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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안인터뷰 : 전극화 장로 2편 – 생명 바쳐 충성하지 않으면 그 나라 못 갑니다

2019.01.15 22:33

참평안은 지난해 휘선(暉宣) 박윤식 목사 성역(聖役) 60주년과 구속사 시리즈 발간 10주년을 맞아 휘선사업기념회와 공동으로 특별 인터뷰를 시작했다. 휘선 박윤식 목사 사모 민갑식 여사 (2017년 1월호), 정원식 전 국무총리 (2017년 3월호), 홍순분 전도사 (2017년 6월호)에 이어 네 번째로 평강제일교회 초기 역사의 핵심 증인 전극화 장로를 만났다. 인터뷰 최우선 순위였지만 미국 거주 중이어서 애를 태웠던 전 장로와의 만남은 그가 4년 만에 일시 귀국함으로써 마침내 성사됐다. 2018년 11월호에 실린 1편에 이어 그의 육성을 전한다.

 

(1편에서 계속)

한번은 일간지에 광고를 내서 ‘복음전도대원’을 모집했지 (참평안 2018년 9월호 ‘교회 역사를 찾아서 제2편’ 참조). 박윤식 목사님께서 ‘신문에 냈으니 사람들이 찾아올 것’이라며, 당시 대방동에 있던 우리 집으로 모이게 하라고 하셨어. 청년이었던 최완규 장로(현 미국 올랜도 푸른동산교회 시무)를 비롯해서 300명 넘게 왔지. 목사님들도 있고, 주로 청년들이 많이 왔어. 박 목사님이 청계산 기도원 등에서 두 달 동안 성경을 가르치시고는 전국으로 전도를 내보내셨어. 밤낮 편지가 왔지. “오늘도 걷습니다. 내일도 걷습니다.” 하는 편지야. 그때 모였던 청년 중에 한 사람은 전가화 목사님이라고 유명한 부흥강사가 됐어. 

이듬해에는 청평 밤나무골에서 목사 340명이 참석하는 대집회가 열렸어 (참평안 2018년 10월호 ‘교회 역사를 찾아서 제3편’ 참조). 우리 남편이 625 전쟁 때 미군 통역장교를 한 뒤 미8군에서 문관으로 근무하다가 월남전 때 5년간 복무했어. 월남에서 보내준 돈을 헌금으로 드려서 청평 집회가 열렸지. 우리 교회 계시던 김의방 목사를 강사로 내세워 신문에 광고를 내니 ‘장감성’(장로교, 감리교, 성결교) 목사님들이 많이 찾아왔어. 멀리 부산에서도 오고, 전국에서 몰려왔지. 유상근 박사(전 명지대 총장)가 쌀을 다 대주셨어. 목사님들 여비 다 드리고 밥을 잘 해서 대접하면서 성경을 가르쳤는데, 맨 처음에는 반응이 없다가 십자가 공부를 한 뒤에는 줄을 서서 우리 교회 와서 일하겠다고 몰려왔어. 말씀에 은혜받고, 그 다음에 박 목사님 행동하시는 걸 보고 은혜받았지. 목사님들이 모여드는데 기거할 곳이 없으니 우리 집에서 재웠지. 석 달을 우리 집에 묵었어. 우리 딸이 “왜 우리 집에만 오느냐”고 불평하기도 했지. 목사님들이 우리 교회에서 일하겠다고들 몰려왔지만, 교회가 그 많은 목사님을 감당할 수 있나. 나중에는 각자 교회 돌아가서 일하는 것으로 정리를 했지. 그때 목사님들이 몰려들기 시작하면서부터 시기하는 사람들이 우리 교회가 이단이라는 소문을 내기 시작했어.

