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족의 비극이었던 6·25를 잊지 말자
2차 세계대전이 하나님의 주권적인 역사로 연합군의 승리로 끝난 다음, 1945년 8월 15일 12시를 기해서 일왕이 항복하였습니다. 한국은 36년간 일본 쇠사슬에 매여 있다가 갑작스러운 해방을 맞이했습니다. 민주주의와 공산주의가 무엇인지도 모른 채, 양대 진영으로 갈려 사상적 대결이 이어졌습니다. 남로당은 대구 10.1 사건, 여수 14연대 반란 사건 등을 통해 끊임없이 자유민주주의를 무너트리고 공산국가를 세우려고 하였습니다. 1950년 6월 25일 새벽 4시를 기해서 북한의 불법 남침으로 6·25 전쟁이 발발했습니다. 저는 당시 서부전선 개성에서 전쟁 발발할 때부터 싸웠기 때문에 상황을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습니다. 1950년 6월은 19일부터 24일까지 장마가 이어져 서울이 물바다가 되어 있었습니다. 육군참모총장 이하 고위 지휘관들은 6월 25일 새벽 2시까지 서울의 한 요정에서 파티를 벌이고 다 잠들어 있었습니다. 당시 대한민국에는 탱크, 전투기가 한 대도 없었습니다. 반면 북한은 T-34 탱크 242대와 야크 전투기 224기를 앞세워 파죽지세로 서울까지 밀고 내려왔습니다. 환경도 열악할 뿐 아니라, 지휘관도 무기도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1953년 7월 27일 밤 10시까지 만 3년 1개월 동안 대한민국 전 강토가 초토화되었고, 300만 명이 희생당했습니다. 참으로 전쟁은 이 세상에서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는 가장 큰 비극입니다. 6·25 전쟁은 실로 우리 민족 5천년 역사의 전대미문(前代未聞)의 대참사였습니다.
지금 세대는 전쟁의 비극을 경험하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6·25 전쟁이 우리 민족에게 전해주는 뼈저린 교훈을 새겨들어야만 합니다. 6·25가 남긴 교훈과 공산주의의 잔악한 실상을 깨닫는 가운데, 다시는 이 민족 앞에 이러한 불행한 일이 생기지 않도록, 신앙으로 재무장해야 될 것입니다.
첫째, 6·25는 하나님의 채찍, 징벌이었습니다(렘 50:35-40).
강대국의 정치적인 대립으로 한반도에 38선이 생겼습니다. 남북의 허리가 잘리고 말았습니다. 그 후 소련은 북한을 공산주의 사상으로 철저하게 훈련시켰습니다. 반면, 남한에서는 성숙하지 않은 자유주의로 나라가 어지러웠습니다. 부정과 권력 남용, 자유 아닌 방종으로 흥청거리다가 결국 6·25가 터졌습니다. 당시 전쟁이 임박했다는 첩보를 정보부에 수십 차례 보고했음에도 불구하고, 윗선에서는 다 묵살하였습니다. 공의가 땅에 떨어지고 아첨과 거짓이 가득했습니다.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육신을 살찌우는 데만 신경 쓰고 있다가 공산주의의 침략으로 말미암아 얼마나 많은 양민이 학살당했습니까? 이승만 대통령에게 북한의 남침 보고가 올라간 것은 전쟁 개시 6시간 10분이나 지난 6월 25일 오전 10시 10분이었습니다. 그것도 수일 이내로 평양을 점령하겠다는 허풍이 가득한 보고였습니다. 서울 시민들에게는 계속하여 전황이 좋다는 거짓 방송을 하다가 3일 만에 한강교를 폭파하면서 수십만이 죽임을 당하고 말았습니다.
