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스라엘의 첫 수도 ‘실로’
이스라엘의 첫 수도 ‘실로’
트럼프의 예루살렘 선언 이후, 이스라엘의 수도가 어디인지에 대한 문제가 국제적인 이슈가 되었다. 이처럼 이스라엘의 수도에 대한 문제가 엄청난 이슈를 만드는 근본적인 이유는, 이스라엘의 수도는 곧 성전이 있는 장소요, 하나님이 임재하는 곳으로 여기기 때문이다.
하지만 처음부터 이스라엘의 수도가 예루살렘이었던 것은 아니다. 갈대아 우르 지방에 살던 아브라함은 나그네로서 가나안 땅에 우거하였으며, 그가 소유한 땅은 헤브론의 막벨라 굴이 전부였다. 그러나 아브라함의 자손이 200만이 넘는 대민족으로 확대되면서 12지파 모두를 모을 수 있는 중심점, 수도가 자연스럽게 생기게 되었다. 출애굽 광야 노정을 마친 이스라엘 백성은, 주전 1406년 정월 10일 요단강을 건너와 길갈에 진을 쳤다(수 4:19, 5:10). 길갈은 가나안 땅의 주요 거점을 정복하기 위한 전쟁이 약 6년간 진행되는 동안 이스라엘의 임시 수도였으며 성막이 위치했다. 여호수아 10장은 길갈이 기브온 족속과 조약을 맺은 외교적 수도이자, 전쟁이 끝나면 귀환하는 곳으로 이스라엘의 중심지였음을 보여준다(수 10:5-7, 15, 43, 참고-수 14:6).
실로 시대의 시작
가나안의 주요 거점 정복을 마친 주전 1400년, 이스라엘 온 회중은 길갈에서 약 32km 떨어진 실로에 모여서 성막을 세웠다(수 18:1-2). 길갈은 요단강가에 너무 치우쳐 있었지만, 실로는 거리적으로도 가나안의 중심부이자, 사마리아 산지의 비옥한 평원을 끼고 있는 등 수도에 적합한 곳이었다.
이후 주전 1102년 아벡 전투에서 블레셋에게 언약궤를 빼앗긴 뒤 성막이 놉으로 옮겨가기까지(삼상 4:1-11, 21:1-6, 22:11, 19), 약 298년 동안 성막은 실로에 있었으며, 실로는 사무엘이 다스리던 시기까지 이스라엘의 수도로 여겨졌다. 그래서 예레미야 7:12에서는 “내가 처음으로 내 이름을 둔 처소”가 실로라고 말씀하고 있다.
실로가 이스라엘의 수도로 여겨진 기간은 사사 시대와 거의 일치한다. 실로에서는 매년 절기를 지키는 제사가 드려졌으며(삿 21:19), 백성들은 하나님께 예배드리기 위해 실로로 나아왔다(삼상 1:3, 9, 24). 게다가 실로는 유대 산지보다 강우량이 많고 분지가 잘 발달하여 농경에도 적합하다. 사사 시대 동안 실로는 종교적, 경제적, 정치적 중심지로서 눈부신 발전을 거듭했다.
실로 시대의 풍경
실로에 대한 고고학적인 연구는 이러한 모습을 잘 보여준다. 실로의 발굴은 1920년대부터 시작되어 1980년대에 두드러진 성과가 나타나기 시작했으며, 약 100년이 지난 오늘까지도 연구가 계속되고 있다. 실로의 유적터를 가보면 골짜기로 둘러싸인 넓은 분지에 성벽의 터가 둘러져 있다. 낮은 언덕을 올라가다 보면 많은 기름틀과 물 저장소, 포도주 틀이 발견된다. 이는 실로가 누렸던 경제적인 풍요를 암시하고 있다.
오늘날 실로 유적지의 낮은 언덕 위에는 실로의 역사를 간략히 보여주는 기념관이 위치하고 있고, 언덕에서 북쪽 낮은 언덕을 내려다보면 넓고 평평한 땅이 보인다. 바로 이곳이 실로에 성막이 위치했던 곳으로 추정되는 곳이다. 1873년 성경고고학자 윌슨은 이 북쪽 언덕을 성막의 위치로 추정했는데, 북쪽 언덕의 돌들은 어떤 거대한 구조물을 세우기 위해 잘 다듬어져 있으며 그 길이가 약 235m에 달한다. 그리고 잘 다듬어진 평평한 지반은 100규빗(45.6m) × 50규빗(22.8m) 크기의 성막이 위치하기에 충분하다. 만약 이 자리에 성막이 세워져 있었다면 주위를 두르고 있는 골짜기와 탁 트여 있는 넓은 지반으로 장엄한 분위기가 연출되었을 것이다.
