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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안인터뷰 : 운명적인 부르심에 붙잡힌 삶 (오다니엘 목사 2편)

2019.10.14 17:50

운명적인 부르심에 붙잡힌 삶

초기 미주 선교의 증인 오다니엘 목사 (2편)

(1편에서 계속)

목사 안수(1982.12.24)를 받으신 뒤 어디서 목회하셨나요?
당시 국내 지교회가 본격적으로 세워지기 시작했어요. 처음 세워진 지교회가 대전입니다(1984년 2월). 다들 원로목사님(휘선 박윤식 목사) 품을 떠나기 싫어하는데 안갈렙(당시 이름은 안도경) 목사님이 자원하셨어요. 두번째가 광주입니다(1985년 9월). 그 다음으로 1986년 6월에 원로목사님께서 ‘은혜교회’라는 이름을 주시면서 저를 울산으로 보내셨어요. “가서 목회 경험을 해라. 단독 목회 경험이 있어야 한다”고 하셨죠. 무슨 계획으로 그러시는지 모르고 갔죠. 고생 참 많이 했습니다. 한 달에 월급 10만 원을 받았어요. 십일조 만 원 드리고 9만원 가지고 살았어요. 제과점이 있는 건물에 세 든 교회였는데, 그 제과점 식빵을 사다가 아침에 두 장, 점심에 두 장, 저녁에 두 장, 그렇게 먹고 살았습니다. 가끔 기사식당 가서 밥 먹으면 그게 제일 잘 먹는 거예요. 제 처는 단 하루도 울산에 내려오지 못했어요. 원로목사님의 엄명이었죠. 어느 날은 몰래 내려와서 뭐 어떻게 사는지 좀 보려고 하면 어떻게 아셨는지 새벽같이 전화를 하셔서 뭔가 교회 일을 부탁하셨대요. 하루도 내려온 적이 없습니다.

왜 그러셨을 거라 생각하셨어요?
고생하라는 거죠. ‘목회라는 것이 쉬운 게 아니다. 너 고생해 봐라’ 하는 겁니다. 저는 방송 전문가인데 목사 안수 받은 뒤 한 번도 원로목사님께서 교회의 방송과 관련된 일을 맡기신 적이 없어요. 뒤돌아보지 않겠다는 저의 속마음을 읽고 계셨을 것이고, 목회자로 제 역할을 하려면 단독 목회를 훈련받아야 한다는 뜻일 겁니다.저 혼자 하기 힘든 빨래는 모아서 가끔 서울 집에 가서 빨래를 해서 왔어요. 그것도 차비가 걱정되니까 자주는 못하고. 제 처도 그때 완전히 말씀에 불이 붙어서 여운초 목사님, 홍순분 전도사님, 박정순 권사님 같은 분들 모시고 하루 대여섯 집씩 성경공부를 다닐 때였습니다.

그렇게 고생하셨는데 후회한 적은 없습니까?
전혀 없습니다. 집이 없어서 빌딩 옥상에 슬레이트로 만든 움막 비슷한 곳에서 살았거든요. 비 오면 빗물이 다 들어오니 양동이 가져다 받쳐놓고, 춥기는 말도 못하고, 그런데서 목회를 하다 보니 어느 정도 ‘포기’가 되더라고요. 이것이 내가 가야 할 길인데, 내가 목회 선서할 때 분명히 그렇게 약속했는데 이제 와서 싫다고 돌아설 순 없었습니다. 방송국에서의 생활은 굉장히 화려했고, 목회를 시작하면서의 경험은 너무 고생이니까 극과 극을 체험한 겁니다.

