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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 가까이 말씀을 듣는 자리

2018.01.27 10:25

예수님 가까이 말씀을 듣는 자리

눅 10:38-42

 

먼저 제 신앙고백을 하겠습니다. 마산과 진해에서 목회를 마치고 성경 한 권만 들고 서울로 올라와 목회를 했습니다. 당시 교인이 13명이었습니다. 얼굴이 아니라 머리카락 속에서 땀이 날 정도로 매일 기도했습니다. 1년이면 열 달 이상 남산에 올라가 기도하며 밤을 새웠습니다. 남산 숭의전문학교 교장께서 학교 문을 열어줘서 산에 올라갈 수 있게 해주셨고 잠도 재워주고 밥도 먹여주며 월요일부터 토요일까지 저에게 말씀을 배웠습니다. 그 후 저에게 성경을 배운 유상근 박사(전 통일원 장관, 명지대 총장)가 인부 240명과 석고보드를 지원하고 동양모직과 성창합판 사모님이 도와줘서 신림동에 200평 교회를 세웠습니다. 얼마나 감사하던지요. 그 당시 불초한 저와 함께 괴로움도 고달픔도 마다하지 않으며 교회를 섬기던 주님의 여종이 네 사람 있었습니다. 일주일에 서너 번은 밤을 새우며 기도하고 새벽예배에도 빠지지 않았습니다. 바쁜 생활 속에 살림해 가며 아이를 학교 보내고 남편 섬기면서도 틈틈이 낮에도 교회 와서 기도하고 갔습니다. 시간이 나면 남의 집 대문을 두드려 “제가 어느 교회 집사인데 교회 좀 나오시라”고 전도합니다. 대문간에서 거절하는 사람도 있지만 들어오라고 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렇게 해서 40명 가량을 전도했습니다. 교회에 활기가 차기 시작했습니다. 지금도 제 눈에는 눈물겹게 그 성도들을 기억하고 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 땅은 우리의 집이 아닙니다. 우리는 전세 기한을 내서 이 땅에 살고 있습니다. 기껏해야 수십 년 더 살면 떠나야 합니다. 그러나 에녹같이 큰 믿음으로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을 살며 ‘하나님을 기쁘시게 했다’는 증거를 받으면, 죽지 않고 변화해 하늘로 올라갑니다(창 5:22-24, 히 11:5, 고전 15:51). 오늘 본문은 예수님께서 갈릴리 전도를 마치고 예루살렘으로 올라가는 도중 베다니에 들르셨을 때의 일을 말씀합니다. 거기 살던 마르다, 마리아, 나사로 3남매는 예수님을 사랑하는 사람들이었습니다. 예수님도 그 3남매를 사랑하셨습니다(요 11:5). 누구 하나 예수님 모시는 사람 없어도 그들은 예수님을 모셔 대접했습니다. 이번에도 언니 마르다가 기쁜 마음으로 예수님 일행을 모셔 들였습니다. ‘무엇을 해드릴까’ 하고 마음이 분주해 정신없이 일하고 있는데 동생 마리아를 찾아보니 방에 들어가 예수님 발밑에 앉아서 예수님의 말씀만 듣고 있는 것이었습니다. 동생이 너무 한다는 생각이 들고 꼴이 사나왔습니다. 그래서 마르다는 예수님께 가서 “주여, 내 동생이 나 혼자 일하게 두는 것을 생각지 아니하시나이까. 저를 명하여 나를 도와주라 하소서” 말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대답이 뜻밖이었습니다. “마르다야, 마르다야. 네가 많은 일로 염려하고 근심하나 무엇을 하든지 한가지면 족하다. 그리고 너보다 네 동생 마리아가 좋은 편을 택했다. 영원히 빼앗기지 아니하리라.”

 

 

예수님이 “마르다야, 마르다야” 두 번 부르신 것은 결코 그녀를 책망한 것이 아닙니다. 부드럽고 사랑스러운 음성으로 조용히 말씀하신 것 입니다. 하나님이신 예수님은 마르다가 당신을 사랑하는 것을 잘 알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다만 예수님은 “한가지만으로도 족하다”, 즉, “실상 필요한 것은 한가지뿐이다”라는 말씀으로 마르다를 가르치신 것입니다. 말씀 듣는 시간에도 정리되지 못한 마르다의 분주한 마음, 그것은 예수님에게 필요 없다는 것을 알려주신 것입니다. “말씀을 증거하는 것에는 죽고 사는 문제가 달려있다. 그런데 말씀 듣는 시간에 나를 대접하겠다고 분주해? 난 그거 필요 없다.” 하는 것입니다. 말씀을 듣는 것이 급선무입니다. 말씀을 들어야만 해결됩니다. 말씀을 들으면 살아납니다. 모든 문제가 말씀으로 해결됩니다.

