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생에 다시 없는, 주님이 받으신 마지막 감사
일생에 다시 없는,
주님이 받으신 마지막 감사
막 14:1-9
농부가 농사를 지을 때 비가 안 와도 마음이 타고, 너무 많이 내려도 농작물을 망칠까봐 애를 태웁니다. 추수감사절은 이처럼 성도가 알곡이 되어 천국 곳간에 들어갈 수 있는지를 가늠하는 절기입니다. 그래서 신앙의 양심이 살아 있는 사람들은 추수감사절이 되면 마음이 무거워집니다. 하나님은 말씀을 들으라 명령하셨는데, 말씀을 들었습니까? 성경 읽으라 하셨는데, 읽었습니까? 하나님 말씀대로 생활하라고 하셨는데, 그렇게 했습니까? 추수감사절을 헌금이나 바치고 마는 절기로 생각하면 안 됩니다. 내가 천국 갈 자격이 있는지 돌아봐야 합니다. 유월절,맥추절,장막절 모두 이 문제와 관련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신앙생활을 똑똑히 해야 합니다. 몇십 년 교회 다녔는데도 추수감사절의 뜻을 못 깨달아서는 안 됩니다. 우리는 이 땅에서 100년을 못 삽니다. 내가 천국 들어가느냐, 못 들어가느냐의 문제입니다. 열매 맺지 못한 나무마다 도끼가 나무 뿌리에 놓였다고 하셨습니다(마 3:10).
악취 나는 인간 사이에서 진한 향기를 뿜은 마지막 감사
오늘 본문에서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너희들에게 부탁한다. 내 복음을 천하에 전할 때 이 여자가 나에게 행한 것을 그대로 전해다오” 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천지 창조 이후 6천년 동안 주님께 이런 말씀을 들은 사람은 오직 이 여자, 마리아뿐입니다. 예수님을 믿는다는 사람이 많았고, 제자들은 3년 동안 예수님을 따라다녔지만 모두 불합격이었습니다. 이 여자 하나입니다. 예수님이 이 여자 때문에 위로받으셨습니다. 이 현장은 고난주간 셋째 날, 즉 화요일에 일어난 일입니다. 예수님이 체포되시기 불과 이틀 전입니다. 종교 지도자들이 예수님을 죽이기 위해 악에 받친 음모를 꾸미고, 사랑하는 제자들이 배신하기 직전인 그 긴박한 순간에 한 여자가 뜨거운 사랑으로 주님을 눈물겹게 사랑하는 모습입니다. 그 모습이 악취 나는 인간들 사이에서 진한 향기를 뿜어내며 오늘날 성경을 읽는 우리의 개인, 직장, 사업에까지 그 향기를 미치게 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을 믿는다면 삶에 향기가 가득해 집에 가나, 직장에 가나 그 향기를 풍겨야 합니다. 우리는 향기는커녕 미움과 시기와 질투가 가득하지는 않습니까? 성경은 당시 모습을 “향유 냄새가 집에 가득하더라”(요 12:3)라고 기록했습니다. 추수감사절을 맞이하면서 이 여자와 같은 ‘마지막 감사’를 드리시기 바랍니다. 오늘 준비 못 했다면 다음 주일에라도 힘 다하고 충성 다하는 성도가 될지언정, 추수감사절을 우습게 여기는 사람이 없으시길 바랍니다.
이 여인은 예수님이 식사하시는 자리에 향유를 가져와 뭐라 말도 없이 예수님의 머리에 향유를 부었습니다. 머리칼을 풀고 엎드려 예수님의 발에 입 맞추고, 머리털로 발을 씻었습니다. ‘씻다’는 헬라어 원어로 ‘에크맛소’로, ‘닦아내다. 골고루 문질러주다’라는 뜻입니다. 깨닫지 못한 사람은 그 모습을 보고 ‘뭐가 씌워서 저런 짓을 하느냐’ 하며 오해했을 것입니다. 누가복음 7:44에는 여자가 ‘울며 눈물로 그 발을 적시고, 자기 머리털로 씻고, 그 발에 입 맞추고, 향유를 부으니’라고 기록돼 있습니다. 눈물과 향유가 뒤섞였다는 것입니다. 왜입니까? 내일 모레면 예수님이 붙잡히셔서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시기 때문입니다. 제자들은 모릅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너희들은 나를 봄으로 복이 있다. 많은 의인과 선지자들이 나를 보려 하다가 보지 못하고 죽었다.”(마 13:16-17) 하셨지만 제자들의 마음에는 와 닿지 않았습니다. 예수님이 메시야인 줄, 뱀의 머리를 깨부술 ‘여자의 후손’(창 3:15)인 줄 몰랐기 때문입니다.
