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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 생각, 정신, 마음, 삶의 새 지도 (넓어진 변화)

2018.12.31 14:26

자기 생각, 정신, 마음, 삶의 새 지도

(넓어진 변화)

눅 24:1-9

 

오늘 말씀을 잘 들어야 여러분들이 잘 삽니다. 오늘 제목이 ‘자기 생각, 정신, 마음 삶의 새 지도’입니다. 눈에 보이는 지도를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여러분이 몰라서 그렇지, 우리는 태어날 때부터 하나님이 주시는 지도를 다 가지고 나왔습니다. 그런데 세상 것만 생각하며 살아서 우리 지도가 너무너무 구질구질하고 짧고 좁아졌습니다.

12평짜리 아파트에 살다가 20평 아파트에 가면 무척 넓어 보입니다. 30평, 40평, 50평은 말할 것도 없습니다. 지도가 없던 옛날에는 바다를 항해하는 배들이 육지 연안으로만 살살 다녔습니다. 수평선 쪽으로 멀리 나가면 벼랑으로 떨어져 죽는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머리 속 지도가 좁고 짧았던 것입니다. 그런데 콜롬부스 같은 용감한 모험가가 나타나 수평선을 향해 전진한 끝에 신대륙을 발견한 것입니다. 아메리카 대륙에 도착했는데 콜롬부스는 인도인줄 알고 원주민들을 ‘인디언’이라고 불러 지금도 그렇게 불리고 있습니다.

우리의 지도는 어린아이일 때와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 때가 다 다릅니다. 저마다의 고향과 학교와 삶의 경험에 따라 지도가 또 다릅니다. 그것이 다인줄 알고 그만큼만 전진하고 그 범위를 벗어나지 못합니다. 그래서 육신의 생각은 지도가 좁고 초라하기 짝이 없습니다. 동서남북 가는 곳마다 악취가 납니다. 그러나 ‘비전(vision)’은 나의 지도가 넓어짐을 말합니다. 그리고 ‘신앙’은 나의 지도가 더욱 넓어짐을 말합니다. 비전의 지도보다 신앙의 지도는 더 넓고 크고 높습니다.

 

예수님의 부활은 제자들에게 무슨 변화를 가져다 주었습니까?

“이제 지도 바꿔라! 지도 바꿔라!” 하는 외침입니다. 그 결과 제자들의 지도가 바뀌는 변화가 일어났습니다. 제자들은 예수님이 죽지 않고 살아서 로마를 때려 부수고, 혁명가로서 왕권을 차지할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당당하시던 예수님이 맥없이 빌라도한테 잡혀 가서 포승줄에 묶여 매 맞고 성체가 터지고, 처참하게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신 것입니다. 제자들은 ‘예수님의 처참한 죽음’이라는 사실만 확실하게 믿었습니다. 스스로 지켜본 일이기 때문입니다. 그 이상은 생각하지도, 믿지도 않았습니다. 예수님을 보는 지도가 아주 짧았던 것입니다. ‘우리한테는 그렇게 큰 소리 치시던 예수님이 초라하게 포승줄에 묶이고 매 맞고 십자가에 달려 죽다니’ 하는 불신과 절망에 사로잡혀 있었습니다. 무슨 기적이라도 나타날 줄 알았는데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제자들은 이후에 자기들에게 미칠 박해, ‘우리 여편네, 자식까지 죽이겠지’ 하는 두려움에 떨었습니다.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부풀었던 소망은 하루아침에 서리 맞은 호박잎처럼 바싹 말라 누렇게 꼬들아졌습니다. 소망이 없었습니다. 아무 생각조차 하기 싫었습니다. 아예 지도가 사라졌던 것입니다. 그래서 문을 꽁꽁 걸어 잠그고 한방에 모여 있었습니다. ‘야, 문 단단히 잠궜냐?’ ‘빗장 잘 질러라’ 하면서 말입니다.

그렇게 당당하던 예수님이 맥없이 돌아가시니 제자들은 그게 끝인 줄로만 알았습니다.