 

 “말씀 듣는 시간에 나를 대접하겠다고 분주해? 난 그거 필요 없다.”

 

나인성(城) 과부의 외아들이 젊은 나이로 죽었습니다. 온 동네가 다 울었습니다. 예수님이 길 가시다가 그 광경을 보고 “울지 말라” 하셨습니다. 책임지겠기에 울지 말라 하신 것입니다. 가셔서 “청년아 일어나라” 하시니 죽었던 청년이 일어났습니다. 죽은 자도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살아난다면 예수님이 집에 오셔서 말씀하시는데 부엌에서 일하던 것 그만두고 말씀을 들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여러분이 지금 여주 연수원에 와 있는 것도 누구 허락받고 부탁받아 온 것 같지만 배후에는 하나님께서 마리아 같은 축복을 주시기 위해 부르셨다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여기서 말씀 듣는 것이 무슨 일보다도 큰 축복인 줄 믿으시기 바랍니다. 예수님은 그들 3남매를 극진히 사랑하셔서 꿀물같이 사랑이 줄줄 흐를 정도였습니다. 후에 나사로가 죽었다는 소식을 듣고 눈물을 흘리시니 사람들이 ‘얼마나 사랑했기에 저렇게 눈물을 흘리는가’ 할 정도였습니다. 그러나 마르다가 예수님께 친절했던 방법은 자신의 생각에 치우친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결과적으로 ‘나한테 불친절하다’고 하신 것입니다. 그녀가 예수님을 사랑하고 대접하려 한 것은 삼척동자도 알지만 예수님은 말씀을 믿음으로 귀담아 듣는 것을 제일 기뻐하셨던 것입니다. 더 나아가 마르다는 자기 정성이 과잉돼 예수 앞에서 자기를 내세웠습니다. ‘내 동생’, ‘나를’ 하며 ‘나, 나’를 연거푸 외치면서 “동생을 명하여 나를 도와주게 하라”고 예수님에게 명령한 것입니다. 피조물이 하나님께 명령할 수 있습니까. 예수님이 볼 때 ‘큰일 날 여자구나’ 싶으셨습니다. 마르다는 예수 앞에 겸손해야 합니다. 12제자가, 마르다와 마리아가 하던 일 다 놓고 말씀을 들을 때 악령과 사탄의 세계는 다 깨지고 어둠이 물러가고 하나님의 뜻이 이뤄지는 순간인데 마르다는 몰랐습니다.

 

마르다는 자기 정성이 과잉돼 예수 앞에서 자기를 내세웠습니다.

‘나, 나’를 연거푸 외치며 예수님에게 명령까지 했습니다.

 

성도 여러분. 오늘날까지 건강과 가정과 사업이 형통하지 못한 것은 말씀을 듣지 않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믿음으로 듣는 것은 하나님을 뜨겁게 사랑하는 것입니다. 사랑하지 않으면 누가 말씀을 듣습니까. 하나님은 중심을 보십니다. 마르다는 자신이 예수님께 ‘큰 일’을 해드리는 줄 알았지만 예수님께는 ‘사소한 일’이었습니다. 여러분은 마리아처럼 말씀을 듣는 자리, 깨닫는 자리, 증거하는 자리를 그 나라 갈 때까지 절대 빼앗기지 않는 성도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예수님이 12제자를 택하신 목적은 ‘나와 함께 있게 하기 위해서’였습니다(막 3:13-15). 예수와 함께 하지 않으면 말씀이 안 나옵니다. 한 집안에서 거리가 몇 발짝이나 됐겠습니까. 그러나 순간적으로 마리아는 이스라엘 선민(選民)이 됐고 마르다는 이방(異邦)이 된 것입니다. 예수님과 마리아의 마음은 서로 오가며 신앙의 교제를 하고 있었습니다. 하나님이 어쩔 줄 모를 정도로 제일 좋아하시는 것이 바로 당신의 말씀을 듣는 것입니다. 말씀을 듣는 자는 살아납니다.

예배시간에 사업하러 가면 잘 될 것 같지만 다른 일로 그 돈 다 빼앗기고 맙니다. 하나님 말씀을 무시하고 업신여기는 자의 기도는 듣지 않으십니다(잠 15:29). 오늘날까지 신앙생활 하면서 가장 좋은 것이 무엇이었습니까? 사람마다 대답이 달랐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제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것이 가장 좋은 편이라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주님과 마음을 같이하고 함께 앉는 자리, 그곳에서 말씀을 듣고 깨달으면 믿음이 갑자기 생깁니다.