자기 육신과 미련을 깨뜨려 부순 여인
마리아가 예수님께 한 행동은 당시의 문화에서 최고의 감사입니다. 그녀가 부은 것은 ‘나드의 향유 한 근’입니다(막 14:5,요 12:5). 이 향유는 오직 인도에서만 나는 귀한 기름으로 여왕들만 쓰던 최상품입니다(아 1:12,4:13-14). 보통의 향유는 올리브유에 향유를 섞은 것이지만 마리아가 부은 향유는 ‘순전한’, 즉 아무 것도 섞지 않은 100%의 향유였습니다. 다이아몬드나 금보다 더 값진 귀중품으로 한 근(340g) 가격이 300데나리온이었습니다. 장정이 1년 동안 먹지 못하고 일해야 벌 수 있는 돈입니다. 요한복음 6:7에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시험하시기 위해 3일 동안 수만 명을 광야에 머물러 있게 하실 때 빌립이 “이 많은 사람을 먹이려면 200데나리온이 있어야 합니다” 했습니다. 수만 명이 먹을 식량 가격이 200데나리온인데, 나드의 향유 한 근이 300데나리온이니 얼마나 고가인지 알 수 있지 않습니까. 게다가 마리아는 향유가 들어 있던 고급 옥합을 깨뜨려서 부었습니다. 뜻으로 말하면 자기 육신을 깨뜨려 부순 것입니다. 세상 물질에 대해 이제 미련이 없다는 선언입니다.
그런데 마리아의 이런 행동을 본 제자들은 전부 분(憤)을 냈습니다. “아니, 이걸 팔아서 가난한 자들을 위해 구제하면 좋은데 왜 허비하느냐”고 했습니다. 제자들은 예수님을 몰랐습니다. 메시야인 줄, 하나님께서 기름 부은 자인 줄 몰랐습니다. 그러니 인간의 생각으로 ‘허비’했다고, ‘가난한 자 구제하면 좋겠다’고 말한 것입니다. 참 답답합니다. 그러나 마리아는 예수님께 드리기 위해 옥합을 아예 깨뜨려 버렸습니다. 연 것이 아니라 깨뜨린 것입니다. 더 이상 ‘나’는 필요 없고, 마지막으로 이분께 감사하고 헌신하겠다고 마음먹은 것입니다. 가장 존경하고 사랑하는 사람이 죽었을 때 나드 기름을 바르면 시신의 악취가 금방 없어집니다. 악취가 집안에 진동하다가도 나드 기름 몇 방울만 떨어뜨리면 없어집니다. 여자가 옥합을 깨뜨리자 쫓겨 다니느라 손발 씻을 시간도 없던 제자들의 악취로 가득하던 방 안이 순간 향기로 진동했습니다. 이 장면을 모두가 지켜본 것입니다. 참으로 기가 막힌 말씀입니다. 죄악된 인간은 악취가 납니다. 선한 것이 없습니다. 다 문둥이같이 썩고 문드러집니다. 그래서 이 구절을 읽을 때마다 ‘내 생애가 이렇게 헌신의 향기로 가득해야 할 텐데’ 하는 다짐을 하게 됩니다.
