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식기도의 위력과 하나님 능력의 역사
금식기도의 위력과 하나님 능력의 역사
대하 32:16-23, 막 9:14-29
예수님께서는 이 땅에서 공생애를 시작하시면서 40일간 금식 기도하셨고, 십자가를 앞두고도 겟세마네 동산에서 진액을 쏟는 기도를 하셨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금식은커녕 사람의 방법만 찾아보기 열심이지 않습니까? 그러나 믿는 자의 문제 해결 방법은 오직 기도밖에 없습니다!
구약 때 앗수르 왕 산헤립의 침공 사건을 보십시오. 남 유다에 편지를 보내서 ‘여호와 만군의 주 하나님은 뭐 내가 정복한 다른 나라 신들과 다르냐?’며 하나님을 모욕합니다. 이때 히스기야와 이사야 선지자, 단 두 사람이 성전에 나아가 밤이 맞도록 금식하며 기도하였습니다. 그 결과가 어떻습니까? 천사가 내려와 앗수르 185,000명의 대군을 단칼에 죽인 것 아닙니까? 너무 창피한 나머지 앗수르 왕 산헤립은 앗수르 수도 니느웨로 돌아가 거하다가, 자기 신 니스록의 묘에서 경배하던 때에 두 아들에게 칼을 맞아 죽고 말았습니다.
이것이 금식기도의 위력입니다! 보통 기도가 완행열차라면 금식 기도는 급행열차입니다. 저도 금식 기도 가운데 하나님의 응답을 체험한 것이 한두 번이 아닙니다. 믿는 자에게는 능치 못함이 없습니다. 그런데 왜 의심하고 기도하지 않습니까?
금식기도는 놀라운 믿음의 성장을 가져 옵니다.
금식기도의 영적인 진보는 초음속과 같습니다. 번쩍! 순식간에 빠르게 하나님께 상달됩니다. 금식기도 드릴 때 하나님께서 영적으로 원자력 같은 능력을 발하시고 귀담아 들어 주십니다. 신명기 4:7 말씀처럼 기도하는 자에게 가까이 오십니다. 아무리 믿는다 하면 뭐합니까? 기도의 영력이 있습니까? 글로 배운 예수 믿으면 뭐합니까? 구하는 자에게 주시고, 찾는 자에게 찾게 해주신다고 하셨습니다(요 14:13-14, 마 7:7-11). 금식기도는 놀라운 영적 믿음의 성장을 가지고 옵니다.
금식은 기독교의 종교규범입니다.
마태복음 5장부터 7장까지 산상수훈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여기에는 ‘구제’, ‘기도’, ‘금식’이라는 기독교의 3대 종교 규범이 나옵니다. 그러면서 형식과 가식, 외식으로 기도하지 말라 하였습니다. 기독교는 극기의 금욕주의가 아닙니다. 그러나 경건한 기도 생활에 있어서 어느 시간을 정하고 자기 마음과 육신을 괴롭히며 기도해야 합니다. 밥 먹지 않고 기도하면 얼마나 피곤하고 괴롭습니까? 만사가 다 귀찮고 그저 생각나는 것이 밥 밖에 없습니다.
레위기 16:29-30, 23:27-29 말씀 볼 때, 자기 마음과 육체를 괴롭히기 위해서 금식기도하라 하셨습니다. 금식기도는 곧 마음을 괴롭게 하는 것이라는 말입니다. 배부르고 만족하는 입장에서 기도해봐야 완행열차입니다. 그러나 마음을 괴롭게 하는 기도는 오직 하나님 외에는 의지할 곳이 없습니다. 그러한 기도가 바로 영적 믿음의 성장을 가지고 오는 기도입니다.
금식 기도의 목적
하나님 앞에 바로 세워지기 위해서입니다. 사람이 나보다 존경스러운 스승을 만나던가, 국가의 관리를 만날 때 그냥 갑니까? 다 깎고 씻고 옷을 갈아입고 목욕하고 냄새나지 않게 하고 갑니다. 금식 기도가 바로 그렇습니다. 옷이 아무리 너절해도 금식 기도하는 중심을 보시는 하나님께서 우리를 깨끗하다 인정해주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모세는 하나님의 산을 오르며 40일간 금식하였으며(출 34:28, 신 9:9-18), 엘리야도 하나님의 산을 향하며 40일간 금식하였습니다(왕상 19:8).