그 다음 임지는 어디였습니까?
1980년부터 원로목사님이 미국 선교의 열망을 품으셨지요. 제일 먼저 세운 것이 LA의 동광교회, 그리고 몇 달 차이를 두고 워싱턴DC 성화교회입니다. 미국의 대표적인 두 곳이지요. 울산에서 목회한 지 딱 1년이 되니까 저를 부르시더니 빨리 미국에 가야 한다고 하시더라고요. 1987년 6월이에요. 이미 여러 목회자가 워싱턴 교회를 다녀갔지만 아직 교회다운 모습을 갖추고 있지 못할 때였습니다. 원로목사님은 참 그 교회를 사랑하셨어요. 재미있는 것은 제가 목요일에 워싱턴으로 떠났는데, 워싱턴으로 간다는 얘기를 수요일 밤에 들었어요. 저를 초청해 준 오은철 목사님이 LA에 계셨거든요. 김홍진 목사님하고 같이 LA에 도착했어요. 김홍진 목사님은 LA에 눌러 계시고, 저한테는 워싱턴으로 가라고 하셔서 그 다음 날 바로 비행기타고 워싱턴으로 간 거예요.

가보니 성도들이 교회에 오기는 하는데 계속 붙어 있질 않아서 숫자가 열다섯 명 정도 됐어요. 원로목사님께서 저한테 “말씀 공부에 치중하라. 전심전력으로 공부시켜라”고 당부하셨어요. 저도 목회는 말씀이 중심이 돼야 한다는 것을 그동안 배워서 알았고. 재주도 성경 가르치는 것밖에 없으니 ‘무료 성경학교’를 열고 말씀 공부를 많이 시켰어요. 그때는 교회들이 그런 걸 할 때가 아닙니다. 그랬더니 차츰 소문이 나서 다른 교회 다니던 사람들이 많이 찾아온 거예요. 일반 신도들보다 여선교회 회장, 남선교회 회장, 무슨 총무…이런 지도자급들이 많이 왔어요. 1년 만에 120명이 넘었습니다. 어려움이 없지는 않았지만 그렇게 3년간 목회를 잘 하고 있었죠.

그런데 또 옮기게 되셨군요?
1990년 6월 어느 날 원로목사님이 갑자기 “오 목사가 보스턴에 좀 가야겠다”고 하세요. 저는 갑자기 미국에 왔기 때문에 그때까지 보스턴이 어디 있는지도 잘 몰랐어요. “보스턴에 가면 하버드를 비롯해서 일류 대학이 다 있고, 자녀 교육에도 아주 좋을 테니 그리로 가라”고 하시는 거예요. 보스턴에 가면 도대체 누가 있는 지, 어떤 사람들이 모여 있는지, 교회를 할 만한 준비가 돼 있는지, 아무것도 아는 게 없었어 요. 원로목사님께 여쭤봤더니 “보스턴 가면 자야가 있다”고 하시더라고요. 자야? 그게 누군 지, 본 적도 없는 사람이었지요. 지도책 하나 펴놓고 차를 몰고 가는데 참 막막했어요. 가서 후미진 동네에 임시 거처를 마련해 짐을 푼 뒤밤새 한잠도 못 자고 아침부터 자야라는 사람을 찾아 나섰어요. 가보니 자야라는 분하고, 서너 분이 같이 기다리고 있더라고요. 자야는 알고 보니 한국에 계실 때 의정부에 살던 추복자권사님이라는 분이에요. 미군인 남편이 보스 턴으로 발령받으면서 같이 보스턴으로 온 거죠. 가서 인사를 했더니 덮어놓고 “말씀 공부 해야죠” 그러시더라고요. 만나자마자 뭐 다른 소개도 없어요. 그래서 그날부터 말씀 공부를한 거에요.

나중에 그 성경공부 자리에 여자 성도 두 분이 타코마에서부터 찾아오셨어요. 대성교회에서 오용한이라는 목사가 와서 보스턴에 교회를 세운다는 소문을 듣고 친구들이 무슨 이상한 공부를 하나 해서 걱정이 돼서 그 멀리까지 오신 거예요. 그중 한 분이 이미현 집사님인데, 나중에 목회자가 되신 바나바 핍스 목사님의 사모님이고, 또 한 분은 홍영자 집사님 인데, 역시 목사님이 되신 존 맥컬리 목사님의 사모님이에요. 1주일간 옆에서 성경공부를 같이 듣더니 완전히 뒤집힌 거죠. 그래서 그 분들이 타코마로 돌아가서는 집을 하나 구입해서 차고를 교회로 개조했어요. 그 교회가 지금 타코마 푸른초장교회와 시애틀 오직예수교 회의 모태가 됐습니다. 아직 보스턴은 교회도 없었는데, 보스턴에서 파생된 첫 번째 지교회인 셈입니다.