제자들이 분노한 진짜 이유
그런데 제자들은 분이 가득했습니다(마 26:8,막 14:4). 가난한 자를 위하는 사랑이 있었다면 왜 분을 내겠습니까? 그들은 가난한 자를 생각했던 것이 아닙니다. 가룟 유다를 비롯한 제자들은 물질에 눈이 어두운 사람들이었습니다. 예수님께 돈이 들어오면 유다가 슬슬 훔쳐서 빼냈습니다. 나머지 제자들도 유다에게 얻어먹으니 그 덕을 조금씩 봐 왔던 것입니다. 탐욕에 눈이 어두운 유다와 제자들은 여자를 이상한 눈초리로 쏘아보고 괴롭혔습니다. 유다가 제일 앞장서 여자를 다그치고 책망하며(요 12:5-6), 여자를 당황하게 만들었습니다. 그는 가난한 자에게 관심도 없습니다. 도둑놈입니다. 사단이 가득한 자였습니다. 예수님을 앞장세워 밥이나 먹고 돈 버는데 이용하려고 하는 자였습니다. 제자들 앞에서는 ‘내가 만왕의 왕이요 구세주’라 하셔 놓고, 누가 와 있으면 말하지 말라고 하시는 예수님의 모습을 본 뒤 유다의 마음에서는 벌써 예수님이 떠났습니다. 예수와 같이 있으면 망신당할 테니 어느 정도 있다가 돈이나 벌고 떠나야겠다고 마음먹은 지 오래였습니다. 예수를 이용해서 돈이나 벌겠다는 무리들, 그 마음을 예수님께서는 아셨습니다. 그래서 요한복음 12장 6절에 “이렇게 말함은 가난한 자들을 생각함이 아니요, 저는 도적이라 돈 궤를 맡고 거기 넣는 것을 훔쳐 감이러라”고 하신 것입니다. 예수님은 유다가 헌금 궤 속에 있는 것을 슬슬 빼먹는 습관적 도둑놈임을 알고 계셨습니다. 다른 제자들은 유다가 도둑질하는 줄은 몰랐지만 돈을 맡은 유다와 친하게 지내면 얻어먹는 것이 있으니 가까이 지내려 한 것입니다. 그러니 유다의 마음이나 다른 열한 제자의 마음이나 다 도둑들입니다. 마음이 어둡고 눈이 먼 소경들입니다.
예수님은 여자에 대해 제자들과는 전혀 딴판의 반응을 보이셨습니다. “가난한 자들은 항상 너희와 함께 있거니와 나는 항상 함께 있지 아니하리라. 이 여자가 내 몸에 이 향유를 부은 것은 내 장사를 위하여 함이니라.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온 천하에 어디서든지 이 복음이 전파되는 곳에는 이 여자의 행한 일도 말하여 저를 기념하리라 하시니라”(마 26:11-13).
예수님의 사랑을 그토록 많이 받은 그들이
예수님의 이 말씀은 ‘내가 십자가에서 곧 죽지 않느냐. 이 여자는 내가 죽은 뒤에 향유를 바르는 것이 아니라 살아 있을 때 내 장사를 위해서 미리 힘을 다해서 예비했다’는 것입니다. 우리의 추수감사가 이러해야 합니다. 추수감사절 헌금하라고 하면 아까워 합니다. 자기 자신과 부인, 자식들을 위해 쓸 돈은 있어도 헌금 내려고 하면 아깝습니다. 손이 다 꼬부라졌습니다. 오죽하면 하나님께서 “네 손을 좀 펴라”(신 15:11) 하셨겠습니까. 밤낮 움켜쥐지 말고 헌금할 때는 헌금하라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너희들은 도적질하고 있지만 이 여자는 나를 위해서 손을 펴고 있지 않느냐’ 하시며 신명기 15장 11절 말씀을 이루시는 순간입니다.
예수님은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온 천하에 어디든지 이 복음이 전파되는 곳에 이 여자가 나한테 행한 것도 함께 말하라.”고 명령하셨습니다. 신,구약 성경을 찾아봐도 수많은 대제사장,장로,선지자,예언자 가운데 이런 평가를 받은 사람이 또 누가 있습니까(막 14:7-9,요 12:7-8). 십자가를 앞두고 얼마나 뼈에 사무치는 말씀입니까? 예수님은 죽음을 이틀 앞둔 비통한 마음 속에, 여우도 굴이 있고 나는 새도 깃들 곳이 있지만 당신만은 머리 두실 곳이 없는 고독 속에 계셨습니다. 그러나 열 두 제자는 눈 뜬 소경들입니다. 그저 헌금 들어오면 사서 먹을 생각뿐이었습니다. 3년 동안 예수님을 따라다니면서 하늘에 다함없는 비밀과 기사이적을 보지 않았습니까. 회당장 야이로의 딸을 살리시고, 죽은 나사로를 살리시고, 수만 명 병자들을 고치신 것을 다 보지 않았습니까. 어떻게 보리떡 두 개와 물고기 다섯 마리를 가지고 남자만 5천명을 먹이고 12 광주리가 남겠습니까. 그것을 예수님이 행하신 것을 그들이 다 보지 않았습니까. 예수님의 다함이 없는 사랑을 받은 사람들입니다. 부족함이 없도록 사랑받았습니다. “나와 끝까지 함께 하면 너희는 열두 보좌에 앉아 열두 지파를 심판할 심판자가 된다.” 하는 예수님의 말씀을 들었습니다. 실로 태양빛보다 7배나 더 밝은 빛 가운데 산 것입니다. 예수님이 “나는 빛이다. 인자가 있는 동안에는 빛이다. 내가 십자가에 달려 죽으면 캄캄한 밤이다. 그러니 빛이 있는 동안에 빛을 믿으라” (요 1:4,8:12,11:9-10,12:35-36) 하셨지만, 저들은 예수를 이용해 밥이나 먹고, 돈 있으면 집에 슬슬 갖다 주며 눈치나 보는 자들이었습니다. 예수님은 그것을 다 알고 계셨습니다. 제자들의 마음은 언제나 칠흑 같은 밤이었습니다. 햇빛,달빛,별빛이 없는 밤이었습니다. 예수님이 그것을 아시고 “어두움에 다니지 않도록 하라, 어두움에 붙잡히면 눈이 멀어서 갈 바를 알지 못한다”고 하신 것입니다. 제자들은 그저 육의 생각, 세상이 마음에 가득 차 있었습니다. 무엇을 주면 내놓지 못하고, 손을 펴지 못하는 인생이었습니다.
