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 생각, 정신, 마음, 삶의 새 지도(넓어진 변화)
자기 생각, 정신, 마음, 삶의 새 지도(넓어진 변화)
누가복음 24:1-9
“ 1 안식 후 첫날 새벽에 이 여자들이 그 예비한 향품을 가지고 무덤에 가서 2 돌이 덤에서 굴려 옮기운 것을 보고 3 들어가니 주 예수의 시체가 뵈지 아니하더라 4 이를 인하여 근심할 때에 문득 찬란한 옷을 입은 두 사람이 곁에 섰는지라 5 여자들이 두려워 얼굴을 땅에 대니 두 사람이 이르되 어찌하여 산 자를 죽은 자 가운데서 찾느냐 6 여기 계시지 않고 살아나셨느니라 갈릴리에 계실 때에 너희에게 어떻게 말씀하신 것을 기억하라 7 이르시기를 인자가 죄인의 손에 넘기워 십자가에 못 박히고 제삼일에 다시 살아나야 하리라 하셨느니라 한대 8 저희가 예수의 말씀을 기억하고 9 무덤에서 돌아가 이 모든 것을 열한 사도와 모든 다른 이에게 고하니”(눅 24:1-9)
옛날, 제대로 된 지도가 없던 시절에는 바다를 항해하는 배들이 육지 연안으로만 붙어서 다녔습니다. 그들이 보는 지도는 너무 좁고 짧고 보잘것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당시 사람들은 수평선 쪽에는 낭떠러지가 있다고 생각하며 바다로 가다가 세상의 끝에 도착하면 낭떠러지에 떨어져 죽는다고 생각했습니다. 이런 편견은 콜럼버스가 신대륙 아메리카에 도착할 때까지 이어졌습니다. 하지만 콜럼버스 역시 신대륙이 인도인줄 알고 원주민들을 인디언이라고 불렀습니다.
사람은 각자가 다 태어날 때부터 다 지도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런데 태어날 때 지도와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 지도가 다 다릅니다. 나이를 먹으면서 지도가 다 달라집니다. 사람마다자기 삶의 경험의 경륜에 따라 지도가 다 다른 법입니다. 자기가 알고 믿는 것만이 그의 실질적인 지도로서 지도만큼만 전진하고 그 범위를 넘어가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러니 내가 아는 것은 여기까지라며, 아예 생각도 하지 않는 것입니다. 그래서 육신의 생각은 지도가 좁습니다. 짧고, 또 초라하기 짝이 없습니다. 육신의 지도는 동서남북 가는 곳마다 악취가 납니다.
그렇다면 비전은 무엇입니까? 비전은 나의 지도가 넓어짐을 말합니다. 그러나 비전의 지도보다 신앙의 지도가 더 넓고, 더 크고, 더 높습니다. 신앙은 비전의 지도보다 나의 지도가 더욱 넓어짐을 말하는 것입니다.
제자들의 옛 지도를 새 지도로 바꾸어주신 예수님의 부활
예수님의 부활은 제자들의 지도를 바꾸셨습니다. 주님의 제자들은 예수가 죽지 않고 살아서 혁명가로서 왕권을 차지할 줄로 알았습니다. 종교지도자들에게 호령하시던 예수님이 맥없이 잡혀서 포승줄에 묶여 가시는 것을 보면서 제자들은 낙담하고 말았습니다. 제자들이 예수님을 보는 지도가 아주 짧고 모자랐던 것입니다. 그래서 주님의 제자들은 예수의 죽음 이후 자기들에게 미칠 영향, 박해와 핍박을 상상하고 가족들이 체포당할 것에 대한 걱정이 가득하였습니다. 주님의 말씀을 들으며 마음속에 모셨던 소망은 하루 아침에 서리를 맞고 말라 꼬들아져버린 식물마냥 씨가 마르고 말았습니다. 예수님의 죽으심으로 제자들은 지도를 완전히 잃어버리고 말았던 것입니다.
