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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자가의 속죄 은총만이 행복의 삶을 누릴 수 있다

2019.07.23 19:37

십자가의 속죄 은총만이

행복의 삶을 누릴 수 있다

 

시 32:1-5, 51:1-19, 고전 1:18-24

 

시편 32편과 51편은 다윗 왕이 무서운 죄를 진 뒤 동서남북을 바라봐도 대낮도 캄캄하게 보이고 이 땅에 태어난 자기를 저주할 정도로 미워하면서 하나님 앞에 눈물겹게 회개하는 장면입니다. 얼마나 뼈저리게 온몸의 진액을 짜가면서 회개했는지 눈물로 담요가 젖을 정도였습니다(시 6:6). 남편이 있는 부인을 데려다가 강간하다시피 하고 그 죄가 들통날까봐 남편을 전방에 내보내 적군의 손에 죽게 한 죄는 다윗 왕 자신밖에 모릅니다(시 51편). 그러나 살아 계신 하나님께서는 나단 선지자를 불러 다윗 왕의 죄를 고하신 후, 다윗 왕을 찾아가게 하셨습니다(삼하 12장). 다윗 왕이 범한 죄를 부자가 가난한 자의 양을 빼앗은 비유로 말씀할 때, 하나님이 얼마나 세밀하십니까? 다윗 왕이 마음먹은 것, 행동한 것을 나단 선지자가 일일이 다 말씀했습니다. 그러면서 너희 집에는 환난이 떠나지 않고 자녀들 간에 피비린내 나는 살인극이 있겠다고 예언했습니다. 

인간의 행복(幸福)과 가장 밀접한 관계가 있는 것은 죄(罪)의 문제입니다

시편 51편은 하나님께서 나단 선지자를 통해서 다윗 왕의 범죄를 폭로하실 때, 다윗 왕이 지은 일곱 가지 참회의 시 중 하나입니다. 다윗은 예수님의 조상으로 선발될 수 있을 만큼 성군이었지만 그 역시도 죄와 무관할 수 없었던 것입니다(마 1:1, 롬 3:10). 성 어거스틴의 참회록을 읽어보면, “내가 행한 일 중에 죄악이 아닌 것이 무엇인가! 내 말과 내 마음에 죄 아닌 것이 무엇이었던가! 오 주 예수여, 나의 모든 죄악을 사함 받는 길은 오직 예수님의 십자가밖에 없습니다.”라고 적혀있습니다. 자기의 실존(實存) 전체가 죄와 연관되어 있음을 고백하는 영혼의 절규입니다. 사도 바울 역시 “내가 원하는 바 선은 하지 아니하고 도리어 원치 아니하는 바 악은 행하는도다”라고 7번이나 탄식했습니다(롬 7장). 

시편 51:1-19 말씀을 볼 때, 다윗은 짧은 시에 14번이나 자신이 죄악과 관련되어 있는 것을 말씀했습니다. 하나님! 내 죄과를 도말해 달라고, 나의 죄악을 말갛게 씻겨 달라고, 나의 죄를 깨끗하게 제해 달라고, 나를 정결케 해달라고, 내가 눈보다 더 희게 해 달라고, 짤막한 시 가운데 14번이나 반복한 것입니다. 마치 자기의 죄악이 때 묻은 옷을 빨듯, 더러워진 몸을 목욕하듯, “하나님! 저 죽지 않고 살기를 원합니다. 행복하게 하나님만 의지하고 살기를 원합니다.”하고 간구한 것입니다. 죄를 숨겼을 때는 응답이 없더니 죄를 토설할 때, 다 게워 낼 때 하나님께서 그 죄를 사해 주셨습니다(시 32:5). 

