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루살렘 기혼샘 ② – 히스기야의 지하수로
예루살렘 기혼샘 ②
히스기야의 지하수로
“이 히스기야가 또 기혼의 윗 샘물을 막아 그 아래로 좇아 다윗 성 서편으로 곧게 인도하였으니 저의 모든 일이 형통하였더라” (대하 32:30)
다윗이 예루살렘을 정복한 후 약 300년이 지났다. 300년간 많은 변화가 이어졌다. 솔로몬은 시온 산 건너편 모리아 산에 솔로몬 성전을 건축하며 예루살렘의 지경을 확장했으며, 티로페이온 골짜기 건너편 산에도 정착하는 사람들이 늘어났다. 다윗 당시 약 2,000명 정도였던 인구는 주전 700년경 약 25,000명으로 늘어났으며, 예루살렘의 면적도 약 40,000m2에서 500,000m2로 12배 이상 확장되었다.
이러한 시대에 남 유다를 다스리던 왕이 제13대 왕 히스기야였다. 히스기야는 주전 715년에 25세의 나이로 즉위하여 29년간 통치하였다. 그는 아하스와의 15년간 공동통치를 끝내고 단독 통치를 시작하던 주전 715년, 강력한 종교개혁을 단행하여 성전을 수리하고 유월절을 거국적으로 지켰다(왕하 18:3-6, 대하 29:2-31:21). 그의 선한 통치는 온 유다를 부국강병의 길로 인도하였다.
히스기야의 생명 연장과 앗수르의 제1차 침공
통치 제14년째, 히스기야는 죽음을 선고 받고 눈물 어린 회개기도로 15년의 생명이 연장되는 기적적인 체험을 경험했다. 이때 하나님께서는 이사야 선지자를 통해 “내가 너와 이 성을 앗수르 왕의 손에서 구원하고 내가 나를 위하고 또 내 종 다윗을 위하므로 이 성을 보호하리라”라고 말씀하셨다(왕하 20:6, 사 28:6). 그런데 바벨론 왕 부로닥발라단이 히스기야에게 사절을 보내자, 히스기야는 하나님의 이적을 증거하지 않고 자신의 보물고와 내탕고, 군기고를 보여주며 자신을 과시했다(왕하 20:13, 대하 32:31). 히스기야의 교만은 결국 훗날 자신이 뽐내던 모든 것들이 훗날 바벨론에게 빼앗기게 되는 결과로 이어지고 만다(왕하 20:17).
히스기야의 징계는 같은 해 앗수르의 침공으로 나타났다. 이때 히스기야는 하나님을 의뢰하고 기도하지 않고, 은 300달란트(10,200kg, 오늘날 약 80억 원)와 금 30달란트(1,020kg, 오늘날 약 490억 원)을 조공으로 바쳤다. 그는 조공을 준비하기 위해 여호와의 전과 왕국 곳간에 보관된 은을 다 꺼내었고, 성전 문과 기둥에 입힌 금을 벗겼다(왕하 18:15-16). 여기 ‘은’은 분명 성전 세겔로 드려진 헌금이었으며, 금 역시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기 위해 성전에 입힌 거룩한 것이었다. 다시 말해, 그 동안 진행했던 모든 종교개혁을 거꾸로 되돌리고 만 것이다.
앗수르의 제2차 침공
앗수르 왕 산헤립은 조공품을 받고 돌아가며 다른 나라와 전쟁하다가, 조공품에도 불구하고 예루살렘을 완전히 함락하겠다는 악랄한 마음을 먹었다. 그리고 랍사게를 보내 대군으로 예루살렘을 포위하고 사자를 보내 예루살렘 침공을 예고했다(왕하 18:17-37, 19:7, 8-13).
이때 히스기야는 같은 잘못을 반복하지 않았다. 자신의 소유나 돈을 의지하지 않고, 온전히 하나님만을 의지하기를 마음에 결심하고 먼저 성 밖에 있는 모든 물 근원을 막고 퇴락한 성을 중수했다.
