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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산 자의 하나님을 믿습니다

2019.11.05 01:31

나는 산 자의 하나님을
믿습니다

마 22:23-33

저와 여러분은 오늘날까지 신앙생활하면서 ‘산 자의 하나님’을 믿고 있습니까? 오늘 본문인 마태복음 22:32과 출애굽기 3:6, 사도행전 7:32을 볼 때 하나님은 죽은 자의 하나님이 아닙니다. 산 자의 하나님이십니다. 오늘 본문은 사두개인들이 부활에 대해 예수님과 논쟁하려고 찾아온 장면입니다. 사두개인들은 다윗 왕 때 대제사장의 후손들로 덕망 높은 명문가였지만 신앙이 타락해 영도, 부활도 부정하며 ‘사람은 죽고 나면 그만’이라고 주장하는 자들이었습니다(행 23:6-11). 사람이 죽었다 살아난다는 예수님의 가르침에 대한 소문이 자자해지자 예수님께 도전해 골탕을 먹이기 위해서 찾아온 것입니다. “7형제가 있는데 맏형이 먼저 죽었습니다. 그러면 형수는 유대 율법에 따라 동생의 부인이 될 텐데, 그런 식으로 7형제가 모두 형수와 결혼했다가 죽는다면 그 형수는 부활 때에 7형제 중 누구의 아내가 되겠습니까” 라고 예수님께 따져 물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답하셨습니다. “너희가 성경도, 하나님의 능력도 알지 못하는 고로 오해하였도다. 부활 때에는 장가도 아니 가고 시집도 아니 가고 하늘에 있는 천사들과 같으니라. 죽은 자의 부활을 의논할진대 하나님이 너희에게 말씀하신 바 ‘나는 아브라함의 하나님이요 이삭의 하나님이요 야곱의 하나님이로라’ 하신 것을 읽어 보지 못하였느냐 하나님은 죽은 자의 하나님이 아니요 산 자의 하나님이시니라” (마 22:27-32)

여기서 “나는 아브라함의 하나님이요 이삭의 하나님이요 야곱의 하나님이로라” 하신 말씀은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하셨던 말씀입니다. 모세가 애굽에서 고통 받는 이스라엘 백성을 위해 부름 받았을 때 하나님께서 가시나무 떨기 가운데 모세에게 하신 말씀을 예수님이 다시 꺼내서 하신 것입니다. 사두개인들은 모세 5경을 신봉하던 자들이라 예수님의 이 말씀을 듣고는 놀라서 감히 더 이상 예수님께 묻지 못했습니다.
예수님 시대로부터 아브라함은 무려 2천 년 전의 사람입니다. 2천 년이 흘렀으니 아브라함의 머리털까지 다 삭아 없어졌을 겁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아브라함과 그의 아들 이삭, 그리고 이삭의 아들 야곱이 죽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누가복음에는 더 세밀하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죽은 자의 하나님이 아니요 산 자의 하나님이시라 하나님에게는 모든 사람이 살았느니라 하시니”(눅 20:38)

그러면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산 자’라고 말씀하신 의미가 무엇입니까
아브라함은 언제 ‘산 자’가 됐습니까. 하나님께서 그가 84세 때 장막에서 이끌어 내셔서 “네 몸에서 난 자식이 하늘의 별처럼 많아질 것이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나이가 80이 넘도록 자식이 없을 때입니다. 자신도 늙고, 아내는 이미 경수가 끊어져 자식 얻을 소망이 없어지고 종 엘리에셀을 후계자로 삼겠다고 하나님께 아뢰었을 때 하나님이 이 말씀을 주신 것입니다. 인간적으로는 도저히 믿을 수 없는 말씀입니다. 그런데 아브라함은 믿었습니다. 100% 믿었습니다(창 15:6). 그때 하나님께서 그 믿음을 의(義)로 여기셨습니다. 성도 여러분. 여러분이라면 믿을 수 있었겠습니까. 아브라함은 그 믿음으로 생명을 받은 것입니다. ‘죽은 자’였던 그가 부활의 이름을 받은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산 자’라고 인정해 주신 것입니다. 아벨이 죽었지만 그 믿음으로 지금까지 말하고 있다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히 11:4).
믿음은 우리가 말씀을 믿고 언약을 믿을 때 우리 속에서 요동합니다. 날선 검같이 예리해서 영과 혼과 육까지 찌를 수 있는 하나님의 권세 있는 말씀을 아브라함이 받은 것입니다. 그 말씀을 믿는 순간 아브라함은 부활의 영을 받았습니다. 그래서 아브라함은 산 것입니다. 하나님은 ‘산 아브라함’의 하나님이 되신 것입니다(마 27:50-53, 눅 20:38).