따지고 보면 다윗은 왕이기에 그만한 일쯤은 다반사로 여길 수도 있고, 나단 선지자에게 평생에 한 번 죄를 지었다고 변명을 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다윗은 아무런 변명도 하지 않았습니다. 겉으로 나타난 자신의 죄는 그것 한 가지지만 “내가 죄악 중에 출생하였음이여 모친이 죄 중에 나를 잉태하였나이다”라고 고백하며, 그의 존재(存在) 전체가 죄와 깊이 연관되어 있음을 참회한 것입니다(시 51:5). 다윗은 시편 150편 가운데 73편을 썼습니다. 눈물겨운 말이 많이 있지만, 다윗은 하나님 앞에서 먹고 마시고 하나님 말씀을 중심으로 한 행복한 삶을 살기 원했습니다. 죄악을 해결하는 방법을 찾아야, 하나님의 인정을 받아야 살 수 있겠다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 신앙의 문제 중 가장 중요한 것은 우리 신자들에게 죄의식(罪意識)이 희박한 것입니다. 전부 ‘이까짓쯤’이라고 생각하며 가볍게 여기지만 이는 세상의 생각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죄가 많든 적든 죄가 있어서는 구원을 받지 못한다고 말씀하십니다. 여러분들은 신앙생활에 하나님, 세상, 의(義), 죄에 대한 경계선이 뚜렷해야 합니다. 사람들은 자신의 죄를 책망할 때 강한 거부감을 나타냅니다. 또 죄를 지은 자신의 정당성을 핏대를 올려 가면서 강하게 말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개인이나 가정, 교회, 나라, 민족에 죄가 있으면 안 됩니다. 세상은 죄 문제를 깊이 주의하지 않고 예사로 보기만 하며 내버려두지만, 하나님은 우리의 죄를 간과(看過)하지 않고 다 보십니다. 우리의 걸음과 마음까지 아십니다(단 5:25-27). 얼마나 무섭습니까. 죄는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며, 죄의 값은 사망입니다(롬 6:23). 

 

다윗은 자신의 죄를 하나님께 숨기지 않고 아뢴 결과 사함을 받았습니다

그렇다면 다윗 왕은 죄를 어떻게 해결했습니까? 우선 자신의 죄는 하나님께로부터 용서받아야 되겠다고, 마음을 다하고 정성을 다해서 뜨겁게 한약을 달여 짜듯이, 진액을 짜듯이 하나님 앞에 기도했습니다. 금식기도를 해가면서 가슴을 치고 머리칼을 쥐어뜯으며 기도한 것입니다. 하나님의 인자와 긍휼로 죄과를 도말해 주시기를 간절히 고백하되, 죄를 숨기고 내놓지 않으면 뼈가 짓눌리는 아픔이 있다고 했습니다(시 32:3). 다윗은 뼈까지 꺾이는 아픔 가운데 죄 사함을 받으므로 기뻐한 것입니다(시 51:8). 

우리는 죄를 지어 가슴이 아프고 뼈까지 아픔을 당하는 체험을 해봤습니까? 그저 덤덤하지는 않습니까. 다른 사람에 비하면 내가 지은 죄는 아무것도 아니라고 말하는 분들도 많습니다. 그러나 다윗은 여름 가물에 산천초목이 바싹 말라서 부스러지는 아픔을 겪었습니다(시 32:4). 죄의식은 사람의 진액을 바싹바싹 마르게 하고 속이 타게 하는 것입니다. 그러니 거기에 무슨 행복이 있습니까. 악인들에게는 많은 슬픔이 있습니다(시 32:10). 그래서 다윗은 자신의 죄를 하나님께 숨기지 않고 아뢴 결과 죄를 사함 받았습니다(시 34:18, 51:16-17).

다윗 왕은 자신의 범죄로 우리야의 아내 밧세바를 취해서 낳은 자식을 하나님께서 죽이시겠다고 할 때, 발을 동동 구르며 애원했지만 하나님은 그를 죽이셨습니다(삼하 12장). 다윗의 셋째 아들 압살롬은 백성들이 다 보는데서 다윗 왕의 후궁들과 동침했습니다(삼하 16장). 아버지 다윗의 죄 때문에 집안이 쑥대밭이 된 것입니다. 다윗의 아들 암논이 이복누이 다말을 강간하자 이를 안 다말의 오빠 압살롬이 칼을 빼서 암논뿐 아니라 다윗 왕이 낳은 아들들을 모조리 쳐 죽였습니다. 읽는 순간 피비린내가 코로 들어오는 것 같습니다. 죄의 결과, 나단 선지자가 예언한 그대로 된 것입니다(삼하 12:10-14). 셋째 아들 압살롬이 반역을 일으켰을 때 다윗은 얼마나 급한지 신발도 신지 못하고 맨발로 도망갔습니다. 이에 게라의 자손 시므이가 “피를 흘린 자여 비루한 자여 가거라 가거라”라고 조롱하자 위대한 왕 다윗은 오만 욕설을 기쁨으로 받았습니다(삼하 16:7-13). 