그래서 주님의 제자들은 한 방에 모여서 문을 단단히 잠궜습니다. 그런데 주님이 한 가운데 나타나셔서 “너희에게 평안이 있을지어다” 선포하셨습니다(요 20:18-23). 8일 만에 도마가 함께 있을 때, 주님께서 다시 나타나 못 박히셨던 손과 발, 옆구리를 만져보라 하셨습니다(요 20:24-31). 도마를 비롯한 예수님의 제자들은 주님의 부활을 목격하고 만져보고 믿게 된 결과, 그들의 삶의 지도가 완전히 달라지게 되었습니다.
제자들의 지도는 십자가가 세상의 끝, 낭떠러지인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부활하신 것을 깨닫고는 이제 시야가 넓어졌습니다. 영원히 죽지 않는 생명의 세계가 있다는 것을 비로소 깨달았습니다. 제자의 마음 가운데 이제부터 주님의 뜻을 위해 땅의 지도가 사라지고 하늘의 지도로서 부활하신 주님의 지도를 마음속에 품고 일하게 된 것입니다.
주님이 부활하신 지도는 어떤 지도입니까? 미래를 책임지는 지도입니다. 미래를 약속하는 지도입니다. 미래를 보여주는 지도입니다. 책임지고, 약속하고, 보여주는 지도인 것입니다. 주님의 부활을 보기 전까지 제자들의 미래에는 소망이 없었습니다. 예수의 지도와 제자들의 지도가 달랐습니다. 하지만 부활을 목격하는 순간 그 마음속에 지도 보는 근본이 바뀌기 시작하였습니다. 이를 ‘거듭남’이라고 합니다. 우리 기독교는 거듭남의 종교, 곧 중생의 종교입니다. ‘중생’이란, 나의 지식과 경험에 기초한 상식을 넘어서서 하나님이 주시는 동기와 이유와 방향을 향하는 새로운 삶을 말합니다. 바로 이것이 새 지도입니다. 그러니 단순히 넓어진 지도가 아니라, 완전히 새로운 지도를 가지게 된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예수 믿는 우리에게는 바로 이 새로운 지도가 있습니다. 예수 믿기 전의 내 지도와 예수 믿고 나서의 내 지도가 똑같습니까? 이전까지는 지도에 기록된 물질들이 내 것인 줄 알았는데, 학개서 2:8 말씀처럼 모든 것이 하나님 것임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지도가 바뀌어진 것입니다.
옛 지도와 새 지도의 차이
1) 무덤의 지도에서 생명의 지도로 바뀌었습니다.
제자들의 지도는 무덤만 그려져 있었습니다. 이것이 부활을 보기 전의 지도입니다. 사람이 죽으면 끝이지 어떻게 돌아오냐는 것입니다. 그런데 주님의 부활을 목격하자, 십자가 뒤에 부활이 있다는 새로운 소망이 생겼습니다.
주님의 부활은 천국 운동의 시작입니다. 그러니 예수의 부활을 믿는 성도들의 지도는 천국 운동의 지도입니다. 우리가 말씀을 전하는 곳곳마다 지도가 넓혀져 갑니다. 복음을 들고 서울로, 인천으로, 대전으로, 부산으로, 해외 방방곡곡마다 나가서 전하는 그 발자취가 다 지도에 남는 것입니다. 육신의 지도는 가는 곳마다 피곤합니다. 그러나 새 지도에는 피곤함이 없습니다. 영원한 세계를 향하여 뻗어가는 소망의 지도입니다. 베드로전서 1:3-4를 볼 때, 한때 예수님의 제자임을 세 번이나 부인했던 베드로의 지도가 썩지 않고 더럽지 않고 쇠하지 않는 하늘에 간직하신 기업까지 확장되고 있습니다.
2) 후퇴의 지도에서 전진의 지도로 바뀌었습니다.
제자들의 지도는 후퇴만 가득했습니다. 지도를 보면서 옛날 소싯적에는 좋았는데 회상하며 밤낮 과거로 돌아갑니다. 십자가는 막다른 골목입니다. 십자가 뒤에는 무덤밖에 더 있습니까? 소망도 없고 공허할 뿐입니다.
