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평함과 거룩함이 없이는 주를 보지 못함
화평함과 거룩함이 없이는 주를 보지 못함
히 12:14, 살전 4:7-8
부모가 자식에게 원하는 소원이 있듯이, 하나님이 믿는 성도들에게 원하시는 소원은 ‘거룩함과 화평함’입니다. “모든 사람으로 더불어 화평함과 거룩함을 좇으라. 이것이 없이는 아무도 주를 보지 못하리라.”(히 12:14) 예수님 믿은 지 몇십 년 됐다 해도, 목사,장로,권사,집사라 해도 화평함과 거룩함이 없으면 하나님을 보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거룩함과 화평함을 좇으라!”. 즉, 해도 되고 안 해도 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명령입니다.
화평은 사람 간의 관계이고, 거룩은 하나님과 사람과의 관계입니다. 사람은 우주 만물 중에 유일하게 하나님이 당신의 형상대로 창조하신 존재입니다. 그런 사람이 하나님을 닮아가는 삶을 살다가 마침내 영원한 천국에 들어가려면 거룩한 생활을 해야 합니다. 그렇지 못하면 장차 하나님 앞에 갈 때 인류의 시조 아담부터 이 땅에 왔다간 수천억 명의 인간 앞에서 두려운 심판을 받게 됩니다.
하나님은 화평의 하나님입니다. 고린도 교회가 하도 싸움질하고, 이간질하고, 못된 말들을 하는 바람에 사도 바울이 하나님께 기도해서 응답받은 말씀이 바로 이것입니다. “하나님은 어지러움의 하나님이 아니시오, 오직 화평의 하나님이시니라.”(고전 14:33, 엡 2:14). 하나님은 우리가 하나님과 화목을 도모하고, 이웃끼리 화목하고, 화목한 가정을 이루라고 우리를 부르신 것입니다(고전 7:15,골 3:15). “할 수 있거든 모든 사람으로 더불어 평화하라”(롬 12:18)고 명령하십니다. “너희를 핍박하는 자를 축복하라 축복하고 저주하지 말라”(롬 12:14), “너희가 친히 원수를 갚지 말고 진노하심에 맡기라. 기록되었으되 원수 갚는 것이 내게 있으니 내가 갚으리라고 주께서 말씀하시니라.”(롬 12:19)고 말씀하십니다.
화평은 인간이 만든 것이 아닙니다. 화평은 위로부터 난 지혜와 의와 믿음의 열매입니다(약 1:17-18). 화평에는 적이 없습니다. 화평한 사람은 원수가 없습니다. ‘이 사람은 좋은 사람, 저 사람은 나쁜 사람’ 하는 편가름과 심판도 없습니다. 눈 깜박하면 지나갈 아침 안개 같은 세상에 살면서 왜 불목하고 싸우고 시기하고 질투합니까. 화평하십시오. 탐욕,야망,질투,분노,교만이 화평의 적입니다. 그것이 개인과 가정과 부부 사이에 들어오면 서로 으르렁대며 끝내는 살지 못하게 만듭니다. 마음에 화평이 없으면 도둑놈, 사기꾼, 간사하기 짝이 없는 자가 됩니다.
초대교회 일곱 집사(deacon) 가운데 하나였던 스데반은 예수님을 대적하는 군중들이 욕하고 돌로 치고 주먹으로 치는 가운데서도 마음이 화평하고 얼굴이 천사 같았습니다. 마음이 화평하니 믿음이 낡아지지도 없어지지도 않았습니다. 수백 명의 군중들에게 둘러싸여 돌로 맞아 죽는 순간에도 편안하고 화평했습니다. 미움이 없었습니다. 그러자 하늘 문이 열리고 예수님이 하나님 우편에 서신 것이 그의 눈에 보였습니다(행 7:55-56).
쌍둥이로 태어나 서로 시기,질투,욕심을 부렸던 에서와 야곱은 오랜 세월이 지난 뒤 노년에 만났습니다. 야곱이 형 에서에게 얼굴을 비비고 울며 “내가 형님을 보니 하나님을 보는 것 같습니다.”하고 말했습니다. 위대한 사랑과 화목과 축복이 흐르는 장면입니다. 생활 가운데 하나님이 와 계셨던 것입니다(창 33:10). 하나님의 얼굴을 보는 것 같은 감격스런 그 만남 속에 무슨 원수가 있고, 싫어하고 미워하는 것이 있겠습니까.