 

그런데 그 한복판에 주님이 나타나신 것입니다. “너희에게 평안이 있을지어다” 하고 세 번이나 말씀하셨습니다. 그 자리에 없던 의심 많은 도마는 제자들의 말을 듣고도 안 믿었습니다. “내가 그 손의 못자국을 보며 내 손가락을 그 못자국에 넣으며 내 손을 그 옆구리에 넣어보지 않고는 믿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8일 뒤 다시 찾아오신 예수님께서 “도마야, 네 손가락을 내밀어 내 손을 보고 네 손을 내밀어 내 옆구리에 넣어보라. 그리하고 믿음 없는 자가 되지 말고 믿는 자가 되라”고 하셨습니다. “너는 나를 본 고로 믿느냐. 보지 못하고 믿는 자들은 복되도다” 말씀하셨습니다.(요 20:19-29)

그들은 예수님의 부활을 목격하고 만져본 후로 삶의 지도가 달라졌습니다. 제자들의 지도로는 십자가가 마지막인 줄 알았지만 이제 시야가 넓어진 것입니다. 영원히 죽지 않는 것을 비로소 깨달은 것입니다. 마음 속에 서서히 땅의 지도가 사라지고 하늘의 지도, 부활하신 주님의 지도를 품고 일하게 된 것입니다. 참으로 위대한 신앙입니다.

주님의 부활하신 지도를 보십시오. 그 지도는 ①미래를 책임집니다. ②미래를 약속합니다. ③또 미래를 보여줍니다. 책임지고 약속하고 보여준다는 것입니다. 이제는 예수님을 바라보는 안목의 지도가 벌써 다릅니다. 나를 움직이고 내가 행동하는 근본 에너지, 동력이 바뀌었습니다. 그래서 거듭난 것입니다. 기독교는 거듭나는 종교, 즉 중생(重生)의 종교입니다. 나의 지식과 경험에 기초한 상식을 넘어, 하나님이 주시는 동기와 이유와 방향을 향하는 새로운 삶, 그것이 바로 새 지도입니다. 단순히 넓어진 것이 아닌, 전혀 새로운 지도입니다.  영적으로 주님의 부활 이후 우리는 다 새로운 지도를 가지고 있습니다. 예수님 믿기 전의 남편, 아들딸, 사위와 며느리, 사업과, 예수님 믿은 뒤의 남편, 아들딸, 사위와 며느리, 사업이 똑같습니까? 내 것인줄만 알았는데 알고 보니 다 하나님이 주신 것입니다(학 2:8). 이제는 “네 창고를 지어라” 하셔도 “아이고, 하나님. 제가 바보가 아닙니다. 모든 것이 하나님의 것인데 하나님께서 창고를 지으셔야지, 왜 저에게 지으라고 하십니까?” 하는 믿음이 있어야 합니다. 그리스도의 부활 이후 우리 마음과 생활과 행동이 변했습니다. 이 땅에 사는 것은 하나님 나라 가기 위한 준비일 뿐입니다. 그래서 열심히 구역예배에 모이고, 헌금하고, 전도하고, 말씀 공부하며 성경을 배우는 것입니다. 그것이 하늘나라 가는 준비입니다. 땅의 지도가 하나님 나라 지도로 바뀐 것입니다.

무덤이 마지막인줄 알았던 제자들의 시야가 넓어졌습니다. 삶의 지도가 달라졌습니다.

 

1. 제자들의 옛 지도에는 무덤만 그려져 있었습니다.

제자들은 무덤이 끝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사람이 죽으면 그만이지 어떻게 오냐?’고 생각했습니다. ‘오늘날까지 산 사람 있다더냐?’ ‘야, 믿어도 미친 사람처럼 믿지 마라.’ ‘죽은 자가 어떻게 다시 살아나냐?’ ‘인생은 가면 그만인데’ 하는 생각들입니다. 좁아지고, 사라지고, 없어지는 인생의 지도입니다. 낡고 썩고 변하고 악취가 나는 무덤을 보며 ‘죽으면 볼장 다본 것’이라 믿습니다. 윤심덕의 노래 ‘사(死)의 찬미’ 가사처럼 인생의 허무를 느낍니다. 뜬구름 같은 세상, 아침 안개와 같고, 풀끝에 이슬 같고, 바람에 날아가는 먼지 같은 인생이라 서러워하고 괴로워하며 내 무덤이 모든 것의 끝이라 생각하니 세상 떠나기를 싫어합니다. 답답한 일입니다.