그래서 베드로는 제자들을 선동하여 갈릴리로 고기나 잡으러 가자 했습니다(요 21:3). 부활을 믿지 못하는 옛 지도는 과거로 돌아갈 뿐입니다. 옛날 고향으로 돌아가고, 옛날 어부 노릇으로 돌아가며, 옛날 사망의 종으로 돌아갑니다. 그러나 부활하신 주님은 뿔뿔이 흩어지고 멀찌감치 후퇴해버린 제자들을 다시 찾아와 모으십니다.
부활이 가지고 온 지도는 흩어진 제자들의 마음을 하나가 되게 하는 것입니다. 부활의 지도는 새 방향, 새 목적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새 지도에는 후퇴가 없습니다. 부활 이후에는 무덤 문이 활짝 열렸습니다. 이제 가는 곳마다 지도가 확장되어가며 하나님 나라가 지상에 건설되어 갑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없는 곳은 처음에는 대단한 목적을 가지고 떠들썩하게 모이지만, 금방 무의미하게 흩어지고 맙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없는 교회, 단체, 구역, 교구, 기관… 다 껍데기뿐입니다. 그러나 부활의 지도는 흩어짐이 없고 도리어 방방곡곡에서 예수 앞으로 불러모아 언제나 전진만 있을 뿐입니다. 초대교회가 그랬습니다. 초대교회는 열심히 모이는 교회, 성령의 역사가 충만한 교회였습니다(행 2:42-46, 4:32-37). 주님의 부활은 제자들뿐 아니라 전 성도의 지도를 새 지도로 바꾸어 주셨습니다.
3) 평면의 지도에서 입체의 지도로 바뀌었습니다.
옛 지도는 2차원 평면의 지도이지만, 예수의 부활을 알게 된 제자들은 입체적인 지도를 가지게 되었습니다. 옛 지도에는 땅의 것만 기록되어 있지만, 입체적인 새 지도에는 위의 것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제는 땅의 것이 아닌 위의 것을 찾게 하는 안내의 지도인 것입니다. 골로새서 3:1에서는 “너희가 그리스도와 함께 다시 살리심을 받았으면 위엣 것을 찾으라 거기는 그리스도께서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시느니라”라고 말씀하면서 땅에서 볼 수 없는 위의 것을 찾으라 말씀하고 있습니다. 히브리서 12:2에서도 “믿음의 주요 또 온전케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 저는 그 앞에 있는 즐거움을 위하여 십자가를 참으사 부끄러움을 개의치 아니하시더니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으셨느니라”라고 말씀하시며 땅의 것이 아닌 위의 것을 가리키고 있습니다.
자기 생각, 정신, 마음, 삶에 새로운 지도를 가지십시오.
오늘날 발달된 문명은 보이는 물질 지도를 상상 이상으로 정밀하게 만들었습니다. 그러나 여전히 옛 지도일 뿐입니다. 도리어 물질 문명은 사람과 사람 사이를, 가족과 가족 사이를 다 절단시키고 하나가 되지 못하게 만들고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의 지도는 모이기를 힘쓰는 지도입니다(히 10:25). 역사가 누가는 사도행전 2:42-46, 4:32-37에서 주님의 부활 이후 제자들이 모이기에 힘썼다는 사실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옛 지도에는 각자 갈 길이 제멋대로 표시되어 있지만, 새 지도를 선물받은 성도들은 같은 한 곳에 모이기에 힘쓰는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이제 우리 지도가 달라져야 합니다. 똑같이 서울에서 부산을 가도, 복음을 들고 가는 자는 벌써 새 지도를 들고 가는 사람입니다. 우리의 생각과 정신, 마음과 삶에 새로운 지도가 있어야만 합니다. 여러분의 지도를 주님이 주시는 새로운 지도로 바꿔들고 수평으로, 수직으로 확장시켜나가시기 바랍니다.
2006년 3월 5일 주일 3부 예배
휘선 박윤식 목사 설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