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 자유인, 자유민주주의, 자유시장경제에 관하여’ (이영훈 서울대 교수)
참평안 9월호, 이영훈 교수와의 대담은 의도하지 않았지만 ‘자유(自由)’가 주제가 됐다. ‘왜 이승만인가?’를 묻다가 시작된 것이다. 이승만 알리기에 앞장서 온 이 교수는 2017년 서울대(경제학부)를 은퇴한 뒤에는 아예 「이승만 학당」을 설립했다.
“이승만은 당대에 자유의 개념을 이해한 몇 안 되는 사람이었습니다. 나아가 자유를 교육시켰고, 그 자유를 기반으로 국가를 수립하고 지켜내는 일까지 완성한, 위대한 업적을 이룬 인물”이라는 게 이 교수의 종합 평가였다.
그 자유는 어떤 개념입니까? ‘마음대로 하는 것’ 이상의 개념 같습니다.
자유는 체계적으로 배우지 않으면 알기 어려운 개념입니다. ‘자유’는 서양의 종교개혁에서 출발합니다. 하나님 앞에 모든 인간은 평등한 존재라는 인식을 전제로 하죠. 신체 모든 기관이 각각의 쓰임새가 있는 것처럼 개개인 누구나 하나님 앞에 그런 존재이기 때문에 누가 누구를 지배할 수 없는 것입니다. ‘자기 존재의 의의’를 인식시켜 주는 것, 이것이 자유의 시작이었습니다. 종교개혁 이전의 서양은 동양보다 더 몽매
(蒙昧)했지요. 그러나 자유인이 되면서 서양 문명은 본격적으로 발전하게 됩니다. 동양은 자유나 독립적인 개인에 대해 거의 가르치지 않았지요. 자유는 서양 문명의 이동을 따라 전파됩니다.
근본적으로 천부인권인 자유는 자주, 독립, 이런 단어들과 연결됩니다. 나아가 개방, 통상, 세계평화 이런 것들과도 이어집니다. 자유가 확장시키는 개념들이지요. 예컨대 자유인들의 경제체제가 어떠한 것인지는 근대경제학을 창시한 애덤 스미스가 설명한 대로 ‘자유시장경제’입니다. 또한 자유인의 나라는 정치적으로 평화의 세상이지요. 자유인의 공화국은 전쟁 비용을 주권자인 국민이 치르기 때문에 침략을 받지 않는 이상 전쟁을 선택하지 않습니다. 독재자들은 전쟁의 희생은 백성이 치르고 과실(果實)은 자신이 차지하므로 끊임없이 전쟁의 유혹을 느낍니다. 그런데 자유인의 나라에 전쟁보다 훨씬 좋은 것이 있으니 곧 ‘자유 통상’이지요. 자유 통상은 전쟁 이상의 과실과 영예를 안겨 줍니다. 그래서 자유인은 본질적으로 세계인입니다.
철학자 임마누엘 칸트의 ‘영구평화론’의 주된 내용이 이런 것들입니다. 이것이 18~20세기 세계 지성의 주류였고, 대한민국은 1948년 성립 이래 여기에 성공적으로 올라탔기에 오늘날의 성공이 가능했던 것입니다.
이승만은 이 땅에는 없었던 인간과 자연에 대한 새로운 이해를 본질적으로 파악하고 수용한 사실상 첫 번째 사람이었습니다. 자유를, 존 로크의 사상부터 애덤 스미스의 통상에까지 세상의 작동원리, 확장의 원리로서 파악한 것이죠. 인간사를 통합하고 이끌어 나가며 번영 시킬 이념으로서 자유의 중요성을 깨달은 것입니다.
해방이 되고 나라는 어데로 갈지, 어데로 나아가야 할지 알 수 없을 정도로 혼란스러웠습니다. 미 군정의 조사 결과 국민의 70%가 사회주의 경제체제를 선호하던 때였죠. 조선조 말기부터 이어진 극심한 사회 혼란과 경제의 쇠퇴, 극심한 갈등 속에서도 20세기 자유와 정의의 개념을 정립함으로 나라를 세우고 유지해 마침내 경제개발을 이뤄낼 수 있었습니다. 그 결과 한때 국민의 3분의 2가 스스로를 중산층으로 여기는 성취감을 맛보게 된 것 아닙니까.
이영훈 교수에 대해 굳이 설명이 필요할까. 10여년 이상 특정 이슈의 중심에 섰다. 우리 사회에 ‘이승만’이라는 인물을 되살려낸 장본인이라 할 수 있다. ‘건국절’을 최초로 이슈화하기도 했다. 인터넷 포털사이트는 그의 이름 석 자만으로도 그 연원과 내용을 쏟아낸다.
그는 이전 세대와는 달리 학계에서 통용되던 틀, 공식에서 벗어나 실존 자료를 통해 실증적으로 한국의 경제사를 정리하는 업적을 이뤘다. 「한국경제사1,2」는 그 연구의 종합판이다.
언제부터 이승만이란 인물에 집중하게 되셨나요?
이승만 대통령이 1911년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낸 「독립정신」이라는 책이 있습니다. 1949년 국내에 출간됐고 2000년대 중반 현대어로 다시 나왔지요. 부끄럽게도 이 책에 대해 들어본 적도 없고, 전해 준 사람도, 소개해 준 사람도 없었습니다. 읽어보니 20세기 최고 지성의 책이었습니다. 1904년 감옥에서 ‘왜 나라가 망하는가’를 고민한 끝에, 독립자주자유정신이 결여된 때문이라고 결론지었죠. 당시 우리 사회가 겪고 있는 도덕의 타락, 사회의 해체는 하나님의 창조를 모르기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놀라운 시각입니다.
개인적으로는 신앙의 눈으로 바라보니 그의 생각이 더 잘 이해됐던 것 같습니다. 자유에 관한 세계사적 발상이 마틴 루터의 종교개혁에서 비롯되고 기독교 선교의 역사와 맥락을 같이 했으므로 자유는 기독교 속에서 더 잘 발견될 수 있는 것은 분명합니다.
신앙은 언제부터 가지셨나요?
모태신앙입니다. 20대까지는 열심히 다녔고, 군에서 군종사병도 했었구요. 뒤에 교회를 이리저리 옮겨 다니며 찾아 다니기도 했지요. 뚜렷하게 마음을 두기 어려워서대는 주일 연구실에서 나가 혼자 찬송 부르고 예배 드린 뒤에 연구를 하곤 했지요(웃음).
평강제일교회에 처음 온 지 얼마 안 돼 바로 등록교인이 되셨는데, 어떤 계기가 있었나요?
이승만 학당 수료생 중 한 분이 어느 날 책을 가져다 주셨는데, 박윤식 목사님의 「대한민국 근현대사 시리즈」였습니다. 읽어본 뒤 “이런 소신을 가지신 분이 있나” 싶었습니다. 저자는 이미 세상을 떠난 뒤였지만, 교회를 직접 나와보고 바로 등록하기로 결정했습니다(20년 이상 다니던 교회를 떠난 전격적인 결정이었기에, 더 이상 관련 질문은 던지지 않았다. 젊은 시절 “교회를 찾아 다녔다”고 했던 대목에서 그의 신앙적 갈증이 느껴지기도 했다).
이영훈 교수는 이승만 대통령이 이해하고 교육하고 건국이념으로 수용했던 ’본래적 자유’와 ‘자유인, 자유민주주의, 자유시장경제’에 관해 더욱 알리는 일을 사명으로 인식하고 있었고, 그 사명에 힘을 다하겠다고 다짐했다.
글_이지운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