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 하계대성회 르포 ‘아브라함의 품으로’
2018 하계대성회 르포
아브라함의 품으로
아브라함 출생 (BC 2166) 이후 오늘까지 4천여 년 동안 아브라함을 이렇게 깊고 넓게 탐구한 회합(會合)은 없었다. 2018년 평강제일교회 하계대성회(8월 6-9일)는 ‘아브라함 탐구 여행’이었다. 구속사(救贖史)의 시작이며 진행이자 마무리인 인물, 영과 육을 오가고 신,구약을 종횡무진하는 신비로운 존재 아브라함에 대해 묻고 기억하는 3박 4일이었다. 마침내 ‘지구촌 수많은 사람의 구원이 그와 연결돼 있는’ 아브라함의 품까지 깊숙이 접근한 대장정이었다.
아브라함 따라잡기
기독교와 이슬람교의 공통 조상이며 ‘구약 첫 책’인 창세기에 기록됐던 아브라함은 무려 2천 년이 흐른 신약 시대에 예수님의 입을 통해 ‘종말 심판의 상징’으로 재등장한다. 신약을 읽을 때마다 의아했다. 거지 나사로는 왜 낙원에서 ‘하나님의 품’이 아닌 ‘아브라함의 품’에 안겨 있는가? 어떻게 아브라함은 2천 년 뒤에 오신 예수님의 날을 목격(요 8:56)한 것인가?
의문은 구속사 시리즈 제10권 출간(2017. 12.17) 이후 조금씩 풀리기 시작했다. 지난 일곱 달은 성도들이 책을 읽고, 사관학교에서 배우며 포도주를 숙성시키는 기간이었다. 마침내 열린 이번 대성회는 실패를 반복하는 인간의 연약한 모습과, 동서로부터 오는 수많은 사람과 함께 천국에 앉는(마 8:11) 믿음의 아버지의 모습이 중첩되는 존재, 아브라함의 깊이와 높이와 넓이와 길이를 이해하는 자리였다. 구속사의 깊은 내막(內幕)들이 한 꺼풀씩 베일을 벗었다. 마치 인간의 손으로 실제 건축된 적 없던 신비로운 에스겔 성전을 바깥 뜰에서, 안 뜰로, 다시 성소 안으로 더듬어 들어가는(첫째 날 김바울 목사 강의 ‘쉐알 아비카’ 중) 느낌이었다.
셋째 날 (8.8) 저녁예배에서는 에스겔 성전을 3D로 재현한 티저(teaser) 영상이 공개됐다. “오랜 세월 신학자들의 시도가 있었지만 성경과 다른 부분이 많았다. 이번 입체영상은 역사 상 처음으로 성경의 기록 그대로 재현한 것”이라고 구속사 출판팀은 밝혔다. 에스겔 성전은 내년 5월 17일 발간 목표인 구속사 시리즈 제11권의 주제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에스겔 성전을 종말의 성전으로 믿고, 실제 건축을 위한 ‘제3성전위원회’를 만들었다. 총 12권 발간될 구속사 시리즈는 벌써 11권까지 윤곽을 드러냈다. 평강 성도들에게 이보다 더 강력한 징조가 어디 있을까.
천국과 지옥의 경계선에서
여기가 ‘새 하늘과 새 땅’이고 에덴이고 가나안이다. 3박 4일 여주에서 지내다 보면 부지런해지고, 잡념이 없어지고, 마음이 평화로워진다. 덜 자고, 덜 먹는데 몸은 가벼워지고 눈은 밝아진다. 하나님은 당신 나라 백성의 숙식과 시간 사용은 모름지기 이러해야 한다는 절도와 기준을 보여 주신다.
저절로 되진 않는다. 공동생활의 불편과 고된 일정을 견뎌 내려면 자기를 죽여야 한다. 자기 성깔, 욕심, 주관, 취향, 고집을 꺾는 결단이 필요하다. 늘 한두 번의 고비도 찾아온다. 그러나 눈 딱 감으면 결국 할 수 있는 일이다.