이런 다윗의 마음의 고통은 뼈를 꺾어 버리는 고통입니다. 그러나 다윗은 하나님의 채찍에 맞음으로 사랑하는 아들딸에게 매를 드시는 하나님 아버지의 사랑을 확인했습니다(히 12:5-6). 다윗은 죄를 짓고 난 다음 회개함으로 하늘에 계신 하나님 아버지의 마음을 아주 정확하게 알았습니다. 하나님은 제사를 원치 않으셨던 것입니다. 다윗 왕에게 제사를 지내는 것이야 얼마나 쉽습니까. 수만 마리도 바칠 수 있는 권세와 능력이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원하시는 제사는 ‘상한 심령’임을 다윗은 알았습니다. 이미 마음이 상하고 썩고 있으니 그것을 내어놓으라는 것입니다. 이처럼 하나님은 양심의 가책을 받고 고통 당하는 성도들의 아픈 심령을 기뻐하십니다. 누구한테 얘기할 필요 없이 하나님 앞에 회개하면 됩니다. 

이처럼 믿는 자의 행복은 성전에 나와서 간절히 기도할 때 이루어집니다(레 19:30, 26:2). 우리가 기도할 때마다 하나님이 가까이 오신다는데 왜 기도하지 않습니까?(신 4:7) 집에 어려운 문제가 가랑잎같이 첩첩이 쌓여 있는데도 기도하지 않는다면 하나님께서 가까이 오시지 않습니다. 나와 여러분은 나그네입니다. 우리가 잘 살아봐야 70년, 강건해야 80년입니다(시 90:10). 이 땅에 보내주신 것에 감사하고, 구원해 주신 것에 감사하시기 바랍니다. 내 아내가 보이고 사업체가 보이고 주일에 더군다나 복된 교회가 보이니 얼마나 감사합니까. 십일조는 하나님의 것입니다. 아홉은 우리가 갖고 하나만 하나님의 사업을 위해서 써달라는데 이것도 아까워해서는 안 됩니다(말 3:8). 아무리 믿지 못하고 아무리 바보라도 십일조를 떼어먹어서는 안 됩니다. 집안이 망하는 일입니다. 자식이 잘되기를 바란다면 십일조를 꼭 하시기 바랍니다. 건강할 때 하나님의 일을 많이 해야지, 병들어 죽을 때 후회해서는 늦습니다. 

 

믿는 자의 행복, 참 보람을 느끼는 길은 십자가를 통해서 죄 문제가 해결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욥을 통해서 “죄 없이 망한 자가 누구냐”고 하셨습니다(욥 4:7). 죄가 있어서는 잘 되는 것이 없다는 것입니다. 그 얼마나 우리들을 사랑하고 권고하시는 말씀입니까. 사람은 허물이 많지만 그 허물의 사함을 얻고 그 죄의 가리움을 받는 자는 복이 있습니다. 또한 마음에 간사가 없고 여호와께 정죄를 당치 않는 사람은 복이 있습니다(시 32:1-2). ‘간사’는 한자로 ‘간사할 간(奸), 속일 사(詐)’입니다. 간사하고 입만 뻥긋했다 하면 남을 잘 속인다면 그 자식까지 망합니다. 

죄 문제를 해결받은 다윗 왕의 영적 상태는 어떻게 변화되었습니까? 다윗 왕은 죄 문제를 해결받았을 때, 내 멋대로 살겠다고 한 것이 아니라 성전에 나와 엎드려 “하나님이여 내 속에 정한 마음을 창조하시고 내 안에 정직한 영을 새롭게 하소서.”라고 기도했습니다(시 51:10). 죄 사함을 받은 성도의 마음은 청결하고 정직해야 합니다. 사람은 남의 유부녀나 처녀를 강간하는 것만이 큰 죄인 줄 알지만 하나님이 제일 싫어하시는 것은 거짓말입니다. 거짓말은 살인강도나 강간과 똑같습니다(계 21:8, 22:15). 거짓말이 있으면 집안에 우환질고가 있어 편안한 날이 없이 늘 괴롭고 한숨만 나옵니다
(렘 5:27). 그러나 마음이 청결한 자는 하나님을 보며(마 5:8), 마음이 정직한 자, 거짓이 없는 자만이 하나님의 거룩한 성산(聖山)에 오를 수 있습니다(시 15:1-5). 또 정직히 행하는 자에게는 하나님께서 좋은 것을 아끼지 않으십니다(시 84:11). 