신학적으로 볼 때, 전쟁은 죄 많은 나라를 들어서 죄 작은 나라를 때리면서 깨우치게 하시는 하나님의 수단입니다. 성경은 심판의 도구로 사용된 나라는 스스로 교만하다가 최후에 망하게 된다는 것을 분명하게 증거하고 있습니다. 이사야 10장을 볼 때에도, 하나님께서는 앗수르를 몽둥이 삼아서 도끼로 나무를 패듯 북 이스라엘을 치셨습니다(사 10:5, 15-16). 하나님께서는 예레미야에게도 북면에서부터 기울어진 끓는 가마의 환상을 통해 바벨론을 일으키셔서 남 유다를 칠 것을 말씀하셨습니다(렘 1:13-14). 그리고 그 말씀대로 앗수르와 바벨론은 스스로 교만하다가 패망하고 말았습니다(렘 50:35-40).
6·25 전쟁도 성경적인 관점에서 볼 때 공의로우신 하나님께서 몽둥이를 들어서 우리 민족을 심판하신 사건입니다. 아골 골짜기에서 남한의 남녀노소가 정신과 육신 모두 썩어져 가고 있었는데도 몰랐습니다. 그리고 흠씬 얻어맞아 만신창이가 되고서야 잘못을 깨달을 수 있었습니다. 명심하십시오. 언제라도 당신의 백성들이 하나님을 도외시하고, 경외하지 않고, 여러분 자녀들에게 하나님에 대한 교육을 시키지 아니한다면 다시 징계의 대상이 되고 마는 것입니다(신 6:14-15). 오늘날 우리 민족을 보십시오. 남녀노소 막론하고 도덕성이 타락하지는 않았습니까? 어른과 아이, 스승과 제자, 선배와 후배 간의 구별이 없는 시대를 어떠한 눈으로 보고 계십니까? 공산주의 이론은 겉보기엔 좋아 보입니다. 그러나 실상 하나님 자리에 하나님을 빼고 공산주의 사상을 올려놓은 것입니다. 6·25 전쟁을 경험했던 사람들은 그 비참함을 체험했기에 그런 말에 유혹당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오늘날 아픔이 무디어진 세대는 어떻습니까? 우리는 하나님의 채찍이 다시는 대한민국에 내리지 않도록, 나라를 뜨겁게 사랑하며 하나님의 말씀에 계명에 절대 순종해야 됩니다전쟁의 비극적인 역사가 우리 백성 가슴속에 깊이 새겨져 있어야 합니다. 절대 지워져서는 안 됩니다전쟁과 같은 무서운 사변이 영원히 우리나라에 도래하지 못하도록 우리는 정의롭게, 의롭게, 정직하게 살아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우리 민족이 깨달아야만 합니다.
둘째, ‘남은 자’, 상처 입은 영혼은 하나님의 은총을 영원히 잊지 말아야 합니다.
이스라엘의 남은 자, 야곱의 남은 자는 전란(戰亂) 속에서도 살려두신 자들입니다. 우리는 6·25 전쟁 속에서도 살아남은 부지깽이와 같은 존재들입니다. 어떤 이들은 시체 속에서도 살아서 기어 나왔습니다. 불타는 화염 가운데 새까맣게 온몸이 그슬렸지만 죽지 않고 나온 분들도 있습니다. 전쟁에 능한 하나님께서 우리 민족을 살려 주시고 지켜 주셨으며 보호해 주셨습니다. 북이 남침할 때 UN에서 대한민국에 연합군을 보내기 위해서 안보리 이사회가 열렸습니다. 그런데 이 이사회에 소련이 중국을 유엔에 가입시키라며 이틀간 싸우다가 지쳐서 참석하지 않았습니다. 만약 소련 대표가 참석해서 반대표를 던졌다면 단 한 표만으로 부결이 됩니다. 역사적인 기록을 볼 때 아찔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 후 낙동강 방어전 때도 억수같이 내리는 장마로 적이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날이 맑아지면서 적군의 진지가 환히 드러났고, B-29 폭격기가 정확한 조준 사격으로 적을 궤멸할 수 있었습니다.
