오만 가지 욕설을 다 한 원수들을 향해서 “아버지여! 저들이 하는 짓을 몰라서 그러니 용서해 달라”고 하셨습니다. 그 주님을 저희들이 믿는 거예요. 용서하지 못한 인간을 대신해서 크게 용서의 모범을 보여 주신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사랑! 이 아침 시간에 여러분들 깨닫기 바랍니다.
용서받는 믿음과 용서하는 믿음이 하나로 연결되어서 금년 한 해 거저 용서해 주면서, 빛나는 새해, 원수가 없는 새해, 미움이 없는 새해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미움은 살인죄입니다(요일 3:12-15). 여러분들을 괴롭게 하고 죽인다 해도 원수를 사랑하세요. 절대 미워하지 마세요. 저의 신앙 일생의 지표로 삼고 있습니다. 마태복음 18:21-35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절대 끊어지지 않는 십자가 사랑의 힘

로마서 8:35 “누가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으리요 환난이나 곤고나 핍박이나 기근이나 적신이나 위험이나 칼이랴”

‘하나님이 나를 사랑하신다’는 신앙의 전제가 기독교 신앙의 특색입니다. 사랑은 화초의 뿌리와 같은 것입니다. 뿌리가 약하면 화초는 시들고 맙니다. 부부의 사랑이나 부모의 사랑, 이웃에 대한 사랑이나 어떤 종류의 사랑도 하나님이 나를 사랑하신다는 신앙 고백에 그 기초를 두어야 합니다. 그래야만 그 사랑이 시들지 않고 시냇가의 나무같이 영원할 수가 있기 때문입니다.

세상의 모든 사물에 대해서는 과학이 절대적이지만, 사랑의 세계에 있어서는 과학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 하나님의 기적적인 은혜가 전제입니다. 과학성이 결여될 때 우상이 생기게 되고, 하나님 말씀과 은혜와 믿음이 없는 사랑에는 부패와 타락과 죄악과 사망이 뒤따르게 마련입니다. 사람이 사람으로서의 삶을 살기 위해서는 하나님의 사랑을 받고 하나님의 사랑을 펼쳐야 합니다. 바울은 이 사랑을 체험했기에 이 사랑의 힘에 모든 것을 맡겨야 함을 가르치고 있는 것입니다.

결론
저는 어느 해 저문 날 사육신묘에 올라가서 당시의 상황을 읽어 보았습니다. 그리고 높은 데서 용산 쪽 한강을 바라보니 화물열차가 길게 지나가고 있었습니다. 이 끝에서 저 끝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긴 열차를 끌고 가는 것은 맨 앞에 있는 기관차입니다. 저 기관차의 힘이 얼마나 크기에 이렇게 많은 화물열차를 끌고 갈 수가 있을까? 그 모습을 바라보면서 이 세상을 끌고 가는 힘에 대하여 깊이 생각해 봤습니다. 그래서 오늘 설교를 하게 된 것입니다. ‘나의 인생이 지금까지 무슨 힘에 이끌려 이곳까지 왔느냐?’ 지금도 나와 여러분을 끌고 가는 힘이 도대체 무엇인가 하는 질문을 해 보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 한 해, 무슨 힘에 이끌려 또 한 해를 살아가려 하십니까? 사도 바울의 신앙 고백을 잊지 마세요. ‘하나님이 나를 위하신다는 믿음의 힘’으로, 둘째는 ‘나를 정죄하지 않으시는 하나님의 용서하시는 은혜의 힘’에 의해서, 셋째 ‘절대로 끊어지지 않는 십자가의 사랑의 힘’으로 이 한 해를 살아가겠다는 굳은 결심과 각오를 가지고, 아직 가 보지 못한 미지의 새해 정월 초하루부터 12월 31일까지 가기 위해서 힘찬 믿음의 발걸음을 내디디십시오. 반드시 승리하는 한 해가 되시길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1997년 1월 1일 수요일 신년예배 설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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