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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5. 십자가를 생각하며 _ 김형주

2016.03.26 22: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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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난주간 속에는 예수님의 33년 전 생애가 함축되어 있을 뿐만 아니라 영생을 약속받는 확실한 증거가 예수님의 부활로 제시되어 있습니다. 인간의 죄를 대속하기 위해 당하신 예수님의 고난과 아픔, 죄악된 인간으로서는 도저히 측량하기 어려운 그 아픔을 조금이나마 헤아려봅니다. 이사야 선지자는 “그가 곤욕을 당하여 괴로울 때에도 그 입을 열지 아니하였음이여…(사 53:7)” 라고 그 고통의 정도를 묘사합니다. ‘괴로운 때에도 그 입을 열지 아니하였다’는 한마디 말에서도 예수님의 고통과 아픔을 조금이나마 짐작할 수 있습니다. 엄살도 눈물도 어지간히 아플 때 일이지 너무나 아프고 괴로울 때는 신음을 뱉을 겨를조차 없습니다. 


또한 십자가상에서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 곧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 하시는 예수님의 절규로서도 대속의 고통과 아픔의 정도를 짐작할 수 있습니다. 모든 인류를 대신하여 한꺼번에 당하셔야 했던 형벌이었기에 예수님께 가중된 무게가 어떠했을지 제 좁은 머리로는 감히 상상조차 되지 않습니다. 아담 타락 이후 4천 년간 참아 오신 하나님의 진노의 무게를 어떻게 측량하겠습니까. 


지금은 만물이 소생하는 계절입니다. 죽었던 수목에서조차 싹이 돋는 생명의 충만함과 그 소생의 기운이 가득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33세의 젊음이 이 봄철에 시들어야 했고, 이 소생의 계절과는 상관없이 죽음의 길을 우리를 대신해서 걸어야만 했습니다. 예수님께서 만약 인간적인 생각을 가졌다면 십자가를 등에 지고 예루살렘 거리를 벗어나 갈보리 언덕까지 오르는 길목에 피어나는 춘삼월 새싹의 생기를 마주하는 순간 깊은 고뇌와 갈등의 그림자를 떨쳐버릴 수 없었을 것입니다. “만물은 소생하는데 나는 왜 죽어야만 한단 말인가?” 하며 원망을 할 수 있었을 것이지만 그러나 예수님은 예언하심 그대로, 주 앞에서 연한 순같이 자라고 마른 땅에서 자라는 줄기와 도수장으로 끌려가는 양과 털 깎는 자 앞에서 잠잠한 양 같았기에 결코 그 입을 열어 하나님 앞에 범죄 하지 않으셨습니다. 


십자가에 처참히 달리신 예수님의 상하신 얼굴, 양손, 양발, 물과 피를 쏟으신 창 자국 난 옆구리까지, 그 상하신 모습이 얼마나 험상궂었으면 지나가던 사람들이 저주받은 자라고까지 손가락질했겠습니까. 바로 나의 죗값으로 지불하신 대가, 그 흔적입니다. 그러기에 외면해서는 안 됩니다. 나의 부정한 손 때문에 예수님의 손에 못이 박혔습니다.나의 발이 죄악된 곳으로 달려가기에 예수님의 발에 못이 박혀야 했습니다. 나의 불량한 양심이 하나님을 찾지 않기에 예수님의 심장에 창이 박혀야 했습니다. 나의 죄 때문에 예수님의 몸은 찢기고 상하고 피를 흘려야만 했던 것입니다. 


십자가를 보고 그저 울고 가슴만 치고 있을 수만은 없습니다. 지금은 예수님의 시신을 내어달라 했던 아리마대 요셉이 필요하고 예수님의 무덤으로 몰약과 침향 섞은 것을 가지고 온 니고데모가 필요합니다. 그 한 사람이 되어야겠습니다. 우리 주변에 돌아보면 아직도 예수님의 상처 입고 찢긴 몸이 얼마든지 있습니다. 거두어들이고 주의 사랑과 말씀으로 일으켜 세웁시다. 그럴 때 우리의 몸에도 주의 고난의 흔적이 새겨지고 예수님의 부활에 부끄럽지 않은 모습으로 동참하는 자격이 주어지게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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