 

보스턴에서의 목회는 어땠습니까?
처음 다섯 명이던 성도가 1년 만에 150명으로 늘었습니다. 그때까지만 해도 해외 지교회를 많이 방문하시지 않던 원로목사님이 여러 번 찾아오셔서 격려해 주셨어요. 당시 보스턴 성광교회는 미군 장병인 남편과 한국인 부인으로 이뤄진 ‘한미 가정’들이 주축이 된 교회였어요. 원로목사님께서 그 가정들에 특별한 관심을 쏟으시면서 “저 분들한테 말씀을 전해서 영원한 삶을 알게 해줘라”라고 당부하셨었지요.

그러던 중에 보스턴에 있던 미군 기지(Fort Devens)가 폐쇄돼 군인들이 전국으로 흩어지게 된 겁니다. 150명까지 늘었던 교인이 반밖에 안 남았어요. 그렇지만 보스턴을 떠난 성도들에게 계속 녹음 테입을 보내서 말씀의 교제를 했지요. 그분들이 새로 정착한 지역에서 녹음 테입으로 전도를 했어요. 그러다 테입을 듣고 말씀에 은혜를 받으면 보스턴으로 말씀 공부를 하러 왔어요. 몇 명이 모였다고 하면 제가 직접 공부를 가르치러 현지로 가기도 했죠. 그렇게 말씀이 퍼져나간 주가 24개 주에 이릅니다. 이중 메사추세츠, 워싱턴, 사우스 캐롤라이나, 아칸소, 조지아 주에는 나중에 지교회가 설립됐죠. 한국의 평택과 독일까지 미군 가정을 통해 녹음 테입이 전해지면서 말씀의 씨가 뿌려졌어요. 앞서 말씀드린 존 맥컬리, 바나바 핍스 목사님 외에도 보스턴 출신 크리스틴 베티 목사님, 아칸소 출신인 존 대브니 목사님, 보스턴 출신인 프랭크 핸드릭스 전도사님 등 목회자들과, 지금 서울에서 시무하고 있는 마이클 헤밍 장로님, 그리고 얼마 전 미군 장성으로 진급한 젠 노리스 장로님 등 8명의 장로가 보스턴 성광교회를 통해 전도된 겁니다. 저에게는 목회자로서 보람 중의 보람이 아닐 수 없습니다. 처음에 부대가 폐쇄돼 성도 수가 절반으로 줄었을 때는 실망했지만, 말씀을 깨닫고 열매가 된 사람들을 타 지역으로 보내셔서 말씀이 확산되게 하신 하나님의 뜻임을 깨닫고 기뻐하게 됐습니다.

원로목사님께서 3년 6개월 해외선교를 하시던 때 가까이서 지켜보셨겠군요.
1994년 2월부터 1997년 8월까지였습니다. 힘든 시기였지만 사실 미국의 지교회들은 그 시기에 굉장히 힘을 얻었습니다. 교회들이 눈에 띄게 성장하고 교세가 활발하게 확장됐습니다. 원로목사님이 여러 교회를 순방하면서 힘을 주시고, 소외돼 있다고 느끼던 지교회 성도들을 자주 만나 주셨으니까요. 제가 섬기던 보스턴 성광교회도 크게 성장했습니다. 원로목사님이 “이제 한국 안 들어가고 미국을 중심으로 국제적으로 선교하겠다”고 말씀하시기까지 했어요. 그 무렵부터 ‘아브라함’이라는 이름도 쓰기 시작하셨고요.