편집자 주 : 휘선기념사업회는 복음전도대원 모집은 1967년 7월, 청평 대집회는 1968년 7월로 파악하고 있다. 가정교회에서 벗어나 서울 원효로의 식당을 빌린 전세교회에서 첫 예배를 드린 것은 1968년 10월 5일, 전극화 장로의 건축헌금을 토대로 서울 대방동 시온산한돌교회가 지어져 예배를 드린 것이 1969년 9월 10일이다. (2018년 11월호 전극화 장로 특별인터뷰 제1편 참조)

 

대방동 시온산한돌교회를 지었지만 잘 해야 100명 앉으면 꽉 차는 교회였어. 1층은 사무실로 쓰고 2층에서 예배를 드렸는데 올라가려면 굉장히 힘들었어. 애들 업고 올라가면 넘어질까봐 무서웠지. 그때 박윤식 목사님이 여운초 목사님을 통해 부산에 살던 조정실 씨를 만나게 된 거야(조정실 씨는 부산의 대표적 향토기업인 성창합판 가(家)의 며느리다. 2018년 10월호 ‘교회 역사를 찾아서 제3편’ 참조). 신림동 일석교회는 조정실 씨 때문에 지어진 거야. 그분이 말씀으로 체험을 얻은 뒤 완전히 뒤집어졌지. 그리고는 한 손에 잡힐 정도로 많은 다이아몬드를 꺼내더니 “이건 돌에 불과한데 왜 함에 넣어놓겠느냐”며 “이걸 가져다 팔아 쓰시라”며 드린 거야. 교회 지을 때 합판도 몇 번을 실어 날랐지. 그렇게 해서 교회가 지어진 거야.

일석교회 시절에도 오전이고 오후고 정해진 시간도 없이 다들 나와서 성경을 공부했어. 한 사람만 있어도 다 불러 모으면 모두 모이곤 했지. 박 목사님은 구석구석 전도하러 다니셨어. 나도 그 덕에 여러 곳 구경 많이 했지. 기생에게도 전도해야 한다고 하셔서 심지어는 명월관 같은 곳에도 같이 갔었어. 기생들한테 성경을 하나 하나 가르쳐 주시는 거야. 그렇게 하면 기생들이 실제로 교회로 왔어. 목사님은 늘 하늘의 일을 생각하셨고, 우리는 땅의 생각을 하니 잘 맞지 않는 게 있었지. 그런데 하나 하나 맞춰가다 보면 결국은 목사님이 하시는 법이 다 맞는 거야. 나는 지구를 통틀어도 그분 같은 목회자는 없다고 생각해. 안 다닌 데 없이 다니며 전도하셨어. 우리가 그렇게 보내드리는 게 아닌데. 2014년 천국 입성하신 뒤 ‘내가 너무 잘 못 모셨구나, 잘 못 알아드렸구나’ 하는 생각에 너무나 통분했어. 제대로 대접 못 해 드렸던 것이 억울했고, 명령하시는 것 뭐든지 다 했어야 하는데… 그렇게 온갖 고생을 하시고, 망신을 당하시면서 당신을 바치셨는데. 고생하며 따라다니던 시절에는 ‘우리를 불쌍히 여겨 주시옵소서’ 했는데, 지금 생각하면 하나님의 말씀이 불쌍해. 우리는 목숨을 열 개 바쳐도 아깝지 않은 존재야. 박 목사님은 숱한 생명들을 살리시려고 안 한 것 없이 별 고생을 다하셨어. 진짜 불쌍하게 사셨어. 

 

