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1년간 허락하신 ‘손의 축복’ – 김명선 권사
둘째 아들을 아기 때 먼저 보내고 힘들었을 때였지. 어느 날 길을 가는데 막다른 골목인 거야. 뒤에 오던 모르는 여자분하고 돌아서 가는데 딱히 할 말이 없으니까 그분이 나보고 교회 나가시냐고 묻는 거야. 이런저런 이야기 하다가 성경을 알려주더라고. 그분이 박정순 권사님이야. 그분께 몇 번을 더 공부했지만 왜 그런지 그렇게 와 닿지가 않았어. 어느 날은 박 권사님이 내 손을 잡고 기도를 하는데 ‘어쩌다 제가 전도를 하게 되었는데 이분이 깨닫지를 못하니 하나님 도와달라고…’ 간절히 막 울면서 기도를 하는데 그때 내 마음이 움직였어. 오죽하면 울면서 기도하실까. 저분이 시키는 건 무조건 해야겠다 다짐했는데, 아니나 다를까 기도 끝나자마자 이제부터 아무 생각하지 말고 사흘 동안만 젖먹일 때도 성경 읽고, 밥 안쳐놓고도 성경 보고, 화장실에서도 성경을 보라는 거야. 다 순종했지. 연탄난로 옆에서 한참을 쪼그리고 앉아서도 봤어. 사흘을 그렇게 순종하고 나서 꿈을 꾸었는데 누군가가 나보고 묻는 거야. 하나님이 어디 계시냐고. 나는 말씀이 하나님이라는 걸 그때는 몰랐었거든. 근데 꿈에서 요한복음 1장 1절이라고 대답한 거야. 깨고 나서는 ‘에이, 마태복음 1장 1절인데 왜 내가 요한복음이라고 말했을까? 이상하다.’ 하고는 혹시나 하고 성경을 펼쳐 보니까 요한복음 1장 1절인 거야. 50년 전인데도 생생하게 기억이 나네.
그 후부터 셋째를 업고 큰 애 손잡고 응암동에서 버스 두 번 타고 노량진 대성교회를 나갔지. 그렇게 다니던 중 옛날 한 집에 같이 세 들어 살던 홍순분 집사님(현 전도사)을 길에서 우연히 만난 거야. 너무 반가워 “너 성경 말씀 좀 배워볼래?” 했더니 웬걸 오히려 자기가 가르쳐주겠다는 거야. 내 선에서는 감당 못 하겠구나 싶어 박정순 권사님을 붙이고 다음 날에는 당시 이범례 전도사님을 붙여드렸지. 근데 거기서 불이 붙었지 뭐야. 짜장면 시켜 줘가며 말씀을 가르치는데 아주 잘 듣는 거야. 그땐 통금이 있었는데 말씀이 너무 좋으니까 이분들을 못 가게 하는 거야. 인도자가 보기에 너무 이쁘잖아. 그러더니 홍 전도사가 그 이튿날 나보고 당장 아는 지점장 집으로 가자는 거야. “너도 이제 햇병아리인데 뭘 어떻게 전하니?” 했더니 “아니야, 나 할 수 있어.” 하더니 전날 노트 필기한 걸 가지고 가서 막 전하더라고. 목욕탕 가서도 목욕은 뒷전이고 전도하고…진짜 닥치는 대로 말씀을 전하는 걸 보고 ‘야, 얘가 나보다 더 열정적이네.’ 부끄럽기도 했지만 뿌듯하더라고. 그때부터 홍 전도사가 응암동을 그렇게 전도하고 다니는 거야. 틈만 나면 “야, 오늘은 어디 가자, 내일은 또 저기 가서 전하자” 그렇게 다니다가 나는 애가 울고불고 하니까 “야, 너는 안 되겠다” 하더니 혼자 그렇게 전도를 하러 다니더라고. 응암동이 그때 부흥이 많이 됐어. 박윤식 목사님이 김의방 목사님을 보내 응암동에 지교회를 하나 세웠었어. 거기서 청소에, 주일학교 교사에 1인 4역,5역을 했었지. 박윤식 목사님도 궁금하시니까 가끔 느닷없이 찾아오셨어. 어느 날은 교회에 갔는데 홍 전도사가 막 우는 거야. 뭔지 모르지만 나도 같이 울었어. 한참 지나서 너 왜 울었냐고 물어보니 “아, 말씀이 너무 좋아 그러는 거야.” 하더라고. 될성부른 나무 떡잎부터 알아본다더니 결국 신학대 들어가서 나중에 선교사가 된 거지.