그런데 주님의 부활을 볼 때 ‘아아 십자가가 끝이 아니고 부활이 있구나’ 하는 새 소망이 생겼습니다. 인생들이 ‘여보’ ‘당신’하며 서로 사랑을 고백해도 그 종착역은 무덤입니다. 죽으면 어떻게 사랑하겠습니까. ‘죽어도 사랑하겠다’는 다짐은 가짜라는 것을 알게 됩니다. 그러나 부활 안에서는 사랑이 가짜가 아닙니다. 영원한 것입니다.

미국의 한 유명한 여배우는 예수님 믿는다 하면서도 값비싼 관을 만들어 침대 옆에 놓고는 “끝이 멀지 않았으니 그때까지 열심히 일하겠다”고 했다고 합니다. 기가 막히는 일입니다. 이 여배우처럼 많은 사람들이 무덤을 지도의 종착역, 막다른 골목으로 생각하고 삽니다. 그러나 십자가와 무덤이 예수의 끝이 아니었습니다. 사망 권세를 깨트리고 3일 만에 영육간에 부활하셨습니다. 예수님의 부활은 허깨비처럼 영으로만 부활하신 것이 아닙니다. 기독교의 부활은 육신과 영이 아울러 신령한 몸으로 부활하는 것입니다. 누가복음 24장 말씀 볼 때 주님은 “나를 만져 봐라, 영은 뼈와 살이 없거니와 너희 보는 바와 같이 나는 뼈와 살이 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래도 의심하는 제자들에게는 디베랴 바닷가에서 구운 생선과 떡을 가져오라 하셔서 같이 드셨습니다. 그러므로 여러분도 몸에 상처를 내지 말고 몸을 아름답게 가꾸고 보존하시기 바랍니다. 몸은 우리 영혼이 거하는 집이고, 하나님의 성전입니다. 우리는 십자가, 무덤을 종착역으로 두려워해서는 안 됩니다. 새 출발점입니다. 주님은 사망권세를 깨트렸습니다. 승리했습니다. 성경대로 죽었다가 3일 만에 살아난다는 예언이 성취된 것입니다.

주님의 부활은 천국 운동의 시작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지도가 다릅니다. 우리 지도는 천국 운동의 지도입니다. 내가 오늘 오류동에 가서 전도하면 지도가 오류동에 그려집니다. 내일은 역삼동에 가서 전도하면 역삼동 지도가 달라집니다. 사흘째는 영등포에 가서 전도하면 영등포 지도가 바뀌는 것입니다. 복음을 들고 만민에게 전하는 그 발자취를 예수님께서 다 맞춰보십니다. ‘너 복음을 위해 갔던 지도, 복음을 전할 때의 지도 좀 보자.’고 하실 때 속이지 못합니다. 행한 대로 행적이 남는 것입니다.

주님의 부활은 나팔소리입니다. 여러분이 전도하면 그 순간 나팔소리를 내는 것입니다. 주님은 약속대로 사망권세를 이기시고 5백 명 이상이 보는 데서 나타나셨습니다(고전 15:4). 바위가 갈라지고 터졌습니다. 육신의 지도는 그 순간 깨지고 부서져 가루가 됐습니다. 새 지도는 피곤치 않습니다. 영원을 향해 뻗어가는 소망의 지도입니다. 부활의 산 증인인 베드로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하나님 아버지께 찬양을 드립시다. 하나님께서는 그 크신 자비로 우리를 거듭나게 하시고, 예수 그리스도를 죽은 사람 가운데서 다시 살리심으로써, 우리에게 산 소망을 안겨 주셨습니다. 그리고 여러분을 위하여 썩지 않고, 더러워지지 않고, 낡아 없어지지 않는 유산을 받게 하셨습니다. 이 유산은 여러분의 몫으로 하늘에 간직되어 있습니다.”(벧후 1:3-4, 공동번역)라고 기록했습니다.