내 돈을 떼어먹고, 집안을 망치고, 내 아들딸의 진로를 가로막은 원수를 어떻게 용서할 수 있겠습니까. 어떻게 그와 화목하겠습니까. 그러나 하나님을 믿는 신앙이 있으면 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원수를 사랑하라고 하십니다. 그뿐 아니라 원수가 헐벗고 굶주리면 먹이고 입혀주라고 하십니다. 기독교인에게는 적이 없어야 합니다. 몰라서 그런 것을 어쩌겠습니까. 저는 사람들이 비난하고 욕해도 눈 하나 깜짝 하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알아주시고 인정해 주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몰라서 욕하는 것을 어떻게 하겠습니까. 도리어 그들을 위해 기도해 주면 되는 것입니다. 저는 원수가 없습니다. 이 땅에서 불과 70,80년 지내고 나면 영원한 그 나라에 갈 텐데 왜 바보짓을 하겠습니까. 우리는 야곱과 에서처럼 원수 같은 사람 만나서 껴안아야 합니다.
성도 여러분. 소유,명예,성취보다 화평이 우선입니다. 평소에는 아버지를 쳐다보지도 않던 사람이 아버지 죽을 날이 가까워지면 재산을 탐내고 기웃거립니다. 못된 사람들입니다. 평소에 부모를 잘 받들고 공경하고 사랑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화평함을 도모하되 거룩함 안에서 하라’고 하셨습니다. 거룩함은 하나님과 관계를 맺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하고 믿고 하나님 말씀대로 살려고 하는 가운데 화평을 도모해야 합니다. 화평하되 거룩함을 손상시키지 말고, 거룩을 좇되 불필요하게 화평을 해치지 말라는 뜻입니다. 거룩과 화평이 모자라지 않는지 언제나 확인해야 합니다. 내 마음 속에 화평이 70%밖에 없고 남을 싫어하는 마음이 있으면서도, 마치 100% 화평이 있는 듯 하면 안 됩니다. 하나님은 인간의 마음과 심장폐부(心臟肺腑)를 다 살피시는 분입니다.
사도 바울은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가운데서 거룩함을 온전히 이루어 육과 영의 온갖 더러운 것에서 자신을 깨끗케 하자”(고후 7:1)고 말했습니다. 유다서 1장 20절에는 “자신을 건축하라”고 기록돼 있습니다. 인격의 집, 도덕의 집, 신앙의 집을 지으라는 것입니다.
화평과 거룩은 하나님께로 갈 수 있는 유일한 통로입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인 히브리서 12장 14절을 자세히 보면 하나님께서 세 번이나(‘없이는’, ‘아무도’, ‘보지 못한다’) 강조하신 것입니다.
“모든 사람으로 더불어 화평함과 거룩함을 좇으라. 이것이 없이는 아무도 주를 보지 못하리라”. 왜 신앙생활 하면서 거룩함이 없습니까. 왜 화평이 없습니까. 왜 가는 곳마다 평지풍파를 일으키고, 말을 만들어 거짓말하며, 시기,질투로 “저 사람 만나지 말라”, “저 사람 과거가 어떻다”고 하고 다닙니까. 불쌍한 인생입니다. 저는 성경을 1700번 이상 읽었지만 “화평함과 거룩함 없이는 주를 보지 못한다”는 대목에서는 가슴이 뜨끔합니다. 정신 차리고 신앙생활 해야겠다고 생각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산상 복음을 통해 “마음이 청결한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하나님을 볼 것임이요” 하셨습니다. ‘하나님을 보는 것’에 화평과 거룩이 들어 있는 것입니다. “나는 의로운 중에 주의 얼굴을 보리니 깰 때에 주의 형상으로 만족하리이다”(시 17:15).
거룩하지 못한 자는 하나님의 성소에 들어가지 못합니다. 교회는 깨끗한 사람만 오는 곳이 아닙니다. 때가 있는 사람이 목욕탕에 가듯 교회는 죄인이 오는 곳입니다. 그러나 죄인이 와서 결국은 화평함과 거룩함을 좇게 되는 곳이 교회입니다. 시계추처럼 교회에 왔다 갔다만 하면서 자기 심성 하나 고치지 못한다면 100년을 교회 다닌들 무엇하겠습니까. 하나님은 우리 마음을 저울질하십니다. 손이 깨끗하며 마음이 청결하며 거짓 맹세치 않는 사람이 여호와의 산에 오릅니다(시 24:3-4). 거룩하게 되지 못하면 하나님 나라에 못 갑니다(계 21:8, 히 9:28). 거짓말하는 자, 살인자, 도둑, 사기꾼들은 새 예루살렘에 들어가지 못합니다.
그렇다면 하나님 앞에 거룩해지는 방법은 무엇입니까.
