웅변의 명가(名家)
안녕하세요. 세분이 특별한 관계라고 들었는데 어떤 관계인지 소개해주세요.
이상후(장로) : 이번 웅변대회에서 은상을 받은 이도형 군이 저의 둘째 아들이고 대상을 받은 송혜선 양은 제가 대표이사로 재직 중인 회사(주식회사 카다로스)의 대리입니다. 그리고 저는 2011년 제5회 나라사랑 웅변대회에 참가해서 동상을 받았습니다.
명가(名家)가 맞네요.
이상후 : 어떤 분이 저한테 ‘웅변 명가’라고 해서 농담으로 듣고 “명가가 되려면 도형이 아들까지 참여해서 최소한 3대(代)가 되어야 한다.”고 대답했는데 이런 표현까지 사용하면서 인터뷰하게 될 줄은 몰랐습니다.
웅변대회에 참가하신 계기가 궁금합니다.
송혜선(청년2부 그루터기 선교회) : 처음 그루터기에 왔을 때 웅변대회에 나가보라는 권유를 받았어요. 그때는 “큰 무대는 떨려서 절대 못한다.”고 거절했어요. 그런데 올해 힘든 일이 있어서 기도를 하던 중 웅변대회에 참여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서른 살이 되니까 ‘떨리지 않는다’는 뻔뻔함도 생긴 것 같고요.
이도형(청년1부 헵시바 선교회) : 작년에 웅변대회 참가했던 친구(강희승 헵시바)가 “너는 다음에 웅변대회 참가해야 된다.”고 했어요. 그때 저는 군복무 중이었어요. 제 전역 시기가 웅변대회 시기랑 비슷하니까 얘기한 거였어요. 전역 후 기도하면서 ‘해야 된다’는 확신이 들었어요.
이상후 : 2011년 5월 23일부터 5월 31일까지 8박 9일간 미국 올랜도(Orlando) 교회 헌당예배가 있어서 여러 성도님들과 함께 올랜도로 가는 비행기를 탔어요. 원로목사님이 해외선교 가실 때 같은 비행기를 타고 함께 가보는 것이 꼭 한 번 소원이었기에 자원해서 갔어요.(그러나 당시 원로목사님은 대장암 수술로 선교 일정을 취소) 마침 전도국 담당 목사님과 남선교회 총회장님 사이에 앉게 되었어요. 당시에는 전(全) 기관에서 웅변대회에 참석하라는 원로목사님 권면이 있었어요. 목사님께서 총회장님께 “남선교회 대표 있나요?”라고 물었고, 총회장님이 “없어요.”라고 말씀하시다가 두 분이 동시에 저를 쳐다보며 “여기 계시네요.”라고 했어요. 해외까지 나온 상황에서 거부할 수 없었고, 거부하면 좋지 않은 일이 벌어질 것 같았어요(웃음).
그런 상황에서 ‘아멘’ 했는데, 바로 저희 친아버님 생각이 났어요. 1924년생이신데 625 전쟁에 참전해서 다리에 관통상을 입으셨어요. 웅변대회가 625 전쟁에 관련된 것이라면 나의 아버지 얘기를 해야겠다는 생각이 든 순간, 비행기에서 순식간에 웅변 원고를 다 썼어요.
저는 그때 대회때부터 장로님을 알았는데 이런 얘기는 처음 알았네요.(권 에스더 기자도 당시 웅변 대회 참가 동기다. *편집자 주)
이상후 : 제 웅변 첫 대목이 우리 아버님 사진을 펼치면서 “누가, 이 사람 아십니까!”였어요. 우리 아버지의 삶을 돌이켜봤을 때 625 당시 26세, 도형이 나이 또래였어요. 지금 제 아들 나이에 다섯 살,여섯 살밖에 안 된 아들, 딸이 있었고 만삭인 아내를 뒤로 한 채 전쟁터에 나가신 거예요. 웅변대회는 단순한 메아리가 아니라 내 가족의 삶에 비춰보면 참 슬픈 현실이에요. 죽을지도 모르는데 전쟁에 나가는 거예요. 원로목사님도 당시 20대 초반의 나이에 전쟁터에 나가신 거예요. 그 시각으로 보면 전쟁이 정말 비참한 거예요.