광야에서 12지파의 마음에 심통이 가득했습니다. 하나님께서 12지파 대표들의 지팡이를 성막의 법궤 앞에 놓게 하셨습니다. 하룻밤 사이에 그중 아론의 지팡이에만 물기가 생기고 생기가 돌더니 순이 나고 꽃이 피고 열매가 맺었습니다. 첨단과학이라 한들 말라붙은 지팡이에서 어떻게 꽃을 피우겠습니까? 하나님께서는 마리아의 마음 가운데 아론의 싹난 지팡이처럼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말씀의 열매가 주렁주렁 달려있는 것을 보셨습니다. 믿음은 하나님 말씀을 들음으로 생깁니다(롬 10:17). 목사고 장로고 몇 대째 집안이 믿는다 해도 성경 공부 안하면 말짱 헛것입니다. 성경을 공부하면 신앙의 열매가 주렁주렁 매달리는 것이 눈에 보입니다. 하나님이 가만히 계시지 않습니다. 당신의 말씀을 듣고 당신이 기뻐하시는 뜻을 행할 열매가 맺어지는데 그 소원대로 성취시키시지 않겠습니까. 하룻밤 사이에 순이 나고 꽃이 피고 열매 맺는 것이 옛날 얘기가 아니라 바로 이 순간 여러분 가정에 임할 줄로 믿으시기 바랍니다. 집안에 생기가 돌고 사업체에 생기가 돌고 형제간에 뜨겁게 사랑하는 생기가 돕니다.

 

우리는 본질을 잊어버리고 하나님께 뭔가 해드리겠다고 서두르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본질은 당신과 함께 하며 말씀을 듣는 순간 신구약이 말하는 때가 앞당겨지고 이뤄지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회당에 들어가셔서 성경을 펴신 뒤 이사야의 예언을 수많은 사람에게 읽어주시고 덮으셨습니다. 그리고 “이 말씀을 들으므로 오늘날 너희 귀에 응했다.”고 하셨습니다(눅 4:16-21). 말씀이 이뤄진 것입니다. 우리는 주님을 위해 뭘 하겠다는 생각을 겸손히 뒤로 두고, 어린 사무엘처럼 “주여 내가 여기 있사오니 말씀하옵소서” 해야 합니다. 이미 주님이 다 이룩해 놓으셨으니 우리는 말씀으로 받아들이면 됩니다. 마르다는 자기 솜씨와 음식 맛도 자랑하고, 정성과 노력을 예수께 거짓 없이 진정으로 다 드리고자 했습니다. 그런데 순서가 틀린 것입니다. 말씀을 듣는 것이 먼저입니다.

 

주님을 위해 뭘 하겠다는 생각을 겸손히 뒤로 두고, 어린 사무엘처럼

“주여 내가 여기 있사오니 말씀하옵소서” 해야 합니다.

 

