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망과 인도의 새벽별
성탄절 거리를 아름답게 꾸미는 트리마다 그 꼭대기에 큼지막한 별이 빛나고 있다. 잘 알다시피, 이 별은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을 알리는 큰 별을 의미한다. 마태복음에서는 동방 박사들이 동방에서부터 큰 별을 보고 유대인의 왕으로 나실 분이 오셨다는 것을 알고 베들레헴까지 찾아왔음을 고하고 있다.
한 번 생각해 보자. 동방에서 베들레헴까지는 적어도 1,500km가 넘는 대장정이다. 얼마나 찬란한 별이었기에 박사들이 그 먼 거리를 기꺼이 걸어왔을까? 당시 밤하늘의 별을 바라보았던 수많은 사람 중에 오직 동방 박사들만이 그 큰 별을 발견했을까? 다시 말해, 그 큰 별을 보았던 다른 사람들은 없었을까?
동방 박사들은 누구일까?
이 별을 본 자들은 ‘동방으로부터 온 박사들’이다(마 2:1). 여기 ‘박사들’은 헬라어 ‘마고이’(μαγοι)로, 본래 메대 족속이지만 페르시아가 정권을 잡고 난 뒤, 바벨론 땅에서 종교, 철학, 천문학에 종사하던 자들을 가리킨다.
사실 성경에서 동방 박사가 세 사람이었다고 명시적으로 말씀하지는 않는다. 동방 박사들이 세 사람이었을 것이라는 추측은 대체로 그 드려진 예물이 황금과 유향과 몰약 세 가지 종류였다고 하는 본문 말씀에 근거한다. 전승에 따르면, 이때에 황금을 드린 박사의 이름이 가스팔(Caspar)이었고 유향을 드린 이가 멜키올(Melchior), 몰약을 드린 이가 발타잘(Balthazar)이라고 알려져 있다.
큰 별의 역사적·과학적 증거
성경을 보면 이 별의 몇 가지 특징을 살필 수 있다. 먼저 이 별은 다른 별과 뚜렷이 구분되는 별로서, 동방 박사들은 ‘유대인의 왕의 별’이라고 이해했다. 또한 이 별은 늘 떠있는 별이 아니라 어느 때에 ‘나타난’ 별이었다(마 2:7). 마지막으로 이 별은 베들레헴에서 나시는 예수님의 위에 머물러 서 있었다(마 2:9).
주님의 탄생을 고하는 별이 출현했다는 사실은 어떤 우화나 전설, 상징이나 문학적인 표현이 아니라, 분명한 역사적 사실이다. 당시 사람들은 하늘의 별의 움직임에 따라 길흉을 점치고 기후를 예측했다. 따라서 다른 별과 뚜렷이 구분될 정도로 찬란히 빛나는 별의 등장을 기록한 세계 역사서들도 주님의 탄생을 알리는 별이 역사적인 사실임을 뒷받침하고 있다.
당시 헬라 문화권에서는 별을 신화적인 존재로 이해했고, 페르시아 지역에서는 별을 점치는 수단으로 이해했다. 하지만 동아시아에서는 별은 미래의 예측 수단으로서, 정치의 근본이자 하늘과 왕의 계시 수단으로 이해됐다. 이러한 이해를 바탕으로, 예수님 당시 세계에서 가장 천문학이 발전된 나라는 한국이었다. 동양에서 왕은 하늘과 땅을 연결하는 존재로서, ‘왕’(王)이라는 한자 모양에도 그 사상이 반영되어 있다. 밤하늘에 뜨는 별을 하늘이 내리는 길흉의 징조로 여겼기에, 당시 천문학은 하늘의 뜻을 읽고 땅에 그것을 전하는 제왕의 덕목이었다. 실제로 삼국사기에서 고려의 정통성을 부여한 신라의 역사는 ‘박혁거세 왕 4년(주전 54년) 여름 4월에 일식이 있었다.’라는 문구로 시작한다. 이외에도 삼국사기는 일식과 월식, 혜성과 유성, 심지어 오로라의 관측까지 약 240가지 천문 현상을 기록했다. 이러한 사상은 고려와 조선까지 그대로 이어져 천문 관측에 오차가 있는 경우 최소 곤장 60대를 맞아야 했으며, 태종 6년에 서운관 관리(천문을 담당하는 관원) 박염은 일식을 예측하지 못했다는 죄로 유배를 가야만 했다. 일식 시간이 예보한 것과 단 1각(14분)만 차이가 나도 처벌의 필요성을 논의할 정도였으니, 그야말로 ‘목숨을 건’ 관측과 기록이었다.
놀랍게도, 삼국사기의 신라본조 처음 부분에는 ‘박혁거세 치세 54년 음력 2월 이유일에 패성이 하고에 나타났다’라고 기록하고 있다. 여기 ‘패성’은 문자적으로 ‘털이 많은 별’이라는 의미인데, 혜성을 가리키며, ‘하고’는 견우성을 가리킨다. 박혁거세가 신라를 건국한 것이 주전 57년었으므로, 박혁거세 치세 54년은 주전 4년을 가리키며 ‘이유일’은 3월 31일경이다. 중국의 ‘전한서’에서도 ‘건평 2년 2월에 패성이 나타났다’라고 기록되어 있는데, 태양력으로 주전 5년과 4년 사이에 해당한다. 주전 4년은 예수님이 탄생하신 바로 그해이다.