“그 방백들과 용사들로 더불어 의논하고 성 밖에 모든 물 근원을 막고자 하매 저희가 돕더라” (대하 32:3)
히스기야는 방백들과 용사들로 특공대를 조직하고 예루살렘 성 밖에 있는 모든 샘들을 파괴했다. 기혼 샘은 성 안에서도 이용할 수 있는 비밀 통로가 있으므로, 앗수르 군의 수원지를 끊는 동시에 자신의 수원지는 지켜서 장기전을 준비하는 멋진 전략이었다. 하지만 이것만으로는 부족했다. 다윗 때 여부스 족속처럼 산성 하나만을 지킬 것이 아니라, 12배 가까이 늘어난 예루살렘 큰 성을 지켜야 했기 때문이다. 시온산 동편 기슭에 위치한 기혼 샘은 새로 확장된 서부 예루살렘 거민들에게 물을 공급하기에는 너무 멀었으며, 동시에 물을 퍼내기도 어려웠다. 이에 히스기야는 기혼 샘부터 예루살렘 남쪽에 위치한 실로암까지 연결되는 지하 수로 공사를 시작했다.
히스기야의 수로 공사
히스기야의 수로는 성경에는 단 세 구절에만 간략하게 기록되어 있지만(왕하 20:20, 대하 32:2-4, 30), 전시 상황에서 이루어진 공사라고 생각될 수 없을 만큼 엄청나게 정밀한 공사였다.
지하 수로의 길이가 약 547미터에 달하며, 기혼샘과 실로암 사이 고저차가 불과 30cm밖에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렇게 고저차를 얼마 나지 않도록 만든 것은 물소리가 나지 않도록 해서 외부에서 이 수로를 발견할 수 없게 하기 위함이었다. 게다가 이 샘은 한쪽에서 파고 들어가서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 양쪽에서 파고 들어가서 가운데에서 만나 완성시켰다. 심지어 암벽층이나 바위의 균열을 피하기 위해 일직선 통로가 아닌 구불구불한 통로로 팠으며, 양쪽에서 파들어가 만나는 지점의 오차도 1.2m 정도밖에 나지 않는다. 지하 수로의 건축과정은 실로암 비문에 기록되어 있는데, 이 비문은 히스기야가 자신의 업적을 남기기 위해 만든 것이 아니라 건축사업에 참석한 한 석공이 완성의 기쁨을 남기기 위해 기록한 것이었다. 실로암 비문은 다음과 같이 기록되어 있다.
“이것은 관통의 유래이다. 그들이 곡괭이를 들고 서로 마주 파갔다. 아직 더 파야 할 땅이 3규빗(약 136.8cm) 남았을 때 서로를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그것은 오른쪽 바위에 균열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석공들은 서로를 향해 곡괭이로 쳐서 파갔다. 그렇게 물은 수원지에서 연못까지 1,200규빗을 흘렀다. 그리고 지면까지의 바위의 두께는 100규빗이었다.”
이 굴의 높이는 약 2m 정도이며 폭은 한두 사람이 지나갈 정도이다. 오늘날에도 이 터널은 원형 그대로 보존되어 있으며, 전기 설비 등도 되어 있지 않아 손전등을 가지고 들어가야만 관람할 수 있다. 약 547미터의 길이를 통과하는 데는 거의 30분 정도가 소요된다. 오늘날에도 수로에는 사람 무릎 높이로 물이 흐르며 심지어 작은 물고기도 살고 있다. 수로를 지나고 나면 대략 50 x 60m 크기였던 것으로 추산되는 실로암 못이 나온다. 기혼에서 흘러나오는 물과 하늘에서 내리는 비와 이슬로 실로암 못은 물 마를 일이 없는 수원지가 되었다.