또한 다윗 왕은 죄 문제를 해결받았을 때, “나를 주 앞에서 쫓아내지 마시며 주의 성신을 내게서 거두지 마소서.”라고 기도했습니다. 죄를 지었다고 고백한 자신을 하나님이 들어 쓰지 않으실까 봐 겁이 나, 성령을 거두지 말아 달라고 간구한 것입니다. 하나님은 다윗 왕의 기도를 그대로 다 들어주셨습니다. 우리는 예수님을 믿으면서도 성령님을 근심시키고 소멸시키지는 않았습니까(엡 4:30). 성령님의 감화 감동을 받고도 무시해 버리면 성령님을 소멸시키는 죄가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은혜와 축복을 내동댕이치는 죄와 똑같습니다. 그러나 성령 훼방죄는 이 세상이나 그 나라에 가서도 사함을 받지 못합니다(마 12:31-32). 성령을 훼방하면 우리의 지혜가 막히고 기도가 막히며, 성령이 떠나간 성도는 신앙의 능력을 상실합니다. 맥 빠진 사이다같이 아무 맛도 없고, 사랑도 경건도 없이 ‘살았다’ 하는 이름은 있으나 그 신앙이 죽은 송장과 같습니다. 하나님의 형상을 입은 우리 평강제일교회 성도 여러분들은 열심 있는 성도,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성도가 꼭 되어야만 하겠습니다. 

 

우리는 십자가의 속죄 은총을 통해서만 행복의 삶을 누릴 수 있습니다

고린도전서 1:18 말씀을 볼 때, 십자가의 도(=말씀)가 멸망하는 자들에게는 미련하게 보이지만 구원을 얻는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십자가 상에서 우리 죄를 걸머지고 희생양이 되셨습니다. 그리고 말씀하시던 대로 삼일 만에 사망 권세를 깨뜨리시고 부활하셨습니다. 기독교는 무덤이 없는 것입니다. 이 썩을 몸이, 이 늙고 보잘것없는 것이, 이빨이 다 빠지고 머리카락이 다 빠지고 허리도 구부러지고 기력도 쇠해졌는데 다시 산다는 것이 인간이 생각으로는 이해가 안 갑니다. 그러나 성경을 볼 때, 하나님은 죽은 자의 하나님이 아니라 산 자의 하나님입니다. 하나님에게는 모든 사람이 살았습니다(눅 20:38). 그렇기 때문에 십자가는 이제 우리 기독교인들에게는 사형의 도구가 아니라 인류를 영원한 사망으로부터 구원하는 ‘생명의 상징’입니다. 십자가가 얼마나 좋습니까. 조상서부터, 또 우리가 알게 모르게 지은 죄를 우리가 알지도 못하고 믿지도 못하고 깨닫지도 못할 때, 예수님께서 이미 믿음으로 십자가에 못 박아 다 처분하셨다는 말씀을 우리에게 전해 줄 때 믿어야 합니다. 

또한 십자가는 우리 죄를 대속하는 ‘속죄의 증표’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십자가는 우리 마음의 빛으로 내 가정과 민족, 사회에 비취게 되는 것입니다. 십자가가 있는 곳에는 하나님의 용서가 있고, 하나님의 뜨거운 사랑이 있습니다. 십자가가 있는 곳에는 아무리 원수라도 화목이 시작되고, 가정이나 직장이나 사회에 훈훈한 사랑의 빛이 뜨겁게 전달됩니다. 죄를 짓고 어두워진 개인의 영혼이 십자가 영광을 바라보는 순간, 내가 믿는 순간, 속죄의 기쁨과 영생의 즐거움을 체험하게 되는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십자가는 ‘승리의 영광’입니다. 십자가를 믿는 사람은 망하는 법이 없습니다. 어느 목사나 교단의 말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십자가를 통해서 우리의 죄와 사망의 권세, 불안한 것, 외롭고 답답한 고독을 이길 수 있습니다. 또 세상의 모든 삶의 현장에서 남한테 지지 않고 이기면서 살아갈 수 있습니다. 

