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나안 정복 전쟁과 ‘진멸’ 명령
가나안 정복 전쟁에서 ‘진멸’의 명령은 오랜 기간 논쟁거리였다. ‘진멸’은 남녀노소는 물론 갓난아이와 가축까지 멸하는 것이다. 잔혹한 행위로 이해될 수 있다. 그래서 어떤 학자들은 ‘진멸’의 의미를 축소시키려 애를 쓰기도 했다. 그러나 ‘진멸’은 구속사의 성취를 위해서 주어진 하나님의 말씀이다. 왜 하나님께서는 이런 명령을 하셨을까? 올바른 이해를 위해서는 몇 가지 배경 지식이 필요하다.
1. 고대 근동의 전쟁
당시 전쟁은 경제적 이유로 벌어지는 소규모 전쟁과, 정복 자체를 위한 대규모 전쟁으로 나눠진다. 대규모 전쟁에서는 상대방을 잔혹하게 학살하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이때 여자와 어린아이를 학살의 대상에서 제외한 것은 인도적인 차원이 아니라, 이들을 ‘전리품’으로 보았기 때문이다. 포로로 잡힌 여자와 아이들은 가축과 같은 취급을 받았으며, 평생 최하층 노예로 살거나 전쟁의 화살받이, 노리개로 내몰렸다. 역사 기록을 보면 해자를 건너기 위해 포로로 잡은 여자와 아이들을 구덩이에 밀어넣어 성벽을 기어올랐다는 내용도 발견된다. 이런 시대적 상황을 고려하면 ‘진멸’은 일반적인 전쟁보다 덜 참혹한 것이다.
‘진멸’은 정복군에게도 받아들이기 힘든 명령이었다. 병사들은 전쟁에 이기기만 하면 일확천금을 노릴 수 있었다. 전리품이야말로 병사들이 목숨을 걸고 전쟁터로 나온 주목적이었다. 그런데 ‘진멸’은 기껏 얻은 전리품을 모조리 죽이고 불태우는 수지타산이 맞지 않는 행위였다. ‘진멸’은 당시의 관점에서 전리품을 모두 없애버리는 기이한 행동으로 이해해야 한다.
2. ‘진멸’의 명령
진멸의 규례는 모세 오경에서 제시된다. ‘진멸’의 대상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헤렘’(חֵרֵם)은 ‘바쳐진 것, 봉헌된 것, 금지된 것’이다. 하나님께 바쳐지고 봉헌된 것으로서 이스라엘에게 금지된 것을 진멸하라는 의미이다. 그래서 레위기 27:28-29에서는 ‘아주 바친 그 물건’이라고 표현하고 있다. 진멸의 대상은 아무리 귀하고 좋은 것이라 해도 반드시 죽이거나 불살라야 했고, 몰래 취하면 그 자신이 진멸의 대상이 되어야만 했다. 신명기 20:10-18에서는 일반 전쟁과 ‘진멸’ 전쟁의 차이를 말씀하고 있다. 일반 전쟁에서는 남자들을 쳐 죽이고 전리품(여자와 아이들, 가축들)을 취할 수 있었지만, 가나안 7족속을 ‘진멸’하는 전쟁에서는 호흡 있는 모든 것을 하나도 남기지 않고 죽여야 했다. 즉, 전리품이 없는 전투라는 것이다. 이는 앞으로 진행될 가나안 족속과의 싸움에서 승리는 오직 하나님의 것이라는 선언이며, ‘진멸’ 명령에 대한 불순종은 이스라엘을 타락시키는 통로가 된다는 것이다(참고-민 21:2).
3. 가나안 정복 전쟁에 나타난 ‘진멸’의 역사
여리고 성 ‘진멸’ 전쟁과 아이 성 전투의 패배
가나안 정복 전쟁은 여리고 성 전투로 시작됐다. 일곱째 날 여리고 성을 일곱 바퀴 도는 행위를 마친 결정적 순간에 여호수아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진멸’ 규례에 대해서 다시 한 번 가르쳤다. 여호수아 6:18에서는 “너희는 바칠 물건(חֵרֵם, 헤렘)을 스스로 삼가라 너희가 그것을 바친(חֵרֵם, 헤렘) 후에 그 바친(חֵרֵם, 헤렘) 어느 것이든지 취하면 이스라엘 진(陣)으로 바침이 되어(חֵרֵם, 헤렘) 화를 당케 할까 두려워하노라”라고 ‘헤렘’이라는 단어를 네 번이나 반복해 명령의 중대성을 강조하고 있다. 명령이 끝남과 동시에 백성들의 외침과 제사장들의 나팔 소리가 울려퍼졌고, 거대한 여리고 성이 무너지며 대승을 거두었다(수 6:20-27).
여리고 성을 정복할 때는 한 사람도 피를 흘리지 않았지만, 이어서 훨씬 작은 아이 성을 공격할 때에는 36명의 전사자가 발생하며 패배하고 말았다. 유다 지파 아간이 여리고성 전투에서 진멸 규례를 어기고 외투 한 벌과 은과 금을 탐내어 취했기 때문이다(수 7:1). 결국 아간은 자신의 죄를 자복하는데(수 7:20-21), 이 고백에 사용된 ‘보다’, ‘탐내다’, ‘취하였다’ 세 동사는 여자가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실과를 먹는 순간을 묘사할 때 사용된 동사들과 순서까지 일치한다. 이는 ‘진멸’ 명령에 나타난 구속사적 의미를 암시한다.
