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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 나의 성탄은?

2018.01.05 11:16

빌 4:15-21
1984년 12월 성탄 설교
휘선 박윤식 목사

하나님이 인생을 입으시고 오신 성탄은 죄인 구원을  위한  가장  완전하고  거룩한  하나님의 방법의  실현입니다.  하나님께서  구원과  사랑과 기쁨을 주시고, 인간 편에서는 은혜를 값없이 받는 기쁨 속에, 신·인(神·人) 화목, 사람과 사람 사이의 화목, 사람과 만물과의 정상적인 관계의 회복이 전개되는 본질적인 평화입니다. ‘하나님께 영광, 땅에서는 기쁨과 평화’ 이것이 성탄의 실상입니다.
교회는  하나님의  영광·인간의  평화를  생산하는  위대한  산실(産室)이어야  합니다.  교회는 예수 그리스도의 몸이요, 예수님은 교회의 머리이기 때문입니다.
“홀연히 허다한 천군이 그 천사와 함께 있어 하나님을 찬송하여 가로되 지극히 높은 곳에서는 하나님께 영광이요 땅에서는 기뻐하심을 입은 사람들 중에 평화로다 하니라” (눅 2:13-14)

예수 그리스도의 성탄은 역사적 사건이며 진리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동정녀 탄생을 바로 믿을 때, 바른 신앙의 기초를  세울  수가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동정녀 탄생은 하나의 가설이나 이상이 아니고, 성경이  가르치는  진리이기  때문에  그것을  믿지 못하면 기독교의 다른 진리를 믿을 수가 없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동정녀 탄생과 말씀이 육신이 되어 오심, 즉 성육신의 과정은 하나님의 만세 전의 계획이며 이적 중의 이적입니다. 기독교의 신조들 가운데 기본적인 것은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서 사람이 되셨다는 것입니다.

요한복음 1:14에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하는  표현은,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의  의미와  내용을  함축적으로  표현하는  중요한 내용입니다.

이 말씀에서부터 신학적인 용어인 성육신(成肉身)의 교리가 나왔습니다. 그런데 성육신이란 말은 그리스도의 신성(神性)과 인성(人性)을 다 함께 포함하는 말입니다. 그 뜻은 하나님께서 육신의 몸을 입으셨지만 그는 참 하나님이며 참 사람이란 의미입니다.

사도  바울도  로마서  8:3에  “아들을  죄  있는 육신의 모양으로 보내신” 하나님을 말하고 있습니다.
살아 계신 하나님께서 죄인을 구속함에 있어서,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께서 육신의 몸을 가지고 세상에 오시는 성육신의 탄생! 그것은 누가복음 2:13-14에 홀연히 허다한 천군이 그 천사와 함께 있어 하나님을 찬송하여 가로되 “지극히 높은 곳에서는 하나님께 영광이요 땅에서는 기뻐하심을 입은 사람들 중에 평화로다”라고 찬송할 수 있는 것은 동정녀의 몸에서 나신 참 메시야를 발견할 때 가능합니다.

누가복음 2:1을 보면, 가이사 아구스도가 호적령을 내렸기 때문에 예루살렘과 베들레헴 등지에는 호적하러 온 사람들로 인하여 병든 동물상을 이룬 그 밤에, 베들레헴의 외딴 말구유에서 한줄기 별빛이 멈추었습니다. 이 사건은 환상이 아닙니다. 말씀이 육신이 되어서 인간을 구원하러 오신 실상이 역사 세계에 전개되는  거룩한  순간이었습니다.  동방의  박사들이 이 거룩한 실상(實狀) 앞에 꿇어 경배드리는 감격스러운  장면이  이루어졌습니다.  실로  동방 박사들의 행위는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에 대한 찬송, 사랑, 보물, 희생 등이 얽혀져 있는 엄숙한 모습들이었습니다.

가브리엘  천사장은  양을  치던  목자들에게 메시야의 강생을 선포했습니다(누가복음 2:8-10). 목자들은 가난하고 초라했고 정직했고 부지런한  자들이었습니다.  저  목자들은  장엄하고  경쾌스러운  천군천사의  노엘  찬송을  마음에 새기면서 다윗의 동네를 향하여, 이 실상을 찾아 달음질쳤습니다. 우리는 오늘 이 시간 만왕의 왕으로 나신 이를 찾아 베들레헴으로, 아니 우리 마음이 베들레헴 말 구유가 되어 메시야가  탄생하는  거룩한  성탄이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지극히 높은 곳에서는 하나님께 영광’

누가복음 2:14의 “지극히 높은 곳에서는 하나님께  영광이요”라는  말씀은  하나님께  대하여만  쓰여지는  말씀입니다.  하나님이  인생을 입으시고  우리가  볼  수  있고  동거할  수  있게 인간세계에 임하셨기 때문입니다(요 1:1, 요일 1:1-2).
구약시대에 성막이나 성전에 이 여호와의 영광이  나타났습니다.  모세가  시내산에서  십계명을  받을  때  하나님의  영광을  접촉했습니다(출 34:5-7, 33:19-23). 이스라엘 백성은 그 하나님의 영광이 임하는 산에 들어가면 무론대소하고 죽는다고 하였습니다. 모세가 그 산에서 내려올 때, 백성들은 그 영광을 본 모세를 볼 수 없어서 얼굴을 수건으로 가리운 일도 있었습니다(출 34:29-35). 이러한 영광은 하나님의 본체의 영광을 나타내기 위한 그림자적 영광, 부분적 영광이었습니다.