미국 선교의 길을 닦다

월남전에 다녀온 뒤 남편이 미국 이민을 결심했어. 미8군에서 15년 이상 근무한 사람에게는 미국 이민을 원하면 받아주게 돼 있었거든. 그게 1974년이야. 나는 미국에 가고 싶은 생각이 없었어. 말씀을 위해 살아왔는데 미국에 가면 다 없어지는 줄 알았지. 그런데 박윤식 목사님께 상의했더니 뜻밖에 가보라고 하시는 거야. 나는 안 간다고 했지. 그런데 목사님 말씀도 계시고 하니 결국 미국 LA로 떠나게 됐어. 그때 박 목사님이 공항에 나오셨지. 우리 모두 얼마나 울었는지 몰라. 그런데 미국에 가서 보니까 ‘아, 여기서도 일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더라고. 가서 매일 교회로 편지를 썼지. 박 목사님도 편지를 써서 보내주셨어. 말씀을 전할 길을 찾기 시작했지. 선교센터가 있다는 얘기를 듣고는 루시 함 성도에게 물어 6천 불을 들고 찾아갔어. 한국인 목사님 대여섯 분이 있었어. 그분들과 여러 번 식사를 하면서 친분을 쌓았지. ‘우리 목사님이 유명한 분인데 너무나 말씀이 좋으니 초청하면 LA가 뒤집어질 것’이라고 했어. 그 선교센터 주선으로 박 목사님이 미국 초청을 받으셨고 그 후 우리 교회의 본격적인 미국 선교가 시작됐지. 나는 워싱턴DC로 옮겨가서 사람들을 사귀고, 교회를 빌리고, 점심밥을 잘 차려 성도들을 대접하면서 교회를 개척했어. (현재 전극화 장로의 아들 김사무엘 목사가 워싱턴DC 믿음제일교회를 담임하고 있다)

 


전극화 장로가 말하는 휘선 박윤식 목사

처음에는 나도 목사님이 병 고쳐주고 하는 겉모습만 보고 따라다녔어. 그런데 목사님 안에는 오직 말씀밖에 없고, 그 말씀을 가지고 우리 앞에 앞장서서 견본으로 가신다는 것을 뒤늦게 알았지. 가슴 아파 통곡하며 그걸 깨달았어. 그 다음부터는 겉모습이 아닌 말씀만 보는 거야. 목사님은 믿음의 사람, 말씀의 사람이야. 강단에서 하시는 말씀만이 아니라 평상시에 말씀하시는 것도 모두 하나님 말씀에서 나온 건데, 그걸 다 귀담아듣고 순종하지 못했던 것이 너무 너무 후회스러워. 시대마다 역대 선지자를 통해서 시대를 살리는 말씀이 나왔잖아. 그런데 나는 그런 선지자를 만나고도 그 말씀을 못 믿은 것이 얼마나 후회되는지 몰라. 남은 사람들도 정말로 말씀만 의지해서 가야지, 조금이라도 사람을 의지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내가 절실히, 절실히 깨닫고, 이제는 내 속에 있는 자아, 내 속의 왕 마귀를 죽이는 것은 구속사 말씀 밖에 없다는 믿음으로 말씀만 보게 돼. 

박 목사님은 “전도가 힘들다고 하지만 사실 전도보다 더 힘든 것은 자기와의 싸움이야. 독자적인 신앙이 가장 힘들어”라고 말씀하시곤 했어. “사람을 돈 주고 사야 한다”는 말씀도 하셨어. 그때는 우리한테 돈을 사랑하지 말라고 해놓고 왜 돈 얘기를 하실까 했어. 그런데 이제 와서 보니 전부 돈이 드는 일이야. 예수님도 “불의한 재물로 친구를 사귀라”(눅 16:9)고 하셨잖아. 구속사 시리즈를 펴내고 전하는 데에도 돈이 필요해. 그때는 그걸 몰랐지. 

목사님은 어릴 때부터 성경책을 가지고 다니셨대. 목사님 어머님께서 그렇게 말씀하시면서 사진을 보여주시더라고. ‘우리 윤식이는 여섯 살 때부터 성경을 가지고 다녔다’고. 동전도 쩔렁쩔렁 소리나게 가지고 다니다가 어려운 사람들 있으면 나눠주고. 집에 누워 있다가도 동네 사람들이 와서 교회 소리, 성경 얘기만 하면 벌떡 일어나서 답변을 해주시고 그러셨대. 월남한 뒤에는 기도원을 많이 찾아다녀서 쌀 갖다 대느라 동생들이 고생 많이 했다지. 내가 목사님을 만난 뒤에도 목사님은 기도원에 참 많이 다니셨어. 지금 와서 생각하면 거기서 만나는 사람들과 말씀으로 함께 갈 수 있는지, 손을 잡을 수 있는지 맞춰보느라 그렇게 다니신 것 같아. 당신은 깨달은 말씀이 있는데 어디 가서 일을 해야 하나 찾으신 거지.