(수 7:21) “내가 노략한 물건 중에 시날 산의 아름다운 외투 한 벌과 은 이백 세겔과 오십 세겔 중의 금덩이 하나를 ①보고 ②탐내어 ③취하였나이다 보소서 이제 그 물건들을 내 장막 가운데 땅 속에 감추었는데 은은 그 밑에 있나이다”
(창 3:6) “여자가 그 나무를 ①본즉 먹음직도 하고 보암직도 하고 지혜롭게 할 만큼 ②탐스럽기도 한 나무인지라 여자가 그 실과를 ③따먹고 자기와 함께한 남편에게도 주매 그도 먹은지라”
가나안 땅에 선포된 ‘진멸’은 그 땅에 관영(貫盈:가득 차 흘러넘침)한 죄를 완전히 해결하는 방법이었다. 그러나 여자로 말미암아 아담이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실과를 따먹고 사망의 존재가 되고 말았듯이, 아간의 불순종은 온 이스라엘을 패망하게 만들고 말았다.
이후 가나안 정복 전쟁에 나타난 진멸의 역사
이스라엘을 ‘진멸’의 위기로 몰고간 아간이 ‘진멸’당한 뒤, 이스라엘의 두 번째 아이 공격은 성공했다. 아이 성의 12,000명 인구는 진멸됐다(수 8:24-25). 이후 여호수아는 한 번의 패배 없이 파죽지세로 가나안을 점령해 나가며 가나안 7족속을 진멸해 나갔다. 히위 족속 기브온 사람들만은 멀리서 찾아온 이방 족속인 양 꾸며 이스라엘 가운데 나무를 패며 물을 긷는 종이 되었다(수 9:1-27). 그 외 이스라엘의 정복 지역에서 가나안 족속은 진멸되었다(수 11:18-23). 그러나 이스라엘이 가나안 땅의 주도권을 차지하기는 했지만, 전역을 완전히 차지한 것은 아니었다. 군사력이 강대한 성읍이나 가나안 족속이 결사 항쟁했던 해안 평야 지역의 성읍들에는 가나안 족속들이 잔존했다. 결과적으로 이스라엘이 점령지마다 진멸을 행하기는 했지만, 가나안 족속 전체를 진멸하는 데는 실패하고 만 것이다.
잔존한 가나안 족속은 이스라엘에 우상숭배가 들어오는 직접적인 통로가 되었다. “이스라엘 자손은 마침내 가나안 사람과 헷 사람과 아모리 사람과 브리스 사람과 히위 사람과 여브스 사람 사이에 거하여 그들의 딸들을 취하여 아내를 삼으며 자기 딸들을 그들의 아들에게 주며 또 그들의 신들을 섬겼더라”(삿 3:5-6). 첫 사람 아담을 사망의 존재로 만든 것은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 실과의 효력이 아니라, 하나님 말씀에 대한 불순종이었다. 단순히 가나안 7족속의 영향으로 이스라엘에 우상 숭배가 들어온 것이 아니라, 불순종 자체가 그 원인이 됐다.
가나안 ‘진멸’ 명령이 가진 의미
홍수 이전 죄가 관영했던 세상은 물 심판으로 진멸됐다. 그러나 가나안의 아비 함이 노아의 하체를 보고 고하는 범죄를 저질렀을 때, 노아는 가나안이 저주를 받아 형제의 종들의 종이 되기를 원한다고 선포했다(창 9:24-27). 이 말씀은 가나안에 대한 진멸 명령으로 구체화됐다. 가나안 정복 전쟁은 ‘이스라엘 백성들의 힘으로 가나안 땅을 정복하는 것’이 아니라, ‘앞서가시는 하나님의 정복 전쟁을 목격하고 승리에 참여하는’ 전투였다. 승패를 가르는 것은 칼과 창이 아닌 순종 여부였다. 가나안 정복 전쟁을 승리로 이끈 주체는 오직 하나님일 뿐이다. 이는 이스라엘이 조금의 전리품도 가지지 않고 완전히 진멸하는 것으로 표현되었다.
이방 신들의 제의(祭儀)에서는 죽이는 것이 곧 신에게 바치는 것이었다. 이는 그들이 섬기는 신이 전쟁의 광기를 원하며, 피정복자의 피에 만족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이방인의 피와 죽음을 바라시지 않는다. 오히려 하나님의 소원은 이방인도 이스라엘에 참여하는 구원 섭리에 있다(딤전 2:4). 따라서 이스라엘이 가나안 사람을 진멸한 것은 신께 바친다는 의미가 아니라, 약속의 땅에서 자신의 것을 부인하고 이 땅에 남겨두지 않는 것이다. 이를 보다 신약적, 목회적인 언어로 말하자면 ‘철저한 자기 부정’이라고도 할 수 있다(마 16:24, 막 8:34, 눅 9:23).
‘진멸’ 전쟁의 구속사적 의미는 철저한 자기 부정이다.
‘진멸’ 전쟁의 규례는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하고 있다(요 5:39).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은 십자가는 영적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옛 자아를 철저히 진멸하는 구원의 수단이 됐다. 그래서 갈라디아서 2:20에서는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산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신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몸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라고 말씀하고 있다(참고-갈 5:24). 아담의 타락 이후 함의 아들 가나안을 지나, 가나안 족속을 정복하는 신령한 전쟁은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그리고 십자가는 모든 악의 권세를 진멸하는 비결이다(엡 2:14-18, 골 2:14-15). 십자가 군병 된 성도는 죄인 되었던 옛 자아를 철저히 부인하는 가운데, 신령한 가나안 완전 정복에 참여해야 할 것이다.
글_정디모데 전도사, 삽화_박희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