그런데  이  하나님의  위엄스러운  영광의  실체가, 그 외아들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사람이 보도록 나타내도, 죽지 않게 나타내시려 한 것입니다.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 (요 1:14)
“어두운 데서 빛이 비취리라 하시던 그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의 얼굴에 있는 하나님의 영광을 아는 빛을 우리 마음에 비취셨느니라.” (고후 4:6)
“이는 하나님의 영광의 광채시요 그 본체의 형상이시라.” (히 1:3)
“본래 하나님을 본 사람이 없으되 아버지 품 속에 있는 독생하신 하나님이 나타내셨느니라.” (요 1:18)

이것은 하나님 편에서의 숙원이었습니다. 또 하나님만이 하실 수 있는 일이요 오묘입니다. 그래서 ‘지극히 높은 곳에서는 하나님께 영광’이라고 선포하고 있는 것입니다.
또한 성탄은 진리 계시의 최고봉이기 때문에 하나님께 영광입니다.
율법은 모세로 말미암아 주신 것이요 은혜와 진리는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온  것입니다(요 1:17). 만물이 그로 말미암아 온 것같이(자연계시, 요 1:3), 은혜와 진리(특별계시, 요 1:17)도 그로 말미암아 온 것입니다.
하나님  자체가  사람이  되어  외양간에  오신 것은, 모든 계시, 모든 진리 재현의 최고봉입니다.  이것은  하나님이  인간계에  나타내시는 은혜의 최고봉입니다. 죄인 구원을 위한 가장 거룩한  하나님의  수단이요  방법입니다.  가장 완전하고  만족한  방법입니다.  하나님의  최고의 방법이 실현되는 이것이 그에게 영광스러운 일입니다.
그렇다고 볼 때, 우리는 참으로 여기에 참여한 그 행복상을 알아야 하고 믿어야 하고 순종해야 하고 겸손해야 하고 증거해야 할 것입니다. 그림자의 영광을 보고도 즐거워하였던 구약 성도에 비한다면, 이제 하나님의 본체의 실상이 전개되는 신약 세계의 영광이야 말할 것도 없는 것입니다. 여기에 성탄의 실상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영광’이야 말로 성탄의 참 실상입니다.

“땅에서는 기쁨과 평화”

주님은 기쁨을 주시는 자로 오셨습니다.

“무릇 시온에서 슬퍼하는 자에게 화관을 주어 그 재를 대신하여 찬송의 옷으로 그 근심을 대신하시고 그들로 의의 나무 곧 여호와의 심으신 바 그 영광을 나타낼 자라 일컬을 것이라.” (사 61:3)
“주의 앞에는 기쁨이 충만하고 주의 우편에는 영원한 즐거움이 있나이다” (시 16:11)

이상의 말씀은 신약시대에 있을 기쁨을 예언한 것입니다. 참 기쁨은 왕이 오신 기쁨이고 구세주가 오신 기쁨입니다. 자기 땅에 자기 백성을 찾아 자기 왕이 오시는 기쁨입니다.
그 기쁨은 잃어버린 양을 찾고 잃어버린 목자를 찾는 기쁨입니다. “나와 함께 즐기자. 나의 잃은 양을 찾았노라”(눅 15:6) “나와 함께 즐기자. 잃은 드라크마를 찾았노라”(눅 15:9) “우리가 먹고 즐기자. 이 내 아들은 죽었다가 다시 살아났으며  내가  잃었다가  다시  얻었노라  하니  저희가  즐거워하더라”  (눅  15:24)  하는  그 기쁨입니다.
그 기쁨은 그 백성의 죄를 사해 주고 즐거워하는 기쁨입니다.

“내가 그들을 내게 범한 모든 죄악에서 정하게 하며 그들의 내게 범하며 행한 모든 죄악을 사할 것이라. 이 성읍이 세계 열방 앞에서 내게 기쁜 이름이 될 것이며 찬송과 영광이 될 것이요, 나의 이 성읍에 베푼 모든 복과 모든 평강을 인하여 두려워하며 떨 것이라.” (렘 33:8-9)

아기 예수 그리스도가 이 땅에 오신 것은, 사죄를 하고 사죄를 받는 이러한 기쁨의 실현입니다.
그  기쁨은  새  창조를  하는  기쁨입니다.  여호와는  자기  행사를  인하여  기뻐하십니다(시편 104:31).
창세기 1장 여러 곳에서 말씀하시기를 “하나님의 보시기에 좋았더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처음 창조 시에 ‘기쁘고 좋았다’ 말씀하셨습니다.
성탄은 제 2의 창조사업의 시작입니다. 그리스도 안에 있는 새로운 피조물을 위한 성탄이 아닙니까?(고후 5:17) 그것이 기쁨입니다. 그래서 스바냐 3:17에서는 “너희 하나님 여호와가 너의 가운데 계시니 그는 구원을 베푸실 전능자시라. 그가 너로 인하여 기쁨을 이기지 못하여 하시며 너로 인하여 즐거이 부르며 기뻐하시리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다시 말해서 하나님께서 구원과 사랑과 기쁨을 주고, 인간 편에서는 은혜를 값없이 받는 기쁨입니다.