창세기에는 세 조상이 등장합니다.
첫 조상 아담은 인류의 조상이지만 불순종의 조상, 사망의 조상입니다. 사망과 고통, 괴로움, 눈물, 한숨, 우수사려를 다 가져다 준 ‘죽은 자의 조상’입니다(롬 5:12, 6:23).
아담의 10대손 노아는 당세에 완전한 사람입니다. 의인으로 인정받았습니다(창 6:7-13, 1:28). 하나님께서 그에게 아담과 똑같은 축복을 주셨습니다(창 9:1). 그러나 둘째 아들 함으로 말미암아 그 축복이 깨어지고 말았습니다.
다시 10대가 지나 노아의 10대손 아브라함이 나타났습니다. 그는 하나님의 말씀을 믿음으로써 믿음의 조상이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 2천여 년 만에 이 땅에서 잊어버렸던 믿음을 되찾으신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을 ‘믿음의 조상’이라고 인정하셨습니다.
“그러므로 후사가 되는 이것이 은혜에 속하기 위하여 믿음으로 되나니 이는 그 약속을 그 모든 후손에게 굳게 하려 하심이라 율법에 속한 자에게 뿐 아니라 아브라함의 믿음에 속한 자에게도니 아브라함은 하나님 앞에서 우리 모든 사람의 조상이라”(롬 4:16)

아무리 애써도 일이 안 되다가 도와줄 누군가를 만나면 주위에서 “야, 이제 너 살았다. 그 사람은 널 도와줄 거야.”라고 합니다. 마찬가지로 아브라함은 분명 죽음의 조상인 아담의 후예였지만 믿음으로 살아나 새로운 조상이 되었습니다. 아담은 불신과 사망, 무덤, 눈물, 고통, 괴로움, 근심의 조상, 되는 것도 없고 안 되는 것도 없이 어영부영하는 인생의 조상이지만, 아브라함은 모든 문제가 해결되는 조상입니다. 그래서 믿음 있는 사람은 아브라함과 똑같은 축복을 받습니다(갈 3:7-9). 믿음으로 구원받는 도리가 아브라함에서부터 시작됐습니다. 대속물 되신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피에 생명이 있다는 보혈의 공로를 믿는 부활 신앙의 원리입니다(롬 4:3-25, 8:1-2, 벧전 1:18, 25, 히 9:22, 레 17:11, 마 20:28, 롬 6:1-23, 창 15:6-7).


성도 여러분, 여러분은 아브라함같이 말씀의 언약을 믿고 있습니까. 부활의 신앙을 믿지 못하면 모두 거짓입니다. 믿지 못하면 정직하지 못합니다. 성실하지 못합니다. 욕심이 가득합니다. 예수님을 믿는다면 예수님의 마음을 닮아야 합니다(빌 2:5). 남을 싫어하고 저주하는 것은 예수님의 마음이 아닙니다. 예수님의 마음은 누가 더 좋고 누구는 싫고, 누구에게 더 마음이 가는 것이 없습니다. 어떤 죄인도, 어떤 환경에 있는 사람에게도 똑같이 향해서 구원의 반열에 세우는 일을 하신 분입니다. 예수님을 믿는다면 욕심이 없어야 합니다. 자기 정과 욕심을 십자가에 못 박아 죽여야 한다고 바울은 갈라디아 교회에 말씀했습니다. 한번 성을 내면 공든 신앙의 탑이 다 무너집니다(약 1:20). 하나님의 뜻을 이룩할 수 없습니다. 90세가 다 된 나이에 ‘네 몸에서 난 후손이 하늘의 별처럼 많아질 것’이라는 말씀을 믿은 아브라함처럼 확고한 믿음이 있어야 합니다. ‘이게 될까?’ 하니 안 되는 것입니다. 신앙도 사업도 모험입니다. 믿는 자에게는 능치 못함이 없고 안 되는 것이 없습니다.
아브라함의 아들 이삭도 산 자의 하나님을 믿었습니다. 흉년이 들었지만 믿고 씨를 뿌렸습니다. 믿지 않는 블레셋이 뿌린 씨는 바싹 타 죽었지만 이삭은 백 배의 결실을 맺었습니다. 믿고 판 우물에 샘물이 터졌습니다, 믿지 않는 블레셋이 판 땅에는 물이 나오지 않았습니다. 아브라함의 자손들은 말씀대로 하늘의 별 같은 존재가 됐습니다. 많은 사람을 옳은 데로 인도하는 사람은 별같이 빛난다고 했습니다(단 12:3).

