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은 우리를 믿고 투자하시는데
하나님은 우리를 믿고
투자하시는데
눅 1:5-23, 57-66
자기 자식이 사업을 하겠다고 하면 아무리 시원치 않아도 논 팔고 집 팔아서 투자하는 법입니다. 그것은 한몫 벌어보겠다는 심보가 아니라, 부모님의 뜨거운 자식 사랑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도 그렇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믿어주십니다. 우리가 믿지 못하고 죄 짓는 것을 아십니다. 마태복음 6:18을 볼 때, 은밀한 중에 모든 것을 보신다고 하셨습니다. 그러나 그 모든 것을 아심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 언젠가 회개하고 돌아올 것을 믿어주시는 것입니다. 그렇게 우리를 믿고 투자해 주시는 것이 바로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그래서 시편 89:26에서는 주님을 ‘나의 아버지, 나의 하나님, 나의 구원의 바위’라고 고백합니다(참고-사 49:15, 64:8, 시 27:10).
하나님께서는 그렇게 우리를 친아들로 여겨주시고 사랑하시는데, 우리의 모습은 어떻습니까? 일주일 동안 별짓 다 하며 기도도 하지 않고 있다가, 주일이 되면 교회나 한 번 가자 하지는 않습니까? 하나님을 일회용으로 사용하려는 인간의 모습, 1세기도 살지 못하는 유한한 인생의 모습입니다. 그래서 신명기 32:6에서는 “우매무지한 백성아 여호와께 이같이 보답하느냐 그는 너를 얻으신 너의 아버지가 아니시냐 너를 지으시고 세우셨도다”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세상의 누구도 우리를 인정하지 않는다고 해도 하나님은 우리를 참아들로 사랑하십니다(말 3:17, 사 63:16). 우리도 역시 하나님을 우리의 친아버지로 고백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하나님은 우리를 아들이라 부르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자기 아들 예수를 믿는 자를 사랑하십니다.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는 인류의 죄 때문에 하늘 영광 보좌를 버리고 이 땅에 오셔서 우리의 죄를 담당하신 분이십니다. 그리고 우리의 죄를 말끔하게 씻어주시고 첫 사람 아담이 죄 짓기 전 본연의 자세로 회복시켜 주셨습니다. 이 사실을 믿는 자를 하나님께서는 아들이라고 선언하십니다(요일 2:22-24).
또한 하나님께서는 이웃을, 원수까지도 사랑하는 자를 사랑하십니다. 사람으로서 나한테 피해를 입힌 원수를 사랑하는 것이 가능합니까? 그런데 하나님께서 원수를 사랑하라고, 심지어 주리거든 먹이고 헐벗거든 옷을 입히라고 말씀하십니다. 원수를 사랑하지 않고 이웃을 사랑하지 않으면 하나님께서도 우리 죄를 사하지 않겠다고 말씀하십니다(마 18:35, 5:45-48, 6:14-18). 누가복음 6:35-36에서는 “오직 너희는 원수를 사랑하고 선대하며 아무 것도 바라지 말고 빌리라 그리하면 너희 상이 클 것이요 또 지극히 높으신 이의 아들이 되리니 그는 은혜를 모르는 자와 악한 자에게도 인자로우시니라 너희 아버지의 자비하심 같이 너희도 자비하라”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웃 사랑, 원수 사랑이 지극히 높으신 이의 아들이 되는 길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아버지로 고백한다면 이 말씀에 순종해야 합니다.
사람으로서는 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을 충만하게 받고 성령 충만, 믿음 충만하면 능히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사람으로는 할 수 없으되 하나님으로서는 다 할 수 있느니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마 19:26). 아버지가 할 수 있다고 하시는데 아들이 왜 못한다고 합니까? 우리는 내 식구 내 가족밖에 모르지만, 예수님께서는 말씀을 듣는 모든 전 세계 사람들을 부모고 형제라고 말씀하셨습니다(마 12:50, 막 3:35).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예수님께서는 이 땅에 오셔서 아버지의 명령을 영생으로 아셨습니다. 그리고 아버지의 말씀대로 인류의 죄를 걸머지고 십자가에 달려 보배로운 피를 쏟으셨습니다. 빌립보서 2:5에서는 바로 그 마음, 예수 그리스도의 마음을 품으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예수 마음은 빈 그릇입니다. 성부 하나님이 고추장을 담으시면 고추장 그릇이, 된장을 담으시면 된장 그릇이 되는 것이 빈 마음입니다. 십자가를 담으라는 말씀에 그대로 순종하여 예수님의 마음 속에 십자가를 담으셨습니다. 이것이 예수 믿는 사람의 마음이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예수 마음과 똑같이 되라 하십니다. 우리가 주기도문을 통해 고백하듯, 순종하는 자만이 아들이 되어 아버지의 이름을 거룩하게 할 수 있는 것입니다(마 6:9).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믿고 투자해 주셨습니다.