오늘날 천문학자들은 과거의 기록을 참고하며 정교한 컴퓨터 시뮬레이션을 통해 지구에서 관측 가능한 별의 움직임을 파악한다. 유명한 영국의 그리니치 천문대의 천문학자 다비드 랭크 등 3인은 약 2000년간의 별의 움직임을 컴퓨터로 시뮬레이션 해보면 주전 4년경에 지구에서 관측 가능한 초신성 사건이 있었을 것이라고 결론을 내렸다. 이 초신성 사건은 이스라엘 지역에서 새벽녘 남반구에 환하게 빛나는 별로 나타나는데, 천문학자 마크 키저는 동방 박사들이 이 새벽별을 보고 메시아께 경배드리기 위해 왔을 것이라고 결론을 내렸다.
큰 별의 성경적 증거
칠흑 같은 밤하늘에 보석같이 빛나는 별은 소망의 상징이다. 특히 밤이 어두워지고 별이 하나둘씩 빛을 잃어갈 때 찬란히 빛나는 새벽별은 곧 해가 떠오르며 낮이 시작됨을 알리는 신호탄과도 같다.
인류 역사가 비탄과 어둠 속에 잠겨가는 역사의 여울목, 광명한 새벽별로 예수님꼐서 탄생하셨다. 일찍이 하나님께서는 발람 선지자의 입을 통해 “내가 그를 보아도 이때의 일이 아니며 내가 그를 바라보아도 가까운 일이 아니로다 한 별이 야곱에게서 나오며 한 홀이 이스라엘에게서 일어나서 모압을 이편에서 저편까지 쳐서 파하고 또 소동하는 자식들을 다 멸하리로다”라고 말씀하셨다(민 24:17). 예수님께서 ‘야곱으로부터 나오는 한 별’로 이 땅에 오신 것이다. 그래서 요한계시록 22:16에서 예수님께서는 “나는 다윗의 뿌리요 자손이니 곧 광명한 새벽별이라”라고 말씀하셨다. 새벽별을 바라보고 그 인도를 따라가는 자는 마침내 어두움에 다니지 않고 생명의 빛에 도착하는 역사가 있다는 것이다(요 8:12).
새벽별을 볼 수 있는 시간은 매우 짧다. 해가 돋기 시작하면 금방 새벽별은 자취를 감춰버린다. 따라서 새벽별을 볼 수 있는 사람은 밤을 새워 깨어 있는 자, 그리고 해가 돋기 전에 먼저 일어나 새벽을 깨우는 자이다. 그래서 베드로후서 1:19에서는 “또 우리에게 더 확실한 예언이 있어 어두운 데 비취는 등불과 같으니 날이 새어 샛별이 너희 마음에 떠오르기까지 너희가 이것을 주의하는 것이 가하니라”라고 말씀하고 있다. 여기 샛별은 곧 새벽별이다. 새벽별이 곧 밤의 역사가 끝나고 동이 튼다는 것을 알리는 희망의 신호인 것이다. 역사적 기록과 천문학 연구를 통해서도 이스라엘 지역에서 예수님의 탄생을 알리는 별은 새벽에 보였음을 알 수 있다. 따라서 동방 박사들은 밤이 맞도록 새벽별의 인도를 기다리며 깨어 있다가, 그 별이 떠오르면 힘차게 소망을 안고 전진했던 것을 알 수 있다. 이들은 새벽별이 안겨 주는 소망에서 만족하지 않고, 그 별의 인도를 따라 끝까지 따라가서 메시아를 영접하는 이기는 자가 되었다. 이러한 점에서 요한계시록 2:26-28에서는 하나님께서는 이기는 자에게 새벽별을 주신다고 말씀하고 있다.
2018년 성탄, 우리에게 떠오른 소망의 별
프레데릭 랭브리지(Frederick Langbridge)는 “불멸의 시”라는 작품에서 “두 사람이 감옥에서 창 밖을 보았다. 한 사람은 진흙을 보았고, 한 사람은 별을 보았다.”라는 명구를 남겼다. 밤하늘의 별은 모두의 눈에 보이지만, 그 별을 본 자들의 반응은 나누어진다. 아기 예수님의 탄생 직전 죄에 갇혀 사는 수 많은 사람들이 밤하늘을 올려보고 신기한 별을 보았지만 모두 진흙탕으로 끝나고 말았다. 하지만 동방 박사들은 새벽별을 마음에 간직하고 그 인도를 따라감으로 마침내 소망의 실체를 붙잡고 말았다. 새벽별은 메시아의 탄생을 알리는 ‘시대의 표적’이었던 것이다(마 16:1-3).
우리는 2018년 성탄을 맞이하고 있다. 오늘날도 예수님께서는 성탄을 축하하고 희망을 나누는 자들이 아니라, 그 희망의 실체이신 예수님에게까지 인도함을 받아 나아오는 신령한 동방 박사들을 찾고 계신다. 해가 저물어가는 2018년, 스스로를 돌아보자. 나는 소망의 새벽별의 인도를 따라 가고 있는가?
정리_정디모데 전도사, 그림_박희영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