성도 여러분. 예수님께서 원하시는 것은 예수님을 모시는 것입니다. 예수 모실 마음이 생기면 말씀을 듣습니다. 성경공부를 합니다. 교회에 열심히 나옵니다. 봉사합니다. 교회의 어려움을 다 찾아봅니다. 예수님께서는 당신을 필요로 하는 사람을 찾아오십니다. 예수님을 모시는 사람은 예수님을 꼭 필요로 하는 사람입니다. 우리는 모두다 예수님이 없으면 안 됩니다. 오늘까지 교회 직분 받아 놓고도 실상은 마르다처럼 자기 일에만 분주했다면(빌 2:21) “이제부터 늘 말씀을 듣고 주님의 발 앞에서 순종하겠사오니 허락해 주십시오” 하고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신학자들은 마리아를 ‘예수의 발 아래 있는 여인’이라고 부릅니다. 부럽지 않습니까. 마리아는 예수의 발 아래 엎드려 죽은 오라비를 위해 간구했고(요 11:32), 예수의 발 아래 앉아 예수의 발에 기름을 부었습니다(요 12:3). 이것은 우연이 아닙니다. 예수의 발 아래 있다는 것은 교만하지 않고 낮아진 마음입니다. 말씀을 들을 때 ‘무슨 말씀 하나 한번 들어볼까?’ 해서는 안 됩니다. ‘주께서 어떤 말씀 하시든지 내가 듣겠나이다’해야 합니다. 마리아처럼 예수님의 발자취를 따라가는 사람이 돼야 합니다(벧전 2:21). 사업하고 결혼하고 자녀를 길러도 남편 속에서 예수를 보고, 아내 속에서 예수를 보고, 자식을 볼 때 예수를 바라봐야 합니다(롬 10:17). 국내외 모든 평강교회에 마리아가 충만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하겠습니다. 교회는 마리아가 나서야지 마르다가 설쳐서는 안 됩니다. 마르다가 많으면 먼지만 자욱하게 일어납니다. 마르다는 ‘이 교회에서 나만큼 일하는 사람 있으면 나와 보라고 해’ 라고 외칩니다. 성도는 말씀과 기도 밖에 없습니다. 물질 가지고 좌우하면 큰일 납니다. 50년간의 목회에서 제가 얻은 결론은 한때 열심히 일하는 사람, 헌금 많이 하는 사람, 주님 사업에 힘쓰는 사람도 있지만, 끝까지 주님 뜻대로 사는 사람은 제단 앞에 꿇어앉아 기도하고 말씀 듣고 교회에 빠지지 않으며 교회 일에 앞장서는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이런 성도가 목회자로서 제일 부럽고 자랑스럽습니다. 말씀을 들으면 좋은 편이 어디인지 분별하고, 좋은 일을 보고, 좋은 소식을 받게 되고, 결과적으로 모든 것이 잘 되는 축복의 역사가 가정과 사업과 직장과 교회에 충만해진다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결론 맺겠습니다. 마리아는 세상 떠날 때까지 오직 주님 한 분만 모셨습니다. 주님은 여러 가지 분요(紛擾)한 것을 좋아하지 않습니다. 두 마음이 아닌 한 마음을 원하십니다. 신앙은 하나입니다. 한 사람이 두 주인을 섬길 수 없고(마 6:24) 마음과 정성과 성품을 다해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 신앙입니다(신 6:5). 주를 사랑하지 않으면 교회에 나올 수 없을 뿐 아니라 저주를 받게 됩니다(고전 16:22). 한 마음으로 앉아 있는 신자는 끝까지 말씀을 경청하고, 두 마음으로 서있는 신자는 기도하자면 도망가고 축도시간에 도망갑니다. 축도는 예배 중의 예배입니다. 축도 안 받으면 예배가 다 무효입니다. 군인처럼 차렷 자세로 말씀과 기도에 집중하는 신자는 신령한 신자이고, 말씀을 듣지 않고 건성으로 왔다갔다 하는 사람들은 부정한 신자, 육신의 신자입니다. 본처는 남편 된 예수님을 진심으로 사랑하고 정성으로 피곤을 풀어주려 하지만, 첩은 남자가 힘 있고 돈 있을 동안에만 비위 맞추며 뭘 얻어가려 합니다(약 1:8, 4:8, 렘 4:14, 시 51:2-7). 참으로 불쌍한 사람입니다. 가룟 유다가 바로 이런 사람이었습니다. 세상도 좋고 예수도 좋다는 사람에게 주님은 “둘 중 하나를 선택하라!” 명령하십니다. 여러분이 교회를 사랑하십니까? 교회가 예수님입니다. 예수님 한 분만 사랑하면 교회 전체를 사랑하는 것입니다. 그 나라 갈 때까지 오직 하나님만 알고 깨닫고 사랑하는 가운데 모든 일이 형통으로 이뤄지는 역사가 있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하겠습니다. 오늘 말씀을 듣는 순간 모든 질병이 달아날 줄 믿습니다.

마리아는 자기 생애 전부가 예수님의 말씀이고, 예수님 뜻대로 사는 것이 자기 생애의 전부임을 알았습니다. 예수님이 그녀에게는 세상 어떤 것과도 바꿀 수 없는 보화, 진주, 다이아몬드였던 것입니다. 예수님 안에서 모든 문제를 해결 보려고 했습니다. 성도 여러분. 아무리 높은 권세, 명예, 재물이 있다 할지라도 그 나라 갈 때 까지 예수 발 아래에서 말씀을 듣는 자리에 있게 해달라고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역사하셔서 지혜와 명철과 총명과 권세와 능력과 재물과 고을(눅 19:11-27)을 주실 줄 믿으시기 바랍니다. 자나 깨나 마음에 예수님을 모시고, 예수님을 모신 채 출장가고 출근하고 사업하고 부모 섬기고 아내 사랑하고 자녀 양육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2007년 10월 26일 (금) 구속사 시리즈 제1권
출판감사예배 전야(前夜), 휘선 박윤식 목사 설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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