실로암의 완성
실로암의 완성은 예루살렘에 풍부한 물을 공급해 주었다. 그리고 동시에 예루살렘의 확장된 구역을 성벽으로 둘러싸면서, 앗수르의 포위에 저항하며 장기전을 치를 만한 준비가 완료되었다. 히스기야의 대공사는 평화롭고 한가할 때 진행한 것이 아니라, 앗수르의 포위라는 위협 속에서 온 국민의 일치된 마음으로 진행한 것이었다. 그렇기에 랍사게를 통한 위협 가운데에도 예루살렘 거민들은 “너희는 마음을 강하게 하며 담대히 하고 앗수르 왕과 그 좇는 온 무리로 인하여 두려워 말며 놀라지 말라 우리와 함께하는 자가 저와 함께하는 자보다 크니 저와 함께하는 자는 육신의 팔이요 우리와 함께하는 자는 우리의 하나님 여호와시라 반드시 우리를 도우시고 우리를 대신하여 싸우시리라”라는 히스기야의 말을 듣고 안심할 수 있었다. 그리고 온 국민이 흔들림 없이 하나님의 도우심과 대신하여 싸우심을 기다리며 기도할 때, 하나님께서는 사자를 보내셔서 하룻밤 사이에 적군 185,000명이 송장이 되는 대역사를 행하신 것이다(왕하 19:35, 사 37:36, 참고-대하 32:21).
열왕기하 20:20에서는 히스기야의 사적을 평가하면서 ‘그 모든 권력과 못과 수도를 만들어 물을 성중으로 인도하여 들인 일’을 특별히 기록했다. 이 수로는 ‘히스기야의 수로’라고 불리우며 예루살렘 전역에 생수를 공급하는 역할을 감당했다. 실로암 샘의 공사가 없었다면 마실 물이 없어 목말라 하다가 랍사게의 악한 말에 넘어가는 국민이 속출했을 것이다. 그런 점에서 ‘실로암’은 ‘보냄을 받은 자의 샘’이라는 이름처럼 온 국민을 해갈시키고 안정시키기 위해 지어진 요지였다.
실로암의 구속 경륜
훗날 예수님께서는 날 때부터 소경된 자를 보시고 눈에 침을 뱉어 진흙을 이겨 실로암 못에 가서 씻으라고 말씀하셨다(요 9:6-7). 소경이 이 말씀에 순종할 때 그의 눈이 밝아졌고, “창세 이후로 소경으로 난 자의 눈을 뜨게 하였다 함을 듣지 못하였으니 이 사람이 하나님께로부터 오지 아니하였으면 아무 일도 할 수 없으리이다”라며 종교지도자들 앞에서 담대히 예수를 증거했다(요 9:24-34). 말씀하신 순간으로 소경의 눈을 낫게 하실 수 있는 예수님께서 왜 굳이 소경을 실로암으로 보내셨을까? 아마도 실로암 샘의 공사로 랍사게의 악한 말에 넘어가지 않았던 이스라엘 백성들처럼, 실로암에서의 체험으로 종교 지도자들의 악한 말에 넘어가지 않는 증인을 세우시기 위함이 아니었을까 싶다.
기혼샘을 통한 하나님의 승리의 역사는 실로암샘으로 이어졌다. 기혼샘에는 대적의 비밀을 계시하시고 승리케 하시는 하나님의 역사가 담겨 있다면, 실로암샘에는 환난 가운데 성도에게 승리의 때까지 인내하게 하시는 역사가 담겨 있다. 기혼샘 비밀 통로를 뚫고 올라가는 데 일사각오의 헌신이 필요했다면, 실로암샘의 비밀통로를 완성하는 데에는 성도들의 협력과 절대 순종이 있었다. 하나님의 구속 역사를 악평하는 랍사게의 말이 세상 곳곳에 가득한 오늘날, 예비하신 성도들에게 구속사의 생수를 공급하는 신령한 실로암샘이 곳곳마다 뻗어나가야 할 것이다.
글_예루살렘=정디모데 전도사, 삽화_박희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