미국의 석유왕 존 록펠러는 33세에 미국의 정유산업을 장악하고 미국 최고의 부자가 된 사람입니다. 어렸을 때 집안 형편이 어려워 신문을 배달하며 1주일에 1달러 50센트를 벌었습니다. 주급을 어머니에게 가져다 드리자 어머니가 “하나님 앞에 감사드리고, 말라기서 3:7이하 말씀대로 십일조를 드려라”고 가르쳤습니다. 그때부터 십일조를 드리면서 미국 최고의 부자가 된 것입니다. 그런데 그가 53세에 알로페시아라는 불치병에 걸리고 말았습니다. 소화가 안 되고 머리털,눈썹까지 빠지는 무서운 병이었습니다. 병원에서는 시한부 선고를 내렸고 신문들은 그의 일생을 회고하는 특집기사까지 써놓고 있었습니다. 그때 그에게 어머니가 어린 시절 가르쳐 주신 성경구절이 떠올랐습니다.”우리가 세상에 아무 것도 가지고 온 것이 없으매 또한 아무 것도 가지고 가지 못하리니”(딤전 6:7). “네가 이 세대에 부한 자들을 명하여, 마음을 높이지 말고 정(定)함이 없는 재물에 소망을 두지 말고”(딤전 6:17). 그는 크게 충격을 받고 하나님께 ‘살려주시면 하나님의 일을 하겠다’고 간절히 기도했습니다. 그 후 그가 만든 록펠러 재단은 페니실린을 개발해 인류를 살렸고, 그는 많은 교회를 돕고 가난한 목사들을 후원했습니다. 복지 사업으로 가난한 사람들을 도왔습니다. 그는 98세까지 장수했습니다. 십일조를 넘어 수입의 40%를 드리는 ‘10의 4조’까지 했습니다. 그는 노년에 “가난하고 제대로 먹지 못하면서도 나를 기르시면서, 살아가는 토대를 하나님께 둘 것인가, 나 스스로에게 둘 것인가를 가르쳐 주신 어머니의 은혜로 내가 이렇게 됐다”고 눈물을 흘리며 고백했습니다. 

부모가 자식을 위해서 기도하면 자식은 절대 망하지 않습니다. 성도 여러분은 자녀들에게 하나님을 사랑하고 하나님께 기도하라고 가르쳐야 합니다. 저도 아들들이 어릴 때부터 “십일조는 하나님 것이니 네가 쓰면 창자가 썩는다”고 무섭게 가르쳤습니다. 제 아들이 지금도 “여호람 왕처럼 창자 안 썩으려고 십일조 드리고 있습니다”라고 웃으며 말합니다. 하나님은 말라기 3장에서 십일조를 드리면 하나님이 하늘 창고를 열고 너희 반죽 그릇마다 쏟아 부어주시는지 안 주시는지 시험해 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십일조를 가르치시기 바랍니다. 이 모든 것이 지도가 넓어지는 것입니다.

주님이 주신 새 지도에 후퇴는 없습니다. 흩어졌던 것을 다시 모으십니다.

2. 제자들의 옛 지도에는 전진이 없었습니다.

밤낮 눈치 보며 후퇴, 후퇴뿐이었습니다.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고 ‘이렇게 하면 저 사람이 나한테 뭐라고 하지 않을까’ 하며 사람만 봤습니다. 사람에게만 칭찬받으려고 하고, 하나님은 뒷전이었습니다. 후퇴는 옛 생각, 옛 고향, 옛 집, 옛 사랑, 옛 직업을 그리워하는 것입니다. ‘그때는 좋았는데’ ‘소싯적에는 좋았는데’ 하는 것입니다. 주님이 돌아가시자 베드로는 다른 제자들까지 선동해 옛 직업인 어부로 돌아가려고 했습니다. 다 데리고 갈릴리로 고기 잡으러 갔습니다. 그런데 주님의 부활은 갈릴리로 후퇴한 제자들을 다시 모았습니다. 뿔뿔이 흩어진 마음을 하나 되게 하시고, 단단히 결심하게 하셨습니다. 그들이 새 지도, 새 방향, 새 목적을 찾는 바람에 십자가 무덤에는 후퇴가 없게 됐습니다. 그들이 가는 방향은 천국입니다. 오직 복음만 들고 가는 곳마다 새 지도입니다.