구약의 금식
구약에서 금식하는 경우는 네 가지를 말씀하고 있습니다.
먼저 죽음을 슬퍼할 때 금식하였습니다(삼상 31:13). 또한 죄를 자복하면서 금식하였고(시 35:13, 느 1:4-7, 단 9:3, 욘 3:3-7), 셋째로 개인이나 가정이나 국가에 재난이 닥쳤을 때 금식하였습니다(욜 2:12, 욘 3:5, 에 4:12-17). 이 세 가지는 모두 죄와 죄로 인한 결과를 위한 금식입니다. 죄와 죄의 결과가 안타깝고 아픈데, 양심의 가책도 없이 밥이 입에 넘어가겠습니까? 하만으로 인한 유다인 몰살의 위기 가운데 에스더가 요청한 금식기도는 민족 구원의 통로가 되었습니다. 하루만이라도 마음 가운데 믿음으로 정하고 금식해보십시오. 그 하루만큼은 오직 하나님만, 세상 대화 없이, 내 아내나 자식과도 대화 없이 오직 하나님께만 아뢰어 보십시오. 죄를 애통하며 거룩의 길을 갑니다. 그래서 요엘은 금식을 가리켜 ‘거룩한 금식, 거룩한 성회’라고 했습니다(욜 2:15). 그러니 깨끗한 금식! 잡탕이 없는 거룩한 금식이 되어야 합니다.
마지막 네 번째 경우는 이스라엘이 구속사를 기억하기 위해 1년에 네 번 금식일을 정한 것입니다. 유대인들은 바벨론 70년 포로 시대를 전후해서 1년에 네 번, 철두철미하게 7일씩 금식하여 기도하였습니다. 스가랴 7:5, 8:19을 볼 때, 유대인들은 제4월, 제5월, 제7월, 제10월, 네 번에 걸쳐서 칠일간 금식하였습니다.
먼저 제4월 금식은 시드기야 왕 제11년 제4월 9일에 예루살렘 성이 함락되고 아내 자식을 빼앗기며 하나님의 거룩한 성전이 불타고 모든 기물을 빼앗김을 기억하는 금식입니다(대하 36:11-20, 렘 39:2-6). 하나님 마음에도 큰 슬픔의 날입니다. 유다 왕 시드기야는 눈 앞에서 두 아들 목이 잘리고, 그 광경을 마지막으로 눈알이 뽑혀 쇠사슬에 묶인 채로 끌려갔습니다. 이 비참한 패망을 기억하는 금식입니다. 하나님의 계명과 법도를 지키지않고, 예배를 무시하고 십일조 떼어먹고 감사하지도 않았기 때문에 나라가 망했음을 회상하며 기도하는 것입니다.
두 번째로 제5월 금식은 느부갓네살 19년 제5월 10일에 느부사라단에 의해서 하나님 성전과 왕궁이 다 불타게 된 것을 기억하는 금식입니다. 이스라엘의 아이들은 노예로 잡혀갔고 여자들은 강간 당했습니다. 베드로후서 2:19에서는 “누구든지 진 자는 이긴 자의 종이 됨이니라” 말씀하고 있습니다. 절대 지면 안됩니다. 조상들의 수모를 기억하는 가운데 다시는 지지 말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세 번째로 제7월 금식은 하나님의 선지자 예레미야를 도왔던 그달랴 총독이 예레미야의 말을 가볍게 들었다가 처참히 죽은 것을 기억하는 금식입니다. 평소 예레미야를 고깝게 생각했던 유대 방백들은 예레미야를 보호하고 돕는 그달랴를 괴씸하게 여겼습니다. 그달랴가 유다 땅에 머물러 있는 백성들의 총독으로 세워지자, 그들은 말씀에 순종하여 애굽으로 가지 않고 그 자리에서 바벨론을 섬기는 그달랴를 처참하게 쳐서 죽였습니다(왕하 25:22-25, 렘 40:5-6, 41:1-3, 7-8).
마지막으로 제10월 금식은 시드기야 제9년 제10월 10일에 바벨론 느부갓네살 군대에 의해 예루살렘 성 포위가 시작된 날을 기억하는 금식입니다. 이 포위는 시드기야 제11년 제4월까지 이어지면서 굶어 죽고 자녀를 잡아 먹는 처참한 비극을 가지고 왔습니다(왕하 25:1-2, 렘 52:4-8).