성도 여러분. 산 자의 하나님을 믿어야 합니다.
하나님은 생명 자체입니다. 말씀이 생명입니다. 그러니까 “나사로야 일어나라!”, “다비다야 일어나라! “나인성 과부의 아들 청년아 일어나라!”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래서 ‘언약(言約)’이 말씀 언(言) 자를 쓰지 않습니까. 말씀이 왔을 때 그것을 믿어야 합니다. 누가복음 20장 34-38절 말씀을 볼 때 아브라함은 성령을 따라 부활을 약속받는 산 자의 조상이 됐습니다. 부활은 죽은 사람이 다시 성령으로 살아남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영입니다. “내가 너희에게 이른 말이 영이요 생명이라” 하셨습니다. 말씀을 받을 때 하나님의 영을 받고, 하나님의 생명을 받는 것입니다(요 5:24-25). 그 음성을 들을 때 죽은 자의 무덤에서 산 말씀을 통해 다시 새로 살아나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 모세도 자신의 조상인 아브라함,이삭,야곱이 죽은 줄로만 알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나는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이라는 말씀을 들은 뒤 이 3대의 신관(神觀)을 깨닫고 놀랐습니다. 이 말씀을 듣고 비로소 바로에 대한 두려움을 떨치고 담대하게 애굽으로 들어갔습니다.
육신적으로 생각할 때는 사라는 아이를 낳을 수 없습니다. ‘죽은 태(胎)’였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은 그 모든 경계를 유월절 때처럼 뛰어넘어 버리셨습니다. ‘산 태(胎)’가 된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한계 앞에 막히지 않습니다. 통과해 넘어가 버립니다. 사라는 자식이 있겠다는 하나님의 천사의 말씀을 들었을 때 장막에서 몰래 웃었습니다. 믿을 수 없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천사가 사라가 웃은 것을 알고 “네가 왜 웃느냐?” 물으니 소스라치게 놀랐습니다. 그런 하나님입니다. 사라도 믿지 않을 수 없게 하신 것입니다.

우리는 부활의 영을 받고 있습니다. 부활의 말씀을 받고 있습니다. 마지막에 죽지 않고 살아서 홀연히 변화됩니다. 이 말씀이 100% 믿어져야 합니다. 여러분은 신령한 부활의 몸으로서, 그 터전 위에서 죽지 않고 사는, 변화의 말씀을 믿는 성도가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사망을 잡아먹는 놀라운 말씀의 능력과 권세, 마지막 비밀을 가지고 있는 여러분입니다. 생명이 사망을 삼켜버립니다.
“천지는 없어지겠으나 내 말은 세상이 다 지나가기 전에 이룩한다”고 하는 마태복음 24:34-35 말씀을 꼭 믿으십시오.
“그가 만물을 자기에게 복종케 하실 수 있는 자의 역사로 우리의 낮은 몸을 자기 영광의 몸의 형체와 같이 변케 하시리라” 하신 빌립보서 3장 21절 말씀을 믿으십시오.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무릇 살아서 믿으면 영원히 산다.” (요 11:25-26) 하신 말씀을 믿으십시오. 이것이 결론입니다.
“죽어서 천당 가려고 신앙생활한다”고 하지 마십시오. 성경은 그렇게 가르치고 있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염라대왕처럼 죽은 영혼이나 찾으시는 분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죽은 자를 데리고 일하시지 않습니다.
이제 죽은 하나님이 아닌 산 하나님을 믿으시기 바랍니다(신 5:26, 수 3:10, 시 42:2, 렘 10:10, 호 1:10, 고후 3:3, 딤전 4:10, 히 3:12). 하나님과 간격을 두지 마시고 기차들이 연결되듯 하나님께 바짝 붙어서 “하나님에게는 모든 사람이 살아났다.”, “하나님께서 살려주셨다.”는 것을 믿고, 나를 부활의 영으로 축복해 주셨다는 것을 믿으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이 세상의 자녀들은 장가도 가고 시집도 가되 저 세상과 및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함을 얻기에 합당히 여김을 입은 자들은 장가가고 시집가는 일이 없으며 저희는 다시 죽을 수도 없나니 이는 천사와 동등이요 부활의 자녀로서 하나님의 자녀임이니라 죽은 자의 살아난다는 것은 모세도 가시나무떨기에 관한 글에 보였으되 주를 아브라함의 하나님이요 이삭의 하나님이요 야곱의 하나님이시라 칭하였나니 하나님은 죽은 자의 하나님이 아니요 산 자의 하나님이시라 하나님에게는 모든 사람이 살았느니라 하시니”(눅 20:34-38)
무엇으로 살아 있습니까? 믿음으로, 그리고 주시는 말씀으로 살아 있습니다. 말씀으로 약속된[言約] 하나님을 믿고, 우리도 살았다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우리에게 한 가지 남은 것은 살아서 예수님과 결혼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신랑 되시고 우리는 신부입니다 (계 19:7-8). 예수님은 만방에 영원히 빛날 선물을 가지고 하늘나라에서 기다리십니다. 그 결혼식에 가기 위해 입성할 때 천군 천사가 우리를 영접합니다. 죽음도, 아픔도, 눈물도, 괴로움도 없는 세계입니다. 세상 고생은 한 순간에 다 잊어 버립니다(계 21:4). 그날을 생각할 때 이 세상에서 무슨 욕심을 부리겠습니까. 욕심이라면 기도할 욕심, 은혜 받을 욕심뿐이어야 합니다. 이제부터 어디 있든지 낙심하지 말고 “나는 산 하나님의 아들이다, 나는 하나님의 딸이다!”하는 자부심을 가지고 용기 백배해서 이 어려운 세상에서 승리하는 모두가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하겠습니다.
2004년 8월 15일 주일예배 휘선 박윤식 목사 설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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