대방동 일석교회(편집자 주: 교회 헌당 당시 ‘시온산한돌교회’였다가 ‘일석교회’로 개칭) 때 교인이 30명밖에 안 됐는데 신림동에 새로 성전을 지어서 이사갔지. 성전은 넓은데 사람이 별로 없으니까 썰렁해서 어떡하나 걱정했더니 박윤식 목사님이 염려하지 말라고, 금방 찬다고 하셨어. 진짜 금방 차더라고. 신림동 교회에서 첫 번째 추수감사절 헌금으로 1,000원을 준비했는데 친구가 500원을 빌려달라고 해서 거기서 빼서 주고 다시 채워 넣으려고 했는데 결국 못 넣고 그냥 드렸어. 그런데 박윤식 목사님이 500원을 왜 뺐느냐고 야단치시는 거야. 세상 말로 귀신같이 아시대. 나 혼자 있을 때 슬쩍 뺀 걸 어떻게 아셨지? 봉투에서 뺀 내가 잘못이지. 그때부터 내 별명이 ‘500원짜리’가 됐지.
어느 날 남편이 좋아하는 개가 있었는데 박 목사님이 저거 잡았으면 좋겠다고 하시는 거야. 당시 어느 분이 걱정말라고, 내가 와서 다 요리하겠다고 해서 안심하고 있었는데 아니 웬걸 박 목사님하고 같이 들어오는 거야. 아이고, 그래서 우째…화덕에 물은 끓고 있지. 에라, 모르겠다, 할 수 없이 내가 요리를 해서 드렸더니 맛있다고 하시는 거야. 박 목사님은 급하셔서 밥도 안됐는데 숭늉 달라는 분이신데 정말 정신 없이 요리를 했었어. 지나고 나서 생각하니 어떻게 만들어서 드렸는지 생각도 안 나더라. 개고기를 해본 적이 없으니까. 40년 전 내가 이걸 삶아서 소금에 찍어 드시게 했는지, 탕으로 드렸는지 기억도 안 나. 근데 맛있다 맛있다 하시는 거야. 그 다음부터는 홍은동이니 연신내에서 보신한다고 하면 나를 부르는 거야. 자신감을 얻어서 교회 근처에 사철집을 아예 차리게 된 거지. 처음엔 칼국수 집을 하려고 했고 불교 신자인 친정엄마도 젊은 애가 무슨 보신탕 장사냐고 말렸지만, 목사님께 상의했더니 내가 기도해 줄 테니 하라고 해서 순종해서 오늘날까지 하게 된 거야.
30-40년 전에는 공무원들이 위생과에서 나왔다느니 하면서 우르르 와서 밥 그냥 먹고 가고,옛날에는 18군데에나 돈을 찔렀었어. 그때는 장사하는 사람들 대부분이 그랬어. 이리 뜯기고 저리 뜯기고. 말도 안 되는 명목 들이대니까 그저 나는 아무것도 모른다고 하면서 주는 거지. 참 그 당시는 부정부패도 많았지만 지금은 좋지 세금만 또박또박 내면 되니까. 그 힘들다는 IMF도 넘기고, 고비고비마다 힘들었지. 1년에 두어 번은 정부에서 때려. 동물보호연대니 애완용이니 이유를 대면서. 보신탕 가격이 자꾸 올라가면 나도 장사를 할 수가 없잖아. 근데 날이 갈수록 심해지는 거지. 나는 오히려 감사하다고 했어. 박 목사님을 찾아가서 이제는 장사 못할 것 같다고 말씀드렸더니 하나님이 손의 축복을 주셨는데 그만두면 뭘 할 거냐고, 전도도 못하면서… 그러시니 나도 양심이 찔려서 또 계속 했지.
십일조를 수익금 그대로 드리려니까 얼마 안 되는 거야. 인건비, 세금 다 빼고 콩팔칠팔 따지니까 너무 적어지더라. 생각해보니 안 되겠더라고. 이걸 어떻게 그대로 드려. 이렇게 내가 따지면 하나님도 나한테 계산하시면서 주시겠다는 생각이 드는 거야. 그래서 따지지 않고 그대로 드려야겠다 맘먹고 십일조는 항상 더 드렸지. 그렇게 드리니까 마음이 너무 편한 거 있지.
교회 지척에 집과 가게가 있다가 교회가 오류동으로 이전하니까 마음이 허하지 않았냐고? 아이고, 그런 생각 전혀 없었지. 교회가 더 큰 데로 갔는데 내가 그리로 가면 되잖아. 모리아 성전에 서서 내려다만 봐도 얼마나 배가 부르던지. 우리 집이 넓은 집으로 이사 간 것 같이 부자가 된 것 같았어. 성도님들이 구름처럼 내려가시는 것만 봐도 그렇게 기분이 좋을 수가 없었어. 박 목사님 마음도 그러셨겠지. 이걸 우리가 계속 지켜 나가야겠다는 간절한 마음이 있지.
구술 정리_권오연 기자
*김명선 권사는 노량진 대성교회 시절부터 교회 근처에서 ‘사철탕집’을 운영했다. ‘사철탕집’은 휘선 박윤식 목사를 비롯한 우리 교회 교역자들과 성도들의 사랑방 역할을 한 교회 역사의 현장이기도 하다. 김 권사는 최근 41년간의 사철탕집 운영을 마치기로 하고, 그동안 주신 은혜에 감사해 계약금을 감사헌금으로 드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