십자가! 십자가! ‘영원한 사랑과 평화의 빛’입니다. 십자가가 있는 부부는 싸움이 없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참고 이해하려고 애씁니다. 그렇기 때문에 십자가를 믿는 삶은 행복한 삶으로 하늘과 땅의 모든 복을 받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살 수 있으며, 십자가를 믿는 믿음만 있으면 애를 쓰지 않아도 나가도 복을 받고 들어와도 복을 받습니다. 

 

죄 문제가 해결되면 전도의 권세와 능력을 받습니다

이처럼 우리에게는 죄를 회개하고 구원의 기쁨을 회복해야 할 사명이 있습니다. 하나님이 우리 죄를 사해 주신 이유는 복음을 위함입니다(눅 4:43-44). 지금 사방에서 구원의 밧줄로 나를 살려 달라고 아우성입니다. 우리의 영혼이 얼마나 귀한데 그 영혼이 밝아야지 불이 꺼져서는 안 됩니다(잠 20:27). 여러분들의 영혼이 하나님의 등불이 될 때, 하나님께서 캄캄한 세계에 여러분을 손전등같이 붙잡고 일하실 것 아닙니까(시 51:13). 죄 문제가 해결되면 전도하려는 열심이 생깁니다. 전도하는 사람은 참회의 눈물을 많이 흘린 분들입니다. 그러한 경험이 있는 분들이 열심히 합니다. 영적인 원천이 메마른 심령에서 복음의 강수(江水)가 쏟아집니다. 모든 사람을 볼 때마다 참으로 기뻐하며 ‘저분이 예수 믿는 분인가? 안 믿으면 복음을 전해야지!’하는 생각이 충만해집니다. 이렇듯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고 살겠다며 죄를 회개할 때 하나님께서 관심을 가지고 도와주셔서, 할 때마다 되지 않던 모든 일들이 형통으로 풀어진다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고린도후서 5:17을 공동번역 성경은 “누구든지 그리스도를 믿으면 새 사람이 됩니다. 낡은 것이 사라지고 새 것이 나타났습니다.”라고 번역했습니다. 눈만 떴다 하면 오직 하나님이 우리 마음속에 계셔서 십자가 은총을 전해야 합니다. 아직까지 회개하지 않고 믿지 못하는 사람이 많기 때문입니다. 전하려고 애를 써야 됩니다. 말씀을 전해 들은 니느웨 도성의 왕과 모든 백성들이 재를 날리면서 회개할 때, 멸망을 받을 니느웨 도성이 살아났다면 우리 대한민국도 마찬가지입니다. 내 조국! 내 나라! 내 겨레가 암담하기 짝이 없습니다. 정한 마음과 정직한 영으로 반듯하게 다듬어진 길을 걸어가야 할 텐데, 논두렁 밭두렁처럼 다듬지 않은 거짓말을 많이 합니다. 소돔과 고모라의 죄의 몇 배가 한국에 있지 않습니까. 그러면 여러분들이 다윗 왕같이 죄 사함을 받게 하겠다는 뜨거운 마음으로 국가를 위해서 얼마큼 기도했습니까? 그저 양념 치듯이 한 번 두 번하고 끝은 아닙니까? 쉬지 않고 기도했습니까?

 

하나님은 우리 성도들을 세상 종말의 거룩한 그루터기, 믿음의 정예부대로 남겨두셨습니다

이사야 6:13 “그 중에 십분의 일이 오히려 남아 있을지라도 이것도 삼키운 바 될 것이나 밤나무, 상수리나무가 베임을 당하여도 그 그루터기는 남아 있는 것같이 거룩한 씨가 이 땅의 그루터기니라”

저는 이사야의 예언을 믿습니다. 또 우리 한국이 그렇게 될 것을 믿습니다. 우리 평강제일교회 성도들은 세상 종말, 끝날에 하나님께서 거룩한 그루터기로 남겨두셨다는 것을 꼭 믿으시기 바랍니다. 거룩한 그루터기가 이 땅에 뿌리를 박고 남아 있는 한 우리 교회는, 우리 대한민국은 절대 파멸되지 않는다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성난 물결과 같은 아합 왕의 박해 속에서도 하나님은 당신을 위해 7,000명의 의롭고 진실하고 거짓이 없는 신자를 남겨두셨습니다. 