오늘 본문에서는 달란트 비유를 통해 하나님의 투자를 받은 교회가 예비해야 할 내용을 가르쳐줍니다. 누가복음 19장에는 비슷한 므나의 비유를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여기에는 차이가 있습니다. 므나 비유에서는 열 므나를 한 므나씩 나눠주며 평등하게 분배하였지만, 마태복음 25장의 달란트 비유에서는 차등 분배하였습니다. 달란트 비유는 재능대로 다르게 투자한 것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주인은 종들의 재능대로 각각 5달란트, 2달란트, 1달란트를 맡겼습니다. 우리가 가지고 있는 재능, 지식, 생각, 모든 오장육부까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맡겨주신 것입니다. 그러니 우리는 다만 먹든지 마시든지 하나님의 일을 하면서 하나님께 영광 돌리며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일을 행해야 할 뿐입니다(롬 14:6-7, 고전 10:31-33). 성경은 ‘곧’ 복음입니다. 5달란트 받은 자와 2달란트 받은 자는 곧, 즉시 나가서 장사를 시작하였습니다. 그런데 믿지 못하고 말씀을 깨닫지 못한 종을 보십시오. 그는 ‘주인은 엄한 사람이라 심지 않은 데서 거두는 자다’라고 생각하고 두려운 나머지 땅에 한 달란트를 묻어놓았습니다. 그 대답을 듣고 주인은 본전을 받을 바에야 은행에 예금해서 이자를 받지 않았겠느냐 질책하며, 그 악하고 게으른 종의 수족을 결박하여 바깥 어두운 데에 집어 던져버렸습니다.
‘현상 유지’는 충성도, 성실도 아닙니다.
성도 여러분. 하나님께서 우리를 믿고 우리에게 투자하셨습니다. 금년 정월 초하루부터 지금까지 하나님께서 투자하신 것을 가지고 장사하셨습니까? 1달란트 받은 종은 그저 땅에 묻어놨을 뿐, 일하지 않았습니다. 있으나 마나 한 종은 불필요한 자요, 가진 것도 빼앗기고 맙니다. ‘현상 유지’! 즉, 우리 재주나 물질, 여건을 잘 보관만 하는 것은 충성도 성실도 아닙니다. 말씀 받고 전도하지 않는 것, 자녀에게 말씀을 가르치지 않는 것, 주신 재능으로 재물을 얻어놓고 헌금하지 않는 것, 전부 그저 현상 유지입니다. 자녀가 달라고 하면 몇 억 원이라도 다 꺼내 주면서, 하나님께는 인색합니다.
왜 1달란트 받은 종은 현상 유지를 선택했습니까? 첫째 이유는 주인에 대한 오해였습니다. 이 종은 주인을 ‘굳은 사람’이라고 말했습니다(마 25:24). 원어의 의미는 ‘인색한 사람’이라는 뜻입니다. 떡을 달라하면 돌을 주고, 생선을 달라하면 뱀을 주는 자로 여긴 것입니다(마 7:9-11). 이 종에게는 주인에 대한 사랑과 신뢰가 없었습니다. 우리 하나님은 우리가 알게 모르게 죄 지은 것도, 믿지 못하고 나약한 것도 아십니다. 그러나 우리가 회개하고 돌아오기를 바라시며 끝까지 참고 기다리십니다.
둘째 이유는 두려움이었습니다(마 25:25). 그는 세상을 부정적으로 보고 자신을 과소평가하는 사람이었습니다. 나 같은 것이 무슨 장사를 하느냐, 나 같은 놈이 뭘 할 수 있느냐 자신을 믿지 못하고 주인의 믿음을 저버리고 말았습니다. 결국 현상 유지는 적자라는 결과가 되고 말았습니다. 하나님의 것을 가지고 발전시키시기 바랍니다. 우리 몸도, 우리 모든 재능도, 우리 재주와 모든 환경이 다 하나님의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달란트 비유를 통해서 말씀하시는 것은 벌어들인 것의 많고 적음이 아닙니다. 얼마를 받았든 현재 가진 것을 발전시키고 기도하며 하나님을 의지하고 열매를 거두고 있느냐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투자에는 실패가 없습니다.
하나님께서는 평강제일교회 여러분들을 믿고 투자하셨습니다. 먼저 생명을 투자하셨죠. 우주만물의 영장으로 세우셨습니다. 믿음도 내가 마음 먹은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주심으로서 믿는 것입니다(히 12:2, 엡 2:8). 그러니 우리가 감사가 없어서는 안 되겠습니다(엡 5:20, 골 2:7). 또한 하나님께서 우리를 믿고 부탁을 하셨습니다. 마태복음 21:28-32를 볼 때, 큰 아들은 포도원에서 일하라는 아버지의 부탁을 듣고, 가겠다 대답하고 가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작은 아들은 가지 않겠다 말하고는 뉘우치고 포도원에 가 일했습니다. 둘 중에 누가 아버지의 뜻대로 하였습니까? 물론 작은 아들입니다. 이처럼 예수님 당시 때도 종교지도자들이 아니라, 멸시 천대받는 창녀와 세리, 죄인들이 세례를 받고 예수 앞에 나아왔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아들로 여기시고 부탁하셨을 때, 온전히 믿음으로 순종하며 즉시 나아가는 저와 여러분 되기를 바라겠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믿고 투자하셨는데 얼마나 열매를 맺어드렸습니까? 내가 하나님 앞에 열매 맺은 것이 인색하지는 않았습니까? 충성하시기 바랍니다. 오늘은 땅에 묻어놓고 내일 장사해야지 생각할 것이 아닙니다. 사람은 오늘 일도 내일 일도 전혀 알 수 없습니다(잠 27:1). 그러니 하나님께서 투자하실 때 즉시 순종해서 나가서 장사해야만 합니다. 이 장사는 주의 몸 된 교회에 충성하며 예배로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것입니다. 실로 감사한 것은, 하나님의 투자에는 인색함도 틀림도 없습니다. 사람의 투자는 실패할 수 있지만, 하나님의 투자에는 실패가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믿고 투자하셨기에 우리가 하나님 앞에 영광 돌리며 기쁨의 열매를 올려드릴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 평강제일교회 모든 성도들이 하나님의 투자 앞에 철두철미하게 회개하고, 감사가 차고 넘치며, 마침내 풍성한 열매로 주인을 기쁘시게 하시기를 축원합니다.
2006년 9월 3일 주일2부예배 휘선 박윤식 목사 설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