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안 인터뷰 : “세상의 모든 소방차도 이 사람한테 붙은 불을 끄지 못해” – 이재현 목사
“세상의 모든 소방차도
이 사람한테 붙은 불을 끄지 못해”
이재현 목사 퇴임인터뷰
(1971년 교회 등록 / 1986.6.23 목사 임직 / 1993-95년 당회장 역임)
1971년에 일석교회(평강제일교회 전신)에 나왔어요. 당시 감리교회에 다니고 있었고 산 기도, 철야 기도, 방언 기도 엄청 하던 사람이었지요. 지리산에서 기도하신 목사님이 있다고 해서 가보자 해서 왔지요. 알고 보니 성령님이 나를 빛 되신 말씀으로 인도하셨구나(요 14:26, 3:21) 하는 걸 깨닫게 됐죠. 박윤식 목사님이 성경을 해석해 주시는데, 정확하게 말씀을 알게 됐고 기도의 능력도 체험하게 됐지요. 당시 성도가 200명 정도 모였는데, 23살이었던 내 또래가 아무도 없었어요. 젊은 사람이 없었지요. 당시 나는 농아학교 교사로 있던 시절인데 박 목사님이 나를 부르셨어요. 훑어보시더니 “조상이 선하게 살았다”고 하시며, 누가복음 12장 49절 말씀을 주시면서 “전 세계의 소방차가 와서 달라붙어도 안 꺼지는 불이 와서 붙었다”고 말씀하셨어요.
내가 불을 땅에 던지러 왔노니 이 불이 이미 붙었으면 내가 무엇을 원하리요. (눅 12:49)
여운초 목사님을 따라다니면서 전도하고 성경공부 가르치는 것을 배웠지요. 나는 이 말씀에 푹 빠져서 이 말씀이라면 아프리카 어디에 가라고 해도 순종할 마음이어서, 신학을 공부하고 1981년도에 미국 LA에서 목사 안수를 받았어요. 내 나이 33살이었지요. 워싱턴 근처 메릴랜드주에 창립돼 전극화 장로님이 계시던 교회로 나를 발령하셨어요. 청소년들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세우고 개혁시키라고 하셨어요. 그 후 미국에서 3년 목회하고. 1986년 6월 23일에 한국으로 들어와 여기서 목회를 하기 시작한 거예요.
성도의 1달러 헌금 가치를 알기까지
박윤식 목사님께서 목사 임직 때 주신 말씀이 잠언 27장 23절 말씀이에요. 참 목자는 늘 양 떼를 부지런히 살피고 저 양이 왜 우는지, 어디가 아픈지 그걸 늘 보살피라는 거예요. 소떼에게 마음을 두라고 하셨어요. 그리고 미국에 이민 간 성도들이 어떻게 달러를 버는지 알아야 한다고 말씀하셨어. 담임목사라고 일주일 내내 놀다가 주일에만 설교하는 짓거리 하지 말고, 평일에는 일을 하라고 하셔서 식당 가서 채소를 썰었어요. 남들은 몇 대야를 썰어내는데, 나는 너무 일을 못 하는 거예요. 그 사람들도 딱했지요. 나를 어느 파트에 두겠어요. 언어가 안 되니깐 계산대도 못 맡기고. 몇 개월 다니다가 호텔에 들어갔어요. 내가 청소는 잘 하는데, 잘 해도 빨라야 해요. 낑낑거리며 해도 방 10개 청소를 못 해요. 그런데도 8시간 일하고 나니깐 얼마나 힘들어요. 집에 오면 ‘나 목사 안수받아 가지고 이게 뭐예요.’ 하고 원망도 했지요. 그래도 성도들이 1달러 헌금하는 게 얼마나 힘든 거구나 하고 성도들의 마음을 알았어요. 그분의 목적은 성도들의 마음을 헤아리는 목자가 되라고 하신 거지요.
네 양떼의 형편을 부지런히 살피며 네 소떼에 마음을 두라. (잠 27:23)
젊었을 때는 그게 뭔지 몰랐는데, 점점 나이가 들면서. 교구를 맡을 때 나는 그 교구가 어떤 상황이든지 감사했어요. 성령이 나와 함께 하시고, 말씀이 나와 함께 하시면 능히 감당한다는 것을 체험했기에 어딜 맡든 최선을 다해서 후회가 없어요. 그래도 남자들 속에서 여자 목사로 사명을 감당하는 게 너무 힘든 일이었어요. 왜 나이도 어린 나를 목사를 시키고 미국에 보내신 건지 다들 궁금해했어요. 나는 학벌도, 언변도, 지식도, 인물도 없어요. 1983년, 내가 35살 때 노량진 대성교회에서 시편 84편의 바카 골짜기에 대한 설교를 했어요. 우리가 눈물 골짜기를 건너야 예루살렘에 가요. 눈물 없이는 못 갑니다. 성도들이 그 설교를 듣고 은혜받았고 나도 은혜 받았어요. 그때 김경한 장로님이 내 손을 꼭 잡아 주시면서 왜 나를 목사 시키셨는지 알겠다고 하셨어요. 나도 잊지 못해요.
박윤식 목사님이 3년 6개월간 미국에 계시던 시기에 나를 3년간 당회장으로 임명하셨어요. 나에게 권력에 대한 욕심이나 야망이 전혀 없다는 것을 다른 목사님들도 아셨어요. 나는 말씀에 순종해서 양떼를 살피고 소떼에 마음을 뒀어요. 성도들이 박 목사님께 기도를 부탁하고 싶으면서도 어려워서 말을 못 하는 분들이 계셨어요. 성도들의 사정을 대신 듣고, 너무 불쌍해서 그대로 가서 말씀드리면 도와 주시곤 했지요.
불쌍한 사람 도와 주고 위로해 주는 교회가 돼야 합니다
신림동 일석교회에 처음 왔을 때 교회에 자동차가 한 대밖에 없었어요. 내가 증인이에요. 자동차 두 대만 있었으면 좋겠다 하던 곳에서 이렇게 주일마다 차로 가득 차게 키워주셨어요. 성장한 교회를 보면 우리의 사명이 더욱 커진 것 같아요. 구속사 말씀도 나눠 주고 불쌍한 사람 도와 주고, 지친 사람에게 위로가 되어 주는 교회가 되어야지요. 그래서 평강제일교회에 오고 싶은 마음이 생기도록 말이에요. 나는 앞으로 성도들 위해서 그 나라 갈 때까지 기도할 뿐이에요. 나는 어려서부터 교회를 아주 좋아했어요. 시편의 말씀처럼 나는 주의 궁정에서 한 날이 다른 곳에서 천 날보다 좋았어요(시 84:10). 그래서 교회에서 아이들 가르치고, 성가대하고, 여러 역할 하는 것들을 기쁘게 했지요. 교회에서 사는 것이 얼마나 꿈이었는지 몰라요. 그래서 70세까지 전 세계 평강의 성도들과 함께 고민을 나누고 울면서 기쁘고 즐겁게 사역을 마치게 되어서 감사해요.
“내가 선한 싸움을 싸우고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으니 이제 후로는 나를 위하여 의의 면류관이 예비되었으므로 주 곧 의로우신 재판장이 그 날에 내게 주실 것이니 내게만 아니라 주의 나타나심을 사모하는 모든 자에게니라” (딤후 4:7-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