주의 죽음을 미리 준비한 가슴 아픈 헌신
창세기 3:15에 인류 구원을 위해서 여자를 준비하고 여자에게서 메시야가 나오는데, 그가 뱀의 머리를 깨뜨리신다고 했습니다. 바로 그분인데 그분인 줄 몰랐습니다. 예수님이 누누이 말씀해 주셨으나 믿지 않았습니다. 깨닫지 못했습니다. 예수님이 하시는 것을 그저 육으로만 생각했습니다. 머리에는 하나님 말씀은 텅 비고 세상이 꽉 차 있습니다. 그저 육신의 정욕, 안목의 정욕, 이생의 자랑만 가득차 ‘돈,돈,돈’ 하며 ‘돈 없으면 죽는다’고 했습니다. 그런 제자들에게 예수님이 “왜들 떠드느냐? 이 여자가 나한테 좋은 일을 한 것이다. 내 장사를 위해 힘을 다하고 미리 준비한 것을 나한테 한 것이다”고 선언하시는 것입니다.
여자가 ‘미리 준비한 것’을 했다는 것입니다. 갑자기 한 것이 아닙니다. 추수감사는 힘을 다해 준비하고, 미리 준비해야 합니다. 저는 얼마 안 되지만 교회에서 받은 1년 생활비 중 1/3을 떼어서 추수감사절에 바칩니다. 제가 드릴 때 사회하는 목사님이 보시는데 거짓말 할 수 있겠습니까. 그렇게 떼어서 드리지 않으면 다 쓰게 됩니다. 누가 도와 달라고 하면 도와줘야 하고, 이리저리 다 나갑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가난한 자들은 항상 너희와 함께 있거니와 나는 항상 함께 있지 아니하리라”(막 14:7) 하셨습니다. 이렇게 말씀하실 때 깨달아야 할 것 아닙니까. 인류의 대속(代贖)을 위해서 주님이 십자가에 죽으신다고 말씀하시는데 제자들은 관심도 없었습니다. 그러나 여자는 ‘예수님의 장사를 위하여’ ‘힘을 다해’(막 14:8) 향유를 발라드린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내가 죽은 뒤에는 마땅히 하겠지만 내가 살았을 때에는 천상천하에 이 여자밖에 없구나” 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종자 하나를 거두신 것입니다. ‘내 장사를 미리 준비했다’(막 14:8)가 원문에는 ‘나의 장사할 날을 대비하여 이것을 간직하여 왔다’입니다. 인류의 죄를 속하시기 위해 죄를 알지도 못하시는 그 분이 십자가를 지시는 순간에, 여자가 장사를 미리 지내드림으로써 예수님이 마음 놓고 떠나실 수 있었던 것입니다. 우리는 그런 추수감사를 해야 합니다. 장차 보배로운 피를 흘리실 예수님의 죽음을 예견하고, 미리부터 준비한, 실로 가슴 아픈 헌신입니다. 예수님과 함께 있을 시간이 이틀밖에 안 남았으니 그 기회를 포착해서 놓치지 않고 드린 감사, 그런 기념비적인 추수 감사를 해야 합니다. 실로 마리아의 감사는 주님의 마음을 뜨겁게 감동시켰습니다. 이 땅 위에서 예수님이 고난 받기 직전에 마지막 받으신 대접, 마지막 받으신 감사입니다. “내 마음이 민망하여 죽게 되었다. 나를 위해서 기도해 달라”고 하실 때 제자들은 기도하지 않고 다 졸지 않았습니까. ‘모두가 주를 버려도 나는 안 버리겠다’고 맹세했던 베드로는 먼저 도망가지 않았습니까. 주님 십자가에 달리신 후에는 ‘나는 바다에 고기 잡으러 가겠다’고 제자들을 선동해 데리고 가지 않았습니까. 우리에게 아까울 것이 뭐가 있겠습니까. 이 말씀을 듣기 전까지 손을 펴지도 못하고 딱 쥐고 있었지만 이제는 하나님 앞에 칭찬받고 기념이 될 만한 감사를 해야 합니다.