현대의 정치, 경제, 종교는 떠들썩하게 모이지만 금방 무의미하게 흩어지는 것이 특징입니다. 전통 있는 단체들도 전처럼 힘차게 모이지 못하고 얼마 안 있어 흐지부지 흩어집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없는 단체, 구역, 교구, 기관은 껍데기 불꽃놀이일 뿐입니다. 타고 나면 끝입니다. 그러나 부활의 불꽃놀이는 꺼지지 않습니다. 한국인들은 원래 모여서 대화하는 것을 좋아합니다. 민주주의의 발전에는 인간의 결속과 연대라는 ‘사회적 자본’이 필수 조건입니다. 그런데 요즘은 TV 연속극 때문에 말씀이 끊어지고, 구역이 끊어지고, 교회가 끊어지고, 전도가 끊어지고 있습니다. TV에 미치면 귀신이 됩니다. 뭘 하다가도 시간만 되면 집에 가서 TV 볼 생각을 합니다. 밥 먹으면서도 숟가락을 놓고 TV에 빠져 들어갑니다. 인기 드라마가 시작되기 직전에는 다들 화장실에 미리 다녀오는 통에 15층짜리 아파트에서 동시에 화장실 물이 내려간다고 합니다. TV는 가족들도 단절시킵니다. 아버지는 축구 보자고 하고 어머니는 연속극 보자고 하고 아이들은 또 다른 것 보자고 합니다. 화합되지 않습니다. 성도는 기계 문명의 포로가 돼서는 안 됩니다. 교회 활동, 구역 활동을 ‘진짜로’ 해야 합니다. TV 앞에 앉아 있으면서 교회 일로 전화 오면 “나 지금 바빠” 하며 거짓말해서는 안 됩니다. 교회 일로 모이자는데 “드라마 보고 몇 시에 만나자” 하면 벌써 시간이 늦춰지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부활은 흩어진 마음을 모으고, 하던 짓을 다 끊어 팽개치게 합니다. 부활하신 예수님 앞에 모여 기도하고 말씀 배우고 예배드리고 봉사하는 것이 큰 상책입니다. 초대교회는 열심히 모여 기도하는 교회였습니다. 그것 밖에 없습니다. 성령이 강림하시니 예수님을 반대하고 방해했던 예수님의 동복(同腹) 동생들도 주 안에서 마음이 하나 되어 일했습니다. 그런 은혜의 역사가 평강교회 전 성도에게 있을 줄로 믿으시기 바랍니다. 의사이자 당시 교회의 역사를 기록한 역사가인 누가는 “저희가 사도의 가르침을 받아 서로 교제하며 떡을 떼며 기도하기를 전혀 힘쓰니라. 사람마다 두려워하는데 사도들로 인하여 기사와 표적이 많이 나타나니 믿는 사람이 다 함께 있어 모든 물건을 서로 통용하고 또 재산과 소유를 팔아 각 사람의 필요를 따라 나눠주고 날마다 마음을 같이 하여 성전에 모이기를 힘쓰고 집에서 떡을 떼며 기쁨과 순전한 마음으로 음식을 먹고”(행 2:42-46)라고 기록했습니다. 주님의 부활 후 제자들뿐 아니라 전 성도의 마음이 달라진 것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똑같은 곳을 가더라도 복음을 들고 하나님의 뜻을 통해서 가는 사람은 벌써 지도가 달라집니다. 제자들은 이제 입체적인 지도를 갖게 됐습니다. 그것은 위를 가리키는 안내의 지도입니다. 전에는 땅의 지도였지만 이제는 위엣 것을 찾는 지도입니다(골 3:1, 히 12:2). 

성도 여러분, 자금(自今) 이후로 주 안에서 죽은 자들이 복이 있다고 하셨습니다(계 14:13). 존경받는 교계의 지도자였지만 죽으면서 하나님을 부인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흉악한 살인범이었지만 회개하고 옥중에서 복음을 전하다가 찬송하며 처형된 사람도 있습니다. 예수님 앞으로 편안히 가십시오. 성도가 죽는 것을 여호와께서 귀중히 보신다고 하셨습니다(시 116:15). 그리스도 안에서 잠자고 쉬다가 반드시 부활한다고 하셨습니다(계 20:6, 살전 4:16, 고전 15:18, 계 6:11). 하나님의 손바닥 안에 여러분의 이름이 다 새겨져 있다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사 49:15-16). ‘하나님, 오늘까지 붙잡아 주시고 먹여 주시고 입혀 주시고 사랑해 주시고, 교회 나와서 말씀 받고 깨닫고 구역활동할 수 있는 것, 지리산, 장안산, 문막, 청평으로 기도하러 갈 수 있게 해주셨던 것 감사합니다. 내 영혼이 깨닫고 하늘에 소망을 두고 내 지도가 땅의 지도에서 하늘나라의 지도로 바뀐 것을 감사합니다.’ 하고 ‘아멘,할렐루야’ 기도하면서 모든 삶이 승리의 삶, 행복하고 즐겁고 기쁘고 감사가 차고 넘치는 아름다운 믿음의 열매가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2006년 3월 5일 주일 3부예배 휘선 박윤식 목사 설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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