하나님의 허락에는 반드시 피 흘림이 따른다. 아브라함도 그랬다. 제사를 드렸고 할례를 행했으며 목숨보다 소중한 외아들 이삭을 바쳤다. 내가 죽지 않으면 몸은 여주에 있어도 마음은 지옥이다. “그저 하라시면 하고 하지 말라시면 안 하면 되는데 왜 못할까? 내가 살아 있기 때문이다.” (둘째 날 새벽예배 박상운 목사 설교 ‘롯의 때와 같으리니’ 중)
대표적 사례가 롯이다. 3박 4일 동안 아브라함 다음으로 많이 회자된 인물이다. 아브라함과 동시대에 살았고 아브라함의 혈육이었지만 스스로 축복을 여러 번 걷어찬 비극의 인물. 승리의 수 17에 가장 근접한 소수(素數)지만 타락과 배신의 수가 된 13처럼, 예수님이 곁에 두시고 신임을 쏟아 부으셨지만 끝내 최후의 만찬 13번째 인물이 된 가룟 유다처럼.
우리는 얼마나 많은 롯을 목격하고 있는가. 우리 모두는 경계선을 걷고 있는 존재들이다. 있어야 할 자리 지키지 않고, 가야 할 자리에 가지 않으면 결국 아브라함을 떠날 수밖에 없다. 휘선(暉宣) 박윤식 목사가 천국 입성 몇 달 전, 심한 기침 속에서도 피를 토하듯 증거했던 말씀이 바로 롯에 대한 것이었다. [2014년 2월 27일 설교 ‘이러한 의인이 왜 족보에서 누락되었는가? (족보에 기록되지 못한 롯과 두 딸의 수치)’]
휘선의 발자취를 따라
2013년 하계대성회에 참석했던 ‘현존 세계 최고의 신학자’ 브루스 월키는 “제자들에게 부탁한다. 박윤식 목사님에게 들으라(Listen to Abraham Park)”고 말했다. 2012년 하계대성회에 왔던 수메르어의 세계적 대가 강신택 박사는 “이스라엘에 아브라함이, 미국에 아브라함 링컨이 있었던 것처럼, 박 아브라함 목사님은 한국만이 아닌 세계적인 아버지가 돼야 할 분”이라고 했다. 대성회 기간 내내 휘선기념실에는 박윤식 목사의 발자취를 좇으려는 발걸음이 이어졌다(관련 기사 26쪽). 여주의 휘선기념실은 곧 건립될 휘선기념관의 예고편 격이라 성도들은 관심이 높다.
대성회 첫날에는 성도 수 60여 명인 미국 타코마 푸른초장교회가 휘선기념관 건축헌금 10만 달러를 드렸다는 소식이 성도들을 감동시켰다(인터뷰 19쪽). 중등부 학생들도 이날 천만 원의 ‘거금’을 기념관 건립에 드렸다. 중,고등부 학생들이 하계대성회에 참석해 어른들과 똑같은 일정을 보내는 것은 2011년 박윤식 목사의 명령 이후 평강제일교회의 전통이다. 올해도 중등부(에벤에셀) 150여 명, 고등부(한소리) 학생 100여 명이 새벽예배부터 저녁 행사까지 모리아 성전을 지켰다. 중등부는 대성회 둘째 날(8.7 화) 저녁에 열린 구속사 노래대회에서 3관왕(은상,인기상,응원상)을 차지하는 기염을 토하기도 했다. “3관왕 비결이 뭐냐”는 물음에 배창성 군(중등부 3학년)은 “기도 진짜 많이 했어요”라고 거침없이 말했다. 김정은도 무서워한다는 ‘중딩’들의 진짜 저력이 느껴졌다.
올해 하계대성회의 특징은 젊은이들이 많다는 것이다. 어딜 가나 젊음이 뿜어내는 활력이 넘쳤다. 박윤식 목사의 권유로 군문에 들어선 이충형 소위도 그 중 하나다. “막 장교의 길을 시작한 하루하루가 부담이었다. 다가오는 내일이 감당되지 않을 때도 있었다. 그러나 이번 대성회에서 받은 메세지는 ‘기다림’이다(권두언 참조). 이미 내가 걸어온 길은 하나님이 함께 하시지 않으면 못 올 길임을 깨달았다. 이제 병영으로 돌아가 예수의 향기를 풍기며 오늘 하루를 주신 분이 하나님임을 알려주고 싶다”고 그는 말했다. 2007년부터 구속사 시리즈를 배우며 자라난 ‘구속사 세대’들이 이제 중,고등부와 청년1,2부의 주력이 됐다. 구속사 노래대회에서 청년1부 헵시바선교회의 자작곡 ‘길갈교를 지날 때’(작곡자 김혜지 인터뷰 20쪽)는 모든 참석자의 마음을 울렸다. 날 때부터 말씀을 듣고 자라난 구속사 세대의 힘이다. 이들이 세상을 바꿔 놓을 것이다.