나에게도 기념비적 감사가 있어야
성도 여러분. 어떤 감사이기에 주님은 칭찬하고 기념까지 하라고 하셨습니까.
예수님을 최고로 귀하게 여긴 감사입니다. 여자는 천상 천하에 예수님이 최고인 것을 알았고, 믿었습니다. 당시는 예수님에 대한 공식 체포령이 내려져(요 11:57), 그토록 큰 은혜를 입은 사람들마저 주를 외면하던 때였습니다. 그러나 베다니 시몬의 집은 예수님에게 받은 은혜가 너무 컸습니다. 마리아는 죽은 지 나흘이나 돼 썩어가던 오빠 나사로를 예수님이 살리시는 것을 직접 목도했습니다. 여러분도 지금까지 은혜 받고, 치료받은 것이 많지 않습니까. 마음이 괴롭고 속상하고 어찌할 바를 모를 때 교회 나와서 하나님 말씀받고 위로 받고 치료받지 않았습니까. 여자는 평생 모은 전 재산을 깨뜨려 나드 향유를 다 붓고도 충분하다고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부족하다. 내가 제대로 대접해야 할 텐데’ 하는 마음을 가졌습니다. 예수님을 보자 그립던 부모, 사랑하는 아내, 자식 만난 것보다 더 반갑고 감격스러웠습니다. 예수님을 생명의 주님, 창조주, 이 땅에 오신 만왕의 왕, 메시야로 믿었기 때문입니다. 메시야, 그리스도는 ‘기름부음 받은 자’(단 9:25,요 1:41)라는 뜻입니다. 그것을 여자는 알았던 것입니다.
앞을 내다보고 기회를 놓치지 않는 감사입니다. 이제 예수님이 떠나시면 다시는 만날 수가 없습니다. 여자는 그 기회를 놓치지 않고 향유로 자기 물질을 바쳤습니다. 눈물을 뿌림으로써 자기 마음 구석, 생애를 다 바쳤습니다. 머리털로 발을 씻음으로써 자기 몸을 바쳤습니다. 전 존재를 주님께 진심으로 헌신한 것입니다. 우리가 평생을 살면서 하나님 앞에 가서 남는 것은 주님께 감사하는 것, 하나님 앞에 찬양하는 것, 하나님 앞에 헌신하는 것, 이 세 가지뿐입니다. 이 세상 정욕도 이생의 자랑도 다 지나가지만 하나님의 뜻을 행한 사람은 영원히 그 나라에 거합니다(요일 2:17).
성도 여러분. 목사, 장로, 권사, 집사 할 것 없이 ‘하나님 앞에 양심상 내가 죽어도 신앙의 열매 맺고 가겠다’고 하는 마리아와 같은 마음을 가지면 자손만대에 아브라함의 축복이 가정마다 임할 줄 믿으시기 바랍니다. 오늘 설교가 제가 이 세상 떠나기 전 마지막 설교인줄 알고, 자손만대에 이 말씀을 잊지 마십시오. ‘마지막 감사’의 신앙으로 감사드려야 합니다. 오랫동안 간직하고 준비했던 여자가 예수님 앞에 마지막 헌신하는 모습이 악취 나는 인간들 사이에서 진한 향기로 온 방을 진동시켰듯이, 여러분의 마지막 헌신,봉사로 여러분의 가족과 사업, 우리 교회에 향기가 진동하고 만사가 형통하시기를 바랍니다. 오늘부터의 생활에 구원의 잔, 은혜의 잔, 물질의 잔이 넘치는(시 116:13) 역사가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휘선 박윤식 목사 설교 (2008.11.16 평강제일교회
주일2부예배, 11.23 미국 올랜도 푸른동산교회 주일예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