예수님 아니면 안 됩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리셔서 구원의 피를 흘려 우리 죗값을 치르셨습니다. 그것을 믿어야 합니다. 우리 마음에 믿음으로 예수님의 거룩한 보혈이 임재해야 합니다. 믿는 순간 인류의 시조 아담이 지은 원죄, 우리 조상들이 지은 유전죄, 내가 이 땅에 태어나 알게 모르게 지은 자범죄가 싹 다 없어집니다. 도를 닦고 수양한다고 죄가 없어지지 않습니다. 믿지 못하는 것이 큰 죄입니다(요 16:9, 롬 14:23). 하나님께서 당신의 의를 가져다 주시면서 “너 죄 없다” 하시니 얼마나 좋습니까. 그래서 믿는 사람은 죽어도 소망이 있습니다. 죽는 순간 천국 문이 열려 즉시 천국에 갑니다. 믿지 않는 사람은 죽는 순간 어둠의 세계입니다. 이제 때가 때이니만큼 정신 차려서 예수님 잘 믿고, 화평함과 거룩함을 좇아야 합니다. 우리 몸이 우리 것이 아닙니다. “값으로 산 것이 되었으니 그런즉 너희 몸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고전 6:20), “너희는 값으로 사신 것이니 사람들의 종이 되지 말라”(고전 7:23).
화평과 거룩은 하나님의 영역입니다. 하나님께 속한 것은 거룩할 성(聖) 자가 붙습니다. 지정하신 장소인 성전이 거룩하고, 하나님의 물건인 성물이 거룩합니다. 하나님이 만드신 거룩한 물건을 만지기만 해도 거룩해집니다(출 29:37). 혈루증으로 12년간 모진 고생을 하고 전 재산을 날린 여인은 믿음으로 예수님의 옷자락을 만지는 순간 깨끗이 나았습니다(마 9:21,마 14:36). 사도 바울의 손수건만 만졌는데도 병자들이 나았습니다(행 19:12). 반면 부정한 곳에 접촉하면 더 부정해집니다(레 11:24,25,32,33, 학 2:12). 그러나, 하나님이 거룩하다고 하신 것을 부정하다고 해서는 안 됩니다. 하나님은 백부장 고넬료를 구원하시기 위해 이방인 전도를 꺼리던 베드로에게 먹지 못하도록 율법에 규정된 부정한 짐승의 환상을 보여주신 뒤 “내가 깨끗하게 했으니 먹으라”고 명령하셨습니다. 베드로가 고넬료의 집을 찾아가 말씀을 전할 때 성령이 내리고 온 집안이 화평함과 거룩함을 좇았습니다.
거룩한 생활을 하려면 자신을 십자가에 못 박아야 합니다.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산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신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몸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갈 2:20). 예수님 믿는다면서 자기 심보 하나 십자가에 못박아 죽이지 못하고 걸핏 하면 파르르 성깔 부려서는 안 됩니다. 성깔 한번 내면 하나님의 뜻이 무너집니다(약 1:20). 자기 집을 파괴시킵니다. 믿으려면 정말로 믿으십시오. 믿는다고 하면서 도둑놈, 사기꾼 노릇 해서는 안 됩니다. 죄 문제를 해결해야 하나님이 주시는 복을 받을 수 있습니다(렘 5:25). 특히 회개하지 않는 죄가 무서운 죄입니다. 회개하면 예수님을 믿게 됩니다. 하나님이 거룩하시니, 그 분을 믿어 자녀 된 우리도 거룩해야 합니다. 자기 몸을 구별하고, 창녀와 기생에게 가는 부정한 짓을 하지 말아야 합니다. 만지지도 말라고 하셨습니다.
1.하나님은 거룩하신 분입니다(잠 9:10).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것도 다 거룩합니다. 그 말씀을 의심치 않고 그대로 받아들이면 우리도 거룩함을 입습니다. 2.성별된 성도가 거룩합니다(시 16:10). 3.평강제일교회는 거룩한 구역입니다. 하나님이 모세에게 시내산은 거룩한 땅이니 갈 데 못 갈데 다 드나들던 죄악의 신발을 벗으라고 하신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교회 들어올 때마다 “하나님께서 지정해 주시고 피로 값주고 사신 이 교회, 거룩한 구역에 제가 들어갑니다. 성별되고 거룩한 생활 하게 해주십시오.” 하고 뜨겁게 기도해 보십시오. 은혜가 눈송이 내리듯 쏟아집니다. 이미 축복을 받은 것입니다. 이것이 신앙입니다. 4.이스라엘 백성은 거룩한 백성입니다(출 19:6) 5.주일이 거룩한 날입니다. 하나님이 거룩하게 하신 날이니 주일에 예배드리는 사람마다 거룩해집니다.