실로의 역사
출애굽 이후 길갈까지 계속해서 이동했던 성막은 실로에 도착해 한 자리에서 298년간 머물렀다. 그래서 유대 문헌인 탈무드나 미쉬나에서는 시간이 지나면서 조금 더 튼튼하게 외곽에 돌담을 쌓은 것으로 전한다. 사무엘상 3:15에서 어린 사무엘이 아침까지 누웠다가 ‘여호와의 집 문을 열었다’라는 표현은 이러한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돌담을 쌓았다는 것은 다시는 성막이 이동하지 않으리라 생각했던 이스라엘 백성들의 기대를 함의한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실로를 떠나셨을 때, 실로의 번영도 빛이 바라고 말았다. 실로가 이스라엘의 수도 역할을 했던 것은 무엇보다 그 가운데 성막이 진치고 있기 때문이었다. 성막의 지성소에 모신 언약궤는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 가운데 임재하심을 나타내는 확실한 증표였다. 그런데 주전 1102년, 아벡 전투를 앞두고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께로 나아가는 대신에 하나님을 끌고 나가기로 작정했다. 지성소에 안치된 언약궤를 제멋대로 전쟁터로 가지고 나간 것이다. 이스라엘은 ‘하나님이 함께하신다’라는 신앙으로 언약궤를 가지고 나간 것이 아니라, 마치 사나운 짐승이나 무서운 무기를 들고 나가듯이 언약궤를 들고 나가 하나님을 자기 뜻대로 부리고자 했다. 이 무서운 범죄는 엘리 제사장과 그 두 아들이 죽음을 맞이하고, 언약궤를 블레셋에게 빼앗기는 참극으로 이어졌다(삼상 4:3-18). 그 시대를 반영하는 고백이 ‘하나님의 영광이 떠났다’라는 뜻의 ‘이가봇’이다(삼상 4:21). 언약궤가 없는 실로의 성막은 그 구실을 상실했고, 성막은 실로를 떠나 놉으로 옮겨지고 말았다. 성막이 떠나버린 실로는 서서히 잊혀진 변방의 도시가 되고 말았다.
다윗이 예루살렘으로 수도를 옮기고 솔로몬이 성전을 지은 뒤, 예루살렘은 명실상부한 이스라엘의 수도가 되었다. 다윗 당시에는 시온산 하나만이 예루살렘이었지만, 시간이 지나며 예루살렘의 면적은 엄청나게 확대되고 번성한 도시가 되었다. 예루살렘은 실로와 달리, 농경이 거의 불가능한 척박한 땅이다. 그런 척박한 예루살렘이 황금성과 같이 찬란한 모습으로 발전된 것은 오직 성전이 그 자리에 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이스라엘 왕정 시대가 지나면서 예루살렘은 외형적으로 눈부신 발전은 거듭했지만, 점차 예배를 멸시하고 안식일을 짐으로 여기며 율법을 우습게 생각하는 타락이 퍼져 나갔다. 결국 남 유다의 멸망을 앞두고 예레미야는 ‘하나님의 이를 둔 처소 실로에 가서 이스라엘의 악에 대해서 어떻게 심판을 행하였는지 보라’ 강력히 경고하였다(렘 7:12-14, 26:6). 하지만 이스라엘은 예레미야의 눈물의 메시지를 듣기는커녕 멸시하였고, 마침내 에스겔은 성전 문지방에서 여호와의 영광이 떠나버리는 것을 목격했다(겔 10:18). 실로의 성막이 떠나버렸듯이, 영원할 줄 알았던 예루살렘의 성전 역시 주전 586년 바벨론의 침공으로 완전히 불타 무너져버렸다. 실로에 있던 언약궤가 블레셋에게 빼앗겼듯이, 예루살렘 성전의 언약궤는 바벨론에 빼앗겨 행방을 알 수 없게 되었다. 실로를 통한 경고와 회개의 메시지를 듣지 않았을 때, 예루살렘도 실로의 뒤를 따라가고 만 것이다.
실로의 소망
그렇다면 ‘실로’라는 이름은 잊고 싶은 과거의 이름일까? 인간의 실수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그 이름을 소망의 이름으로 사용하신다. 이스라엘 백성이 바벨론 포로 기간이 끝나고 다시 예루살렘으로 돌아왔듯이, 실로에게도 남아 있는 소망이 있는 것이다.
(창 49:10) “홀이 유다를 떠나지 아니하며 치리자의 지팡이가 그 발 사이에서 떠나지 아니하시기를 실로가 오시기까지 미치리니 그에게 모든 백성이 복종하리로다”
창세기 49:10에서 유다 지파에게 축복하시면서 말씀하신 ‘실로가 오시기까지 미치리니’에서 ‘실로’라는 단어는 인명이냐, 지명이냐를 놓고 많은 견해 차이가 있다. 여기 ‘실로’(שִׁילֹה)는 ‘샬라’(שָׁלָה)에서 유래하여 ‘안식을 주는 자, 평화를 만드는 자’라는 의미를 가진다. 이는 ‘평화의 성읍’이라는 의미의 ‘예루살렘’(יְרוּשָׁלַיִם)과도 일맥상통한다. 즉 여기 ‘실로’는 인명이든, 지명이든, 유다 지파를 통해 훗날 완성시키실 평화와 안식을 대망하게 하는 이름으로, 구속사적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대망하게 한다. 구약 율법에서의 실로와 예루살렘은 모두 파괴되고 제 기능을 상실하고 말았지만, ‘실로’ 자체가 되시고 ‘예루살렘’ 자체가 되시는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셔서 사망 권세를 정복하시고 사망을 이기는 영원한 안식을 선포하심으로 야곱의 축복이 성취되었다. 오직 예수로 말미암을 때에만 ‘실로’와 ‘예루살렘’이 이 땅에 이루어질 수 있는 것이다.
구약 시대 실로의 쇠퇴는 오늘날 우리 마음 속에 하나님의 언약궤와 같은 말씀을 모셨다며, 자만하고 형식적으로 신앙생활하면서 때로는 하나님을 이용하려고 하는 성도의 범죄를 강하게 경고한다. 그러나 동시에 참 실로가 되시는 예수님께서 이 땅에서 안식과 평화를 완성시키신 사건은, 우리의 연약함에도 불구하고 예수의 뒤를 따르는 성도들에도 참 실로를 선물해 주실 것을 대망하게 하고 있다. 실로의 유적지는 실로의 흥망성쇠가 오직 성막의 유무에 놓여있었음을 역사적으로 증거하며, 우리의 마음 속에도 성막의 실체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모실 것을 종용한다.
글_예루살렘=정디모데 전도사, 삽화_박희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