이 네 번의 금식 기도를 생각해보십시오. 우리도 각자 개인과 가정과 사업마다 사정이 다르지 않습니까. 이스라엘 민족은 열조의 죄악을 놓고 우리 다시는 이러한 일이 되풀이 되지 않기 위해 금식하며 기도하였습니다. 오늘날 우리도 알게 모르게 지었던 죄악의 순간들, 나라와 민족을 위해 금식하며 기도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3일의 금식기도는 3년 동안의 보통 기도보다 더 강력합니다.
요엘서 2:12-18을 볼 때, 이제라도 거룩한 금식일을 정하고 금식하며 울며 회개하여 하나님께로 돌아온다면, 그 때에 하나님께서 자기 땅을 위하여 중심이 뜨거워지시고 그 백성을 긍휼히 여기실 것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 백성들의 금식과 회개 가운데 속히 응답해주십니다. 예수님도 공생애를 시작하시며 40일간 금식하셨고(마 4:1-2, 눅 4:1-2), 모세도 십계명을 받기 전에 40일을 금식하였습니다(출 34:28). 다니엘도 종말의 예언을 받기 전에 금식으로 기도했고(느 1:4), 다윗은 단순히 금식기도 한 것이 아니라, 무릎을 꿇고 힘줄이 달라붙고 껍질이 벗겨지기까지 기도하였습니다(시 109:24). 이외에도 여호사밧, 시므온과 안나 선지자, 바울, 요한의 제자들구속사의 놀라운 전진 전에는 항상 금식기도가 선행되었습니다. 믿음이 있다면 금식기도가 꼭 필요합니다. 금식기도할 때 은혜 안 받을래야 안 받을 수 없습니다.
초대교회는 금식기도 할 때마다 성령의 충만을 경험했습니다. 성령께서 사도들을 파송시키시고, 능력을 행하게 하시며 교회를 부흥시키고 화평하게 하셨습니다. 그러나 말세지말인 오늘날은 물질의 부요로 금식기도 하지 않습니다. 다 영적으로 소아마비, 반신불수, 무기력합니다. 기도와 금식기도가 무시당하는 시대에 살고 있는 것입니다. 개인과 가정과 사업과 자녀, 직장, 나라와 민족의 문제 가운데 풀리지 않는 것이 얼마나 많습니까?
성도 여러분. 기도가 보통 폭탄이면, 금식기도는 원자탄을 넘어 코발트탄입니다. 무서운 능력이 있습니다. 제가 40일 금식 기도 했을 때를 잠시 간증하자면, 8일 지날 때부터가 가장 힘듭니다. 사단이 오만 것을 다 보여줍니다. 10일이 지나니까 너 죽는다며 마음에 공포심을 가지고 옵니다. 금식기도 15일째, 산에 솔솔 바람이 불면서 나뭇잎이 흔들리는 모습을 보니까 그처럼 마음이 흔들립니다. 이게 내 마음이 흔들리는 것을 보여주는 자연계시인가보다, 인내하며 20일이 지나가니까 이제 제가 금식 하는 것이 아닙니다. 은혜가 오고 평온히 성경을 보게 됩니다. 그렇게 40일 금식기도를 은혜 가운데 마쳤습니다.
성도 여러분. 치료, 은사, 성령을 받는데 금식 기도는 속도가 빠릅니다. 다윗은 금식기도 할 때 무릎이 약해치고 육체가 수척하여졌습니다(시 109:24). 금식하면서 마음이 괴로워지고 영혼에 경계가 생깁니다(민 29:7, 시 69:10). 금식기도 3일만 해도 머리 속에 온통 밥 생각입니다. 그러나 내 영혼, 내 마음은 육체가 수척해지니까 ‘밥을 들여라! 물을 들여라!’ 하지만 영혼이 ‘안된다!’ 명령하는 것입니다. ‘나는 오직 하나님의 말씀, 하나님의 은혜로만 산다! 하나님의 은혜로 내 영혼은 만족한다! 죽겠다 말하는 육체의 정욕은 죽어라!’ 그런 각오로 금식할 때 하나님의 보좌와 직통입니다. 금식기도는 하나님과 나 사이에 육신의 정욕이 없습니다. 그러니 금식하며 간절히 사랑하고 믿고 바라면서 하나님 앞에 간구할 때 반드시 응답을 경험할 줄로 믿습니다. 믿어지면 아멘하시기 바랍니다.
2002년 10월 27일 주일2부예배 휘선 박윤식 목사 설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