이사야 10:20-21에서는 “그날에 이스라엘의 남은 자와 야곱 족속의 피난한 자들이 다시 자기를 친 자를 의뢰치 아니하고 이스라엘의 거룩하신 자 여호와를 진실히 의뢰하리니 남은 자 곧 야곱의 남은 자가 능하신 하나님께로 돌아올 것이라”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기적의 강보에 싸여 구원을 얻은 우리는 이제 의지하던 것들을 의뢰치 않고 거룩하신 하나님만을 진실히 의뢰하며 하나님께로 돌아가야 합니다. 그동안 정확하게 살지 못하고, 해이하게 구름과 안개 낀 생활을 했다면 이제 회개해야겠습니다. 6·25 전쟁 때 한 번 얻어맞았으니 이제는 맞을 짓 하지 않겠다는 마음을 먹어야 할 것입니다. 왜 우리를 남겨 두었습니까? 복음을 전하기 위해서입니다.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심판하는 하나님의 이름을 자랑하기 위해서입니다(시 20:7). 전쟁을 아무리 준비한들 승리는 오직 하나님의 것입니다(잠 21:31). 이사야 37장을 보십시오. 앗수르 군대 185,000명이 이스라엘 백성을 둘러쌌습니다. 남 유다에는 무기가 없습니다. 이때 히스기야 왕과 하나님의 사람 이사야 선지자가 성전에 올라가 밤새도록 기도하였습니다. 185,000명이면 19개 사단입니다. 하나님께서 천사를 보내셔서 일순간에 시신을 만드시지 않으셨습니까? 바로 그 하나님이 우리의 하나님이시라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누가복음 13:6-9의 예수님의 포도원 무화과나무 비유를 보십시오. 주인이 열매를 얻고자 포도원에 무화과나무를 심었는데 3년 동안 열매를 맺지 못했습니다. 주인이 분노하여 찍어버리라 하자, 청지기가 땅을 파고 거름을 줘서 열매를 맺게 할 테니 1년만 유예해 달라고 간곡히 부탁합니다. 만약에 그래도 열매를 맺지 못하면 그때 찍어버리자는 것입니다. 1년 유예 선고를 받았습니다. 우리 한국이 그러한 입장에 있는 것입니다.
나무는 구원받은 성도입니다. 나무의 생명력은 물론 뿌리에 있지만, 뿌리의 존재 이유는 열매를 맺기 위한 것입니다. 우리가 예수를 믿고 구원을 얻었습니다. 그렇다면 무슨 열매를 맺었습니까? 사랑과 자비, 긍휼, 인정의 열매가 있습니까? 그러한 열매를 맺기 위해서 하나님께서 우리를 6·25 전쟁 때 남겨두셨습니다. 요한복음 15:16에서는 “너희가 나를 택한 것이 아니요 내가 너희를 택하여 세웠나니 이는 너희로 가서 과실을 맺게 하고 또 너희 과실이 항상 있게 하여 내 이름으로 아버지께 무엇을 구하든지 다 받게 하려 함이니라”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6·25 전쟁 속에서 남겨두신 우리에게는 해야 할 사명이 있습니다. 통일을 논하기 전에, 공산주의가 무엇인지 명확하게 아시기 바랍니다. 통일이라는 문제는 하나님께 맡기고 우리는 통일할 수 있는 준비를 해야 합니다. 북한과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잘살던 동독이 서독과 통일될 때도 서독이 얼마나 큰 고생을 했습니까? 대한민국 사회 전반에 통일할 수 있는 만반의 준비가 필요합니다. 50년간 사상과 이념, 자란 배경이 다릅니다. 같은 민족이면서도 다른 나라 대하는 것보다 더 어렵습니다.
성도인 우리는 상처 입은 대한민국 백성을 위해서 기도 많이 하시고, 하나님 말씀과 올바른 국가관으로 자녀를 양육하시기 바랍니다. 대한민국의 국가 ‘애국가’는 하나님을 찬양하는 노래입니다. 우리에게는 ‘하나님이 보우하사 우리나라 만세’ 외치는 조국이 있습니다. 우리 민족이 겪었던 일제의 탄압과 6·25의 상처를 통해 조국에 대한 보다 강하고 견고한 애국심을 심으시기 바랍니다.
2002년 6월 23일 주일2부예배 (6·25 기념예배) 설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