서로 다투게 말자
아브라함과 롯의 목자들이 이방인들 목전에서 다투자 아브라함은 말했다. “우리는 한 골육이라. 서로 다투게 말자”(창 13:8). 2018년 하계대성회를 관통하는 정신은 ‘화합과 관용’이다. 야곱이 147세로 애굽에서 생을 마치자 열두 아들들은 1톤 무게의 관을 메고 가나안 세겜까지 692km를 걸었다(서울에서 부산까지는 395km). 4명의 모친에게서 나온 아들들, 성격도 나이도 제각각이고 복잡한 과거사의 기억들로 얽혀 있는 열둘이었다. 그러나 화해하고 협력하지 않으면 도저히 걸을 수 없는 길이었다. 아버지의 관이 아닷(히브리어로 ‘가시나무’) 타작마당에 이르자 열둘은 통곡했다. 야곱은 환도뼈가 위골된 극한의 고통 속에서도 자식들을 살리려고 여기서 에서에게 7번 절했었다. 살아 계실 때는 그 심정을 모르고 아버지의 가시가 되기만 했던 아들들의 눈물이 가슴에 사무쳤다.
열두 아들이 하나 되는 토대를 만든 것은 열한 번째 아들 요셉의 관용이었다. 아버지가 남기신 구속사의 뜻이 있었기에, 자기를 죽이려했던 형들을 용서할 수 있었다. 우리도 지금 692km를 걷고 있다. 돌고 도는 길, 때로는 영문을 알 수 없는 길이다. 왜 이런 일이 일어나나 싶고, 비관에 휩싸이기도 한다. 그러나 하나하나 이유와 의미가 있는 길이다. 횃불 언약의 성취를, 출애굽 승리의 행렬을 미리 보여 주는 길이다(둘째 날 이후숙 선교사 강의 ‘언약 성취를 위한 야곱의 장례 행렬에 담긴 구속 교훈’ 중). 야곱은 사후에도 아들들에게 이 길을 걷게 함으로써 ‘인생 7기’를 마무리했고, 박윤식 목사는 천국 입성 전 야곱의 장례 행렬을 성도들에게 강조하고 또 강조했다. 구속사의 맥을 이은 것은 좋은 땅을 양보한 아브라함이었고, 관용한 요셉은 구속사의 주인공이 됐다.
“아버지, 자식 때문에 쉼 없이 일하셨어요. 평생을 한결같이 이 못난 자식 위해 온몸이 부서지고 일하시며 희생하신 아버지” (박윤식 작 ‘아버지’ 중)
기적들
여주에서 3박 4일 지내다 보면 일상적으로 기적을 체험한다. 세계적 폭염으로 기후학자들이 “이대로 가면 아마겟돈 같은 사태에 직면할 것”이라고 경고한 2018년이지만 대성회 기간 여주 평강제일연수원은 구름기둥에 덮여 있었다. 이것이야말로 기적 아니겠는가.
10년 전인 2008년, 대륙을 통틀어 여주 하계대성회에 한 명(가장 작은 자로부터의 간증 인터뷰 24쪽) 왔던 중국인이 10년이 지난 올해는 중국인 참석자가 58명 몰려와 최다 인원 참가 해외국가가 됐다. 중국인들이 중국어로 ‘인(印) 침을 받은 자의 시온산 새 노래’를 부르는 모습을 보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 이것이야말로 기적 아니겠는가. “수백 만 명이 모여도 하나님께 진정으로 기도하는 한 사람이 더 중하다”고 했으니 “열방이 몰려온다”는 말씀은 미래형이 아니라 이미 현재진행형이다.
사람은 쉽게 안 변한다. 그러나 말씀받은 사람은 변할 수 있다. 올해 대성회에서는 강의를 들으며, 또는 구속사 노래대회의 찬양을 들으며 ‘아니, 저 분이, 저 팀이 저렇게 달라질 수 있나’하고 감탄하게 되는 장면이 많았다. “지렁이 같은 너 야곱아. 내가 너로 이가 날카로운 새 타작 기계를 삼으리니 네가 산들을 쳐서 부스러기를 만들 것이며”(사 41:14-15 중) 우리도 변할 수 있다. 그러니 서로 속단하지 말고 참고 기다려 줘야 한다. 이것도 기적이 아니겠는가.