이처럼 완벽한 말씀을 믿고 깨닫고 말씀대로 살려고 애써야 합니다. 그때 하나님의 은혜가 옵니다. 내 힘으로는 거룩한 행실을 못합니다. 내가 선을 베풀고, 은혜 받고 칭찬받는 것도 내 재주와 능력이 아닌 하나님의 은혜가 역사하셔서 되는 것입니다. 말씀 듣고 깨닫는 것도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여러분은 진리에 복종함으로 영혼을 정결하게 해서 꾸밈없이 서로 사랑하기에 이르렀으니 순결한 마음으로 서로 뜨겁게 사랑하라”(벧전 1:22)고 하셨습니다. 사랑하되 꾸밈없이 해야 합니다. 편견이 있으면 다리미로 다려 깨끗하게 하십시오. 속은 쭈글쭈글 하면서 남 앞에서만 구김 없는 척하지 말고, 꾸밈없고 티 없고 가면과 외식(外飾)이 없는 진짜 사랑을 하십시오. 사랑에는 거짓이 없어야 합니다(롬 12:9). 거짓말은 살인, 강간보다 더 무서운 죄입니다. 인류의 타락이 사탄의 거짓말에 속아 넘어간데서 비롯됐습니다. 거짓은 살인자입니다(요 8:44). 자기 마음대로, 생각나는대로 말하는 것이 거짓말입니다. 가장 나쁜 것이 거짓말, 속이는 사기, 그리고 배신입니다. 신앙적 배신 뿐 아니라 사람도 배신하면 안 됩니다. 한번 배신하면 또 배신하게 됩니다. 사람이 진실하면 다소 실수가 있어도 주위에서 덮어주고 사랑합니다. 그러나 스스로 똑똑한 줄 알고 남을 무시하고 얕보는 편벽된 마음이 있는 자에게는 화평이 있을래야 있을 자리가 없습니다.
시간은 황금이지만 진실은 다이아몬드라고 합니다. 화평과 거룩함이 없이는 진실하게 살 수도 없습니다. 거짓된데 진실한 척 살면 언젠가는 드러납니다. 옷이 해어지듯 구멍이 나고 마는 것입니다. 거짓말은 개인과 가정과 사회와 민족을 망하게 합니다(잠 19:9, 시 52:4-5, 잠 12:22). 거짓말하는 사람은 절대 천국에 들어가지 못합니다(계 21:27). 위선도 거짓입니다. 거짓과 위선은 종이 한 장 차이입니다. “진실한 입술은 영원히 보존되거니와 거짓 혀는 눈 깜짝일 동안만 있을 뿐이니라”(잠 12:19). 가장 두려운 사람은 나를 반대하는 자가 아니라 거짓말로 모략하는 자입니다. 그런 사람은 무서운 심판을 받습니다. 거짓말 하는 지도자를 세운 단체와 나라는 망합니다. 문명을 붕괴시킨 것은 빈곤이 아니라 거짓말입니다. 요셉을 팔아넘긴 형제들은 아버지 야곱에게 동생이 짐승에게 죽었다고 거짓말을 했고(창 37:28-36), 들릴라는 사랑을 위장해서 삼손을 속여 죽게 했습니다(삿 16:4-21). 여자의 거짓에 속아 넘어간 삼손이 얼마나 불쌍합니까. 여인들에게 탐닉했던 솔로몬도 마지막에는 여자가 지옥이라고 토로했습니다. 전 재산을 헌금했다고 거짓말한 아나니아와 삽비라 부부는 한날 급사하고 말았습니다(행 5:1-11). 진실이 없으면 거룩하게 될 수 없습니다. 자신을 속이고 살면서도 스스로 죄지었는지도 모르거나 ‘제 마음 제가 몰라서 죄지었습니다’ 라며 핑계를 댑니다. 사람의 영혼은 하나님의 등불인데, 진실이 없고 거짓만 가득한 영혼에는 불이 들어오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말세 성도에게 거룩한 손을 들어 기도하라고 하셨는데(눅 21:36,딤전 2:8) 거짓말투성이인 가증한 마음으로는 손을 들 수 없습니다. 진실함이 없으면 깨진 항아리에 물 붓듯 아무리 애써봐야 망하고 맙니다.
앞으로는 도둑질하는 사람들은 더 도둑질하게 됩니다. 때가 되면 하나님이 내버려 두셔서 절대 회개 시키지 않으십니다. 거짓말 하는 사람은 죽을 때까지 거짓말하는 사람으로 남게 되는 것입니다. 심판 받게끔 하시는 것입니다. 무서운 말씀입니다(계 22:10-12). 그러나 화평케 하는 자는 모든 사업에 풍부해집니다. 자식을 봐도 안심하고, 배우자를 봐도, 사업을 봐도 근심 걱정이 없습니다(시 37:11, 37:37). 화평한 자의 결국은 평안입니다(잠 14:30). 화평한 자에게는 아브라함같은 만사형통의 축복이 임할 줄로 믿으시기 바랍니다.
2006년 3월 12일 주일2부예배 휘선 박윤식 목사 설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