주님은  평화를  주셨습니다.  이는  본질적인 평화를 뜻합니다. 이것도 성탄의 실상입니다.
하나님과 사람 사이에 이루어지는 새로운 연합의 관계, 즉 신·인(神·人)화목의 평화입니다. 하나님과 그 하나님을 닮은 인간이 새로 만나게 되는 위대한 화목의 평화입니다. 창조자와 피조물·임금과 신하·남편과 아내·부모와 자식·목자와 양과 같은 사이에 새로 만나게 되는 재회의  평화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으로 더불어 평화를 누리는 것을 말합니다(롬 5:1).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의 화평이라고 에베소서 2:14-15에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  평화는  사람과  사람  사이에  이루어지는 화목을 말합니다. 에덴 동산에서 아담 하와가 하나님의 말씀을 불순종한 이후 인간은 분열의 비극을 만났습니다. 이 분열은, 의사의 불통·만남의 단절·감정의 벽·언어의 혼란·사상의 차이·대화의 단절 등으로 영원히 장벽을 이루고 말았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강생은  이  분열의  비극을 십자가로써 종과 횡을, 또 남과 북을 연결시키는 위대한 화목 공사로써 평화의 산실역(産室役)을 한 것입니다(엡 1:10, 2:12-22).
이  평화는  사람과  만물과의  정상적인  관계의  회복입니다(사  11:6-9).  참  우주의  새로운 질서,  우주의  새로운  조화,  우주의  새로운  미(美)인 것입니다. 이 평화는 임시변통이 아니라 영원합니다. 이유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영원하기 때문입니다. 예수 그리스도 자신은 옛날이나 오늘이나 영원합니다(히 13:8). 그래서 그가 주시는 구원이 영원합니다 (히 5:9). 속죄의 효과가 영원하기 때문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제사장 직분이 영원합니다(히 7:24). 그가 주시는 기업이 영원합니다(히 9:15). 그 나라가 영원합니다(히 12:28). 그의 언약이 영원합니다 (히 13:20).

성도 여러분, 이 땅 위에 그 어느 왕에게도 이 영원한 평화를 보장 받을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영원한 평화는 보장됩니다.
인간에게  칸트의  철학이  없어도  좋습니다. 단테의 시가 없어도 상관 없습니다. 페스탈로찌의 교육이,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그림이 없어도 상관없을지 모릅니다. 헨델의 음악이, 도스토예브스키의  문학이  없어도  상관  없을지 모릅니다. 크롬웰의 민주 정치·링컨의 흑인노삶에 힘을 주는 이야기예 해방이 없어도 상관 없었을 지 모릅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께서 동정녀에게 탄생하신 이 성탄이 없어서는 안됩니다. “하늘에는 영광 땅에는 평화”인 이 성탄의 실상이 없어서는 안 됩니다.
동방박사들의  예방·목자들의  전도·천사장 미가엘의  선포·천군천사들의  공중노래·마리아의 믿음·요셉의 순종과 수종·베들레헴 근방의 사내아이들의 학살, 이것이 없어서는 안됩니다. 베들레헴 근방의 사가랴·엘리사벳·예루살렘 성전의 나이 많은 늙은 선지자 시므온과 안나, 이런 분들이 없어서는 안됩니다. 그 이유는, 이들이 성탄의 실상을 증거한 자들이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구원의 실상을 본 사람들이자, 왕의 선물을 먼저 받은 자들입니다. 이들은 성탄의 실상을 목격하고 간직하였던 자들이었습니다.
이  거룩한  성탄의  실상을  보지  못한  자는 슬픔이  가득합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예루살렘  성에  가까이  오시면서  우셨습니다(눅 19:39-41). 그 이유는 예루살렘이 평화에 관한 일을 몰랐기 때문입니다.
오늘날  교회는  이  성탄의  실상을  간직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영광과 인간세계의 평화는, 교회가 이 백성 앞에 내놓아야 되는 영예로운 사명입니다. 교회는 하나님의 영광·인간의 평화를 생산하는 위대한 산실(産室)이어야 합니다. 교회는 예수 그리스도의 몸이요, 예수님은 교회의 머리이기 때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세상에 다른 것이 없어도 하나님의 교회는 있어야만 합니다. 세상 것은 망하여도 교회만은 망하지 않아야 합니다. 교회는 하나님의 영광과 평화의 비전을 지녔기 때문입니다. 이 위대한 성탄의 실상이 없는 나라나 민족이나 개인은 빛이 없는 암흑 속에서 헤맬 수 밖에 없습니다. 오늘날 성탄을 맞이하여 우리 마음에 참 성탄의 축복을 받아 영원한 기쁨과 평화가 충만해지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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