앗수르 왕 산헤립이 이스라엘 백성을 침범했을 때, 히스기야 왕과 이사야 선지자는 성전에서 눈물을 흘리며 하나님 앞에 간절히 기도했습니다. 이에 하나님은 천사를 보내 185,000명을 송장으로 만드셨습니다(시 37:36-38, 왕하 19:20, 35, 37, 사 37장). 그 하나님이 우리 대한민국의 하나님인 줄로 믿으시기 바랍니다. 이 지구상에서 무신론자와 공산당들은 없어져야 됩니다. 공산당은 말만 하면 거짓말입니다. 앞에서는 “화친하자! 평화조약을 맺자!”라고 하지만 뒤에서는 칼을 갈고 있습니다(단 12장). 그러나 저는 믿습니다. 믿는 백성, 믿는 목사, 믿는 장로, 믿는 권사, 믿는 집사, 믿는 교인이 대한민국에 있는 한 아무리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고 오만 짓을 다 한다 해도 절대 대한민국을 이길 수 없다는 것을 말씀을 통해서 믿으시기 바랍니다(왕하 13:14-15). 

성도 여러분, 밤나무가 잘리고 불에 탄다 해도 그루터기는 남겨 두겠다고 했습니다. 상수리나무가 찍혀도 그 그루터기는 남겨 두겠다고 하나님께서 언약하셨습니다. 만군의 주 하나님을 만왕의 왕으로 모시고 그 말씀을 믿고 순종하며 사는 평강제일교회,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모시고 그 은혜만을 의지하는 자, 만군의 여호와의 살아 계신 말씀 성경을 찬양하고, 성경을 붙잡고, 오로지 성경 말씀이 하나님의 말씀인 줄 믿고 사는 평강제일교회가 있는 한 우리 대한민국은 절대 망함이 없다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뜨거운 충성을 아끼지 않는 우리 성도들이 이 땅 위에 있는 한, 온전한 인간의 깍지가 터지고 충만한 하나님의 영광을 보는 백성, 입술이 정결하고 이웃과 겨레에 대하여 공동의 책임을 느낄 줄 아는 우리 평강제일교회가 이 땅에 남아 있는 신령한 그루터기라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죄의식(罪意識)이 메마른 사람은 신앙인이 아닙니다. 죄를 회개할 때 오는  ‘영적인 자유’가 믿는 자의 최고 행복입니다(요 8:32). 사람의 행복한 삶은 십자가 속죄 은총으로 만족과 감사가 넘칠 때 가능한 것입니다. 늘 감사 생활을 하시기 바랍니다. 만족하지 못할 때, 많은 조건들이 갖추어지고 부족한 것이 없다 해도 마음의 평안을 누릴 수 없습니다. 현재에 대한 감사를 갖지 못하는데 내일에 대한 행복이 있겠습니까. 하나님의 말씀을 믿고, 하나님의 말씀이 귀한 줄 알아 아브라함과 같이 말씀을 따라 갈 때(창 12:4), 그것이 모든 복의 복을 받는 것과 마찬가지로 행복의 여건이 된다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오늘의 걱정과 내일에 대한 불안을 하나님께 맡기고 사는 믿음! 모든 염려와 걱정을 다 주께 맡기면 주님께서 우리를 권고해 주십니다(마 6:25-30, 벧전 5:7, 참고-시 2:12). 어두움의 먹구름이 불안하게 덮치는 것 같지만 하나님께서는 여러분들의 기도를 기다리고 계십니다. 여러분들의 두터운 믿음, 착실하고, 확실한 믿음을 하나님께서는 기다리고 계십니다. 주시는 말씀을 통해서 또한 믿을 때 믿음이 생기고, 믿음이 생길 때 양손을 들고 개인과 가정, 나라와 민족, 세계의 평화를 위해서 기도할 수 있다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여러분들이 그 나라 갈 때까지 많은 영혼들을 주께 맡기는 역사가 있기를 바랍니다. 

2003년 1월 26일 주일 2부예배 휘선 박윤식 목사 설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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