 

 

어떻게 믿을 것인가, 지금은 어떤 때인가.

말씀은 어김없이 흘러왔어. 말씀은 이루어지게 돼 있어. 우리가 깨닫는 것이 문제지. 젊었을 때 그렇게 무거운 말씀의 가치를 미처 못 깨달았으니 이제는 두 곱 세 곱 일을 해야지. 내가 나이 90 먹었으니 생명 내놓는 것은 아무것도 아니야. 생명 안 내놓으면 갈 수 없는 세계야. ‘죽으면 죽으리라’ 하는 거지, 겁내면 뭘 할 수 있겠어. 박 목사님 말씀하신 대로 아직 나에게도 ‘자아와의 싸움’이 제일 힘들지. 물론 전보다는 나아졌어. 그렇지만 무슨 일이 닥쳤을 때 인정, 애정이 남아 있으면 안 되겠더라고. 말씀 하나만 정도에 놓고 그냥 밀고 나가야지. 조금이라도 내 자식, 내 여편네 때문에 걸림이 되면 안 되지. 예수님도 ‘아비나 어미나 아들이나 딸을 나보다 더 사랑하면 내게 합당치 않다’(마 10:37)고 하셨잖아. 물론 쉬운 일이 아니지. 그렇게 되기 위해서는 말씀의 가치를 깨닫고, 말씀의 맥을 잡아야 해. 맥을 벗어나면 잡탕이 돼. 

이제는 정신 차릴 때가 왔어. 나는 마지막 때가 ‘가까이 온 것’이 아니라 ‘지금 눈 앞에 있다’고 생각해. 그래서 내가 야단났다고 하는 거야. 말씀에 딱 붙어서 말씀의 응답을 받아야지. 이사야서에 ‘네가 부르기 전에 응답하신다’고 했는데(사 65:24) 아버지가 내 마음에 있어야지. 공산주의는 하나님이 없어. 그런데 공산주의에 머리 숙이지 않으면 밥도 못 먹는 시대가 온다고 요한계시록에 기록돼 있잖아. 그런 때가 눈 앞에 와 있으니 야단 난 거야. 창세기 15장의 횃불언약이 영적으로 이뤄지려면 우리가 영의 사람이 돼야지. 예수님이 ‘내 말이 영이요 생명이라’ 하셨으니 말씀으로 영의 사람이 되는 거지. 말씀이 점점 깊어지잖아. 지남석도 이 정도 가까이 와야 서로 붙지, 아주 멀리 있으면 안 붙어. 점점 영의 세계가 가까워지니까 내가 영의 사람이 돼서 마지막에 영의 세계와 붙기를 기다리는 거지. 사람은 그놈이 그놈이야. 말씀만 믿어야 해. 하나님이 한국을 사랑하셔서 말씀을 보내주셨지만 하나님은 온 세계를 창조하신 분이잖아. 여기서 다 나아가서 전 세계로 뻗어나가야 할 것 아냐. 

절대 정신 차려야 해. 앞으로는 정신 차리기가 힘들 때도 올 거야. 우리 목사님들이 발벗고 나서야 돼, 우리 아들도 목사지만 생명 걸지 않으면 안 돼. 목사님들이 이제 진짜 잘해야지. 목사님들은 그저 생명 걸어 놓아야 돼. 아끼면 절대 안 돼.