두 분이 올해 웅변대회에 참여한다고 했을 때 장로님의 반응이 어땠나요?
송혜선 : 제가 사장님(이상후 장로)님께 “웅변대회 참가할까요?” 했더니 “네가 모르면 나갈 거다. 알면 못 나갈 거다.” 했어요. 준비과정이 힘들다는 뜻이었죠. 정말 웅변 준비하면서 몸도 아프고 원고도 계속 고치고 웅변 지도 선생님께 혼도 나서 ‘왜 한다고 했을까’ 후회도 했어요. 그때 저희 아버지(송봉철 목사)가 ‘단에 올라가는 게 쉬운 일이 아니다. 깎이고 낮아져야 한다.’고 말씀해 주셔서 그 뒤로 기도를 많이 했어요.
이도형 : 웅변대회 예선 당일이 전역식이라 참석을 못해서 집에서 영상을 촬영해서 보냈어요. 아버지가 옆방에서 들으시고는 ‘안 될 것 같은데’라고 말씀하셔서 예선에서 탈락할 줄 알았어요.
회사에서 웅변대회 참가를 위해 어떻게 지원 해주셨나요?
이상후 : 회사에서 송대리 시간 맞춰 주느라 많이 배려했습니다. 직원들이 ‘송대리가 열심히 준비하도록 밀어 줘야겠다.’며 함께 지원해 줬어요. 송대리가 일반 회사에 다녔으면 웅변대회에 못 나갔을 거예요. 야근이 있어도 ‘송대리는 보내야 된다.’하고 웅변 연습할 수 있도록 정시 퇴근을 보장해 줬어요. 송대리 퇴근시키고 나머지 사람들이 야근했어요.
그렇지만 아무리 우리가 지원해 주려고 해도 업무가 몰려들면 못해요. 그런데 놀라운 것은 송대리 담당 업무가 웅변 준비할 때는 몰리지 않았는데, 웅변대회 끝나고 업무가 몰렸어요. 그리고 웅변대회 후에 저희 회사가 애플코리아와 계약했어요. 우리가 편의를 봐 준 것이지만, 하나님의 일에 먼저 지원해 주니까 하나님이 회사에 엄청난 것으로 갚아주신 거죠. 이 모든 과정들을 하나님이 섭리하신 거예요.
웅변대회 때 느낀 소감 부탁드려요.
송혜선 : 저는 원로목사님이 군대 가라고 권유하셨는데 장교시험에 떨어졌어요. 이번 웅변대회 준비하면서 저는 ‘하나님의 군대인 평강제일교회를 지키라’는 하나님의 뜻을 깨달았어요. 정말 감사했어요.
이도형 : 군대에 있을 때 나라에 대한 불평불만이 많았어요. 내가 왜 2년간 군대에 있어야 하는지, 제가 하는 게 나라 지키는 건지도 모르겠고요. 그런데 웅변대회를 준비하면서 다시 대한민국 근현대사 시리즈를 읽고 저 대신 죽어간 전우들의 소중함을 느꼈고 애국심을 고취하는 계기가 되었어요. 또 정확한 역사 인식이 얼마나 중요한지 깨달았습니다.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씀이 있다면요
송혜선 : 제 원고에 ‘철저한 자유민주주의 사상과 하나님을 믿는 신앙으로 하나가 될 때 이 나라에는 공산주의 그림자도 발붙이지 못한다.’는 대목이 있어요. 철저한 자유민주주의 사상이 담긴 근현대사 시리즈와 하나님을 믿는 신앙인 구속사 말씀, 이 두 가지만 가지면 우리나라가 잘 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이상후 : 본의 아니게 아들과 직원이 웅변대회에 참가했어요. 현재 우리나라 현실이 힘들고 어려운 상황인데 이런 것을 외치는 곳이 없잖아요. 웅변 연사들의 외침이 5천만 국민의 메아리가 되어 대한민국이 깨어나기를 바랍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에서 울부짖을 때 하나님이 내려오셔서 들으셨듯이 연사들의 메아리가 하나님께서 대한민국을 되돌아보는 계기가 될 것이라 생각합니다.
글_권 에스더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