원로목사님께 말씀을 듣기 위해 아칸소 주에서 미국인 성도들이 34시간 차를 몰고 뉴욕까지 오기도 했습니다. 원로목사님께서 무척 기뻐하셨지요. 그때 뿌려진 씨앗으로 지금 아칸소에 교회가 세워진 것 아닙니까. 원로목사님께서는 인도네시아를 자주 방문하시고 말씀 공부를 시키시면서 신앙 훈련을 강화하셨지요. 그때 원고도 많이 쓰셨습니다. 집필하시는 것을 제가 직접 보기도 했어요. 글씨가 참으로 명필입니다. 우리가 따라갈 수가 없어요.

그 후 어디로 옮기셨습니까?
보스턴 성광교회에서 8년 목회한 뒤 1998년 6월부터 뉴욕 늘푸른교회에서 시무하게 됐습니다. 1986년에 뉴욕 성도장로교회로 출발한 교회입니다. 처음에는 플러싱 지역에 있다가 장차 한국인들이 롱아일랜드로 많이 진출할 테니 옮기는 것이 좋겠다는 원로목사님 권면으로 롱아일랜드 힉스빌로 옮기면서 ‘늘푸른교회’로 이름을 바꿨습니다. 당시 안갈렙 담임목사님이 성전 건축을 계획하고 1995년에 조립공장 건물 3개 동을 구입하셨습니다. 이후 부임한 저는 목회자가 일생에 하나님이 계시는 성전을 건축한다는 것이 얼마나 큰 복인지 알기에 진심으로 감사하며 성전 건축을 본격적으로 시작하게 된 것이죠. 1999년 10월 17일에 성전 건축 공사가 기공됐습니다. 하나님의 것에는 최고의 것만 사용해야 한다고 늘 배웠기에 최고의 자재를 사용하며 정성을 쏟았습니다. 2000년 11월 21일에 성전이 완공됐습니다. 원로목사님께서 방문하셔서 “이제부터 늘푸른교회가 세계선교의 본부”라고 말씀해 주셨습니다. 그 후 실제로 여러 주에서 많은 성도들이 뉴욕으로 이주해 와서 성도 수가 크게 늘어났지요. 저는 앞으로도 뉴욕 교회가 그 사명을 감당할 것이라고 봅니다. 뉴욕은 세계 각국 사람들이 다 모여드는 곳이니까요. 그래서 성전도 크게 건축한 것입니다.

당시 성전은 완공됐지만 은행 빚이 남아 있어 헌당예배는 드리지 못했는데, 제가 2003년 12월 캐나다 토론토 산소망교회로 임지를 옮긴 뒤 후임 목사님께서 부채를 청산하시고 2008년 10월 7일에 헌당감사예배를 드렸어요. 그때 초대받아서 원로목사님을 모시고 예배를 드렸던 순간을 생각하면 지금도 가슴이 뭉클해집니다.
제가 보스턴에서는 성전 건축을 준비했었고, 뉴욕에서는 실제로 성전을 건축하면서 느낀 것은, 원로목사님의 목회 철학은 ‘홀로서기’를바라신다는 것입니다. 좀처럼 도와주시지 않아요. ‘왜 그러실까’ 생각도 많이 했지요. 결론은 홀로 서라는 것입니다. 아기가 기어다니기 시작하고, 일어서기 시작하고, 걷기 시작할 때 엄마가 계속 손을 잡아주지 않습니다. 그래야 아이가 제대로 자라는 거예요. 나중에야 ‘아, 그래서 이러시는구나’ 하고 깨달았습니다. 물론 지금 해외 교회들 중 본교회 도움 안 받고 성전 건축한 교회는 거의 없습니다. 결국은 필요할 때 다 도와주시지요.

 

 

 

미주 선교본부를 세운 계기를 소개해 주시죠.
미국을 중심으로 해외 목회자들이 친목단체로 ‘해외교역자협의회’라는 모임을 갖고 있었습니다. 이 모임을 눈여겨보셨던 원로목사님께서 ‘세계선교협의회(WMPC)’로 개칭해 주시고, 미 연방정부에 등록하라고 지시하셨습니다. 이후 구속사 시리즈가 출판됐고, 원로목사님은 구속사 말씀을 세계적으로 선포하기 위해 세계선교협의회를 다시 ‘미주대회’로 개칭하시고 2008년 1월 22일 미국 플로리다 주 올랜도에서 창립대회가 열렸습니다. 저는 해외교역자협의회 초대 회장과 WMPC 2대 회장을 지냈지요. 미주대회가 이후 호라(HORA)선교회로 확대돼 지금 구속사 말씀 선포에 전념하고 있는 것입니다.