 

1929년생인 전극화 장로는 기자가 보기에 지금도 ‘현역’이었다. ‘할 만큼 했으니 이제 편히 좀 쉬겠다’는 마음은 조금도 없어 보였다. ‘밭에 감추인 보화를 발견하고 자기 소유를 다 팔아 그 밭을 산’(마 13:44) 헌신을 해놓고도 “제대로 못 믿어드린 것이 너무나 후회스럽다”며 “지금이라도 두 곱절 세 곱절 일할 것”이라고 다짐했다. “믿음은 늙고 젊은 것과 상관없다”며, “늙었다고 하나님 일 안 하고 가만히 있으면 안 된다”고 했다. 

그에게 물었다. “그 험난한 초기 교회의 역사에 동참했던 사람들이 많았는데, 왜 대부분의 사람들이 끝까지 남지 못했습니까” 그가 답했다. “믿지 못한 잘못 때문이다. 여운초 목사님과 나도 몇 번이나 ‘야, 우리 이제 보따리 싸서 나가자. 더는 견딜 수가 없다’고 말했다. 그러나 극복하고 견딘 사람은 남은 것이다.”

 

신비롭고 오묘한 현장 답사기

만화 같은 얘기라 생각할 수도 있지만 기자가 직접 겪은 체험을 전한다. 1편에 쓴 대로 전극화 장로가 휘선 박윤식 목사를 처음 만나 하나님의 은혜를 체험한 날이 11월 11일. 전극화 장로의 일대기가 ‘참평안’ 2018년 11월호를 통해 반세기 만에 처음 세상에 공개된 날도 11월 11일이었다. 기자가 그 내용이 담긴 인터뷰 기사 작성을 마친 날은 2018년 11월 7일. 그런데 마침내 기사를 탈고하고 무심코 시계를 봤는데 놀랍게도 밤 11시 11분이었다.

거기서 끝이 아니었다. 바로 기사를 메일로 송고하기 위해 포털사이트에 들어갔는데 한 켠에 ‘후암동 작은 집 협소주택’이라는 블로그 기사가 눈에 빨려들 듯 들어왔다. 조금 전 탈고한 기사의 주요 무대가 바로 후암동이었기 때문이다(1962년 11월 11일 당시 전극화 장로 집과, 성경공부가 시작된 김종화 권사 집). 현장에 한번 가봐야겠다는 생각이 기자를 강하게 이끌었다. 다음 주에 유일하게 점심 약속이 없던 수요일(11.14), 점심시간에 후암동으로 향했다. 인터뷰 당시 전극화 장로는 50년 전 살던 집의 지번을 정확히 기억하고 있었다. ‘후암동 404번지’. 그러나 강산이 다섯 번 변하는 세월이 흘렀고, 지번 주소는 도로명 주소로 바뀌었다. 404번지를 찾는다는 보장은 없었다. 그러나 웬일인가. 20여 분 골목을 누벼 찾아간 옛 404번지 자리에는 마치 역사의 현장을 증언이라도 하듯 ‘404’라는 이름의 카페가 자리 잡고 있었다.(사진) 당시 전 장로가 출석하던 교회도 그대로 지척에 서 있었다. 모두가 기자가 포털사이트 블로그 기사에서 본 그 집에서 불과 수십 미터 떨어진 거리였다. 이 동네의 옛 이름은 목사와 장로들이 많이 산다고 해서 ‘이상촌(理想村)’이었다고 했다.

현장에 있는데 전화기가 울렸다. 오전에 여운초 목사, 전극화 장로와 함께 대방동 시온산한돌교회와 신림동 일석교회 현장을 탐방한 조다니엘 목사(휘선기념사업회)가 기자가 후암동에 가 있다는 사실을 우연히 알고 “일정이 예상보다 빨리 끝났으니 우리도 그리로 가겠다”며 연락해 온 것이다. 그렇게 기자는 예정에도 없이 교회 역사의 현장에서 교회 역사의 핵심 증인들을 다시 만났다. 두 어른은 반 세기 전 일들을 회고하며 깊은 감회를 감추지 못했다. 참으로 신비롭고 오묘한 날이었다.

대담,글_호준석 기자
사진_안지영, 하수곤 기자. 휘선기념사업회
기록_권오연 기자

  • 2019년 1월호 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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