개인적 체험이지만 하나만 더. 매년 여주에서 하루 이틀 지내고 나면 ‘왜 그 사람은 안 보일까’ 하고 떠오르는 얼굴들이 있다. 그런데 그러고 나면 얼마 안 돼 꼭 그 사람을 만나게 된다. 끝까지 못 봐서 걱정되던 사람은 폐회예배 후 마지막 순간에라도 마주친다. 천국도 이렇지 않을까? “천국은 ‘집사님’ 하고 부르지 않아도, 생각하는 순간 그분이 벌써 눈앞에 와 있는 세계”라던 박윤식 목사님 설교가 생각난다. 이것도 여주의 기적이다.
충성!
아브라함은 롯, 이스마엘, 이삭과의 관계에서 공통적으로 하나님께 ‘충성’의 자세를 유지했다. 생명 바쳐 충성하면 은혜의 세력이 악의 세력을 이기고 2배 부흥을 이룬다(셋째 날 이영수 선교사 강의 ‘언약을 대하는 아브라함의 자세’ 중). 셋째 날(8.8 수) 오후에 열린 제25기 기독사관학교 수료식은 ‘그리스도의 더 좋은 군사’들이 충성을 다짐하는 현장이었다. 1929년에 태어난 최숙희 권사는 이날 ‘안나상’을 수상했다. 90세의 나이에 청주에서 서울까지 오가며 수료의 영광을 안았다(인터뷰 18쪽). ‘구속사 나누기상’을 받은 1945년생 박봉식 집사는 구속사 시리즈를 320권 전했다. “사업하면서 틈날 때마다 전했다. 외출할 때는 들고 다니며 읽다가 관심 보이는 사람에게 명함 주고 만나자고 했다. 교회에 몇 분 모셔오긴 했지만 아직 열매가 없어 아버지께 죄송한 마음뿐”이라고 했다. 이날 평강제일교회에서 3,117명, 국내외 평강의 교회에서 537명, 총 3,654명이 학사모를 썼다. “한 사람이 100명을 당한다.” 하셨으니 이날 36만 5,400명의 대군이 구속사의 전장에 출정한 셈이다.
“너는 듣고 있는가, 우렁찬 구속사 말씀. 온 열방 몰려오는 백성들의 발걸음 소리.” (구속사 노래대회 대상 수상팀 대구 산성교회 ‘구속사 출정가’ 중)
다시 아브라함의 품으로
3박 4일 동안 설교와 강의가 모두 17회였다. 완전수 7과 만족수 10이 합쳐진 ‘승리의 수’ 17의 성경적 의미(둘째 날 유종훈 목사 강의 ‘아브라함 생애에 나타난 17수’ 중)를 아는 성도들은 새삼 놀라고 감탄했다. 한 편 한 편이 정선(精選)된 ‘때에 맞는 말씀’이었다. 하나님 아버지께서 우리 곁에서 세밀하게 역사하고 계심을 어찌 부인할 수 있으랴.
마지막 17번째 강의는 ‘아브라함의 품’(이승현 담임목사)이다. 부모의 품에 안겨있는 것은 자식이니 거지 나사로가 아브라함의 품에 안긴 것은 아브라함과 영적인 부자(父子)라는 뜻이다(눅 16:19-31). 반면 부자(富者)는 입으로는 아브라함을 ‘아버지’라 불렀지만 아브라함과 그의 사이에는 큰 구렁이 놓여있었다(눅 16:24, 26, 30). 우리는 어느 쪽인가. 우리가 좇아가는 길은 ‘열국의 아버지’ 아브라함의 길인가, 개명 전의 그저 ‘존귀한 아비’ 아브람의 길인가.
아브라함의 자손은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어야 하고(눅 3:8), 아브라함의 행사(deeds)를 해야 한다(요 8:39). 마지막 날 점심식사를 마친 뒤 대부분의 성도가 끝까지 남아 연수원 곳곳을 깨끗이 청소하고서야 집으로 가는 길에 올랐다. 아브라함의 아들들이었다.
글_여주=호준석 기자, 취재=이푸름, 장미양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