1992년 7월에는 뉴욕 성도장로교회에서 목회하시던 안갈렙 목사님과 뜻을 모아 뉴욕의 캣스킬 마운틴 레인보우(Catskill Mountain Rainbow) 수양관에서 ‘노아복음선교회 선교대회’를 열었습니다. 미국 24개 주에서 말씀의 핵분열을 시도하고 있는 성도들이 한자리에 모여  말씀의 잔치를 벌였지요. 이 대회가 3년 연속 열렸습니다. 원로목사님께서도 참석하셔서 크게 기뻐하시고 칭찬해 주셨어요. 이 대회가 이후 세계선교연합대성회로 발전된 것이라고 저는 믿습니다.

목회하시면서 가장 어려웠던 순간은 언제입니까?
해외에서 목회를 한다는 것은, 어려웠던 순간보다 어렵지 않았던 순간을 생각하는 게 더 빠를 정도로 어려움의 연속입니다. 그중에도 기억나는 일은 1993년 가슴을 완전히 절개하는 심장 수술을 받았을 때입니다. ‘아직 주신 사명이 많이 남아 있는데, 오! 하나님, 어찌하시렵니까?’ 하고 부르짖을 수밖에 없었지요. 2000년에 2차 심장 수술, 2015년에 3차 수술을 했지만 은혜 가운데 지금까지 살고 있습니다. ‘오늘도 살아 있음에 감사한다’는 찬송을 부르며 하루 하루를 은혜로 살아가고 있습니다. 저는 원로목사님이 구속사 시리즈를 왜 쓰셨는지 우리가 알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앞으로도 기회가 주어지는 대로 저에게 주어진 것을 증거하려고 해요. 두 증인의 사명을 마쳐야 나도 하나님 앞에 서지 않겠습니까.

원로목사님께서는 늘 세 가지 준비를 하라고 하셨어요. 설교 준비, 죽을 준비, 이사할 준비입니다. 22년간 해외에서 목회하는 동안 갑작스런 발령과, 그 발령이 또 갑자기 취소되는 일을 많이 겪었습니다. 순종하는지 안 하는지를 보신 것이라고 생각해요. 하나님이 명령하셨을 때 그대로 하겠다는 자세를 보여드리면 시험에 통과했으니 그냥 넘어가시는 겁니다. 앞으로의 인생에서도 항상 세 가지가 준비된 상태로 살려고 합니다.

대담,정리: 호준석 기자
기록: 휘선기념사업회


오다니엘 목사는 홍정웅 장로와 이휘자 선교사 부부의 해외선교 활동도 우리 교회의 역사에 꼭 기록돼야 한다고 말했다. 산업은행 싱가포르 지점에 근무했던 홍 장로는 부인과 함께 1984년부터 1987년까지  가정 성경공부를 통해 여러 성도를 평강제일교회로 인도했다. 당시 성경공부를 녹음한 테이프를 홍혜란 성도가 인도네시아 페리 장로의 부인 김영애 권사에게 전달하면서 인도네시아 선교의 길이 열리기도 했다. 홍 장로가 주도해 세워진 ‘싱가포르 베이사이드 한국인 교회’에는 건설 근로자를 중심으로 100여 명이 모여 예배를 드렸다. 이들 부부는 임지가 스위스로 옮겨지자 스위스,독일에서도 매주 성경공부를 인도해 여러 성도들을 말씀 앞으로 인도했다. 1990년 6월에는 휘선 박윤식 목사가 이름지어준  ‘독일 언약교회’ 창립을 주도했고, 이 교회 에는 한국인 일곱 가정과 유학생 10여 명이 출석했다. 이들 부부가 귀국한 뒤 교회와 일부 성도들은 그대로 존속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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